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슈퍼스타-127화 (127/225)

# 127

새로운 목표 (2)

도욱의 옆에 있는 멤버들은 놀란 표정을 숨기지 못한 채였다.

서강준은 도욱이 자신을 비웃을 줄 알았다. 그러나 도욱의 표정에는 어떠한 변화도 없었다.

도욱의 눈이 서강준을 직시했다. 아무 감정 없는 눈빛이었다. 동정도 경멸도 없었다. 서강준은 그 눈빛에 더한 모멸감을 느꼈다.

강도욱에게 아무 의미 없는 무생물이 된 기분이었다. 차라리 도욱이 비웃기라도 했다면 좋았을 것이다.

“······.”

“······.”

두 사람 사이에 짧은 시간 시선이 오갔다. 서강준은 너무나도 비참해졌다. 두고 보지 않겠다는 말을 강도욱에게 했던 날이 너무나 비참했다.

구철민이 흉흉한 분위기를 뚫고 케이케이 멤버들을 이동시켰다. 케이케이 멤버들은 천천히 맨투맨 멤버들을 지나쳐 공연장 안으로 들어갔다.

서강준을 제외한 맨투맨의 다른 멤버들도 새끼 매니저와 함께 서둘러 자리를 옮겼다. 매니저는 그 길로 서강준을 데리고 차에 올라탔다. 그 뒷모습을 찍는 이들이 여럿이었다.

차에 올라탄 서강준은 매니저가 건네 준 휴지를 받아 계란물을 닦아내며 눈을 감았다.

“아무래도 오늘 무대는 힘들 것 같다. 숙소 돌아가자.”

서강준이 신경질적으로 더러워진 휴지를 차 바닥으로 내팽개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오늘’ 무대만 힘들지 않을 듯했다. 앞으로 과연 무대에 설 수 있을지 미지수였다.

자신에게 감쪽같이 속아 진짜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도 모른 채 등신처럼 환호하던 이들의 환호를 더는 들을 수 없을 것 같다는 예감이었다.

서강준의 아버지인 서중원 본부장은 정신줄을 놓은 자신의 나약한 아들을 기꺼이 받아줄 사람이 아니었다.

‘걸리적거리면 치운다.’

아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아쉬운 부분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이대로라면 맨투맨 전체가 완벽하게 침몰하게 될 것이다.

아직 맨투맨을 키우며 들였던 투자금 회수도 제대로 안 된 상태에서 맨투맨을 완전히 버리는 카드로 만들 수는 없었다. 당장 내보낼 남자 아이돌 그룹도 없는 게 사실이었다.

서중원 본부장은 계란물을 뒤집어 쓴 아들의 사진을 클릭해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주름이 여러겹이 되었다. 결단을 내릴 때였다.

다음 분기에 앨범을 내기로 한 걸그룹 앨범의 일정을 우선은 당기는 방향으로 가야 했다. 그 사이 맨투맨 내부와 준비하던 앨범을 재정비해 내면 아직은 도약의 기회가 있을 것이었다.

‘한 번 결단을 내리면 빠르게 내리는 게 좋겠지······.’

서중원 본부장은 바쁘게 울리는 휴대폰을 받아 들었다. 아라 엔터테인먼트의 사장으로부터 온 전화였다. 아라 엔터테인먼트를 창립한 현 아라의 사장은 모든 실무를 서중원 본부장에게 일임한 채였다. 나이가 들어 빠르게 변화는 업계에 대한 대처능력이 떨어진다는 판단에서였다.

그러나 여전히 회사의 굵직한 중대사항에 대해서는 사장에게 보고를 해야 하는 식이었다.

‘이런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말이지.’

주식도 끌어 모으고 있었고, 주요 인사들도 모두 서중원 본부장의 사람들이었다. 자신의 아들이 바보같은 짓만 하지 않았어도 훨씬 수월했을 것이다. 서중원 본부장이 비릿하게 웃었다. 그러면서도 전화로는 누구보다 충직한 부하의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네, 사장님.”

서중원 본부장이 혀로 입가에 침을 묻혔다. 아무리 그래도 아들이다 보니 조금 입가가 타들어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네. 결정했습니다. 지금 보고 드리러 올라가겠습니다. 사장실에 나와 계신가요?”

사장은 이제 사무실에 나오는 일도 드물었다. 서중원 본부장이 끄덕이며 답했다.

“예. 그럼 댁으로 찾아뵙죠.”

***

<서준, 맨투맨 전격 탈퇴 선언..연예계 은퇴 후 유학길>

<결국에는... 맨투맨 서준 탈퇴!>

<며칠간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었던 서준, 그는 누구..?>

<맨투맨 서준 탈퇴, 아라 엔터테인먼트 공식 입장 전문>

<향후 활동 아직 정해진 바 없어... 맨투맨은 새 멤버 영입 고려중!>

<폭행 사실 시인 녹음본 나와.. 반성 없는 서준에게 등 돌린 팬들>

-유학? 역시 금수저라 팔자 좋게 유학 가버리면 그만이구나

-군대나 가라ㅋㅋㅋ

-병역 비리까지 터뜨리면 볼 만할 듯ㅋㅋㅋㅋㅋ

-말이 유학이지 유배구만..

-다른 맨투맨 멤버들 불쌍하다 빨리 나가는 게 맞는 듯;;;

-그래서 결국 사과는 안 함?ㅋㅋㅋㅋ 얼굴에 철판 깔았나 봄..

-다신 티비에 얼굴 비칠 생각도 하지 말길! 퉤!

-날계란 하나 맞고 가는 거냐? 저런 넘들은 똑같이 당해 봐야 함

‘자멸.’

그야말로 자멸이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형태였다.

오백호 실장의 도움을 받아 캐리어를 끌고 출국 수속을 준비하며 핸드폰을 보던 도욱은 생각했다. 그러나 이내 다른 기사로 페이지를 넘기며 서강준에 대한 생각을 접었다.

연예인 서강준의 생은 끝이었다. 이 일이 잊힐 때쯤 얼굴을 들이민다고 해도 이전과 같은 영광은 그에게 절대 있을 수 없었다.

사법적 죄인이 되는 것은 면했지만, 대중의 재판을 받았다. 얼굴도 다 알려진 상황이니 한인이 많은 곳에서는 외국이라고 하더라도 그리 떳떳하게만은 살지 못할 것이다.

죄를 얼굴에 낙인처럼 찍고 살아야 할 죄인을 도욱은 이제 잊기로 했다.

오늘 인천 공항은 다른 때보다 많은 사람들로 혼잡했다. 그 이유는 연휴로 인한 관광객도 아닌, 두 스타의 출국 때문이었다. 한 명의 스타는 바로 도욱이었다.

“도욱아!”

“도욱 오빠!”

“강도욱!”

“도욱 씨! 여기 좀 봐주세요!”

팬과 기자들이 섞여 도욱의 이름을 정신없이 불러대는 통에 누가 팬이고, 누가 기자인지 알아채기도 힘든 수준이었다.

도욱은 자신을 부르는 사람들에게 입가의 미소로만 답하며 발걸음을 빨리했다. 오백호 실장과 추가로 붙은 경호원들이 그런 도욱을 엄호했다.

인파를 헤쳐 나가 출국장으로 들어서는 입구에는 도욱보다 한 발 먼저 도착한 윤성아 감독과 박효원이 기자들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하고 있었다.

두 사람이 도욱을 보고는 손을 흔들었다. 도욱은 두 사람에게 눈짓으로 인사를 한 뒤, 옆에 가서 섰다.

세 사람이 일렬로 서 기자들 쪽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공식적으로 기자들과 시간을 갖기로 되어 있진 않았지만, 너무 많은 기자와 팬들이 와주었기 때문에 팬 서비스 차원에서라도 인사를 하는 게 좋겠다는 윤성아 감독의 의견에 따른 것이었다.

그런 세 사람을 향해 눈이 아플 정도로 플래시가 터졌다.

“소감이 어떠십니까!”

“여기도! 이쪽 보고도요!”

윤성아 감독과 박효원의 시선이 도욱 쪽을 향했다.

일반 이용객들도 많은 공공시설이었다. 더 이상의 혼잡을 초래하는 건 민폐였다. 그러니 인사가 길어져선 안 됐고, 짧게 한 마디를 한다면 가장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되어 있는 도욱이 하는 것이 맞다는 두 사람의 판단이었다.

도욱이 조금 머쓱한 표정을 짓다 입을 열었다.

“흠흠.”

마이크도 차지 않은 채라 생목소리를 내야 했다. 도욱이 헛기침을 하며 시끄러운 주변을 조금 정리했다.

“정말 영광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두 저희 영화를 사랑해주신 여러분 덕분입니다. 그럼 칸에서 뵙겠습니다.”

칸이었다. 영화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칸의 레드카펫을 밟아보고 싶어 했다.

눈이 부실만큼 푸른 바다가 펼쳐져 있고, 그 위로 바람이 부는 프랑스의 휴양 도시 칸. 그곳에서 펼쳐지는 영화인들의 꿈. 칸은 그런 꿈의 집합체였고, 그 자체였다.

그러한 칸 영화제에서 <푸른 고래>는 ‘주목할 만한 시선’의 상영 작품으로 공식 초청받게 되었다.

꽤 오랜 시간 독립 영화판에서 활동해 온 박효원에게는 물론이고, 윤성아 감독과 도욱으로선 말도 못 할 영광이었다.

윤성아 감독과 도욱에게는 첫 영화이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칸 영화제의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은 칸 영화제의 미래라고 불리는 부문이었다. 부문의 명칭처럼 앞으로 주목할 만한, 눈여겨 볼 만한 영화들에게 주어지는 상영 기회였다.

너무 뻔한 말일 수도 있었지만, 말 그대로였다. 너무나도 영광이었고, 이런 영광의 순간은 혼자만의 힘으로 오는 게 아니었다.

영화를 만든 사람들, 영화를 사랑해준 사람들 덕분이라고 도욱은 진심으로 생각했다.

도욱이 말을 마치며 조용히 미소 지었다. 조용해졌던 주변이 다시 시끄러워지며 환호 어린 웅성거림이 일었다. 인상적인 미소를 향한 플래시 소리도 거세어졌다.

‘칸에서 보자’는 도욱의 말은 무척이나 멋들어진 멘트였다.

아무나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칸에 초청된 자만이 할 수 있는 말이었다.

세 사람은 마지막으로 자신들에게 많은 관심을 보내준 고마운 이들에게 손을 흔들며 출국장 안으로 들어섰다.

유유히 출국장으로 들어서는 도욱의 뒷모습이 오늘따라 더욱 듬직했다.

팬들은 그런 도욱의 뒷모습을 지켜보며 어쩐지 벅차 오르는 마음에 시려 오는 눈을 비볐다.

도욱의 칸 진출이라니 팬들로서도 얼떨떨한 상황이었다. 유명 감독의 영화도 아니었고, 도욱이 선택한 다음 연기 행보가 신인 감독의 예술 영화라는 것에 의문을 가졌었던 팬들이었다.

도욱의 선택에 의문을 품었던 자신들이 어이가 없을 따름이었다. 영화 촬영 시간에 도욱이 휴가나 다녀왔음 싶다고 글을 올렸던 한 팬은 자신의 뺨을 내리치기도 했다.

“아, 이제 도욱이 미모를 칸까지 알아버리는구나······.”

“외국인들 눈에도 잘생겼겠지?”

“말이라고 하냐. 동양적인 거 좋아한다느니 어쩌느니 해도 결국에 외국인이 뽑은 예쁜 여자 연예인 1위 김태화랑 송혜진이던데.”

“우리 도욱이 칸 가서 브래드퍼트한테도 안 밀릴걸.”

“언제적 브래드 피트야?”

“이 언니 늙어가지구······. 애 유치원 보내고 오느라 힘들었나 봐.”

“아니 브래드퍼트가 칸에 온 적이 있긴 해?”

도욱을 배웅한 팬들이 자신들끼리 시시덕거리며 떠들다 나올 때였다.

한 무리의 기자들이 <푸른 고래> 팀이 있었던 2번 게이트에서 벗어나 8번 게이트 쪽으로 우르르 몰려 가고 있었다.

“뭐야 또 누구 와?”

“그래? 난 몰랐는데.”

도욱의 팬들이 의아한 눈길을 보냈다.

기자들이 몰린 8번 게이트에는 도욱과 동갑의 또 한 명의 스타, 제대로 하늘의 정점에 오르기도 전에 이제는 추락해 버린 별이 있었다.

서강준이었다.

출국 사실을 비밀리에 붙였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알았는지 비행 스케줄을 꿰찬 기자들이 몰린 것이었다.

서강준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은색으로 뒤집어 쓴 채 범죄자의 모습을 하고 나타났다. 소속사에서 보내준 막내매니저만이 서강준의 짐을 나눠 들고 있었다.

이민용 캐리어 두 개를 부친 서강준은 계속해서 심경을 물어오는 기자들을 피해 그저 출국장을 향해 걸음을 옮기기 바빴다.

이제 가면 맨투맨의 활동을 위해서라도 잡음을 내지 않기 위해 당분간은 한국에 들어오기 힘들 터였다. 가족들이나 자신의 친구들과 인사할 시간이 없는 건 당연했다.

서강준의 출국을 슬퍼해줄 가족이나 친구가 있는지도 확실치 않았다. 이 유배부터가 서강준의 아버지가 보내는 것이었다.

서강준은 그렇게 굶주린 하이에나들처럼 몰려든 기자들과 손가락질 하는 사람들을 헤집고 초라하게 출국했다.

직전 도욱의 출국과 비교하면 처참한 광경이 아닐 수 없었다.

***

긴 비행 끝에 도착한 칸의 날씨는 도욱을 반기는 듯 무척이나 맑았다.

현지에 도착하니 도욱을 알아보는 이가 별로 없었다. 도욱은 칸의 맑은 공기를 크게 들이 마시며 현재의 기쁨을 만끽했다.

윤성아 감독과 박효원도 들뜬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여기까지 오게 될 줄이야······.”

다들 쉽게 상상하지 못했던 순간이었다.

<푸른 고래>는 내일 드뷔시관에서 상영될 예정이었다. 오늘은 비행의 피로를 풀고 푹 쉬는 게 먼저였다. 각자 차를 나눠탄 후 숙소로 향했다.

도욱과 동행한 오백호 실장이 말했다.

“서강준도 오늘 출국한 모양이더라······.”

“그렇군요.”

무언가 씻긴 듯한 기분이 들었다. 비록 자신의 몸으로 이루지 못한 복수였지만, 다시 눈 뜬 채로 한 복수도 나쁘지 않았다.

그런 기분을 느끼는 도욱의 표정이 무척이나 담담하고도 맑았다. 오백호 실장은 그런 도욱을 보며 물었다.

“이제 다 끝난 거냐.”

오백호 실장의 물음에 도욱이 빙긋 웃었다.

“아뇨. 이제 시작이죠.”

끝은 또 다른 시작이었다. 도욱은 서강준에서 끝낼 생각이 처음부터 없었다.

꼬리를 잘랐다면, 꼬리를 자른 칼을 쥔 손. 그 손의 주인까지도 잘라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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