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9
새로운 목표 (4)
도욱의 목소리로 재해석된 ‘La Vie En Rose’는 무척이나 달콤하면서도 동시에 쓸쓸한 여운이 느껴지는 맛이 있었다.
마이튜브 생중계라 음질이 그리 좋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바다 건너 마이튜브 생중계를 보고 있던 한국에까지 도욱의 노래는 감정과 감동을 싣고 전해졌다.
-나 지금 귀 녹고 있어
-우리집에 지금 벌 들어왔다 도욱이 목소리 듣고 꿀인 줄 알고 들어온 듯
-드립 뭐야?ㅋㅋㅋㅋ
-강도욱 제2외국어 프랑스 배웠대?
-오 그러게 불어 아나?
-불어로 노래 부르는 거 들으니까 색다르다
-못 하는 거 뭐냐
-못 하는 일을 못 함
-못생기는 일이요..ㅋㅋ
-도욱오빠ㅠㅠㅠㅠㅠㅠㅠ날 가져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
-줘도 안 가짐ㅇㅇ
프랑스어로 하는 인사 대신으로 짧게 부른 노래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인상적이었다.
1절 후렴구 시작 전부터 간주가 나오기 전까지를 부른 도욱이 주변의 반응을 살피며 노래를 끝마쳤다.
홀린 듯 듣고 있던 윤성아 감독과 박효원이 박수를 쳤다.
“정말 훌륭하다. 도욱 씨.”
윤성아 감독은 그 재능에 감탄했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데도 늘 새롭게 감탄하게 되는 재능이었다. 연기면 연기, 노래면 노래. 못 하는 게 없으니 더욱 그렇게 느껴졌다.
물론 현재 도욱이 가진 재능은 두 가지가 합쳐져 생긴 것이었다.
강도욱의 훌륭한 신체와 김보명의 정신, 열정, 노력 같은 것들······.
바닷바람이 불어와 도욱의 머리카락을 흔들고 지나갔다. 도욱은 박수에 화답하듯 조금 쑥스럽지만 편안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전에는 제대로 된 소리를 내며 노래를 부르려면 신경을 써서 목을 풀고, 단전에 호흡을 모으는 연습을 하고, 목소리를 목 부근에서 생으로 나오는 게 아닌 신체의 깊은 곳에서 끌어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했다.
그러나 이제는 숱한 노력의 결과로 언제든 편하게 노래를 시작해도 일정 수준 이상의 노래를 부를 수 있게 되었다.
“가수인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 노래를 잘하는 줄은 몰랐네.”
“우리 도욱 씨 솔로로 발라드도 부른 사람이잖아요.”
윤성아 감독과 박효원이 도욱을 다시금 칭찬했다.
“샹송도 알다니 대단하네요.”
“칸에 간다고 생각하니 떨려서 잠이 안 오더라고요. 그래서 새벽에 샹송을 들으면서 마음을 진정 시켰는데······. 그러다 보니 조금 외웠습니다.”
도욱이 화면에 대고 ‘La Vie En Rose’ 노래를 외우고 부르게 된 계기에 대해 설명했다.
“도욱 씨한테 너무 어울리는 것 같아요. 노래 제목도.”
‘La Vie En Rose’의 뜻은 장밋빛 인생이었다.
윤성아 감독의 말에 도욱이 조금 얼굴을 붉혔다.
보잘 것 없던 자신의 인생이 어느덧 장밋빛 인생에 비유될 만한 인생이 되었다는 것이 어쩐지 조금 부끄러웠다.
마이튜브 생중계는 이후로도 몇 가지 질문을 더 받고 정리가 되었다.
이후에는 영화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었다. 이미 한국에서는 기사가 크게 난 ‘기립박수 10분’을 이끌어낸 칸에서의 뜨거운 반응들을 전달하는 데 애썼다.
그러는 사이 또 마이튜브를 보고 있던 팬들은 실시간으로 도욱이 부른 ‘La Vie En Rose’를 편집했다.
팬 커뮤니티며 여러 커뮤니티에 도욱의 영상이 올라왔다.
한국뿐만이 아니었다. 해외에 있던 팬들은 도욱의 센스에 감탄하고, 노래에 감동했다.
거기에 안 그래도 도욱에게 약간의 관심을 가지고 있던 현지 언론들도 도욱이 샹송을 불렀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그 사실을 자랑스럽게 <푸른 고래>팀의 인터뷰 기사에 실었다.
프랑스는 자국 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한 나라였다. 그런 만큼 현지 언론들은 자신들의 언어로, 자신들의 노래를 불렀다는 것에 크게 만족했다.
덕분에 기사 속 <푸른 고래>에 대한 평가가 조금 더 후해진 것도 사실이었다.
***
성공적인 칸 영화제 일정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온 도욱을 기다리고 있는 건 몇 차례 더 남아 있는 영화관 무대 인사였다.
이후에는 영화배우 강도욱이 아닌 다시 케이케이의 멤버 강도욱으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해외 투어를 돌면서 케이케이 활동을 간간이 하긴 했지만, 도욱은 정말 딱 공연 일정 외에는 생각보다 커진 영화에 모두 영화 홍보로 시간을 비워야만 했었다.
바쁘게 활동을 하고, 이런 저런 사건을 정리하다 보니 정신없이 또 시간이 흘러 있었다. 다시 연말이었다.
시상식 무대 연습을 위해 연습실로 도욱이 들어서자마자 먼저 와 있던 멤버들이 도욱을 반겼다.
“브라더, 진짜 얼굴 보기 힘드네에!”
“나 마이튜브에서 봤어. 샹송 부르는 도욱이. 너 그날 와인이라도 마신 거야?”
김원과 안형서의 말에 도욱이 머리를 긁적였다.
“그날은 기분이 좋아서······.”
“기분 좋을 만도 하지, 깐 갔다 왔다 안 카나.”
정윤기가 다 이해한다는 듯 끄덕였다.
멤버들은 도욱이 너무 바빠 다 같이 모일 시간이 없었던 점은 안타까웠지만, 바깥에서 큰 활약을 하고 있는 도욱이 무척이나 자랑스러웠다.
“지훈이랑 태형이는요?”
도욱이 연습실에 아직 도착하지 않은 두 멤버를 챙겼다.
“빠져 가지고 늦는 거지 뭐.”
정윤기의 말에 도욱이 진짜냐는 듯 안형서에게 눈짓으로 물었다. 정윤기는 평소 말투부터도 너무 대충대충, 건성으로 말하는 편이라 가끔 농담까지도 진담 같을 때가 있었다.
“그럴 리가 있나. 지훈이는 숙소에서 연습복 챙겨 온다고 다시 나갔고, 태형이는 오늘 한 시간쯤 늦을걸?”
“태형이는 왜 늦어요?”
“친구 일이면 빠삭하더니 칸 갔다 와서 변한 거냐!”
정윤기와 마찬가지로 안형서가 되지도 않는 농담으로 도욱을 놀렸다.
사실 박태형은 시상식에서 현지와의 무대가 있었기 때문에 용감한외동이 있는 연습실로 연습을 하러 간 상태였다. 현지의 스케줄과도 맞추다 보니 케이케이의 연습에는 한 시간 정도 늦게 됐다.
어차피 안무 습득력이 가장 좋은 박태형이었기 때문에 한 시간 정도는 충분히 커버가 가능한 연습 시간이었다.
“아······.”
도욱은 얘기를 듣고는 끄덕였다.
솔로 앨범 활동부터 영화 촬영과 그 홍보까지. 케이케이 밖에서 혼자 활동해 온 도욱이었다.
물론 영화 촬영 때에는 윤성아 감독과 박효원이라는 선배들이 도욱의 곁에 있었지만, 그래도 케이케이 멤버들과는 그 의미가 달랐다.
멤버들과 있으며 또 아직 오지 않은 멤버들을 이야기 하다 보니 도욱은 금세 케이케이 내에서 멤버들과 함께하던 감각을 되찾았다.
“이번 시상식 상당히······.”
“바쁘겠지.”
“정신없겠지.”
“특히 도욱이 네가.”
도욱의 한 마디에 멤버들이 한 마디씩 거들었다.
우선 모든 방송국의 가요대상은 물론이고 추가로 석지훈이 KVS 예능대상에 출연할 예정이었다. ‘캠핑 48시간’에서 제대로 활약하며 자리를 잡은 덕분에 석지훈은 신인상 후보에 올라 있었다.
큰 이변이 없다면 석지훈이 예능대상 신인상을 거머쥐게 될 것이었다.
그리고 가요계에서 케이케이의 활약은 독보적이었다. 케이케이의 정규 앨범인 ‘푸른 하늘’이 큰 히트를 친 것은 물론이고, 박태형 또한 현지와의 콜라보 앨범으로 요즘 가요계에선 흔치않은 남녀 듀엣으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힙합 유닛으로 활동한 오케이의 무대도 시상식에 올릴 만한 것이었다.
거기에 두 곡이나 히트 시킨 도욱의 솔로 앨범까지. 조금 보태 말하자면 케이케이 멤버들만 데리고 시상식을 치러도 될 지경이었다.
그만큼 케이케이가 올 한 해 잘나갔다는 뜻이기도 했지만, 시상식 기간 동안 작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바쁘고 정신없을 것이라는 뜻이기도 했다.
그때 숙소에 다녀온 석지훈과 함께 앨범제작팀 소속의 공연 담당인 권우찬 대리가 함께 연습실로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바닥에 앉아 몸을 풀며 뒹굴 대던 멤버들이 일어서 권우찬 대리에게 인사했다.
인사를 받으며 들어오는 권우찬 대리의 손에는 여러 장의 페이퍼가 들려 있었다.
권우찬 대리가 멤버들에게 한 장씩 쥐고 있던 페이퍼를 나눠주었다. 시상식 공연 기획 의도와 컨셉을 비롯해 무대 동선 등이 꼼꼼하게 정리되어 있는 페이퍼였다.
콘서트도 아닌 시상식 무대도 세심하게 신경 쓰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부분이었다.
이미 있는 노래의 무대를 재현해내면 그뿐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가수들이 준비를 아주 새롭게 하기보다는 똑같은 연출을 보여주거나 대충 만든 리믹스 정도를 연습해 오는 게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힛 엔터테인먼트와 케이케이 멤버들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시상식이야말로 다른 팬들이나 일반 대중들에게도 자신들 무대의 정수를 보여주고, 새로운 모습으로 시선을 끌 기회였다.
지난 번 도욱이 이진리와 무대를 함께한 것이나, 케이케이가 특별한 군무를 준비했던 것으로 화제를 모았던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일단 이건 KVS 시상식 무대 구성이에요.”
권우찬 대리의 설명을 들으며 멤버들이 꼼꼼하게 구성을 살폈다.
앨범제작팀에서는 최고의 편곡팀을 꾸려 편곡 작업에도 신경을 쓰고 있었다. 물론 편곡 최종 컨펌자는 앨범 프로듀서인 도욱과 케이케이 멤버들이 될 것이었다.
<1부 6번째>
- 현지 무대 (feat.박태형)
<2부 오프닝 도욱 솔로 무대>
- 제발 가지 마 (오케스트라 편곡 버전) 2:10
- 컨셉 무대, 브레이크 타임 00:20
- Darling (리믹스 버전) 1:00
<2부 엔딩 케이케이 전원>
- 말만 해 (오케이 편집 버전) 1:20
- 댄스 브레이크 00:35
- 푸른 하늘 (오리지널+아카펠라 버전) 2:35
“무대가 진짜 많네요······.”
“이렇게까지 시간 된다고요?”
석지훈과 안형서가 놀란 듯 물었다. 권우찬 대리는 예상한 반응이라는 듯 답했다.
“아무래도 KVS 쪽에서 더 신경을 써 준 것도 있고요. 실제로도 이 정도 시간 받을 만한 위치잖아요.”
권우찬 대리의 말대로였다.
케이케이는 이제 본상 후보도 아닌 대상 후보였다. 거기에 도욱만으로도 혼자 본상을 거뜬히 받을 수 있는 성적을 낸 상태였다.
“그래도 엔딩이라니.”
정윤기가 중얼거렸다. 어디든 오프닝과 엔딩 자리는 중요한 지점이었다. ‘중요한 사람은 맨 나중에’라는 말이 있듯이 특히나 엔딩은 참여 가수 중 가장 중요하고, 인기가 많은 가수에게 주어지는 영광스러운 자리였다.
“KVS는 ‘캠핑 48시간’도 있고, 다른 기획사들이랑 많이 친한 편이 아니라 이렇게 정해진 거긴 해요.”
권우찬 대리가 덧붙여 설명했다.
“그럼 다른 방송사는······.”
도욱의 물음에 권우찬 대리가 눈썹을 조금 구겼다.
“그러니까. 그게 문제죠. 지금.”
***
음악 프로그램만 해도 많은 가수들이 출연하기 때문에 팀마다 시간 배분이나 엔딩 자리를 놓고 이런 저런 이야기가 많았다. 괜히 예능국에서 음악 프로그램 피디가 힘이 센 것이 아니었다.
음악 프로그램의 확장 버전인 데다 상까지 걸려 있으니 시상식 무대의 1분, 1초를 두고 싸움이 발생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다양한 알력 다툼이 존재했다. 방송국 쪽에서 역시 가장 골머리를 앓는 건 대상 후보들간의 순서 배치와 시간 배분이었다.
모두 공평하게 배분되기는 힘들었다. 조정이 필요했고, 그 조정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그날 시상식의 분위기가 달라질 수 있었다.
이번 시상식에서 문제가 되는 건 사방신화와 케이케이였다.
오백호 실장은 가장 큰 가요 시상식 중 하나인 TBN의 시상식 큐시트를 받아들고는 눈을 찌푸리고 있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는데.”
오백호 실장의 앞에 앉은 팬-마케팅팀 이대형 팀장의 생각도 마찬가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