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9
바다를 건너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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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에서 펼쳐진 ‘あおぞら’ 쇼케이스는 무척이나 성공적으로 끝이 났다.
일본에서도 꾸준히 앨범을 내고, 투어를 통해 공연을 한 덕에 확실히 케이케이의 음악을 사랑하는 팬들이 탄탄하게 팬층을 형성하고 있었다.
거기에 컨셉 포토부터 나카모토사와 협력하여 전략을 짠 것 또한 잘 먹혀 들어간 모양이었다.
물론 일본의 K-POP팬들은 ‘K-POP스러움’을 좋아하는 것이긴 했지만, 기본적으로는 어쩔 수 없이 일본인이었다. 일본인의 입맛에 맞게 나온 앨범 구성에 조금 더 후한 평가를 주고 있었다.
나카모토사의 자본력으로 이전 케이케이의 일본 앨범들보다 퀄리티도 조금 높아진 것도 사실이었다.
기본적으로는 일본 버전으로 편곡된 곡이 일본인의 감성에도 잘 맞아 떨어졌다. ‘あおぞら’은 오리콘 차트에도 진입하며 이번 일본 활동의 순항을 예고했다.
이제 조금 더 밀어붙일 때였다.
쇼케이스가 끝난 후, 호텔에 돌아와 간단히 샤워를 마친 멤버들은 저녁을 먹으러 시부야 거리로 나왔다.
피곤하지만 저녁이라도 밖에서 먹으며 도쿄의 밤을 조금이라도 즐겨 보자는 취지였다.
내일 이른 아침부터 방송이 잡혀 있었고, 그 뒤로는 계속해서 2박 3일 내내 스케줄이었다.
쉼 없이 달려가고 있는 멤버들이었기 때문에 간간이 주어지는 짧은 자유 시간마저도 무척이나 달콤했다.
국내에서는 숙소 앞으로 한 발자국만 나가도 젊은 사람들이 알아보는 수준이 되었기 때문에 그나마 거리를 걷기엔 도쿄가 나았다.
“어! 저건!…….”
김원과 함께 앞서 걷던 박태형이 멈춰 섰다. 박태형이 멈춰 서며 가리킨 작은 극장 앞에는 <푸른 고래>의 일본판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박태형의 옆에 있던 김원이 박수를 치며 멤버들을 불러 모았다.
“와우! 여기서 도욱이 얼굴을 보게 될 줄이야.”
멤버들이 너도 나도 극장 앞에 몰려들어 포스터가 붙어 있는 쪽을 봤다. 도욱도 멤버들의 호들갑에 떠밀려 벽에 잔뜩 붙어 있는 포스터를 확인했다.
일본판 포스터에는 ‘칸 수상작’,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등의 수식어구가 붙어 있었다.
칸에서의 호평 이후 도욱의 영화는 여러 국가로 수출된 상태였다. 물론 상업영화가 아니었기 때문에 대대적인 극장 상영까지 이루어지진 않았지만, 예술 영화를 즐겨보는 애호가들 사이에서 호평이 있었다.
특히 한국과 유사한 감성을 가진 일본의 영화 잡지들이 <푸른 고래>를 관심작으로 뽑으며 이름을 알렸다.
학교 폭력 문제는 일본이 한국보다 앞서 겪은 심각한 사회 문제이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월드 와이드 아이가.”
정윤기가 감탄했다.
도욱의 영화 포스터를 발견하고 신기해한 케이케이 멤버들이지만, 일본 유명 레코드사 앞에 서자 더 눈이 커다래질 수밖에 없었다.
레코드사 앞 정문에 설치된 전광판에는 케이케이의 영상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조금 더 강렬한 색감으로 찍은 ‘あおぞら’ 뮤직비디오였다.
“오 실장님, 여기 잠깐 들렀다 가도 될까요?”
석지훈의 물음에 오백호 실장이 주변을 살피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훤칠한 젊은 남자 무리를 보고 힐끔거리며 지나가는 이들은 있어도 아직까지 알아채고 쫓아오는 이들은 없었다.
늦은 시간이라 레코드사도 영업 종료 시간 직전이라 매장도 비어 있었다. 멤버들은 직접 레코드사 매장 안으로 들어가 자신들의 앨범이 쌓여 있는 곳 앞을 구경했다.
커다란 입간판과 함께 ‘K-POP의 새로운 황태자 케이케이 신보’라는 안내문구가 번쩍번쩍하게 눈에 띄었다.
오백호 실장도 직접 일본에서 케이케이의 앨범이 팔리는 매장에 와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동행한 통역 담당을 통해 안형서는 이것저것 매장 직원에게 궁금한 것들을 물어보았다. 매장 직원은 조금 의아해 하면서도 통역 담당의 질문에 성심성의껏 답해주었다.
“인기가 진짜 많대요. 지금 한국 가수들 중에서는 단연 잘나가고……. 최근에 あおぞら 뮤직비디오 영향인지 정규 1집 앨범부터 사가는 팬들도 는 것 같다고…….”
통역의 설명에 안형서가 입가에 미소를 띤 채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굳이 설명을 듣지 않아도 매장에서 큰 코너를 차지하고 있는 것을 보면 금세 알 수 있었다.
설명을 해주던 매장 직원은 뒤늦게 멤버들에 케이케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놀라는 것도 잠시 엄지를 치켜세우며 대단하다는 말을 연신 반복했다.
어깨가 잔뜩 올라간 채로 레코드사 매장을 나온 멤버들의 손에는 케이케이의 앨범이 한 장씩 들려 있었다.
“회사 가면 잔뜩 있는데 뭘 또 이걸 사…….”
오백호 실장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지만, 멤버들의 마음은 그게 또 아니었다.
“오리콘 차트에서 더 올라가면 좋잖아요.”
안형서의 대답에 오백호 실장이 혀를 찼다.
“여섯 장 사서?”
“저 한 장 더 샀어요. 실장님. 그러니까 일곱 장이죠.”
석지훈이 앨범 두 장을 펼쳐 보이며 오백호 실장에게 대신 답했다. 오백호 실장이 조금 벙 찐 표정을 지었다.
“두 장이나?”
“네. 어머니 드리면 돼요.”
그걸 어디에 쓸 거냐는 오백호 실장의 마음을 읽은 듯 석지훈이 재빨리 대답했다.
오백호 실장은 고개를 저으면서도 케이케이 멤버들이 아직 순수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대상까지 받게 되고, 이미 어느 정도 인정을 받은 만큼 향상심보단 안주하는 마음을 갖기 쉬운데, 멤버들은 끊임없이 성장하고 싶어 했다.
“아, 엄청 배고프다. 이제 빨리 가자.”
정윤기의 말에 일행이 걸음을 빨리했다.
라멘 가게로 향하는 길, 몇몇 현지인들이 케이케이 멤버들을 알아보고는 소리를 질렀다. 물론 일본인들의 특성상 다가오지는 않았지만 이제는 도쿄 한복판에서도 케이케이를 알아보는 이들이 상당해졌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멤버들은 불편한 동시에 조금 뿌듯함을 느꼈다.
***
다음 날, 이른 아침 일본 공영 방송국의 한 스튜디오.
케이케이는 일본의 유명 아침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기 위해 졸린 눈을 비비며 헤어와 메이크업을 마치고 나와 있었다.
석지훈은 어제 밤 다른 멤버들보다 하나 더 큰 점보라멘을 시켜 먹었기 때문인지 평소보다 붓기가 심한 상태였다.
“그러게 지훈이 너 너무 잘 먹어!”
“먹어서 이렇게 큰 거예요.”
코디의 핀잔에 석지훈이 여상하게 답하고는 대기실에서 소리를 질러대기 시작했다.
“아아아아아아악!!!”
석지훈의 괴성에 멤버들이 깜짝 놀라 석지훈을 보았다. 석지훈은 입을 최대한으로 벌려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얼굴이 벌겋게 익어갈 정도였다.
“쟤 또 저런다.”
안형서가 한마디했을 뿐, 멤버들은 이내 고개를 돌려 자신들의 일본어 멘트를 외우기 바빴다.
소리를 질러 입 근육을 풂과 동시에 열을 내서 얼굴의 붓기를 빼는 방법은 석지훈이 얼굴이 부은 날 종종 쓰는 방법이었다.
그때 스태프가 들어와 멤버들에게 마이크를 채워주었다.
오늘 아침 방송에서는 간단한 멤버 소개와 함께 스튜디오에서 라이브로 무대가 예정되어 있었다.
“으, 떨린다. 나 이거 잘할 수 있겠지?!”
“할 수 있어요, 형. 제가 봐드릴까요?”
케이케이 멤버들의 일본어 실력은 명확하게 초급반, 중급반, 고급반으로 나눌 수 있었다.
고급반에는 역시 도욱과 김원이 있었다.
중급반에는 공부를 꽤 열심히 한 석지훈과 박태형이 있었다.
초급반은 본래 정윤기와 안형서였다. 그러나 리더인 정윤기는 랩과 그룹 소개 등을 일본어로 하다 보니 어느덧 아주 기초적인 일본어 정도는 할 수 있게 되었다.
문제는 안형서였다. 안형서는 여전히 가장 일본어가 취약한 멤버였다. 일본에서 콘서트를 벌써 몇 번이나 했음에도 불구하고 안형서의 일본어 실력은 전혀 나아질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필요한 정도의 노력은 쏟고 있는데다, 노래도 아닌 외국어에 취약한 것을 나무랄 수는 없었다.
두 줄 정도 되는 짤막한 멘트를 외우며 잊어버릴까 걱정하는 안형서에게 도욱이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안형서는 마다하지 않고 도욱을 두고 자신의 멘트를 외웠다.
“おはようございます。”
안녕하세요로 시작해 케이케이에서 재간둥이를 맡고 있다는 소개와 앞으로 잘 부탁한다는 짤막한 인사를 하자 앞에 선 도욱이 끄덕였다. 억양이 조금 어눌하긴 했지만, 틀린 부분은 없었다.
안형서는 자신감을 얻어 뒷부분 멘트인 ‘오늘 하루 활기차게 보내시라고 윙크를 보내드립니다!’까지 막힘없이 말했다. 그리고는 도욱을 향해 윙크까지 날렸다.
도욱이 웃음을 터뜨렸다.
“완벽한데요?”
“틀린 데 없었어?”
“네.”
도욱의 말에 안형서가 안심한 듯 웃었다.
“그럼 됐다. 이따가도 잘해야지.”
그리고 곧 생방송 인터뷰가 시작되었다.
정윤기의 인사부터 시작해서 각 멤버들이 맡은 멘트를 해나갔다. MC들은 정해진 질문을 몇 가지했고, 무리 없이 멘트를 외운 안형서의 윙크로 짤막한 인터뷰는 마무리되었다.
이후에는 케이케이의 무대가 이어졌다.
케이케이는 일본 아이돌 그룹에서는 보기 힘든 춤과 노래가 모두 되는 라이브로 일본의 아침을 더욱 활기차게 만들고 있었다.
생방송을 보고 있는 일본 현지인들의 반응도 꽤 주목할 만했다.
-지금 나오는 사람들은 한국에서 온 거야?
-한국에서 현재 가장 인기 많은 아이돌
-AOB만 잘하는 줄 알았는데 한국엔 실력파 가수가 꽤 있구나..
-방금 금발머리 누구? 잘생겼어!
-우키☆
-자랑스러운 케이케이 센터~^^
-춤을 추면서 저렇게 노래하는 게 가능해? 멋있다
-나 저 금발머리 어디서 본 것 같아 영화관이었나
-케이케이! 최고다! 이전 앨범부터 팬이에요!
-왼쪽 멤버는 일본어를 아주 잘하네
-영어도 잘해~! 유학파의 수재.
-박태형 좋아 【o´゚□゚`o】
-랩하던 멤버 굉장히 패셔너블하네
-케이케이 모두 패션 센스가 대단해
-요즘엔 한국이 유행을 앞서나가는 기분이네
-그래봤자 조선인!
-한국 여자 아이돌 그룹을 보고 싶어
-몸매가 좋아 보여~ 다들 키가 크구나!
성공적인 아침 예능 데뷔였다.
다른 예능 프로그램의 녹화가 있었으므로 생방송을 마친 케이케이는 곧바로 옆 방송사 스튜디오로 향했다.
“너무 당황하지 말고.”
녹화 전, 오백호 실장이 조금 걱정스럽게 케이케이 멤버들에게 당부했다.
사실 오백호 실장으로서는 별로 잡고 싶지 않았던 프로그램이었다. 그러나 이번에 앨범 제작을 맡기면서 나카모토사에 활동 전반에 대한 모든 결정도 일임한 상태였다.
일본 시장은 현지 회사인 나카모토사가 더 잘 알고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물론 그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오늘 촬영할 프로그램은 한국 회사였다면 굳이 내보내지는 않았을 거라는 게 오백호 실장의 생각이었다.
물론 나카모토사의 힘이 없었다면 잡지 못할 스케줄이기도 해다.
오백호 실장도 잘은 몰랐지만, 곧 촬영에 들어갈 예능 프로그램은 일본 프라임 시간대에 방송되는 인기 예능 프로그램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만큼 자극적인 프로그램이기도 했다.
MC들은 재미를 위해서라면 게스트에게 막무가내로 ‘괴롭힘’이라고 불릴 만한 요구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녹화라는 점이었다.
스태프에게 지시를 받은 통역 담당이 케이케이 멤버들은 스튜디오 안으로 이끌었다.
‘별 문제가 없어야 할 텐데…….’
도욱은 스튜디오 안으로 들어가며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