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슈퍼스타-128화 (128/225)

# 128

새로운 목표 (3)

***

#S.

효원을 교실 구석에 몰아세운 채 무지막지한 폭력을 가하던 정환.

결국 효원은 폭력을 이기지 못하고 정신을 잃고 만다. 피 흘리며 약한 숨을 쉬는 효원을 보자 정신이 든 정환.

그러나 이미 너무 많은 일이 벌어졌다. 돌이킬 수 없고.

눈을 감은 효원을 멍하니 쳐다보던 정환, 자신의 분을 이기지 못하고 교실 한편의 책상 의자로 사물함을 내리치며 포효한다.

정환의 포효 속에서.

학교를 지키고 있던 수위 달려오고, 사물함 내리치던 의자 파편 튀기며.

그때 도욱의 볼에서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예정된 장면은 아니었다. 그러나 카메라는 그 모습을 놓치지 않고 클로즈업했다.

#S.

정환 아슬아슬한 걸음으로 옥상 위 난간 걷고 있다.

왼쪽으로 발 뻗으면 옥상 안쪽, 오른쪽으로 발 뻗으면······ 아찔하다.

인적이 드문 거리, 가로수 나무들이 늘어 서 있다.

나뭇잎 흔들리고, 언젠가 효원과 함께 보았던 노을처럼 붉은 노을이 하늘을 물들이고 있다.

그 광경 보면서 천천히 눈감고 발 내디는 정환.

컷되며 뿌얘지는 시야 속에 엔딩.

THE END.

자막이 떠오르고 스크린이 암전되자 상영관에 있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일어서며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쏟아지는 기립박수에 그 자리에 함께 있던 윤성아 감독과 박효원, 도욱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뒤쪽을 돌아보자 자신들을 향해 박수를 치는 수많은 사람들이 보였다.

대부분 현지인들이었고, 다양한 나라에서 칸 영화제를 즐기기 위해 도욱처럼 비행기를 타고 온 이들도 많았다.

한국인들이 아닌 눈과 머리 색깔부터 다른 이들에게 박수를 받은 일은 희한한 감정을 불러 일으켰다.

인사 외에는 말도 통하지 않을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푸른 고래>라는 한국의 작품을 보고 감명을 받아 엄지를 치켜세우고 박수를 친다는 게 너무나 신기했다.

“반응이······.”

“정말 좋은데요? 와······.”

도욱이 감격에 차 중얼거리자 윤성아 감독이 말을 이었다. 그러나 둘 다 말을 잇지 못하는 건 물론이었다.

<푸른 고래>의 감각적인 영상과 연출은 드뷔시관의 관객들을 모두 압도했다.

한국 청소년들의 이야기였지만, 사춘기의 불안함과 폭력성에 대해서는 다른 나라의 누구든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서사와 연출, 연기자들의 연기 모두 조화로웠다. 조명을 쓰는 데 있어서 미숙한 부분이 섬세한 전문가들의 눈에 종종 띄었지만, 그마저도 조악한 사춘기 시절의 메타포로 해석될 여지가 있었다.

그만큼 다른 부분들이 훌륭했기 때문에 단점도 단점으로 보이지 않았다.

10분이 넘는 시간 동안 박수가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칸에서의 기립 박수는 사실 관행이라고 보는 이들도 있었다. 칸 영화제에 올라오는 수십 편의 작품들 대부분이 기립 박수를 받기 때문이었다.

그건 칸 영화제에 참석한 영화인들의 영화에 대한 애정과 영화 제작진에 대한 존경을 담은 것이기도 했다. 일단 ‘칸’이라는 영화제에 온 작품이라는 것이 이미 검증받았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러나 대부분이 전부는 아니었다. 간혹 관객들의 눈에 차지 않는 영화가 상영되면 아예 기립 박수가 없는 경우도 있었고, 있다고 해도 예의상 3분 정도가 다였다.

그러니 10분이 넘는 시간의 박수는 관행이라고만 보기에는 어려웠다. 박수를 치는 이들의 눈빛에서 진심 어린 극찬이 묻어 나왔다.

확실할 수 있을 만큼 성공적인 반응이었다. 수준 높은 관객들의 눈에 흡족할 만한 영화를 내놓은 것에 세 사람은 가슴이 벅차올랐다.

‘이런 자리까지 오게 되고······.’

도욱은 귓가를 울리는 박수 소리를 듣고, 사람들을 보며 멍하니 떠올렸다.

‘산 중턱을 넘어선 느낌이다. 구름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던······ 정상을 향하는 기분이다. 더는 내가 쉽게 예견할 수 없는······.’

어느 정도의 자리에 올라왔다고 생각했는데, 어쩐지 더 아득해진 기분이었다.

그러나 기분 나쁜 아득함은 아니었다. 생각지 못한 지금의 이 자리처럼. 기대감이 더 컸다. 물론 걱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안보다 기대가 더 큰 것은 스스로 더 열심히 노력할 준비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곧바로 현지에서 반응이 왔다. 미국과 유럽 10여 개국의 배급사들이 <푸른 고래>에 관심을 표했다. 칸에 왔을 때부터 일정 부분 해외 상영이 예정되어 있었던 부분이었지만, 더욱 뜨거운 관심이었다.

현지 언론에서 인터뷰 요청이 들어왔다.

제작사 측에서 배정해준 통역사와 함께 윤성아 감독과 박효원, 도욱은 현지 언론사들과도 인터뷰를 진행했다.

프랑스 유력 일간지인 ‘데일리’에서도 인터뷰를 요청했다.

<푸른 고래>에 대한 관심이 생각보다 뜨거웠다. 경쟁 부문도 아니라 이렇게까지 좋은 반응을 얻게 될 줄은 몰랐던 세 사람이었다.

특히나 도욱에 대한 관심이 넘쳐났다. 인터뷰를 하는 리포터의 눈이 반짝거리며 도욱에게 여러 질문을 쏟아냈다.

각종 기사에도 <푸른 고래>의 감각적인 영상미와 함께 꼭 도욱의 연기에 대한 언급이 꼭 들어 있었다.

‘빨려 들어갈 듯한 검은 눈에서 나오는 긴장감’, ‘블랙홀 같은 매력’, ‘한국에서 온 눈을 뗄 수 없는 소년’이라는 각종 표현이 도욱의 이름 앞에 붙었다.

현지 언론들과의 인터뷰를 마친 세 사람이 칸에서 마지막으로 가지는 스케줄은 다름 아닌 마이튜브 생중계 인터뷰 스케줄이었다.

도욱의 소속사이자 <푸른 고래>의 두 번째 투자이기도 한 힛 엔터테인먼트 쪽에서 제안한 일정이었다.

한국에서 <푸른 고래>는 상영한 지 아직 2주밖에 되지 않은 작품이었다. 아무리 도욱이 출연했다고는 하지만 도욱이 영화배우로서 티켓 파워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영화 장르의 특성상 많은 관객을 동원하고 있지는 못했다.

상업영화는 아니라지만, 투자한 입장으로서는 어떻게든 더 수익을 얻어내면 좋을 일이었다.

칸 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았다는 것으로 남은 기간 홍보에 박차를 가할 예정이었다. 외국 영화제에서 좋은 평가를 받아 국내에서 역으로 인기를 끄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마이튜브 생중계 인터뷰는 그러한 홍보의 일환으로 기획된 것이었다.

인터뷰라고 하지만 따로 리포터도 없었고, 세 사람이 질문지를 주고받으며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이야기를 하는 게 다였다.

국내 상영으로 생겨난 <푸른 고래>의 팬들은 물론이고, 상당수의 도욱 팬들이 마이튜브 생중계를 시청하기 위해 마이튜브에 접속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십니까.”

세 사람이 카메라에 대고 손을 흔들며 마이튜브 생중계가 시작되었다.

촬영은 야외에서 진행되었다. 드뷔시관 옆의 높은 건물 옥상에서 장비를 설치해 놓았다. 옥상 아래로 낮은 건물들과 칸의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도욱은 연푸른색의 셔츠를 입고 있었다. 밝은색 셔츠를 입고 편안하게 흐트러진 머리를 한 채, 해를 피하기 위해 선글라스를 낀 도욱의 외모가 오늘도 빛이 나고 있었다.

마이튜브 생중계였기 때문에 팬들의 반응이 실시간으로 세 사람에게도 전달이 되었다.

윤성아 감독이 더듬더듬 화면에 뜨는 팬들의 반응을 읽어 나갔다.

“도욱 오빠······. 너무 잘생겼어요. 와······. 도욱 씨 잘생겼다는 얘기만 여기 잔뜩 있네요.”

“아니, 여기 효원 역 배우분 연기 좋았습니다. 하는 것도 있는데 감독님은 그것만 읽으시네요.”

“박효원 씨, 여기서 욕하면 안 되는 거 아시죠?”

윤성아 감독과 박효원이 화면을 보며 티격 태격 댔다.

“두 분이 워낙 친하세요. 잘생겼다는 칭찬은 감사합니다.”

도욱이 기분 좋게 두 사람의 사이를 정리했다.

“푸른 고래 사랑해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이거 시청하신 분들은 다 저희 영화 보신 분들이죠? 저희 영화······. 재밌어요. 재밌게 보셨죠?”

“하하. 도욱 씨! 강요하는 것 같잖아요!”

윤성아 감독이 도욱을 말렸지만 도욱은 고개를 저으며 확신에 찬 채 중얼거렸다.

“재밌는 건 사실이니까요.”

박효원이 재밌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그건 그렇죠. 연기도 워낙 잘했고.”

“와우, 두 분의 배우분들이 완전······. 자뻑?”

“그런 말은 쓰셔도 되나요, 감독님?”

박효원이 날카롭게 윤성아 감독을 지적하자 윤성아 감독이 ‘자뻑’의 다른 말을 찾기 위해 머리를 굴렸다. 그사이 도욱이 대신 답했다.

“자신감이죠! 그렇죠, 효원 형?”

“그렇죠!”

박효원과 도욱이 어느새 쿵짝이 잘 맞았다.

도욱은 뜨거운 현지 반응에 기분이 무척이나 좋은 상태였다. 물론 도욱뿐 아니라 모두가 그랬다. 그러나 평소 차분하기만 했던 도욱의 성격을 생각하면, 지금 상태가 무척 하이한 상태라는 것은 쉽게 알아차릴 수 있는 부분이었다.

기분 좋은 일이 있어도 소리 내어 웃기보단 싱긋 미소를 지어 보이는 것으로 대신하던 도욱이었다. 그런 도욱이 거의 돌잡이 어린애처럼 방긋방긋 웃으며 손을 흔들어 보이니 마이튜브 채널이 터져 나가기 직전이었다.

-도욱 오빠 기분 좋아요^^??

-강도욱 기분 왜저렇게 좋아 보임?ㅋㅋㅋㅋㅋ 조증 온 것 같음ㅋㅋㅋㅋㅋㅋ

-칸은.. 강도욱도.. 춤추게.. 한다..

-멤버들이 서운해 하는 거 아니에요?ㅋㅋㅋ 도욱 오빠 박효원 배우분이랑 친한가 봐요ㅋㅋ

-세 분 사이가 친한 것 같아서 보기 좋다ㅎㅎ

-잘되는 영화에는 역시 이유가..!!!

-Hello!! uki oppa!!

-윤성아 감독님! 미인이시네요~!

-칸에 갔으니 프랑스어로 인사 부탁드려요!

-푸른 고래에 나오는 대사 하나만 해주세요!!!

-도욱 오빠 욕 해주세용!! 욕 찰지게 엄청 잘하던데 평소에도 욕 많이 하나요?ㅋㅋㅋ

-어그로ㄴㄴ

-박효원 씨 차기작 어떻게 돼요? 오래 전부터 팬입니다.

-칸에 간 소감은 어때요? 칸 공기는 조금 다른가요?!

“칸에 온 소감은······. 여기 바다 보이시죠? 날씨도 너무 좋고······. 날씨도 사람들도 다 저희 반겨주는 것 같고······. 너무 좋습니다!”

도욱이 팔을 활짝 펼쳐 보이며 카메라를 들더니 옥상 밖 바다의 전경을 보여주었다.

아무래도 이런 팬들과 소통하는 부분은 아이돌 출신인 도욱이 더 자연스럽고 능숙할 수밖에 없었다. 도욱이 주도적이고 능동적으로 대답하자 윤성아 감독이나 박효원도 더 편안하게 토크를 이어나갔다.

“박효원 씨 차기작은 예정된 게 있나요?”

도욱이 마치 리포터처럼 질문하자 박효원이 답했다.

“아직은 없습니다. 연락오는 곳이 몇 곳 있긴 한데······. 앞으로 더 많아지면 좋겠네요.”

“역시 욕심 많은 선배님.”

도욱의 말에 윤성아 감독이 웃으며 빠르게 올라가는 질문 중 하나를 읽었다.

“프랑스어 인사라······. Bonjour? 하하. 저는 이 정도뿐인데요. 두 분 중에 프랑스어 가능하신 분이 있나요?”

박효원이 양팔로 엑스자를 만들었다.

“저는 영어도 제대로 못 합니다. 아니, 한국어도 아직.”

“흠······. 저는 인사는 아니지만.”

도욱이 조금 고민하는 듯하더니 입을 열었다. 무언가 인상에 남을 만한 인터뷰 영상을 남기고 싶었고, 그런 계산을 하기 전에 즉흥적으로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그만큼 기분이 좋았기 때문이었다.

그때 카메라 뒤에서 인터뷰를 지켜 보던 오백호 실장은 한국에서 걸려 온 구철민의 전화를 받게 되었다.

“어, 무슨 일이야?”

“실장님, 메시지 확인을 안 하셔서······.”

“지금 도욱이 생중계 중이잖아. 무슨 일인데. 급한 일이야?”

“아, 그게 아니라 섭외 요청이 들어왔는데 급하게 컨펌 필요한 것 같아서요.”

“섭외? 무슨 섭왼데. 시상식 스케줄 외에는 안 잡을 건데.”

“시상식 스케줄인데요······.”

시상식 스케줄은 이미 모두 확정이 난 상태였다. 오백호 실장이 무슨 말이냐는 듯 되물으려던 때였다.

도욱의 감미로운 노랫소리가 옥상에 울려 퍼졌다.

뜻을 이해할 수 없어도 발음만으로도 아름다운 노래였다. 음은 모두가 알 만한 유명한 샹송이었다.

‘La Vie En Rose’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