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3
뛰어넘다 (4)
박태형의 말에 도욱도 동의했다.
맨투맨의 무대는 이전보다 훨씬 좋아져 있었다. 이전에도 못하는 무대는 절대로 아니었다. 그러나 미묘하게 균열이 있는 느낌이었다. 균형이 깨진 느낌. 그러나 지금은 아니었다.
분명 기껏해야 한 달밖에 합을 맞춰보지 못했을 텐데도 불구하고, 이전의 무대에서 느꼈던 균열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채은호는 완벽하게 팀에 녹아들어 있다.’
그것이 서강준과의 차이였다. 도욱은 완벽하게 각을 맞춰 움직이는 맨투맨 멤버들을 보며 생각했다.
서강준은 다른 멤버들을 무시하고 독단적으로 행동하곤 했었다.
아무리 서강준 위주의 그룹이고, 서강준 뒤에 서중원 본부장이 버티고 있어 맨투맨에게 빵빵한 지원이 이루어진다고는 하지만, 다른 멤버들이라고 해서 기분이 상하지 않는 건 아니었다. 그저 참는 것일 뿐이었다.
그런 것들이 겉으로 보기에는 괜찮아도 내부에서는 곪아가던 차였다. 서강준이 문제를 일으켰을 때 멤버 누구 하나 서강준을 두둔하고 나서거나, 팀을 위해 서강준을 내치지 않겠다고 말한 이가 없는 건 별수 없이 당연했다.
자신들을 무시하기만 해, 속으로 정도 붙이지 않았던 서강준이야 어떻게 되든 알 바 아니었다. 멤버 중엔 꼴좋다고 생각했던 이도 있었다.
그저 서강준 때문에 자신들까지 무너지는 것에 대한 걱정과 불안만이 맨투맨 멤버들에게 남았다.
‘팀워크에 문제가 있으니 무대도 완벽하기 힘들었겠지…….’
그러나 새로 들어온 채은호는 달랐던 모양이었다. 서강준이 나가고 맨투맨 그룹 자체에 커다란 위기가 생긴 것이 다른 멤버들을 각성시킨 것일 수도 있었다.
‘노래를 잘한다더니 춤도 잘하는구나. 서강준을 대신해 곧바로 센터로 세울 수 있는 인재였음은 확실하다.’
가만히 무대를 보던 도욱은 채은호라는 인물이 누구였는지 떠올려냈다.
‘그룹 퀄리티보이즈의 리더였던 그 채은호였군.’
아라 엔터테인먼트에서 맨투맨 다음으로 내놓은 그룹이었다. 그때 당시엔 이미 맨투맨과 서강준의 인기를 힘입어 아라 엔터테인먼트의 실권을 모조리 장악한 서중원 본부장이었다.
때문에 다음 그룹인 ‘퀄리티보이즈’는 서중원 본부장이 아닌 다른 이에 의해 기획된 그룹이었다. 모두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너무 시험적인 그룹 색깔 때문에 대중의 사랑을 받지는 못했었다.
서중원 본부장의 지원이 그때까지도 맨투맨에게 집중되고 있을 때인 데다 서중원 본인이 키운 그룹도 아니었으므로 ‘퀄리티보이즈’에 제대로 아라 엔터의 힘이 미치지 않은 부분도 있었다.
‘실력에 비해 뜨지 못한다고 생각했었는데……. 특히 당시에도 센터였던 채은호가 가장 아까운 멤버라고 말들이 많았었다. 채은호에게는 이렇게 팀을 바꿔 데뷔하게 된 게 확실히 잘된 일일지도.’
맨투맨에 서중원 본부장의 투자가 맨투맨에게는 확실한 것임을 알고 있는 도욱이었다.
신곡인 ‘Real’을 부르는 맨투맨을 보며 도욱은 주먹을 쥐었다 폈다.
‘얼마 안 가 케이케이에게 사방신화보다 더 큰 위협이 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것은 선의의 경쟁이 될 것이었다. 도욱이 ‘복수’를 하고 싶은 건 맨투맨이 아닌 서중원 본부장이었다.
맨투맨이 화려하게 2부 오프닝 무대를 장식한 후, 굵직한 인기 가수들이 연달아 무대 위에 올랐다. 시상식 분위기는 점점 달아오르고 있었다.
시상식이 진행되는 동안 박태형은 현지와 함께 듀엣상을 받았고, 도욱은 남자 솔로 가수상을 수상했다. 케이케이는 인기상과 댄스 퍼포먼스 상을 받았다.
인터넷 투표로만 이루어진 인기상은 압도적인 표 차이로 얻어낸 것이었다.
케이케이 팬들은 눈에 불을 켜고 투표했다. 인기상을 수상하며 케이케이 멤버들은 자신들을 응원하는 팬석 쪽을 향해 거의 절을 하다시피 허리를 숙였다.
이제 남은 건 남자 그룹상과 대상뿐이었다.
오늘의 하이라이트였다.
‘리틀 스타’가 여자 그룹상을 수상한 후, 무대에 올랐다.
“아쉽, 나도 보고 싶은데.”
“팬인데!”
화려한 조명과 함께 리틀 스타의 히트곡 리믹스 무대가 시작되었다. 리틀 스타는 풍성한 꽃다발처럼 꽃 같은 미모를 뽐내며 무대 위를 런웨이처럼 걸어 나오고 있었다.
안형서와 김원이 아쉽다는 듯 뒤를 돌아보았다.
안타깝게도 케이케이 멤버들은 리틀 스타의 무대를 볼 수는 없었다. 리틀 스타의 무대가 끝나면 바로 다음이 케이케이의 무대였다.
“떨린다…….”
케이케이 멤버들은 서둘러 대기석 좌석에서 일어나 무대 뒤편으로 향했다. 박태형이 떨려 하며 도욱의 뒤를 따랐다.
무대 뒤편에 모인 케이케이 멤버들은 아래로 손을 모았다. 언제나 무대가 있기 전에는 외치는 구호였다. 긴장을 풀어주고, 열정을 끌어올리는 구호이기도 했다.
“가자, 케이케이!”
“가자아!”
케이케이 멤버들이 외치는 구호가 우렁찼다.
***
케이케이 무대의 시작은 도욱이었다.
솔로곡 ‘Darling’의 편곡되 간주에 맞춰 도욱은 탭댄스 스텝으로 무대 중앙으로 나왔다. 뿌연 안개 속을 헤치고 나온 도욱을 향해 조명이 켜졌다.
탁―!
조명이 켜지는 소리와 함께 엄청난 함성이 공연장을 가득 메웠다.
눈을 감고 있던 금발의 도욱이 눈을 번쩍 뜨자 공연장에 설치된 커다란 브라운관을 클로즈업된 도욱의 얼굴이 차지했다.
‘Darling’의 간주가 끝나고 분위기는 바뀌어 피아노 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동시에 푸른 눈을 빛내며 도욱이 노래를 시작했다.
“가지 마, 가지 마, 제발―”
곧바로 가장 하이라이트 부분인 후렴구를 도욱은 목 놓아 불렀다. 폭발적인 성량이었다.
숨죽인 채 무대를 보던 갑작스럽게 터져 나온 애절한 후렴구에 뒷골이 서늘할 정도의 소름을 느꼈다. 그야말로 급습이었다.
도욱은 일부러 가장 임팩트가 있는 부분을 앞으로 끌어 온 편곡을 진행했다. 이후에 후렴구를 이어 이어 붙였다.
“이런 나를 두고 가버리면 어떡해―”
“어떡해에―”
도욱이 노래를 부르면 커다란 공연장에 모인 수많은 이들이 한 목소리로 노래를 따라 불렀다. 커다란 공연장에 웅웅거리며 울려 퍼지는 팬들의 목소리가 도리어 도욱을 전율시켰다.
도욱은 자신의 노래를 따라부르는 관객의 소리를 온몸으로 느끼며 노래를 이어나갔다.
“아름다운 추억들과 함께 나만 쓸쓸하게 이 자리에 서 있어――”
아름다운 목소리였다.
도욱이 솔로곡인 ‘제발 가지 마’의 1절을 모두 부르고 간주가 나오자 자연스럽게 무대 위에 다른 조명들이 들어오며 도욱의 곁으로 안형서와 석지훈이 걸어 나오기 시작했다.
두 사람의 등장에 다시금 팬들이 환호했다.
그리고 피아노 연주로 이루어진 ‘제발 가지 마’의 간주는 다른 곡으로 이어졌다.
영상으로 주옥과 같은 명곡을 부른 가수들의 무대 모습이 지나갔다. 케이케이가 준비한 특별 무대는 가요계에 명곡을 남긴 선배들에게 헌정하는 무대였다.
흘러나오는 전주는 밴드 ‘탄생화’가 부른 ‘눈과 당신의 이야기’였다.
‘눈과 당신의 이야기’는 케이케이의 어린 팬들은 모를 만큼 오래된 이야기였지만, 워낙 노래가 좋아 그 후렴구를 한 번쯤은 어딘가에서 들어보았을 법한 노래였다.
‘눈과 당신의 이야기’ 원곡이 기타와 베이스음을 주된 악기로 사용하는 반면 케이케이는 ‘제발 가지 마’와 이어질 수 있도록 피아노 연주를 이용해 편곡했다.
이전보다 템포도 빨라져 있었다.
“눈은 너를 그리워해―”
“인사를 남기네.”
“인사를 남기네.”
안형서를 필두로 석지훈과 도욱이 화음을 맞췄다. 세 사람의 화음이 부드럽게 공연장을 감싸안았다.
“헐……. 이거 무슨 노래야?”
“몰라, 모르겠고. 너무 좋다. 도욱이 오늘 천사인 거 아냐? 하늘 날아가는 거 아냐?”
“형서도 너무 귀엽다. 나 지금 행복하다.”
“진짜루. 나두. 무대 보면서 행복하다는 게 이런 거구나.”
“저기 영상에 자막 떠있다. 눈과… 당신의 이야기래.”
“탄생화? 탄생화면 엄청 유명한 그룹 아냐?”
“우리 엄마가 좋아한다고 했던 그룹인 듯…….”
팬들은 넋이 나간 듯한 표정으로 대화하고 있었다.
‘눈과 당신의 이야기’의 화음이 이어지면서 조명이 어두웠던 무대 한편을 비추었다.
“꺄악!”
그곳을 본 팬이 소리쳤다. 그곳에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은, 달라붙는 셔츠와 바지를 입고 엎드려 있는 박태형이 있었다.
박태형은 무용을 하듯 부드럽게 몸을 움직였다. 박태형은 어느덧 몸으로 연기를 하고 있었다. 춤을 보는 것만으로도 가사의 내용이 전해질 듯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묻어났다.
한 번, 두 번, 세 번…… 다섯 번.
박태형은 총 다섯 번의 턴을 하고는 무대 위에서 높이 뛰어 올랐다.
“와아!”
한 번 벌어진 팬들의 입은 다물어질 줄 몰랐다.
“태…… 태형이 무용했대?”
“아니 그냥 스트릿 댄스 잘추는 건 줄 알았는데.”
“너무…….”
“멋지고 아름답다. 그치?”
대화 내용 그대로였다. 유려하게 뻗어나가는 몸동작들은 멋지고도 아름다웠다.
뛰어올랐던 박태형이 착지하면서 곡이 전환되며 래퍼들의 랩이 흘러나왔다. 낮은 목소리의 정윤기가 첫 마디를 내뱉고 그다음은 김원이었다.
정윤기와 김원이 선글라스를 쓴 채로 각자의 래핑을 이어나갔다.
조원필의 ‘언젠가 그랬으면 좋겠네’였다.
‘언젠가 그랬으면 좋겠네’의 가사 내용을 정윤기와 김원은 젊은 세대들이 조금 더 잘 공감할 수 있는 랩으로 바꿨다.
김원이 빠른 영어 랩으로 분위기를 달아오르게 만들었다. 남은 멤버들이 리듬에 몸을 맞추며 손을 흔들고 관객들의 더 큰 호응을 유도했다.
정윤기와 김원의 랩이 끝날 무렵 안형서가 한쪽 인이어를 뽑아내며 핸드마이크를 올려 들었다.
“아 훠어어어― 그랬으면― 좋겠네에에―!”
쭉 뻗어 나가는 노랫소리와 함께 짧지만 길었던 특별 무대가 끝이 났다.
피치를 올리며 고음을 쏟아내는 안형서에 잠시 관객들은 넋을 잃을 뻔했다. 무대 중앙에 서 작은 체구로 소리를 만들어낸 안형서의 모습이 그야말로 작은 거인과도 같았다.
자신도 모르게 박수를 치는 팬도 있었다. 작았던 박수소리가 점점 커지며 조명이 점점 어두워졌다.
한순간 열정을 쏟아낸 멤버들이 시선은 카메라를 향한 채로 숨을 몰아쉬었다.
“안형서 대단하다.”
“완전 소름.”
“뭐야, 진짜 무슨 공연을 이렇게까지 잘해.”
“다 라이브래.”
“대박. 미쳤다. 진짜. 우리 오빠도 저렇게 잘하면 좋을 텐데…….”
케이케이의 팬석뿐 아니라 다른 가수를 응원하러 왔던 팬들조차 팔뚝에 돋은 소름을 쓸어내리며 케이케이를 입모아 칭찬했다.
애써 케이케이의 무대를 비웃고 있던 사방신화의 팬들조차도 돌아설 수밖에 없게 만드는 무대였다.
“쳇, 잘하긴 잘하네.”
눈이 있고, 귀가 있다면 인정해야만 했다. 지금 케이케이의 무대는 명곡을 부른 원곡자들에게 뒤지지 않을 만큼 최고였다.
그리고 다시 무대의 분위기가 바뀌며 케이케이의 메가 히트곡, ‘푸른 하늘’의 전주가 시작되었다. 밝아진 분위기에 관객들은 다시 한 번 케이케이에게 환호를 내질렀다.
밴드 탄생화와 조원필은 케이케이에게는 정말이지 대선배였다. 이미 오래 전 가요계에 한 획을 그은 이들이 일면식 없는, 한참 어린 후배인 케이케이에게 특별 무대를 하도록 곡을 허락한 것은 ‘푸른 하늘’ 덕분이었다.
지문제의 ‘푸른 하늘’이 어떤 식으로 새롭게 감각적으로 해석되었는지, 케이케이의 음악 색깔이 어떤 것인지 덕분에 파악하고 믿음을 가질 수 있었다.
도욱이 특별 무대를 기획하게 된 것도 올해 케이케이가 히트친 ‘푸른 하늘’이 선배의 곡을 리메이크한 곡이었기 때문이었다.
케이케이 멤버들의 박수에 맞춰 관객들이 머리 위로 손을 올려 박수를 치고 있었다. 박수를 한 번 칠 때마다 공연장이 진동했다.
이미 앞의 무대들로 달구어진 공연장이 박수와 함성 소리로 끓듯이 뜨거워졌다. 종이 폭죽이 터지며 무대 위에 날렸다.
“이건 뭐…….”
객석 쪽에서 무대를 지켜보고 있던 오백호 실장이 고개를 저었다. 시상식에 함께 온 도라희 대리도 오백호 실장과 같은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반응이 굉장했다.
“거의 엔딩이나 다름없는데요, 분위기가.”
도라희 대리의 말에 오백호 실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방신화가 과연 이 분위기를 뚫고 제대로 된 엔딩 무대를 치룰 수 있을지 걱정이 될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