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슈퍼스타-134화 (134/225)

# 134

정상 (1)

***

케이케이의 무대가 끝난 후 남자 그룹상이 발표되었다. 남자 그룹상은 사방신화였다. 오늘 사방신화가 받은 첫 상이었다.

인기상과 퍼포먼스상, 거기에 솔로와 유닛 활동 등으로 활약한 케이케이가 받은 상들을 생각하면 일단 개수에서부터 케이케이가 앞서고 있는 상황이었다.

대상 바로 아래상이 남자 그룹상과 여자 그룹상이라고 볼 수 있었다. 사방신화에게 남자 그룹상을 줌으로써 TBN 측에서는 케이케이와 사방신화의 균형을 어느 정도 맞췄다.

상을 받은 후 사방신화의 무대가 시작되었다.

사방신화의 무대는 무대 세트부터 성대했다. 아라 엔터테인먼트 쪽에서 엔딩 무대다운 무대를 하기 위해 무대 세트에 큰 공을 들였음을 알 수 있었다.

삼십여 명이 넘는 백댄서가 몰려나와 군무를 맞추는 장면은 장관이라고 불릴 만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미 팬들로서는 사방신화의 콘서트에서 여러 번 본 적 있는 무대였다. 똑같은 구성의 리믹스 버전을 콘서트에서 했기 때문이었다.

또 사방신화 자체가 공을 들였다기보다는 백댄서들이 수고하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물론 사방신화 멤버들의 무대는 노련했고, 잘 정돈되어 있었다. 연륜이 묻어 나오는 무대였다.

그러나 새롭거나 충격적이지 않았다. 사방신화 팬들을 제외한 객석의 이들이 보기엔 그저 ‘아, 사방신화네······.’ 정도의 감상이었다.

오히려 조금 안타까워진 건 사방신화의 팬들이었다. 직전의 케이케이 무대를 보았을 때는 부정하려고 해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열정을 온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눈빛만 봐도 ‘이 무대를 지배하겠다’는 열정이 느껴졌다. 그냥 보았을 때는 수줍어 보이고 조금 어색해 보이던 멤버조차도 무대 위에서는 다른 눈을 하고 있었다.

또 동시에 무대를 즐기고 있었다. 환호하는 객석을 보는 케이케이 멤버들은 반짝이고 있었다. 자신들을 위해 환호해주는 이들에게 금방이라도 고맙고 사랑한다고 외칠 것만 같았다.

그러나 사방신화는 아니었다.

한때는 사방신화도 그랬던 날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었다. 사방신화의 몸짓에는 노련함만큼이나 염증도 느껴졌다.

물론 그것은 오랜 시간 사방신화 멤버들을 지켜보고 탐구해 온 팬들만 느낄 수 있는 부분들이었지만 팬들에게는 치명적으로 다가왔다.

그들을 응원하는 마음이 허무함으로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매너리즘······.’

도욱은 잘 다듬어져 있으나 아무런 감흥도 일으키지 않는 짜여진 무대를 보며 생각했다.

‘언젠가 나 또한 매너리즘에 빠지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케이케이 멤버들은 무대에서 흘린 땀을 닦아내고 수정 화장을 마친 후 가수 대기석에 앉아 리액션을 하며 사방신화의 무대를 보고 있었다.

뜨거운 조명 아래에서 솔로 무대부터 시작하는 바람에 더 많은 땀을 흘린 도욱의 손에도 물병과 구겨진 키친타올이 들려 있었다.

많은 양의 땀을 닦아내는 데는 일반 휴지보다는 키친타올이 더 빠르고 효과가 좋았기 때문에 케이케이의 코디는 키친타올을 애용했다. 코디가 닦아주다 도욱에게 넘긴 타올을 도욱이 저도 모르게 손에 쥔 채로 들고 들어온 것이었다.

도욱은 손에 쥔 타올로 미처 닦지 못한 목 부근의 땀까지 닦아냈다.

무대를 하느라 흘린 땀은 찝찝함보단 보람을 더 주었다. 무대에 집중하느라 땀을 흘릴 수 있다는 사실이 행복했다.

‘아직은 아니야. 그리고 앞으로도 꽤 오랫동안은······.’

아닐 게 분명했다.

아직 가야 할 길이 많았고, 점점 더 하고 싶은 음악, 도전하고 싶은 연기들이 많아지고 있었다.

땀 흘린 뒤 멤버들의 표정을 보았을 때도 걱정할 필요는 없을 듯했다. 주변 사람들은 이상하게 생각할 정도로 멤버들의 표정이 무척이나 환했기 때문이었다.

무대 위로 불길이 치솟아오르며 사방신화의 무대가 클라이막스에 이르렀다.

사방신화는 그렇게 별다른 실수 없이 무대를 마쳤다. 어느 정도 면은 세운 셈이었다. 그러나 케이케이의 무대가 더 진짜 ‘엔딩’이라고 부를 만한 무대였음은 공연장에 있는 어느 누구라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러한 상태에서 대상 발표 시간이 다가왔다. 대망의 대상 발표였다.

MC의 소개와 함께 대상을 시상할 시상자가 나왔다. 화려한 드레스를 끌며 무대로 나왔다. 시상자는 한국 피겨스케이팅계의 제왕이라고 불리는 김아영이었다.

지난 동계 올림픽 때 금메달을 따내며 전국민의 사랑을 받고 있는 김아영은 대상 시상자로서 부족함이 없는 인물이었다.

김아영의 등장에 객석이 술렁였다.

아무리 유명하다지만 국가대표 선수를 볼 일은 잘 없는 가수들이었다. 가수 대기석에서도 놀라고 황홀한 표정을 짓는 이들이 많았다.

어린 나이 때부터 피겨로 단련해 온 마르면서도 탄탄한 몸매가 드레스 안과 밖으로 잘 드러났다. 김아영이 하늘색 드레스를 이끌고 나오는 모습은 그야말로 겨울의 여신 같은 모습이었다.

“예쁘다······.”

“이따가 대기실에서 사인 받아도 되나?”

김원과 안형서, 두 사람이 중얼거렸다.

“마, 주책이다.”

그런 두 사람의 옆에 앉은 정윤기가 속삭이듯 핀잔을 주었다. 사실 정윤기의 핀잔만 아니었으면 석지훈과 박태형마저도 김아영에게 사인을 받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차였다.

“쫌 그른가?”

안형서가 아쉽다는 듯 답했다. 김원도 어깨를 으쓱이고는 김아영이 나와 인사를 하는 것마다 리액션을 하고 박수를 쳤다. 방청권에 당첨되어 온 관객이라고 해도 믿을 리액션들이었다.

김원과 안형서, 두 사람은 대상에 대해서는 아예 생각도 안 하는 멤버들 중 하나였다. 그렇기 때문에 대상 시상자를 보고서도 상을 누가 받을지 궁금해 하기보다는 시상자인 김아영을 구경하는 데 더 집중하고 있었다.

사실 케이케이 멤버들 중 대상을 받을 거라고 생각하는 멤버는 아무도 없었다.

그나마 도욱이 기대를 걸고 있었지만, 도욱조차도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TBN에서 처음 넘긴 큐시트만 봐도 아라 엔터테인먼트를 우선시하는 TBN의 입장을 읽을 수 있었다. 대상을 누가 받을지는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특별 무대를 꾸민 것도 대상을 받기 위해서라기보단 대상을 받지 못하더라도 특별 무대를 통해 시상식의 주역으로서 더 빛나기 위해서였다.

‘무대는 분명히 통했다. 영상이 올라오면 사방신화의 무대보다 더 많은 조회수를 올리며 더 큰 화제가 될 거야······.’

도욱은 가만히 주먹을 쥐며 생각했다.

다만 케이케이가 대상을 받길 염원하며 투표에 열을 올리고, 음원을 스트리밍하고, 음반을 산 팬들에게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내년에 더 열심히 하면······.”

도욱의 옆에서 중얼거린 건 석지훈이었다. 도욱이 바라 보다 석지훈이 고개를 저었다.

“그냥 조금 아쉬워서요. 이번이 좋은 기회였던 것 같은데.”

진한 안타까움이 전해지는 말이었다. 그렇지만 케이케이에게는 분명히 내년이 있었다. 도욱이 가만히 석지훈의 어깨를 두드렸다.

이제 막 김아영이 후보 소개를 마치고, 수상자의 이름이 써 진 카드를 펼치고 있었다.

후보는 사전에 알려진 대로 케이케이와 사방신화 그리고 허건이었다.

허건은 오디션 프로그램 출신 발라더로 음원차트와 노래방 차트에서 꾸준히 1위를 하는 명곡을 부른 이였다.

한국인 입맛에 맞는 발라드를 가장 잘 부른다는 평가를 받으며 오늘도 발라드 가수상을 수상했다.

가창력이 뛰어나고, 음원 성적도 좋았지만 따로 팬덤이 있다거나 음반 판매까지 좋았던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경쟁 후보는 케이케이와 사방신화였다.

“······오늘의 대상은!”

웅장한 효과음이 깔리며 장내에는 긴장감이 돌았다.

카드를 뚫어져라 보며 뜸을 들이던 김아영이 침을 한 번 삼키고는 입을 열었다.

“사방신화······!"

객석에서 비명이 터져나오던 그때였다.

“일까요, 케이케이······ 아니면 허건일까요!”

김아영의 말에 한숨 같은 야유가 쏟아져 나왔다. 객석에 있던 이들은 여러 의미로 심장이 내려 앉은 기분이었던 것이다.

사방신화의 팬들은 팬대로 몇 년 연속 대상 수상이라는 것에 기쁨을 감추기 힘든 흥분 상태에 이르러 있었고, 케이케이 팬들은 실망감에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그것은 가수 대기석에 앉아 있던 멤버들도 마찬가지였다.

대상 발표 시 저런 장난스러운 멘트가 들어가는 게 이제는 거의 당연한 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래서 속는 이들도 전에 비해 없었는데도 케이케이 멤버들은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었다.

너무 긴장한 탓이었다.

동시에 기대를 전혀 하지 않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막상 사방신화의 이름이 불리자 씁쓸한 감정을 느낀 멤버들이었다.

기대는 하지 않더라도 대상 수상의 영광을 누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

TBN 본사 사옥, 영상실. TBN 사장, 부사장을 비롯한 운영진과 예능·음악 채널 본부장 등은 생방송으로 방송되고 있는 TBN 가요 시상식 무대를 보고 있었다.

오늘 생방송 도중에는 총 두 번의 사소한 방송 사고가 있었다. MC의 마이크에서 3초 정도 소리가 나지 않았고, VCR 영상이 2초 정도 딜레이 된 사고였다.

이전에 생방송 중 있었던 방송 사고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지만, 사장과 함께 지켜보는 입장으로서는 애가 탔다.

CP는 현장에 나가 있었고, 시상식을 총괄하고 있는 예능·음악 채널 본부장이 사장의 옆자리에 앉아 최근 채널 경향과 시상식에 대한 이야기를 간간이 나누고 있었다.

“시청률은 어때.”

사장의 물음에 사장을 직속 보좌하는 실장이 실시간 시청률을 확인하고는 답했다.

“조금 전 무대 이후에 4.2퍼센트 대 진입했습니다.”

“케이케이?”

“예, 그렇습니다.”

4퍼센트면 TBN 방송국이 케이블이라는 점을 감안했을 때 훌륭한 시청률이었다.

사장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옆자리에 앉은 예능·음악 채널 본부장에게 물었다.

“내년에는 이 시상식 무대 홍콩에서 볼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 투자 건은 완벽하게 성사 된 겁니까?”

현재 TBN 사장의 가장 큰 목표는 한류를 이용한 아시아 진출이었다.

예능·음악 채널 본부장이 반색을 하며 답했다.

“보고 드렸다시피 그쪽에서 흔쾌히 투자하겠다고 했습니다. 내일 계약서 서류 정리해서 보내기로 했고, 곧 홍콩 지사 쪽이랑도 만나 볼 예정입니다.”

“좋아요, 좋아.”

TBN 사장이 흡족한 미소를 띠었다.

예능·음악 채널 본부장이 얼마 전 투자를 위해 만난 이는 태화그룹 홍운영 지사장이었다.

태화그룹 쪽에서는 힛 엔터테인먼트 투자를 통해 한국 음악 시장 투자 확장에 대해 매우 긍정적인 태도를 취하게 되었다.

따로 홍운영 지사장이 케이케이의 수상에 대해 언급을 한 건 아니었다. 다만 투자자로서 좋은 투자금 회수율을 보이고 있는 힛 엔터테인먼트와 케이케이를 칭찬했을 뿐이었다.

그러나 이야기를 들으며 예능·음악 채널 본부장의 마음속에는 어떠한 결단이 서게 되었다.

***

“호호, 죄송합니다.”

김아영이 관객들에게 웃으며 사과했다. 어차피 김아영은 카드에 적힌 대로 읽기만 했을 뿐이었다.

“진짜로 발표하겠습니다. 올해의 대상 수상자입니다······!”

다시 한 번 장내가 긴장감에 휩싸였다.

“대상은······ 케이케이!”

케이케이의 이름이 호명되는 순간 엄청난 함성이 쏟아져 나왔다.

카메라가 일제히 케이케이 멤버들을 비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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