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5
정상 (2)
자신들을 비추는 카메라와 일제히 향하는 시선에 케이케이 멤버들은 어리둥절하기만 했다. 약간 입이 벌어진 채 주위를 둘러보는 멤버들의 모습이 고스란히 화면에 잡혔다.
옆 대기석에 앉아있던 맨투맨 멤버 중 오빈이 도욱에게 얼른 나가라고 외쳤다. 오빈의 목소리에 도욱이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리더인 정윤기가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리고는 얼떨떨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정윤기가 일어나 무대 위로 걸어 나가기 시작하자 다른 멤버들이 그 뒤를 따랐다.
도욱도 가장 뒤쪽에서 멤버들을 따라 걸었다.
나가는 길에 여러 가수들이 박수를 치며 케이케이의 대상 수상을 축하했다.
허건이 일어나 케이케이와 악수했다. 같은 대상 후보자였지만, 허건이야말로 기대를 하지 않았던 사람이었다.
허건은 아까 전 케이케이의 무대를 보며 진심으로 감탄한 상태였다.
자신은 서서 노래만 잘 부르면 그만이지만, 케이케이의 무대는 그야말로 입이 떡 벌어지는 무대였다.
춤과 노래, 무대 매너 모든 것들이 완벽했다. 왜 사람들이 입을 모아 ‘케이케이의 무대가 최고다.’라고 말하는지 알 수 있는 무대였다.
그러니 허건으로서는 함께 후보에 올랐다는 것만으로도 좋았고, 자신도 충분히 인정할 수 있는 가수가 대상을 탔다는 것도 좋았다.
케이케이의 힙합 유닛인 오케이와 경쟁 부문이 같았던 선배 힙합 가수 러스티 듀오도 일어나 앞서 나가는 정윤기, 김원을 가볍게 포옹했다.
러스티 듀오는 ‘학생래퍼’ 시절부터 두각을 나타낸 정윤기와 오래 전부터 알아 온 사이로 자신들만큼이나 힙합 대중화에 공을 세우고 있는 오케이를 무척이나 아끼는 상태였다.
아라 엔터테인먼트 출신인 리틀 스타도 활짝 웃고 있었다. 사실 리틀 스타로서는 기분 좋을 것도 없었지만, 기분이 나쁠 것도 없었다. 다만 회사 분위기가 안 좋을 것이란 것만은 알 수 있었다.
그래도 우선은 카메라가 사방에 있는 시상식 현장이었다. 데뷔한 지 오래된 그들은 프로 중의 프로였다.
그러나 사방신화 멤버들만은 활짝 웃을 수 없었다. 화내는 얼굴이 아닌 게 다행이었다.
그저 억지로 입꼬리를 조금 올린 채 기계적인 박수를 몇 번 치다 말았다.
대상을 받겠다는 큰 의지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막상 매번 받던 대상을 받지 못하니 대상을 빼앗긴 기분이었다.
해체를 하자고 주장한 건 자신들이었음에도 정말로 끝났다는 기분이었다.
누구를 탓할 수도 없었다. 자신들이 스스로 빠진 수렁이었다.
사방신화의 멤버들만큼 깊은 수렁에 빠진 건 사방신화의 팬들도 마찬가지였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케이케이가 인기가 많아진 건 사실이었지만, 자신들이 생각하기에 사방신화를 넘을 수 있는 그룹은 아직 어디에도 없었다.
‘음모가 있어. 대상을 뺏겼다!’
사방신화의 대상을 굳게 믿고 있던 팬들의 슬픔은 빠르게 분노로 치환되었다.
사실 팬들에게도 사방신화의 대상은 언제나 당연한 것이었다. 그들에게 작금의 상황은 천재지변이나 다름없었다.
분노의 화살은 당연하게도 케이케이로 향했다. 사방신화가 무너지고 있는 것이 모두 케이케이의 탓 같았다.
그러나 공연장은 케이케이를 연호하는 함성으로 가득했다.
“케이케이―!!!”
“도욱아!”
“정윤기이이이!!!”
“축하해!!!”
“꺄아아아아아아아아―!”
고막을 찢을 듯한 함성이었다. 팬들은 자신들이 직접 대상을 수상하게 된 것처럼 기뻐했다. 서로 얼싸안고 기쁨의 함성을 질러내는가 하면 눈물을 보이는 팬들도 있었다.
케이케이 멤버인 것은 아니었지만, 케이케이의 멤버들을 위해 최선을 다해 응원해 왔던 팬들이었다.
인터넷상에서 여러 경쟁 그룹과 싸움을 했던 적도 있었고, 멤버들에게 악플이 달리면 고소를 진행했던 적도 있었다.
음원이 나오면 밤새워 스트리밍을 돌리고, 열과 성을 다해 투표를 하기도 했다.
그러니 팬들도 마치 제7의 멤버와 같은 마음일 수밖에 없었다.
“허어엉, 어떡해. 우리 애들이 대상이야.”
“으허어엉.”
우는 팬들은 대부분 케이케이가 처음 신인상을 받았던 날부터 함께했던 팬들이었다.
케이케이가 이 자리에 올라오기까지 보여주었던 무대들과 그들이 무대 위에서 흘린 땀들을 알기에 자신들도 모르게 울컥한 것이다.
데뷔 때부터 지금까지 승승장구하며 올라왔기 때문에 마치 엘리베이터라도 타고 자리에 올라간 것 같았지만, 케이케이는 에스컬레이터조차 없는 기획사 출신이었다.
오직 자신들의 음악만으로 스스로 계단을 밟아 올라온 것이었다.
“와, 안 믿겨. 대상이라니.”
“그러니까. 진짜 당연히 우리는 못 받을 줄 알았는데.”
“중소 기획사에서 대상 탄 건 거의 처음 아냐?”
“십 년 전에 서태준이 타고 처음인 듯······.”
팬들은 대화하며 케이케이 멤버들이 무대 위에 올라서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다른 모든 것을 차치해도, 그저 자신들이 좋아하는 멤버들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팬들은 행복감을 느꼈다.
무대 위에서는 김아영이 트로피를 든 채 무대 위로 올라오는 케이케이를 맞이하고 있었다.
김아영이 은은한 미소를 띠며 정윤기에게 트로피를 전달했다.
정윤기가 트로피를 받아들자 석지훈과 안형서, 김원이 트로피를 구경하기 위해 정윤기의 옆에 달라붙어 기웃거렸다.
정윤기는 트로피를 막내인 석지훈에게 넘기고 마이크 앞에 섰다. 이번엔 석지훈의 옆으로 안형서와 김원이 다가갔다.
돌아가며 트로피를 만져 보고도 이 상황을 믿을 수가 없는 멤버들이었다.
마이크 앞에 선 정윤기는 눈시울이 점점 뜨거워지고, 목구멍에서 무언가 울컥하며 차올라 말을 잘 하지 못했다.
“어······.”
정윤기가 소감을 시작하자 다시 한 번 객석이 술렁였다. 서로 축하의 메시지를 전하려 목소리를 높여 악다구니를 쓰는 팬들도 있었다.
정윤기는 침을 한 번 삼키고는 어렵게 소감을 말했다.
“아까 수상 소감을 다 해 버려서 할 말이 없는데······. 저희가 진짜 이렇게 큰 상을 받을지는 몰라서······.”
“사랑해!!!”
정윤기가 말을 잠시 멈춘 사이 객석에서 커다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울음을 참으려던 정윤기는 그 목소리에 피식 웃어버리고 말았다.
트로피를 서로 만져보던 멤버들은 어느새 정윤기의 뒤에 차분히 서서 정윤기의 수상 소감을 듣고 있었다.
멤버들은 자신들을 향해 흔들리는 응원봉의 불빛을 보았다. 믿기지 않아 눈물도 나지 않았었는데 어느새 조금 실감이 났다.
트로피를 넘겨받아 손에 쥐고 있던 안형서의 눈가가 촉촉하게 젖어들었다.
“감사합니다. 정말로 감사합니다. 여기까지 올라올 수 있게 해주신 모든 분들, 너무 감사드리고. 앞으로도 더 올라가겠습니다!”
“와아아아!!!”
“아악―!”
짤막했지만 ‘앞으로도 더 올라가겠’다는 정윤기의 소감은 팬들을 흥분의 도가니에 빠뜨리기 충분했다.
팬들도 자신들이 좋아하는 가수가 점점 더 높은 자리로 올라갈 때의 쾌감을 알고 있었고, 느끼고 있었다.
팬들의 환호성과 함께 정윤기는 뒤로 물러나며 옆에 있던 김원에게 마이크를 넘겼다.
정윤기는 이미 댄스 퍼포먼스 상을 받았을 때 회사 사람들의 이름을 대며 준비했던 소감은 다 말한 상태였다.
상을 받을 때마다 대표로 소감을 말하던 자신보단 다른 멤버들에게도 소감의 기회가 가는 것이 맞다고 판단했다.
이번에야말로 전 멤버가 수상 소감을 말할 기회였다.
마이크를 전해 받은 김원이 흥분해서 영어로 수상 소감을 쏟아냈다.
“Oh, my gosh. Key Ring! I can't believe I am here. Key Ring, all my fans, you guys deserve this. Thank you, Thank you······. Thank you to my team, the best team of the universe to me. And thank you to my family. Love you all!!!”
몇 번이나 고맙다는 말을 한 김원이 팔을 벌려 커다랗게 손을 흔들었다. 팬들 중에는 한국어에 서툰 외국 팬들도 상당수 있었다. 외국에서 온 팬들은 김원의 소감을 알아듣고 소리를 질렀다.
김원 다음은 안형서였다.
“아······.”
안형서는 마이크 앞에 서자마자 울컥하며 눈물을 쏟아냈다.
“흐윽. 제가 진짜······, 흑. 사나이답게 울지 않으려고 했는데······. 제가 울면 분명히 리더 형이 남자도 아니라고 놀릴 거라서······.”
그러나 뒤에 서 있던 정윤기의 눈도 이미 빨갛게 충혈된 상태였다.
팬들 사이에서 ‘엄마 미소’가 터져 나왔다. 평소 말 잘하기로 유명한 안형서였는데 울먹거리느라 제대로 말도 하지 못한 채로 아이처럼 수상 소감을 읊었다.
“대상······ 너무 좋아요. 사랑합니다. 다 팬들 덕분입니다. 엄마! 아빠! 나 대상 받았어!!! 군대 간 우리 형, 나라 잘 지키고 건강해!!!”
단순하고 우스운 수상소감에 지켜보고 있던 가수석 쪽에서도 웃음이 터져 나왔다.
석지훈이 마이크를 넘겨받았다.
“큰 상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사실 어릴 때부터 방송에 나오고 했지만······. 여기까지 올 수 있으리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요. 얼굴만 조금 알렸지 제대로 할 줄 아는 것도 없던 저인데······.”
막내인 석지훈의 담담한 소감에 이번엔 팬들이 울컥했다. 오랜 시간 고생해 온 석지훈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이 차올랐다.
“멤버들 아니었으면 여기까지 못 왔을 거예요. 제가 노력한 것들이 헛된 것이 아니었다는 게 이제야 증명된 것 같아 행복합니다. 팬 여러분 저희 사랑해주셔서 정말로 감사합니다.”
진심이 느껴지는 말이었다. 뒤에 서 소매로 눈물을 닦아내던 안형서가 더 울컥해서는 돌아서 나오는 석지훈을 부둥켜안았다.
함께 연습생 시절을 보내오면서도 석지훈이 어린나이부터 고생하는 게 내심 안쓰러웠던 안형서였다.
“그······. 가, 감사······ 합니다. 저, 저는······ 원래는 케이케이 멤버가 못 될 뻔했는데······.”
마이크를 넘겨받은 박태형의 소감에 팬석이 크게 술렁였다.
박태형이 케이케이의 멤버가 못 될 뻔했다는 것은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박태형이 참았던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숙였다.
고개 숙인 박태형에 팬들이 박태형의 이름을 외쳤다.
“박태형!”
“박태형!!! 울지마!!!”
옆에 선 도욱이 박태형의 어깨를 토닥여주었다.
박태형이 겨우 다시 고개를 들고 소감을 이어 나갔다.
“제가 여기 있어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더 자격이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노력······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도욱의 차례였다.
도욱이 꿈꿨던 정상이었다. 서강준은 몰락했고, 자신은 정상에 서 있었다.
비록 서중원 본부장이라는 큰 산이 남아있기는 했지만, 도욱이 다시 눈을 뜬 순간부터 생각해왔던 복수와 이루고자 하던 꿈은 어느덧 현실이 되어 있었다.
오히려 눈물은 나지 않았다.
도욱은 푸른 눈으로 정면을 응시했다. 도욱의 정면이 화면에 잡히자 사람들은 숨을 잠시 멈췄다.
얼굴도, 분위기도 도욱에게는 늘 누군가를 압도하는 듯한 기운이 있었다.
“이 상을 받을 수 있게 해주신 팬 여러분, 너무 감사합니다. 이 상은 정말이지 팬 여러분들의 것입니다.”
낮은 목소리가 시상식 현장을 울렸다.
TV를 보며 채널을 돌리고 있던 이들도 그 순간 무언가에 이끌린 듯 TBN에 채널을 고정했다.
“이 자리에 오기까지 정말로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일들도 제게는 있었습니다. 이게 제 꿈이었고, 인생이었고, 전부였습니다. 그런데 막상 이 자리에 오니까······.”
도욱은 말을 골랐다.
“제게······ 새로운 꿈이 생겼습니다.”
도욱은 넓게 펼쳐진 시상식 현장을 둘러보았다.
“꿈?”
“무슨 꿈이지······.”
“모르겠고 도욱이 얼굴 너무 황홀하다.”
“그 꿈도 내가 이뤄줄래.”
현장의 팬들은 도욱의 수상 소감을 멍하니 경청했다.
그리고 그 시각 인터넷에서는 실시간으로 커뮤니티가 뒤집어지며 난리가 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