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0
뛰어넘다 (1)
TBN 시상식은 총2부로 구성되었다.
다른 방송사 시상식과 마찬가지로 TBN 시상식에서도 케이케이 멤버가 후보에 오른 부분은 상당했다. 정확히는 일곱 개 부문이었다.
인기상(케이케이), 댄스 퍼포먼스(케이케이), 힙합 장르(오케이), 남자 솔로(강도욱), 남자 그룹(케이케이), 듀엣(박태형), 대상(케이케이) 후보까지였다.
대부분 쟁쟁한 경쟁자가 있었고, 시상식에서 주요한 부문들이었다.
현지와 박태형 외에는 이렇다 할 듀엣 그룹이 없었기 때문에 둘의 수상은 거의 확정된 것이었다.
남자 솔로의 경우에도 도욱이 다른 가수들에 비해 월등한 음원 성적 등을 냈기 때문에 이변이 없는 한 솔로상을 받게 될 것이었다.
인기상과 댄스 퍼포먼스상, 힙합 장르상 그리고 대상이 확실하지 않은 상들이었다.
이번 해 인기상의 선정 기준은 80퍼센트의 인터넷 투표 결과와 20퍼센트의 심사위원 점수로 이루어졌다.
인터넷 투표는 케이케이가 다른 그룹들에 비해 앞서고 있었지만, 결과는 어떻게 될지 모를 일이었다.
또 힙합 장르에는 ‘러스티 듀오’라는 힙합계의 거성이 버티고 있었다. 오케이가 비슷한 음원 성적을 내긴 했지만 구색 맞추기 차원에서라도 오케이보단 러스티 듀오에게 상이 갈 가능성이 컸다.
‘댄스 퍼포먼스상이나 대상이야말로······. 끝까지 가봐야 아는 거겠지.’
오백호 실장은 생각했다. 오백호 실장만이 아니었다. 회사 내부 사람들이나 케이케이 멤버들, 외부의 팬들까지도 그 정도의 예상은 가능했다.
그러나 큐시트를 보면 대충 감이 오는 법이었다.
방송국에서 어느 쪽에 무게를 두고 있는지. 어떻게 상을 줄지 하는 것들을 대충 읽을 수 있었다.
“저희 순서가······.”
“애매하죠?”
“네. 애매하네요. 엔딩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이 정도면 너무 홀대하는 거 아닌가 싶은데요.”
가안으로 날아온 큐시트의 엔딩 자리에는 사방신화가 있었다.
케이케이는 올해 분열로 저물어가는 사방신화보다 조금 더 좋은 성적을 냈다. 그렇지만 연차라는 게 있으니 사방신화에게 엔딩 자리를 내어주는 것까진 가능했다.
그러나 아라 엔터테인먼트의 또 다른 소속 가수이자 걸그룹인 ‘리틀 스타’보다도 앞인 건 누가 보아도 TBN 쪽에서 아라 엔터 쪽과 손을 들어준 것으로 보였다.
‘리틀 스타’도 물론 연차는 케이케이보다 높았다. 가요계에서 흔치 않은 7년 차 여자 아이돌 그룹이었다.
케이케이가 데뷔하기 전 정점의 자리를 찍고 사방신화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유일한 그룹이라는 이야기까지 들었었다.
그렇지만 올해는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했다. 전성기 시절과 같은 성적을 내길 바라는 것도 무리였다.
“연차로 순서 짜는 것도 아니면서······.”
오백호 실장이 불만스럽게 중얼거리자 이대형 팀장 역시 맞장구쳤다.
“분명히 얘기 오간 게 있겠죠. 2부 오프닝 자리를 맨투맨이 한 것만 봐도.”
“그러니까.”
“무대도 4분이나 줬네요.”
대체로 웃는 얼굴을 하고 있던 이대형 팀장이었다. 그러나 인상을 쓰니 제법 화가 나 보였다.
“우리는 다 합쳐서 7분이던가요?”
“네. 리틀 스타가 6분 30초고, 사방신화는 9분 정도예요.”
“애들이 이번에 히트친 곡이 몇 곡인데······. 완전히 아라 엔터 판이구만. 그래도 작년에는 좀 챙겨주는 척하더니.”
“작년엔 도욱 씨가 TBN에서 드라마를 했으니까······.”
사실 아라 엔터테인먼트 소속 가수 위주로 시상식이 진행되던 건 암암리에 모두 알 만큼 관행처럼 있어왔던 일이었다.
그래도 약간의 잡음 외에는 다들 무어라 더 말할 수도 없었던 게 실제로 아라 엔터 소속 가수들이 잘나갔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번엔 상황이 조금 달라져 있었다.
맨투맨과 함께 데뷔한 케이케이가 맨투맨을 완벽하게 제쳤고, 이제는 사방신화를 제치려고 하고 있었다.
단일 앨범 성적이야 억지로 끼워 맞춰 비슷하게 만든다고 하더라도, 다른 멤버들의 활동이나 활약까지 합하면 성적 면에서 케이케이가 월등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틀 스타와 비슷한 시간 배정에, 리틀 스타의 앞 순서라는 것은 케이케이로서는 자존심이 상할 수 있는 일이었다.
“아라 엔터에 있는 지인이랑 얘기를 해봤는데요.”
이대형 팀장이 꺼낸 말에 오백호 실장이 귀를 세웠다. 이대형 팀장이 아라 엔터 쪽에서 온 사람이라는 것에 경계를 하기도 했던 오백호 실장이지만, 지금으로썬 이대형 팀장이 좋은 정보원이 되는 게 사실이었다.
팬-마케팅팀 체계도 이전보다 더 규모가 커진 것에 맞게 체계가 잡혀가고 있다고 들었다. 이대형 팀장의 영입은 역시나 조애니 부장의 좋은 선택이었던 것 같다고 오백호 실장은 생각했다.
“이번 시상식에 아예 새로운 멤버를 공개한다더군요. 맨투맨, 신곡도 같이요.”
이대형 팀장의 말에 오백호 실장이 놀란 눈을 했다.
“이렇게 빨리 말입니까?”
빨라도 너무 빨랐다.
시상식 당일 공개라고 하면, 서강준이 비행기에 오른 지 겨우 한 달 조금 넘은 시기였다.
그때 도욱이 회의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도욱은 막 KVS 시상식 무대에서 보여줄 댄스 브레이크 연습을 마친 후였다.
도욱을 부른 건 오백호 실장이었다. 도욱과 상의할 일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도욱이 인사를 하고는 오백호 실장 옆에 착석했다.
오백호 실장과 이대형 팀장은 하던 이야기를 마저 했다. 그러는 동안 도욱은 눈치껏 책상 위에 올려져 있는 큐시트를 눈으로 확인했다.
“서중원 본부장이 빠르게 결정한 결과겠죠. 한 번 결정한 건 뒤 한 번 안 돌아보고 밀어붙이는 성격이니까요.”
“서 본부장이라면······. 그럴 만도 하군요.”
함께 일해본 적 없어도, 업계 사람이라면 익히 서중원 본부장의 불같은 성정을 알고 있었다. 오백호 실장이 끄덕였다.
“그래도 준비된 멤버가 있었다는 게 놀랍군요. 거기에 신곡까지.”
“곡이야 컴백하려고 원래 준비하던 곡 같아요. 아라 엔터 연습생 풀 넓은 건 워낙 유명하구요. 바로 데뷔시켜도 좋을 연습생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고······.”
도욱은 두 사람의 대화 내용을 어렵지 않게 따라잡았다.
‘새로운 멤버를 벌써 영입하는 건가······.’
도욱이 생각하기에도 역시나 빨랐다. 기존 멤버들을 좋아했던 맨투맨 팬들의 반발이 예상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밀어붙이는 걸 보니 서중원 본부장의 어떻게든 맨투맨을 회생시켜 보겠다는 의지가 강력하게 느껴졌다.
이대형 팀장이 말을 이었다.
“그리고 그 데뷔한다는 멤버도 제가 좀 아는 연습생인데요.”
“아는 연습생입니까?”
“개인적으로 아는 건 아니고요······. 회사에 있을 때 유명하던 연습생이었어요. 외모가 서준급은 아니지만, 귀엽게 생겼달까. 매력 있게 생겼고요. 노래는 서준보다 나은 걸로 알아요. 맨투맨 다음에 나올 그룹 센터로 세울 생각까지 했던 친구였습니다.”
“맨투맨을 어떻게든 살려 보겠다는 거군요.”
“그런 것 같습니다.”
오백호 실장과 이대형 팀장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도욱 쪽으로 향했다. 도욱은 별다른 표정 변화 없이 가만히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었다.
맨투맨에 새로운 멤버가 영입되면 아무래도 서강준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맨투맨과는 완전히 다른 형태가 될 것이었다.
도욱은 생각했다.
‘그때부터는 내가 정말 모르는 맨투맨이다······. 케이케이가 이미 자리를 잡았다고는 하지만 밀려나지 않기 위해서는 더 열심히 해야겠지.’
서강준이 없는 맨투맨에게 무언가 남은 감정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정정당당하게 펼칠 경쟁의 의미로 그러했다.
동시에 서중원 본부장을 무너뜨리기 위해서는 자신이 더욱 더 높은 자리에 위치하는 수밖에 없었다.
“TBN 시상식에서부터 밀리면 올해 시상식 분위기는 다 이런 식이 될 거예요. 대상도 아마······.”
이대형 팀장의 말을 듣던 오백호 실장이 말했다.
“우리 쪽에 대상을 주려고 아라 엔터는 무대로 구슬린 것 같기도 한데······.”
다시 잘 생각해 보면 오백호 실장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그러나 이대형 팀장이 고개를 저었다. 이대형 팀장이 아는 서중원 본부장은 중요한 걸 아는 사람이었다.
이번에 밀리면 끝이라는 걸 분명히 인지하고 있는 행보였다.
“그런 거라면 아예 출연을 거부했을 거예요.”
“하긴······.”
오백호 실장의 미간이 좁혀졌다.
“MC야 말로 우리를 달래려고 넣은 제안이겠지.”
오늘 도욱을 부른 건 TBN에서 도욱에게 MC를 요청해왔기 때문이었다. TBN에서는 MC로 도욱과 여자 솔로가수인 계나리를 생각하고 있었다.
MC를 하면 아무래도 노출도 많아지고, 화제도 되기 때문에 좋은 제안이긴 했다. 그러나 달래는 것 치고는 칸 영화제에 다녀온 스타를 MC로 쓰게 된 셈이었으니 도욱이 얻는 화제보다는 TBN에서 얻는 화제성이 더 클 듯했다.
“사실 네가 너무 말도 안 되게 바쁠 것 같아서······. 네가 해야 하는 무대만 몇 개냐······. 그래서 거절하려고 했는데.”
오백호 실장이 답답하다는 듯 설명했다. MC라도 보지 않으면 케이케이가 너무 밀리는 듯한 느낌이었다. 실제로는 케이케이가 밀렸다기보단 힛 엔터테인먼트가 밀린 것이었지만 말이다.
도욱은 걱정 말라는 듯 답했다.
“괜찮아요. 할 수 있어요.”
“네가 몸이 세 개도 아닌데.”
안타깝다는 듯 말했으나 부탁한다는 뜻에 더 가까웠다. 도욱을 MC로 내어줬으니 무대 시간을 조금 더 늘려볼 심산이었다.
“조 부장님이나 권 이사님한테는 따로 말 없었습니까?”
“네. 아직.”
“흠······.”
오 실장과 이 팀장은 일단은 TBN 쪽에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고 조정을 요청해 보는 것으로 결정을 내렸다. 회의는 한숨과 함께 마무리가 되었다.
“무대에 돈이라도 써서 케이케이의 무대가 최고라는 걸 보여줘야지.”
오백호 실장이 중얼거리며 회의실 문을 나섰다. 도욱 역시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순서와 상관 없이 무대로 최고임을 증명하면 된다.’
그럼에도 입안이 씁쓸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인기나 실력 어디에서도 밀리지 않는데 단순히 기획사의 힘에서 밀린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
“새로운 멤버라······.”
도욱은 숙소로 돌아와 맨투맨의 새로운 멤버에 대한 궁금증을 키워나갔다. 앞으로 맨투맨의 성공여부는 서중원 본부장의 몰락과도 밀접한 키가 될 것이었다.
숙소에 돌아가자 연습 후 녹초가 된 멤버들이 거실 여기저기에 널브러져 있었다. 정윤기가 도욱을 발견하곤 손짓했다.
“도욱아 너도 빨리 와서 메뉴 골라!”
“치킨······.”
박태형이 각종 치킨 가게의 전단지를 한데 그러쥔 채 도욱에게 내밀었다.
활동 기간이 아니어서 멤버들에게는 음식 선택의 자유가 있었다. 그마저도 내일부터는 다시 시상식 준비를 위해 제한될 예정이었기 때문에 멤버들은 마지막 한 끼를 거하게 먹을 생각이었다.
“어······. 나는 아무거나.”
“아무거나라니! 오늘 1인 1닭 할 거야. 너도 너가 먹고 싶은 닭을 골라라!”
안형서가 무서운 기세로 재촉했다. 박태형으로부터 전단지를 건네받은 도욱이 메뉴를 고르려던 때였다.
옆에서 같이 메뉴를 고르며 안형서가 옛 노래를 장난처럼 흥얼거렸다.
“먹이를 찾아 산기슭을 어슬렁거리는 케이케이를 본 일이 있는가······.”
“마, 엄청 옛날 노래. 진짜 오랜만이다.”
“이게 무슨 노랜데요?”
정윤기의 말에 석지훈이 어리둥절한 표정이 되었다. 아예 무슨 노래인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석지훈이 어려서 잘 몰랐을 뿐, 도욱도 잘 알고 있는 유명한 노래였다.
동시에 도욱의 머릿속에 시상식 분위기를 바꿔 놓을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