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3
끝이자 시작 (2)
***
[안녕하세요.
서준이라는 예명으로 활동 중인 서강준에 대해 밝히고자 이 글을 씁니다.
착한 서준이 그럴 리가 없다는 댓글을 보고 펜을 들었습니다...
오늘 서강준에 대한 기사가 뜨고 저는 웃을 수도 울 수도 없었습니다.. 종일 모든 인터넷 사이트가 서강준 이야기로 도배가 되어 있더군요...
저는 서강준과 같은 고등학교를 나왔습니다. (동창이라는 친근한 표현은 쓰고 싶지 않네요)
웃고 싶었던 건 제가 서강준이 행한 학교 폭력의 피해자였기 때문입니다. 그가 욕을 먹고, 저에게 뱉었던 말 그대로... 그렇게 살 거면 죽어라라는 댓글들을 보면서 솔직히 속이 시원했습니다.
누군가에게 그런 댓글을 쓰면 안 된다는 걸 알지만.. 대리만족을 느꼈습니다.
한편으로 웃을 수 없었던 건.. 울고 싶었던 것은 기사마다 보이는 서강준의 얼굴.. 그 얼굴만 봐도 치가 떨렸기 때문입니다.
그 이름만 보아도 손이 떨리고 눈물이 납니다.
저는 서강준과 동갑입니다. 그러나 바깥에서 친구들과 떠들며 놀거나, 대학교에 가 수업을 듣거나, 누군가는 일을 할 이 시간에 저는 방 안에서 이 글을 씁니다.
자랑이 아니라는 것은 압니다... 제가 나약하다는 것도 압니다... 비난은 이미 또 다른 저 자신에게 숱하게 들었습니다.. 가족들의 눈물이 이미 제게 비수였습니다.
그러나 서강준과 그 무리들의 폭력으로 인해 저는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방 안에 틀어 박혀 바깥으로 나가지 못하고 집안에 기생하는 괴물 같은 존재가 되었습니다.
저는 이전에 소심하지만 평범한 학생이었습니다.. 공부? 못했습니다.. 체육도 못했고 저희 집은 부자도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죽고 싶을 만큼 힘든 삶은 아니었습니다. 서강준을 만나기 전까지는요.
처음엔 제게 다가와 친근하게 굴었습니다. 이틀 정도.. 그러다 매점에서 음료수를 사오라고 시켰습니다.
부자이고 잘생겨 인기가 많았던 서강준이 시키는 심부름을 저는 거부하기 힘들었습니다. 처음에는 부탁이라고 했습니다.
다음 부탁은 담배를 사 오라는 것이었고.. 술이었고.. 싫다고 하면 뺨을 맞았습니다.
어느 날은 갑자기 담배를 모두 꺼내 입에 쑤셔 넣기도 했고.. 서강준이 기분 좋지 않은 날이면 뒷산으로 끌려가 배가 파랗게 되도록 구타당했습니다.
절대로 티가 나선 안 된다며 보이는 곳에 상처를 내는 일은 없었고.. 어딘가 다치면 나을 때까지 기다리는 치밀함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다른 이들이 보는 앞에선 웃으며 저를 대했습니다..
그러고선 쉬는 시간이 되면 저를 화장실로 데려가 대걸레 빤 물을 먹게 하기도 했습니다.. 제 피가 묻은 신발을 닦으라며 혀로 핥으라고도 했고.. 하지 않으면 무조건 옆구리.. 허벅지 가리지 않고 땔렸습니다.
목을 졸랐다가 숨이 막혀 죽기 전에 풀어주는 일이 계속되었습니다..
일 년여에 걸친 기억들이 계속해서 떠올라 이 글을 쓰기가 힘이 듭니다만 이렇게 쓰는 이유는 저도 이 일을 통해 극복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학교에 도움을 요청해도 학교에선 제대로 도움을 주지 않았습니다. 서강준의 뒷배경 때문이겠죠. 서강준은 연습생 생활을 시작하며 저를 구타하는 일도 그만두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자퇴를 했습니다.
사람들을 만나기가 너무 두려웠습니다. 저에게 웃고 있어도 뒤돌아서면 저를 찌를 것 같았습니다.
서강준을 TV에서 보던 날.. 저는 자해를 시도했습니다. 죽고 싶었습니다.
세상이 미웠습니다.
누가 더 괴물입니까? 저를 괴물로 만든 건 누구입니까?
두서없는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덧붙여 마지막으로 폭행당한 날 찍었던 사진 첨부합니다..
당시에는 지금보다 어렸고.. 두려움 때문에 증거조차 제대로 모으지 못해 고소조차 진행하지 못했습니다.
제 글을 안 믿으실 분들이 있다는 것도 압니다. 그래도 밝히고 싶었습니다..]
최성준 기자의 동생이 자필로 쓴 편지였다. 장장 세 장에 이르는 장문의 편지였다.
편지를 스캔해 올린 건 최성준 기자인 듯했다.
시사회장 대기실, 도욱은 커뮤니티에 올라온 자필 편지를 읽으며 가슴에 응어리진 뜨거운 무언가가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커뮤니티는 난리가 나 있었다. 처음 최 기자의 동생이 올린 곳 외에 다른 커뮤니티들에도 글이 퍼져 나가고 있었다.
자필 편지는 물론, 자필 편지를 누군가 타이핑해 읽기 쉽게 정리해놓기도 했다.
거기에 공개된 사진은 시각적으로도 무척이나 자극적인 것이었다. 때문에 편지의 내용과 함께 사람들의 충격은 배가 되었다.
원래였다면 최성준 기자가 서준의 폭력 사실에 관해 기사를 냈음에도 기레기 취급을 받고, 명예훼손으로 역고소를 당했을 것이다.
때문에 도욱은 전략을 바꾸었다. 서강준에 대한 여론이 안 좋을 때를 노렸다. 그리고 감정적으로 호소하는 방법을 택했다. 자극적인 방법이란 건 도욱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너무 쉽게 잊는다······. 충격을 줄 필요가 있었어.’
물론 누구인지 밝히지 않은 만큼 진실공방이 이루어질 수 있었다. 그러나 이미 뇌리에 남은 일을 지우기는 힘들 것이다.
‘거기에 연달아 사건이 더 터지면 빼도 박도 못 하는 거지······.’
이번 일이 최성준 기자의 동생에게는 잔인한 일이 될 수도 있었지만, 상처를 제대로 소독하고 치료하려면 고통도 따르는 법이었다.
아직 어린 나이였다. 삶을 다시 시작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많이 남아 있었다. 도욱은 이 일을 통해 그가 정말로 지난날을 극복할 수 있기를 바랐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피해자를 밀어붙이기만 할 수도 없었기 때문에 직접 피해 사실을 서술하는 일이 괜찮은지 최성준의 동의하에 정신과 전문의와 수차례 상담을 걸쳤다.
최성준의 동생으로서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용기를 낸 일이었다. 그러니 반드시 서강준을 끌어내리고 다시는 대중들 앞에 서지 못하도록 만들어야만 했다.
그래야 최성준의 동생이 자신의 상처를 헤집어 가며 글을 쓴 일이 의미가 있었다.
“표정이 왜 그래. 떨리냐.”
함께 대기하던 박효원이 도욱을 힐끔거리며 물었다.
“아니······. 인터넷에 이런 게 떠서······.”
도욱은 박효원을 향해 핸드폰을 내밀었다. 핸드폰을 건네받은 박효원이 내용을 보고는 눈을 크게 떴다.
“뭐야, 씨X! 이 글대로면 여기 나오는 새끼 완전 개자식 아냐? 진짜래?”
박효원이 소리 쳤다. 역시나 누구든 분노할 수밖에 없는 내용이었다. 박효원은 구역질이 난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진짜······ 같은데.”
“하긴 저 정도 내용이면 가짜기도 힘들겠지.”
박효원이 고개를 저었다. 다시 생각해도 역한 모양이었다.
“하여튼 인간 탈 뒤집어쓰고 돌아다니는 새끼들이 존나 많아.”
그때 문이 열리며 스태프가 들어왔다. 영화 상영이 끝났다는 소식이었다. 이제 무대 위로 올라가 기자들과 인사할 시간이었다.
잠시 자리를 비웠던 윤성아 감독도 시간에 맞춰 돌아왔다.
“가자.”
박효원의 말에 도욱이 고개를 끄덕였다. 도욱은 나가기 직전, 최성준 기자가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말한 대로 오늘부터 따라 붙으면 될 것 같아요]
[일단은 처박혀서 자숙할 텐데.. 정말 또 사고를 칠까?]
[네. 사람이 아니라 짐승새끼니까. 그러고도 남을 겁니다.]
***
-이게 대체 뭐야...
-이 글 진짜임? 나 지금 너무 충격 받았어
-글 내려 이 미친 XX야 서준 오빠 끌어내리려고 XX! 서준 오빠가 했다는 증거 어딨는데!
-아무리 봐도 진짜 같아... 편지 뭐야 눈물 남
-제목에 사진 있다고 표시해줘야 할 것 같아 보자마자 토할 뻔했어
-이런 짓을 해놓고 그렇게 웃고 다녔던 거임? 남의 인생 짓밟아놓고? 어떻게 저런 짓을 하냐..악마다 악마
-입학 비리는 이제 무슨 장난 같아 ㅋㅋㅋ 저런 짓도 했는데
-니가 찐따라 당한 거 아니고?????
-병먹금
-니가 쳐맞고도 그런 말 나오는지 함 보자
-진짜면 서준 얼굴도 안 보고 싶다
-검찰말고 경찰도 가야겠는데?
-똑같이 맞아 봐야 정신을 차리지 와 진짜 XXXX...
-서준 퇴출! 서준 퇴출! 서준 구속! 서준 구속!
-역대급 비리돌ㅋㅋㅋㅋㅋ 폭행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폭행돌 서준 퇴출해라!!!
-서준 인생도 ㅈ되게 만들어 줘야 함ㅇㅇㅇ
자신의 수족과 같은 천 실장이 내 보인 인터넷 사이트에 전화를 돌려가며 주원대 기사를 막고 있던 서중원 본부장의 표정이 무섭게 굳었다.
“이건 또 뭐야?! 이런 X같은!”
결국 서중원 본부장의 입에서 욕설이 튀어 나왔다. 본부장실 책상 위에 있던 유선전화가 다시 울리고 있었다. 서중원 본부장은 그대로 전화선을 뽑아 전화를 던져 버렸다.
와장창 깨지는 소리를 내며 전화기가 부서졌다.
인터넷에는 서준을 퇴출시키라는 청원글까지 올라와 있는 상태였다. 서준의 팬사이트도 공지를 올리고는 결과가 나올 때까지 팬사이트를 닫겠다는 입장을 취했다.
너무 크게 이슈가 되자 연예부 기자들도 슬금슬금 기사를 내기 시작했다. 일파만파였다.
안 그래도 뒷골이 당기던 참이었다. 주원대 관련 입학 비리 건으로 검찰 조사가 들어간 것까진 서중원 본부장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주원대와 아라 엔터의 관계는 꼬리를 잡힐 만한 것이 없었다.
주원대 예술대학 교수들이 비리를 저지르는 형태는 대충 두 가지였다. 불법 과외를 통하거나 뒷돈을 받고 무기명 심사인 실기 시험에서 만점을 줘 버리는 것이었다.
이전에도 아라 엔터에서 주원대에 소속 연예인을 입학시킨 적은 많았다. 서강준뿐이 아니었다.
아라 엔터는 대형 기획사인 만큼 여러 분야에 걸쳐 정치적인 입장을 취할 때가 많았다. 다른 곳과 달리 수익이 되지 않더라도 정치적, 사회적인 측면에서 움직일 때가 있다는 말이었다.
때문에 주원대가 주최하는 동문 행사나 기념행사 등에도 소속 연예인을 보내는 일이 많았다. 그러니 대학 측에서 아라 엔터 소속 연예인을 반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공적인 관계가 분명히 존재했지만, 기획사가 대학과 불법적인 거래를 할 이유는 없었다.
서준에게 실력보다 높은 점수를 준 건 주원대 학과장을 비롯한 교수들의 선택이었다. 그 가운데 눈엣가시 같은 도욱이 실력보다 낮은 점수를 받아 떨어지게 된 것도 교수들의 정치적 선택이었다.
대가성 금전이 오간 것도 없었기 때문에 서중원 본부장은 나름대로 떳떳했다.
그러나 검찰 조사가 시작되자마자 아이돌 그룹 S가 연루되었다는 기사가 떴다. 연예부 쪽에서 난 기사라면 서중원 본부장이 충분히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사회부까지는 서중원 본부장이라고 해도 장악력이 있는 게 아니었다. 고소를 하려고 해도 조사에 들어간 것도, 이름이 올라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기사가 나오지 않은 채 결과가 나왔다면, 딱히 서준에게 문제될 부분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기사가 먼저 터진 게 화근이었다.
부정입학 비리는 커다란 사건이 될 것이었다. 서중원 본부장이 아는 건수만 해도 여럿이었다. 그 사건 전면에 서준의 얼굴이 걸리게 되었으니 환장할 노릇이었다.
결과가 나올 때까지 최대한 몸을 사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면 사람들도 잊게 될 테고, 결과만 아니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하필 방송국 측에서 등을 돌린 게 대중들에게 더 큰 확증만 심어준 꼴이 되었다.
KVS는 공영방송인지라 다른 방송국보다 훨씬 보수적이었다. 무리를 해서라도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연예인은 방송에 내보내지 않으려 하는 것이었다.
서중원 본부장이 CP를 한 번 더 설득하려 했으나 국장의 마음이 이미 돌아섰다는 대답뿐이었다.
“쳐 먹인 게 얼만데······.”
CP와 전화를 끊고 서중원 본부장은 이를 갈았다.
그런데 이제 대학 문제만이 아니었다.
“당장 강준이 불러 들여!”
“네. 알겠습니다.”
천 실장이 고개를 숙인 후 서강준에게 연락을 돌렸다.
서중원 본부장의 눈에 핏줄이 돋아 있었다.
“쓸모없는 자식······.”
중고등학교에 걸쳐 서강준의 취미이자 특기가 동급생을 괴롭히고 폭행하던 것임을 서중원 본부장도 모르지 않았다.
나중에 연예인 하고 싶으면 증거만 남기지 말라고 조언한 건 서중원 본부장이었다.
서중원 본부장의 눈에 본부장실 한편에 놓인 골프가방이 들어왔다.
“하······.”
깊은 한숨과 함께 골프채를 잡아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