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6
정상 (3)
“앞으로 더 좋은 노래로 세상을 밝히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도욱을 마지막으로 케이케이의 수상소감이 끝이 났다.
울고 있는 멤버들과 겨우 울음을 참는 멤버들이 섞여 있었다. 도욱이 수상소감을 마치자 정윤기를 중심으로 멤버들이 모여 서로를 끌어안았다.
여섯 명의 멤버들이 한데 모여 대상 수상의 기쁨을 나누는 모습이 사람들의 가슴을 울렸다.
***
TBN 시상식이 끝난 후, 힛 엔터테인먼트에서는 대상을 수상한 케이케이를 위해 성대한 회식자리를 열었다.
힛 엔터테인먼트의 사장과 부사장까지 모여서 케이케이 멤버들을 독려했다. 오늘 시상식에서 본상을 수상한 밀키웨이도 함께 참여했다.
힛 엔터테인먼트가 배출한 첫 대상 가수였다.
사장 또한 뿌듯함을 감추지 못하고 케이케이를 총괄한 권흥조 제작이사를 칭찬했다. 칭찬 보따리가 풀린 것처럼 신인개발팀 임성안 팀장까지 불려 나와 칭찬을 받고 있었다.
권흥조 제작이사와 함께 큰 그림을 보며 기획한 케이케이이긴 했지만 이 정도로 잘될 거라는 확신은 없었던 임성안 팀장이었다.
임성안 팀장은 흐뭇한 표정으로 식당 중앙 테이블에 앉아 있는 케이케이 멤버들을 바라보았다.
“이미 결과가 나와 버려서 이런 말하면 늦은 걸 수도 있겠는데요······.”
임성안 팀장이 입을 떼자 옆에 있던 심준 팀장이 무슨 말이냐고 물었다.
“오디션에서 강도욱 처음 보던 때가 생각나서요.”
“아, 임 팀장님이 뽑았지, 도욱이. 그때 안 뽑았으면 진짜 땅을 치고 후회했겠어요.”
“안 뽑았을 리가 없죠.”
임성안 팀장이 단호하게 말하자 심준 팀장이 잔에 물을 따르며 빙긋 웃었다.
“하긴 안 뽑을 수가 없는 인물이죠.”
“어떻게든 잘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처음 본 순간부터.”
심준 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심준 팀장도 처음 도욱이 용감한외동의 곡에 피아노 전주를 넣는 아이디어를 생각해왔던 때를 떠올렸다.
데뷔곡인 ‘Sorry but I Love You’의 탄생 순간부터 이미 도욱이 있었다.
“복덩이가 굴러들어왔죠. 다른 멤버들도 마찬가지지만.”
스타일리스트들을 비롯한 여러 막내 스태프들과 인사를 하고 온 오백호 실장이 막 자리에 앉으며 두 사람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나도 매니저하면서 이렇게 편한 애들은 처음입니다.”
오백호 실장의 말에 심준 팀장이 웃었다.
“처음엔 기껏 몬스터 애들 군기 잡아놨더니 또 신인이냐고 이사님한테 하셨다면서요.”
이제는 꽤 된 이야기였다. 심준 팀장의 말에 오백호 실장이 미간을 찌푸렸다.
“뭐. 그때야.”
미간을 찌푸리는 오 실장에 심준 팀장이 조금 굳었다. 딱히 어려운 관계도 아님에도 오백호 실장이 인상을 쓰면 본능적으로 굳게 되는 심준 팀장이었다.
심준 팀장이 심약한 탓이라기보단 오백호 실장의 기가 워낙 강한 탓이었다.
“그나저나 이번에 회사 내부에 꽤 변화가 있겠더라고요.”
심준 팀장이 일부러 말을 돌리며 옆 테이블에 앉은 힛 엔터테인먼트 사장과 권흥조 이사, 조애니 부장을 힐끔거렸다.
“우리 세 사람 모두 얘기 나온다고 인사과 사람이 그러더라고요. 연봉협상 다들 얼마 안 남으셨죠?”
심준 팀장의 말에 오백호 실장과 임성안 팀장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케이케이의 성과는 케이케이를 담당한 이들이 연봉 인상과 승진을 할 것이라는 예상을 당연하게 할 만한 성과였다.
“어차피 별로 큰 회사도 아닌데 별 기대 없습니다.”
오백호 실장이 답했다. 임성안 팀장이 그건 아니라는 듯 부정하며 말했다.
“이제는 큰 회사가 될 겁니다.”
그렇게 말하는 신인개발팀 임성안 팀장의 눈이 반짝이고 있었다.
임성안 팀장은 최근 권흥조 제작이사의 지원을 받아 새 신인 개발 프로젝트를 시작한 상태였다.
현재로썬 케이케이만으로도 충분했지만, 착실히 미래를 준비해 나갈 때였다. 케이케이의 인기에 힛 엔터테인먼트의 이름도 제법 알려지면서 연습생도 많이 들어와 있는 상태였다.
좋은 기운을 탔을 때 빠르게 진행하겠다는 게 임성안 팀장의 계획이었다.
어차피 지금 시작해도 빨라야 내후년에야 팀이 데뷔를 할 수 있을 것이었다.
그리고 임성안 팀장의 시선이 다시 한 번 향한 곳은 케이케이 멤버들이 있는 곳이었다.
‘성공의 기억은 무척이나 중요하다.’
실패가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을 임성안 팀장은 믿지 않았다. 성공이 성공을 낳을 뿐이라는 게 그녀의 생각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힛 엔터테인먼트는 성공의 열쇠를 반쯤을 손에 쥔 상태였다. 떨어뜨리지 않고 잘 쥐고만 있어도 반은 성공한 셈이었다.
시상식에 참여하느라 제대로 밥도 먹지 못했던 멤버들은 허겁지겁 고기를 집어 먹고 있었다. 구철민과 코디들이 그런 멤버들을 못 말리겠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벌써 몇 인분을 추가했는지 모를 일이었다.
“아, 요즘 식이한다고 넘 안 먹었더니 양이 이것밖에 안 된다 아이가. 내한테 실마이다, 마.”
정윤기가 젓가락을 내려놓으며 투덜댔다.
“와, 윤기 형 진짜 쪼렙.”
“뭐 인마? 질질 짠 주제에.”
“형도 우는 거 다 봤거든?”
“이게 진짜.”
정윤기의 심기를 거슬러 놓고선 안형서가 들은 체도 안 하며 젓가락을 바쁘게 움직였다. 정윤기도 다시 젓가락을 들어선 반찬으로 나온 도토리묵을 집어 먹었다.
말도 하지 않고 고기를 입에 우겨넣고 있는 건 석지훈이었다.
“너희 누가 보면 회사에서 굶긴 줄 알겠다.”
“굶긴 게 사실이죠.”
구철민의 말에 석지훈이 입 안에 넣은 쌈을 꿀떡 삼키고는 답했다.
카메라에 잘 나오려고 연습과 식이 조절을 병행한 멤버들이었다. 서러움이 쌓일 법도 했다.
“너 근데 수상 소감에 내 이름 빼먹었더라?”
코디 한 명의 말에 물을 마시던 정윤기가 멈칫했다. 워낙 많은 사람들의 이름을 호명했던 정윤기였다. 빼먹었는지 아닌지조차 기억나지 않았다.
“이 형 자기 노래 가사도 가끔 까먹어요. 누나가 이해해줘요.”
도와주는 건지, 욕을 하는 건지 모를 안형서의 말에 코디가 웃었다.
“그나저나 도욱이가 말한 새로운 꿈이란 게 뭐야?”
“노래로 세상 밝히는 거 아이가.”
안형서의 물음에 이번엔 정윤기가 답했다. 도욱의 말이 두루뭉술했기 때문에 안형서의 마음에는 약간의 의문이 남아 있었다.
“사실······.”
역시나 ‘못 먹은 한’이 있었던 도욱은 공깃밥을 두 그릇이나 비운 상태였다. 숟가락을 내려 놓으며 도욱이 입을 열었다.
도욱의 말에 멤버들과 주변에 앉은 이들이 귀를 쫑긋하니 세웠다.
“굉장히 나중 일이 되겠지만 나중에는 제가 제작도 하고 싶어서요.”
“제작?”
정윤기가 되묻자 도욱이 끄덕였다.
“네. 제가 처음부터 멤버 구성부터 참여해서······.”
“뭐어? 우리를 버리는 거야?”
안형서가 큰소리로 장난스럽게 물었다. 도욱이 당황해서 그런 뜻이 아니라고 손사래를 쳤다.
“아니, 그 케이케이는 당연히······.”
박태형이 정말이냐고 묻는 듯한 눈빛을 보내왔기 때문에 도욱은 더욱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정윤기가 웃으며 안형서와 박태형을 말렸다.
잠시 생각하는 듯하던 정윤기가 진심으로 말했다.
“것도 궁금은 하네.”
안형서도 이내 웃으며 거들었다.
“그러게. 도욱이 니가 또 하면 잘할 거야. 지금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럼 최연소 제작자 아냐?”
“뭐, 지금은 너무 이르고······.”
“아냐, 너라면 지금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도 우리 오래 가자.”
“당연하죠, 형.”
안형서의 말에 도욱이 답했다. 다른 사람들도 한 마디씩 도욱에게 기대가 된다는 말을 건넸다. 그렇게 훈훈한 분위기가 무르익어 갈 때였다.
주변에서 주던 술을 되는 대로 먹던 김원이 테이블에 엎드렸다. 구철민이 김원을 챙겼다.
“이제부터가 진짜 중요한 것 같아요. 더 조심하고······.”
비록 김원은 엎드려 있었지만, 도욱은 멤버들에게 자신이 우려하는 부분에 대해 진지하게 말을 꺼냈다.
원래 올라가는 일에 비해 내려가는 일은 너무 쉬웠다. 발만 조금 잘못 디뎌도 미끄러지기 십상이었다.
한 번 정상에 올라왔다고 끝도 아니었다. 오래, 계속해서 머무르기란 더욱 힘들었다. 지켜보는 이도 너무 많았고, 떨어지길 기다리는 이들도 너무 많았다.
“형도 참. 오늘은 그냥 즐기면 안 돼요?”
막내 석지훈의 말에 도욱이 뒷머리를 긁적였다. 멤버들에게 잔소리를 하려던 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조심할게요. 형서 형 말대로 우리 오래 가야죠. 그냥 형은 조금 덜 조심해도 될 것 같아서 하는 말이에요.”
박태형도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도욱아.”
여기까지 온 것에 도욱의 공이 가장 크다는 것을 모르는 이는 이 자리에 없었다. 모두 도욱을 한 마음 한 뜻으로 믿고 따랐다.
자신만의 힘으로 이 자리에 온 것이 아니라 모두의 힘으로 이곳에 온 만큼, 자신의 실수 때문에 이 자리에서 떨어져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멤버들에게는 확고하게 있었다. 피해를 주고 싶지 않은 마음이었다.
도욱은 한 명, 한 명 진중한 멤버들의 눈을 보며 웃고 말았다.
그때 테이블에 엎드려있던 김원이 벌떡 일어나선 잔을 들었다.
“건배하자, 건배! 치얼쓰! 아엠 쏘오오오오오 해피!”
“아, 이 형은 좀 덜 즐거워야 될 것 같은데.”
석지훈의 말에 다른 멤버들이 모두 웃었다.
***
기분 좋게 웃고 떠들며 회식을 마친 멤버들은 숙소로 돌아왔다.
전날까지 계속된 연습으로 무척이나 고됐음에도 다들 쉽게 잠들지 못하고 있었다.
김원만이 오백호 실장이 회사에 가져다 놓겠다는 트로피를 오늘만 안고 자고 싶다고 가져와선 끌어안은 채 코를 골며 잠들어 있었다.
정윤기와 석지훈은 자신의 침대에 누워 휴대폰으로 쏟아지는 축하 인사에 답장을 하는 중이었다.
거실에서는 이제 막 씻고 나온 도욱과 팬카페에 글을 쓰고 있는 안형서가 있었다. 박태형은 아까 전 생방송으로 방송된 TBN 시상식 재방송을 시청 중이었다.
수건으로 머리카락의 물기를 닦던 도욱이 휴대폰을 쥐고 있는 안형서에게 물었다.
“카페에 글 쓰시는 거예요?”
“어? 어어. 근데 팬카페 분위기가 이상하네. 글 써도 되는 건가?”
“분위기가요?”
오늘 도욱은 바쁜 일정 탓에 평소처럼 휴대폰을 확인하지 못한 상태였다.
도욱은 물으며 자리에 앉아 자신의 휴대폰을 확인했다. 어플을 켜자 포털사이트가 나왔다. 실시간 검색어 1위는 역시 케이케이였다.
케이케이, 케이케이 대상, 강도욱, 안형서, 사방신화······. 검색어들 사이에서 눈에 띄는 건 맨투맨과 채은호였다.
확실히 새 멤버로 들어온 채은호가 대중들의 눈에도 띄었던 것 같다.
‘역시······.’
도욱은 생각하며 메인에 뜬 기사들을 클릭했다. 케이케이의 대상에 관련한 기사가 주를 이루고 있었다. 댓글은 대부분 케이케이를 축하하는 댓글들이었다.
도욱은 자신들이 끌어안고 있는 기사사진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댓글을 보던 중 이상한 댓글이 눈에 띄었다.
-팬들 위하는 척은 다하더니ㅋㅋㅋㅋ역시나 뜨니까 어쩔 수 없구나
-루머 유포하지 마세요
-루머는 무슨 사진공개 다 됐는데ㅋㅋ
-케이케이도 인성 쓰레기?ㅋ
-그래도 서준처럼 사람 때린 건 아니잖아ㅋㅋ
-무슨 일 있음?
-지금 커뮤에 퍼지는 중ㅋㅋ
도욱은 눈을 찌푸리고는 아이돌 관련 소식이 가장 먼저 올라오는 대형 커뮤니티 사이트에 접속했다. 아니나 다를까 베스트 글 1위부터 3위까지 모두 케이케이에 관련된 글이었다.
1위는 다행스럽게도 케이케이의 대상을 축하하는 글이었다. 눌러 보니 여태까지 케이케이의 성적을 나열한 것과 케이케이가 대상을 받을 만한 성적이라는 것을 설명한 글이었다.
그러나 2위 글은 케이케이 멤버들에게 해명을 요구하는 글이었다. 도욱이 지체 없이 2위 글을 클릭했다.
클릭하자마자 뜨는 것은 찢겨져 나간 편지와 아무렇게나 버려진 선물더미 사진이었다. 선물에는 케이케이 멤버들의 사진이 붙어 있는 것도 있었다.
<팬들 선물 내다 버린 케이케이ㅋㅋ 해명 가능?>
-뭐야 진짜?
-진짜임? 레알? 레알?
-우리 애들 이런 애들 아님..매니저 탓이겠지
-그런 애 아닌 줄 어떻게 알아~ 서준은 그런 애인 줄 알았대?ㅋㅋ
-팬들 실망 많이 했겠다 나 케이케이 팬 아닌데도 내가 다 맘 아픔
-나..너무 현타와..ㅠㅠ 진짜일까? 아니었으면 좋겠어ㅠㅠㅠㅠㅠㅠㅠㅠ
-어떻게 아닐 수가 있겠어~ 저거 다 케이케이 팬사이트에서 오늘 서포트 들어간 것 맞잖아~
-수상소감이랑 이 사진 괴리...;;
-매니저가 버린 걸 왜 멤버들 욕을 하는지 모르겠음
-매니저가 그냥 버렸다고? 멤버들이 모를 수가 있나?
-힛 엔터는 매니저 잘라라!
-멤버들도 저 사실 다 안 거 아님? 저거 이미 멤버들이 본 팬레터 같은데
-놀랍다 진짜
-타팬들 일부러 여기와서 여론몰이ㄴㄴ
-여론몰이는 무슨 딱 봐도 욕먹을 일인데
-팬 우습게 봐서 잘된 가수 못 봄
무언가 일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도욱은 차분히 팬카페에 글을 쓰려는 안형서를 만류했다. 그리고 곧바로 오백호 실장에게 전화를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