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슈퍼스타-132화 (132/225)

# 132

뛰어넘다 (3)

***

시상식 당일.

올 한 해를 빛난 가수들을 보기 위해 수많은 팬들이 공연장을 찾았다.

총 만 명의 수용인원 중 천오백여 명 정도가 케이케이의 팬들이었다. 스무 팀이 넘는 팀 가운데 단연 많은 팬 수를 자랑했다.

케이케이 팬들은 케이케이가 힘들게 준비한 새로운 무대가 있다는 소식에 강추위를 뚫고 현장으로 몰려들었다. 워낙 사람이 많다 보니 공연장 근처는 추운 것도 잘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

생방송으로 진행될 시상식 방송 시간은 밤 8시 50분부터였다. 입장은 리허설이 마친 6시부터 계속해서 진행되었다.

이번 TBN 시상식 참석은 인터넷에서 티켓 신청을 통해 가능했다. 티켓 오픈 당일 서버가 터질 정도로 많은 인원이 티켓팅에 참여했다.

자유롭게 자리를 선택해 티켓을 끊을 수 있었기 때문에 케이케이 팬카페에서는 팬들끼리 미리 가운데와 가운데 오른쪽 자리인 17, 18, 19구역으로 자리를 잡자는 상의를 해둔 상태였다.

각자 보고 싶은 위치가 다를 것이었으므로 불편함은 있겠지만, 모여 있는 것이 팬덤 차원에서 응원하기에는 수월했다. 아무래도 떨어져 있으면 응원 소리도 분산되기 마련이었다.

구역이 강제된 것은 아니었음에도 케이케이 팬들은 놀라운 단합력을 보여 주며 대부분이 약속했던 17, 18, 19구역으로 모여 들었다.

다른 구역에 가게 된 팬들도 일부러 자리 지정을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티켓팅을 하다 남은 자리를 찾다 보니 떨어져 나가게 된 것이었다.

워낙 많은 인원이 케이케이의 팬이어서 16구역과 20구역의 상당수 관객도 케이케이의 응원봉을 들고 있는 케이케이 팬들이었다.

또 2층의 17, 18, 19뿐 아니라 3층의 객석에도 많은 수가 케이케이 봉을 흔들고 있었다. 푸른빛이 한 무리로 모여 반짝거렸다.

그다음으로 많은 수를 차지한 팬덤은 역시 사방신화였다.

사실 작년만 해도 사방신화의 팬덤 규모를 넘을 수 있는 팬덤은 많지 않았다.

그러나 케이케이가 급격하게 팬덤을 확장했고, 그사이 사방신화 내부에 분열이 일어나 팬들이 빠지면서 자연스럽게 가장 팬덤이 큰 그룹 이름에 사방신화를 올리기는 애매해진 부분이 있었다.

사방신화에서 빠져나간 많은 팬들이 케이케이로 유입이 되기도 했지만, 여전히 남아 있는 사방신화의 팬들은 분열하고 있는 사방신화를 좋아하는 만큼 더 꿋꿋하게 정상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 애쓰고 있었다.

동시에 위로 치고 올라오는 케이케이에 위기감을 느끼고 있기도 했다. 팬들이나 소속사나 별다를 바 없는 느낌이었다.

정작 사방신화 멤버들만이 오랜 시간 고생하며 이미 돈도 벌 만큼 벌었고, 인기도 누릴 만큼 누린 상태라 팀이 어떻게 돼도 상관없다는 식이었다.

물론 그것을 공식적으로 표출하지는 않았지만, 행동을 보면 그런 티가 났다.

15, 16구역 쪽에 집중되어 있는 사방신화의 팬들과 그 옆, 케이케이 팬들과의 신경전이 대단했다.

현장은 물론이고 인터넷상에서도 서로를 비난하는 글이 올라오기까지 하는 등 첫 가요 시상식 무대인 TBN 시상식에서 누가 대상을 받을 것인지에 대한 관심이 엄청났다.

계속해서 사방신화가 받아오던 대상이었다. 다른 후보들이 지금까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번처럼 대상 수상자가 바뀔 거라는 예상이 주류를 이룬 적은 없었다.

꼭 누군가의 팬이 아니더라도 사방신화가 계속해서 대상의 영광을 이어나갈지, 케이케이가 새로운 대상의 주인공이 될지 호기심을 가진 이들이 많았다.

점점 열기가 뜨거워져 가는 가운데, 시상식 시작을 앞두고 대기실 한편에서는 케이케이 멤버들이 긴장을 풀고 있었다.

편안한 옷을 입었던 리허설 때와는 달리 화려하게 큐빅이 박힌 반짝반짝한 셔츠와 함께 검은색 스키니진, 그리고 검은색 워커를 신은 모습이 그야말로 ‘천상 연예인’들이었다.

진하게 한 화장까지 더해져 누구든 그냥 지나칠 수 없을 만한, 돌아볼 수밖에 없는 모습이 되어 있었다.

거기에 오늘 도욱의 모습은 충격적이기까지 했다. 안 그래도 화려한 이목구비를 자랑하는 도욱이었는데 평소와 달리 도욱의 머리색은 백금발이었다.

백금발에 푸른색 컬러렌즈를 끼고 눈을 깜박거리는 모습은 한국인이 아닌 것처럼 보였다. 남다른 외모인 줄은 알았지만, 정말로 남달랐다.

이미 오늘 도욱의 모습은 레드카펫 사진으로 올라가 난리가 나 있는 상태였다.

“와······. 저번에 분홍색도 어울리더니, 안 어울리는 색이 없네.”

“마, 괜히 우리 팀 얼굴이 아이다.”

안형서의 말에 정윤기가 답했다. 안형서는 뒤쪽 거울에 자신의 얼굴을 한 번, 도욱의 얼굴을 한 번 보고는 어깨를 늘어뜨렸다.

“아, 나 하필 오늘 도욱이 옆에 서는데. 대형이······. 나만 독박 쓰는 대형이야, 이거.”

“누구 옆에 선들 잘생겨 보이겠나.”

“형 옆에 서고 싶은데 이거 왜 이래?”

두 사람이 또 말도 안 되는 것으로 티격태격 대고 있었다.

“형도 잘생겼는데 왜 그래요.”

도욱이 무슨 소리냐는 듯 말했다. 안형서도 나름 귀여운 얼굴로 이름을 알리는 멤버였다. 안형서의 활발한 성격과 귀엽게 생긴 외모는 매치도 잘 되어서 팬들 중에 안형서를 앓는 이들도 많았다.

“Don't be liar.”

김원이 도욱의 어깨를 짚으며 고개를 저었다. 김원까지 자신의 편이 되어주지 않자 안형서가 억울하다는 듯 가슴을 쳤다.

“케이케이! 무대로 나와 주세요!”

시상식 스태프가 쩌렁쩌렁한 소리를 치며 대기실 문을 열었다. 멤버들이 스태프에게 시선을 주기도 전에 스태프는 바쁘게 그 옆 대기실 문을 열고 있었다.

대기실 한구석에서 앉아 휴대폰으로 연락을 하고 있던 오백호 실장이 정신을 차리고 멤버들을 정리했다.

“그만들 떠들고, 얼른 나가자!”

공연장 내부에서 MC의 오프닝 멘트가 흘러나왔다.

도욱이 MC를 보기로 했던 건 특별 무대를 하면서 취소되었다. MC까지 보는 건 아무래도 무리였다. 준비할 게 너무 많았다.

참여가수들은 오늘 시상식을 처음부터 끝까지 대기석에 앉아 지켜보게 돼 있었다. 인기가 많은 가수일수록 자주 카메라가 들어오기 때문에 자리를 비우거나, 표정을 풀고 있기 힘들었다.

따지자면 시상식 내내 공연을 하듯 연기를 하고 있어야 하는 셈이었다.

표정 한 번 잘못 지었다가는 다른 가수의 무대를 제대로 보지 않는다고 몰매를 맞기 십상이었다.

달려 나가는 케이케이 멤버들을 보며 대기실 문을 두드리던 스태프가 오백호 실장에게 물었다.

“케이케이 멤버들 다 간 것 맞습니까?”

“네. 맞는데요?”

“여섯 명이 아니라 다섯 명인 것 같아서요.”

“아아······. 한 명은 조금 이따가 올 겁니다. 2부 시작할 때는 올 거예요.”

스태프가 들고 있던 명단이 적힌 종이를 뒤적거렸다.

“아! 1부에 참석 못 한다던······. 알겠습니다.”

방송 진행을 보조해야 했기 때문에 스태프는 고갯짓으로 오백호 실장에게 인사한 뒤 다시 또 바삐 뛰어갔다.

케이케이 멤버 중 아직 오지 않은 멤버는 석지훈이었다.

***

“KVS 연예대상······. 신인상의 영예를 거머쥘 후보자는요······.”

멤버들이 TBN 시상식에 있던 시각, 석지훈은 KVS 방송국에 와 있었다. 나비 넥타이에 턱시도를 차려입은 석지훈은 긴장으로 침을 삼켰다.

“캠핑 48시간에서 당돌한 막내로 맹활약을 하고 있죠? 석지훈! 군입니다!”

그 순간, 화면 컷이 넘어가면서 석지훈을 비췄다.

화면에 석지훈이 뜨자 객석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연예대상에는 아무래도 팬덤이 큰 아이돌 등이 잘 출연하지 않기 때문에 객석을 채우고 있는 건 대부분 개그맨과 예능인들의 가족이나 관계자, 소수의 팬들이 전부였다.

그러나 이번엔 석지훈의 등장으로 객석이 그 어느 때보다 시끌시끌했다.

카메라가 커다란 현수막을 흔들고 있는 석지훈의 팬들을 비추었다. 케이케이의 시상식 공연을 포기하고, 오직 석지훈만을 응원하기 위해 온 팬들이었다.

<정강이가 깨져도 석.지.훈>

<지훈아 밥 걱정은 그만! 누나가 다 해줄게♡>

그리고 다시 석지훈을 비추자 석지훈이 어쩔 줄 몰라 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팬들의 환호가 대단하군요. 어서 올라오세요. 석지훈 씨!”

석지훈의 옆에 앉아 있던 ‘캠핑 48시간’ 출연진들이 석지훈을 격려하며 어서 무대 위로 올라가라고 재촉했다. 석지훈이 어쩔 줄 몰라 하며 무대 위로 올라섰다.

트로피를 받은 석지훈이 스탠딩 마이크 앞에 서 입을 달싹였다.

“어······. 정말 감사드리고요. 제가 한 게 없는데 이 상을 받아도 될지 모르겠지만, 앞으로 더 잘하라는 뜻으로 알겠습니다. 캠핑 48시간 함께하는 출연진 형들, 많이 도와주셔서 정말 감사하고. 피디님, 작가님들, 한 분 한 분 다 감사드리고요. 이 자리에는 같이 없지만 우리 케이케이 멤버들······.”

케이케이라는 말에 팬석 쪽에서 꺄악 하는 비명이 퍼졌다. 장내에 웃음이 한 번 흘렀다.

“우리 멤버들, 특히 많은 조언해 준 도욱이 형······. 고마워요! 형들······. 형들 없으면 나도 없는 거 알죠!”

***

전파를 타고 흐른 석지훈의 수상소감을 아쉽게도 멤버들은 보지 못했다.

멤버들은 카메라에 자신의 얼굴이 비출 때마다 웃거나, 무대를 즐기는 모습 등을 보여주며 시상식에 최선을 다해 참여하고 있었다.

무뚝뚝한 줄 알았던 막내의 형들에 대한 사랑이 넘쳐 나는 수상소감은 ‘형없나없 케없나없’이라는 신종 성어까지 만들어가며 팬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고 있었다.

어느덧 1부가 끝나고 2부의 막이 올랐다.

“여어 석지훈이~!”

“상 받았다며!”

“축하한다!”

2부가 시작되기 직전 대기석으로 들어온 석지훈을 멤버들이 반겼다. 대기석이 보이는 쪽에 앉아 있는 팬석이 술렁였다.

어느새 석지훈은 턱시도가 아닌 멤버들과 같은 실크 셔츠를 입고 있었다. 형들의 축하를 받으며 석지훈은 머쓱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기쁜 내색은 별로 하지 않으며 자리에 앉는 석지훈을 보며 안형서가 혀를 찼다.

“좋냐? 좋냐고~!”

“아, 왜 그래요.”

“하여튼 쑥스러움이 많아가지구.”

안형서의 말대로 석지훈은 막상 멤버들에게 오니 쑥스러워졌다. 상을 받은 것도 받은 것이지만, 고맙고 울컥하는 마음에 한 수상 소감이 마음에 걸렸다. 다행이 안형서가 아직은 못 본 듯하지만 놀림을 받을 게 분명했다.

그러는 사이 2부 오프닝 무대가 시작되었다.

화려한 영상과 함께 맨투맨의 멤버들이 한 명씩 소개되었다.

오빈부터 시작해 익숙한 얼굴들이 나올 때마다 맨투맨의 팬들이 소리를 질렀다. 한창 커가던 때 무너져 규모가 대단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무시할 만한 숫자는 아니었다.

‘지금인가······.’

도욱은 뚫어질 듯 영상을 보고 있었다. 마지막 멤버가 소개될 차례였다. 서강준의 자리를 대신할 이였다.

‘CHAE EUN HO!’ 하는 자막과 함께 맨투맨의 새로운 멤버, 채은호가 공개되었다.

다른 팬덤에서도 연습생 많기로 유명한 아라 엔터테인먼트에서 골라 내놓은 연습생이 누군지 집중하며 보고 있었다.

‘역시!’

도욱은 공개된 채은호의 사진을 보며 역시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서강준만 하진 않았지만, 역시 잘생긴 얼굴이었다.

‘그런데 서강준보다 노래는 더 잘한다고 하니······. 어쩌면 제대로 된 경쟁자가 될지도 모르겠다.’

멤버 소개 영상이 끝난 후, 맨투맨은 신곡으로 무대를 꾸미기 시작했다. 시상식에서 신곡을 발표하는 일이 흔한 일은 아니었지만, 사방신화의 대를 이을 후배 가수라는 점이 작용해 가능한 일이었다.

웅장한 사운드와 함께 맨투맨 멤버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전보다······.’

도욱은 생각을 멈추고 맨투맨의 무대에 집중했다.

도욱의 옆에서 맨투맨의 무대를 멍하니 보고 있던 박태형이 중얼거렸다.

“훨씬······ 좋아졌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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