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슈퍼스타-140화 (140/225)

# 140

바다를 건너 (4)

프로그램에서는 ‘케이케이 파헤치기’라는 코너를 특별히 만들어 20분 정도 되는 분량이 실제 방송에 나갈 예정이었다.

방송에서 자국 스타가 아닌 케이케이에게 이 정도의 시간을 할애할 마음을 먹은 것만 보아도 케이케이의 인기가 일본 내에서도 어느 정도 올라온 것만은 분명해 보였다.

스튜디오로 입장하자 남성 MC가 케이케이를 반겼다.

오늘 방송의 1인 MC인 와타나베 신이치는 개그맨 출신으로 젊은 세대부터 50대까지 넓은 층에서 사랑을 받는 일본의 유명 MC였다.

그가 맡고 있는 프로만 해도 세 개였고, 세 개 모두 시청률이 꽤나 좋았다.

개그맨 출신이라지만 멀끔한 중년의 외모로 여성들에게도 인기가 있었다. 망가지는 몸개그보다는 입담으로 웃기는 스타일이었고, 예능에 와서는  ‘ツッコミ(츠코미)’의 대명사로 불리며 MC의 자리까지 오르게 되었다.

본래 두 명의 조로 이루어진 일본 개그맨 콤비들 사이에서 자주 쓰이는 게 ‘보케와 츠코미’였다. 쉽게 말하자면 보케는 당하는 역할이었고, 츠코미는 구박하는 역할이었다.

구박하고 당하는 관계를 통해 웃음을 유발하는 것이었다.

와타나베는 콤비로 활동하진 않지만, MC를 보면서 주로 게스트들에게 ‘츠코미’의 면모를 과시하며 게스트들을 당황시키고, 당황하는 게스트들을 통해 프로그램의 재미를 만들었다.

그러나 일본 예능의 MC들 중에는 여성 출연자들에게 성희롱도 심심찮게 하는 이들이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와타나베의 진행 방식은 개중에는 ‘신사’ 취급을 받는 것이었다.

게스트들을 조금 당황시키긴 하지만, 없는 말을 지어내는 수준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와타나베는 입장하는 케이케이를 향해 딱 보아도 짓궂어 보이는 미소를 띠며 손을 흔들었다.

대기실에서 미리 인사를 나눌 때만 하더라도 무척이나 신사적으로 케이케이 멤버들에게 악수를 청하던 와타나베였다. 스튜디오에 들어서자 그로서는 프로의 모습을 한 것이었다.

케이케이 멤버들은 스튜디오에서 와타나베와 다시금 인사를 나눈 후 카메라에 대고 자기소개를 시작했다.

아침 방송에서 이미 했던 자기소개였기 때문에 이번에는 더 자연스럽게 자기소개를 해낼 수 있었다.

“오, 반갑습니다. 반가워요! 여기 한국의 아이돌 그룹 케이케이는 현재 한국에서 최고 인기인 그룹입니다. 그렇지요?”

와타나베가 일렬로 줄이어 선 케이케이 멤버들에게 물었다.

대본상의 질문과 동일했기 때문에 빠르게 질문을 이해한 정윤기가 애매하게 웃으며 답했다.

“어······. 그렇게 불러주시면······. 감사하죠.”

더듬더듬 정윤기가 대답하자 와타나베가 웃으며 받아쳤다.

“역시 자신들이 최고라고 자화자찬하는 케이케이의 리더!”

와타나베의 말에 정윤기가 조금 당황한 듯한 표정을 짓자 정윤기의 앞에 있던 카메라가 정윤기의 당황한 카메라를 클로즈업했다.

“최고가 되겠습니닷!”

김원이 치고 나오며 외쳤다.

호쾌한 외침에 와타나베도 ‘좋아요, 좋아! 힘내봅시다!’ 하며 상황을 넘겼다.

일본어가 완벽하지 않은 멤버들은 마이크와 함께 통역 담당의 음성이 들리는 이어폰을 착용하고 있었다. 때문에 중요한 의사소통에는 문제가 없었지만 한 발 늦게 질문을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

가장 일본어가 취약한 안형서와 아직 현지인의 말을 다 알아듣기는 힘든 박태형, 정윤기, 석지훈이 이어폰을 끼고 있었다.

스튜디오 내에 준비된 의자에 MC와 멤버들이 착석한 뒤 본격적인 인터뷰가 이어졌다.

“먼저 케이케이의 한국 내에서의 인기! 알아보겠습니다!”

와타나베의 소개와 함께 스튜디오 내에 있는 VCR에서 준비된 영상이 나왔다.

케이케이의 인기를 소개하는 영상이었다.

케이케이의 콘서트 현장, 케이케이를 보기 위해 줄지어 늘어 서 있는 케이케이 팬들의 모습과 각종 음악방송에서 1위를 하며 트로피를 받는 모습들이 연달아 나왔다.

거기에 케이케이 멤버들의 활약을 소개하면서 각자 어떤 분야에서 개인 활동으로 활약하고 있는지 나왔다.

거대한 일본어 자막으로 ‘멋있는’, ‘훌륭한’, ‘뛰어난’ 등의 형용사가 나왔다.

케이케이 멤버들도 자신들의 활동을 정리하는 마음으로 영상에 집중했다.

마지막으로 바로 일주일 전, TBN 시상식에서 대상을 수상하는 모습이 나오며 영상은 마무리가 되었다.

“와! 대단하네요! 한국에서 최고상을 받았군요! 축하합니다!”

“감사합니다.”

와타나베의 칭찬에 정윤기가 대표로 인사했다.

“처음부터 혜성처럼 등장해서 지금은 아예 태양이 된 느낌이군요!”

와타나베가 오바스럽게 표현하자 도욱이 웃으며 답했다.

“과찬이십니다. 태양까진 아니고······.”

“달?”

“태양이 되려고 노력하는······.”

“새끼 태양?”

“하하, 네. 그 정도면 좋겠습니다. 아직 갈 길이 멀고, 하고 싶은 음악도 많이 있으니까요.”

도욱의 대답에 와타나베가 끄덕였다.

“역시 케이케이의 주력 멤버이자 프로듀서다운 말이네요.”

“감사합니다.”

“안 그래도 도욱 씨 앞으로 질문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일단은 케이케이 전체에게 질문하고 싶은 건데······ 자신들의 인기 비결은 무엇일까요?”

와타나베의 질문에 김원이 유창한 일본어로 답했다.

“저희는 회사에서 시키는 음악을 하는 게 아니라 도욱 군을 주축으로 저희가 그때그때 하고 싶은 음악을 해요. 그래서 빠르게 트렌드를 따를 수도 있고, 진심으로 즐길 수도 있습니다.”

“오······. 좋아 보이네요.”

“거기에 팬들과 소통을 하려고도 많이 노력합니다. SNS를 이용해서요.”

“그렇군요. 그렇다면 SNS를 가장 잘 활용하는 멤버는 누구죠?”

“아무래도 형서 군입니다.”

“형서 군?”

와타나베가 ‘형서’가 누구냐는 듯 멤버들을 훑으며 물었다.

아직 통역 담당의 통역이 끝난 상황은 아니었지만, 안형서는 들려오는 자신의 이름에 가슴에 붙인 이름표를 흔들며 손을 들었다.

뒤이어 이어폰으로 SNS를 가장 잘 활용하는 멤버에 대한 질문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오, 보컬을 맡고 있는 멤버라고 했나요?”

“네!”

‘하잇!’ 하고 대답하는 안형서의 어투에 긴장이 배어나왔다. 한국에서라면 예능에서 가장 활발하게 토크를 하며 활약하는 안형서였지만 언어의 장벽이란 무척이나 컸다.

“SNS 활용은 어떻게 합니까?”

와타나베의 질문에 안형서가 더듬더듬 아는 일본어 단어를 총 동원해 답했다.

“사진······. 동영상······. 답장······.”

겨우 세 단어였지만 다행스럽게도 와타나베는 무슨 뜻인지 알아들은 모양이었다.

“팬들의 질문에 답도 해주고, 자주 대화를 나누나요?”

“네!”

안형서가 다시금 답했다. 와타나베가 씨익 웃으며 물었다.

“예쁜 프로필 사진을 한 팬에게는 답장을 더 많이 해주는 편?”

“아니요! 전혀!”

“에에······ 지금 당황했잖아요? 얼굴이 빨갛게 됐는데요?”

짓궂은 와타나베의 질문에 제대로 반박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안형서는 크게 당황하고 있었다. 와타나베는 안형서의 어눌한 일본어를 들으며 안형서를 놀려 먹기로 작정한 모양이었다.

“저희 팬들은 자기 얼굴보다는 저희 얼굴로 프로필을 많이 해놓습니다. 그래서 SNS상에서 팬들의 얼굴을 알 수 있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안형서를 대신해서 도욱이 능수능란하게 답을 했다.

와타나베는 조금 김이 식었다는 듯 어깨를 으쓱하고는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다.

“도욱 군은 프로듀서도 하고, 작사, 작곡, 보컬······ 춤에 연기까지 빠지지 않는다고 들었는데요.”

와타나베의 칭찬이 담긴 멘트에 도욱이 겸손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감사를 전했다.

“무려 칸에도 다녀왔다고!”

“네. 무척이나 영광스러운 자리였습니다.”

“사실 제 지인 중에서도 도욱 군이 출연한 ‘푸른 하늘’을 봤다는 지인이 있었어요. 무척이나 인상 깊었다고 말해주었습니다.”

“와······. 감사합니다.”

“연기를 더 하고 싶은 마음은 없어요? 팀보다는 솔로로 활동해도 좋을 것 같은데?”

“네?”

“혼자하면 수익도 안 나눠도 되잖아요?!”

와타나베의 질문을 들은 도욱의 표정이 잠시 굳었다. 그러나 아주 스치듯 굳은 것일 뿐이었다.

“아닙니다. 저는 팀도 너무 소중하기 때문에······. 팀도 솔로 활동도 잘 해나가고 싶습니다.”

“에에······. 제가 다 아쉽군요.”

“하하.”

와타나베의 말에 도욱이 어색하게 웃었다.

“도욱 군 없이는 안 돼요~!”

김원이 적재적소에 멘트를 넣으며 스튜디오의 분위기를 풀었다. 와타나베가 김원을 보고는 미소 지었다.

어차피 이런 질문으로는 케이케이 같은 프로 가수들을 크게 당황시키기 어렵다는 점은 와타나베도 알고 있었다. 가볍게 장난식으로 넘어가는 것들이었다.

“그렇다면, 막내인 지훈 군에게도 묻고 싶네요. 도욱 군이 팀에 없어선 안 되는 멤버가 맞나요?”

“물론! 물론입니다!”

석지훈이 당당하게 답했다. 그러자 와타나베가 되물었다.

“그럼 팀에 없어도 될 것 같다······ 하는 멤버는?”

“예?”

당황한 석지훈이 한국어를 뱉었다. 이런 질문은 한국 예능에서는 들어본 적도 없는 질문이었고, 대본에도 나와 있지 않은 질문이었다.

석지훈이 다시 일본어로 말했다.

“아, 없습니다!”

“이런 식으로 방송하면 너무 재미없어요. 케이케이는 재미없는 그룹이 될 겁니까?”

와타나베가 도발했으나 석지훈도 사실 ‘캠핑 48시간’을 통해 짓궂은 프로 예능인들 사이에서 살아남은 경력이 있었다.

“재미없지만 우애 있는 그룹입니다.”

석지훈의 대답에 와타나베가 ‘오오’ 하는 소리를 내며 오바스럽게 감탄했다.

“팀워크가 대단한데요. 과연 한국 내 최고 아이돌 그룹! 그럼 한 명씩 ‘자신이 이 팀에서 빠질 수 없다!’ 하는, 그런 개인기를 보여주면 고맙겠습니다.”

와타나베가 자연스럽게 개인기를 보여 주는 것으로 코너를 넘겼다.

코너가 넘어가며 촬영이 잠시 스톱되고, 세트장이 재정비되었다.

재정비된 세트는 가운데에 작은 무대와 같은 단상이 있고, 뒤편에 계단식 의자가 준비되어 있는 형태였다.

단상 위에 처음 오른 건 김원과 정윤기였다.

김원과 정윤기는 미국 랩스타 AMINEM의 히트곡인 ‘Standing’ 1절을 준비해왔다.

반주가 흘러나오고 김원과 정윤기가 ‘Standing’을 완벽하게 소화해내는 모습이 그려졌다. 연습생 시절 준비해왔던 레퍼토리 중 하나였는데 이번 일본 예능을 준비하며 다시 연습한 것이었다.

한국에서 본래 해오던 개인기를 할 수도 있었지만, 어떤 방송에서든 계속해서 새로운 것을 보여주고자 하는 욕심이 멤버들에게는 있었다.

더군다나 한국 노래로는 큰 호응을 얻기 힘든 일본이었다.

김원과 정윤기의 랩 퍼포먼스가 끝나자 와타나베로 만족스럽다는 듯 박수를 쳤다. 특히 김원의 빠른 래핑과 좋은 영어 발음이 인상적이라는 평가였다.

이후에는 박태형과 석지훈이 준비한 댄스 브레이크 타임이 있었다.

특히 박태형이 단상 아래로까지 내려와 공중 회전하는 퍼포먼스를 해보이자 카메라 스태프들 사이에서도 감탄이 흘러나왔다.

다음은 안형서였다. 안형서는 한국에서는 ‘별의 꽃’으로 더 잘 알려진 곡의 일본 원곡을 불렀다. 애절한 발라드였기 때문에 조금 분위기가 쳐지는 감은 있었지만, 안형서의 뛰어난 보컬 실력을 뽐내기 나쁘지 않았다.

마지막이 도욱이었다. 도욱은 현재 일본에서 국민드라마라고 불리는 드라마 ‘한죠 나오키’의 주인공 나오키의 대사를 연습해 온 상태였다.

‘한죠 나오키’는 평범한 은행원이었던 이가 은행장을 꿈꾸며 부모의 원수에게 복수하는 내용이었다.

사실 노래를 준비하려고 했었지만, 프로그램 측에서 ‘칸 영화제’ 출신이라는 것을 더 크게 조명하고 싶다며 도욱에게 연기를 준비해달라 부탁했다.

도욱은 무섭게 집중하며 분노하는 나오키의 대사를 진짜 나오키처럼 연기했다. 나오키 연기의 특징인 흰자위를 드러내는 모습에 와타나베로 고개를 절레절레저으며 정말 대단하다는 제스쳐를 취했다.

“와······ 정말 한국의 나오키라고 해도 좋겠어요. 아니, 나오키 아들이라고 해야 할까.”

와타나베의 칭찬에 도욱이 무대 단상을 내려오면서는 다시 수줍은 청년이 되어 감사 인사를 전했다.

“역시 칸 출신! 그런데······ 형서 군의 별의 꽃은 조금······. 연습을 너무 덜 해 온 것은 아닌지.”

일순 케이케이 멤버들 모두의 얼굴이 굳고 말았다.

안형서의 일본어가 모자란 것은 맞았지만, 노래를 하는 안형서는 흠잡을 곳이 없었다. 늘 열심히 준비해오고 잘하는 만큼 무언가를 한 뒤 이런 식의 반응을 들은 건 처음이었기 때문에 모두 무어라 답해야 할지 모르는 상태였다.

“열심히 했습니다······.”

안형서가 조금 주눅든 채 답변했다.

“······글쎄요.”

와타나베가 회의적이라는 듯 중얼댔다. 굳이 통역을 해주지 않아도 좋을 표정이었다.

‘이런 식으로 녹화가 끝나면 형서 형의 이미지가······. 팬들은 분노하겠지만, 케이케이를 잘 몰랐던 일본의 사람들에게는······.’

도욱이 빠르게 머리를 굴리던 그때였다.

이대로 케이케이 멤버들 중 가장 무능한 멤버로 낙인찍힌 채 촬영을 마칠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은 안형서도 마찬가지였다.

안형서가 갑자기 손을 번쩍 들었다.

“제가······! 다른 것 하겠습니다! 다른 것······ 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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