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2
끝이자 시작 (1)
“근데 연예인한테 대학이 무슨 소용이라고 입학 비리까지 저질렀을까······.”
“그러니까 말야.”
“잘못된 거 아냐?”
“결과 나와 봐야지. 그렇지만 검찰 조사 들어간 거 보면 빼박 아님?”
“하긴 기사까지 난 거 보면······. 서준 좋아했는데······.”
“거봐. 내가 서준 별로랬잖아.”
“잘생겼는데······.”
“어휴, 이 얼빠.”
“그나저나 드라마 어떡하냐. 거기 난리겠는데?”
헤어 샵 직원들이 저들끼리 수군대는 소리를 들으며 도욱은 비릿한 웃음을 삼켰다.
‘이제 시작이다.’
더워지는 날씨에 에어컨을 미약하게 틀어 놓은 헤어 샵 안의 온도는 적당히 기분 좋을 만큼 서늘했다. 그러나 도욱의 손 안에서는 땀이 배어나오고 있었다.
오늘을 위해서 도욱은 영혼이 바뀌고도 오랜 시간 준비해왔다.
덕분에 도욱은 예전의 꿈인 가수가 되었고, 이제는 생각지도 못한 배우를 하고 있었다. 꿈을 이뤘고, 새로운 꿈을 가지게 되었다.
‘고맙다고 인사라도 해야 하나.’
여기까지 온 건 말하자면 서강준 덕분일 수 있었다.
단순히 무대에 올라 노래를 하고 싶다는 열정과 꿈만 있었다면 이렇게까지 독하게 이를 악물고 잠을 줄여 가며 연습해 이 자리에 오지는 못했을 것 같다.
그러나 물론 서강준에게 감사 인사를 하진 않을 것이었다.
감사 인사를 전하기엔 다른 할 말이 너무 많았다.
그 모든 분노의 말들은 모두 김보명의 가슴 속에서 오랜 시간 썩어 문드러져 형체도 남아 있지 않았다.
때문에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그저 지금 도욱은 지켜보고 싶었다. 여러 명의 삶을 헤집고 짓밟아 놓은 이의 몰락 말이다.
“후······.”
도욱은 뱃속에서부터 끓어오르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음료를 가져다주던 직원이 도욱을 살피고는 물었다.
“도욱 씨, 불편한 데 있으세요?”
“아, 아닙니다.”
“불편한 데 있으시면 말씀해 주세요.”
“네.”
직원이 돌아가고 도욱은 거울을 보았다.
서강준을 끌어내리려 <푸른 고래>를 촬영하면서도 최성준 기자와 연락하며 계획을 짜고, 나름대로 많은 준비를 해왔다.
타이밍이 중요했다. 조금이라도 삐끗했다가는 능구렁이 같은 서중원 본부장에게 오히려 공격당할 수 있었다.
도욱은 지금이라고 생각했다.
너무 알려지지 않은 상태라면 끌어내리기는 쉽겠지만, 그렇게 큰 복수는 되지 않을 것이다. 어느 정도 위치에 올라와 있으면서도 절대적이지는 않은 지금.
‘높은 곳에 막 발을 내디뎌 위태한 지금, 지금이다.’
***
여의도에 위치한 KVS 방송국, 드라마국 내부는 사람들 모두의 예상대로 발칵 뒤집힌 상태였다.
불과 몇 시간 후가 <신데렐라> 기자 간담회였다. 거기에 오늘이 첫 방송이었다.
기사대로 주연인 서강준이 대학 부정입학이라는 어마무시한 일을 저지른 것이라면 이대로 방송이 되어 봤자 비난만 받을 게 분명했다.
대중들의 화살이 어떻게 쏘아질지는 사실 아무도 예측하기 힘들었다.
성추문을 일으키고, 불륜을 하거나, 폭행을 저지르거나 해도 어떤 배우들은 인기를 유지하며 브라운관에서 또 스크린에서 승승장구하며 칭찬을 받았다.
물론 매번 꼬리표 같이 따라다니는 저지른 일에 대한 비난은 감수해야만 했지만, 그 정도는 저지른 일에 비하면 별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드라마국 국장과 CP, 연출 세 사람이 모여 담배만 피우는 데는 과연 ‘대학’이 걸린 문제에도 대중들이 우야무야 넘어갈 것인가 하는 부분이었다.
사람들이 가장 민감해하는 게 군대 문제라면, 그다음은 대학이었다. 군대와 대학이야말로 전 국민이 관련되어 있는 문제였기 때문이었다.
들자면 불륜 배우. 불륜이라는 말만 들어도 치를 떠는 이들이 당연히 많겠지만, 조금 남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너무 개인적인 사생활이고 평생을 한 사람만 사랑하는 게 더 말도 안 된다는 사람들까지 있었다. 그러니 백 명 중 백 명 모두가 그 불륜 배우를 비난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군대는 달랐다. 군대를 가야 할 사람들도, 다녀 온 사람들도, 그들의 가족들도 분노하게 되기 마련이었다.
대학 또한 대학 또한 그런 의미에서 너무 많은 이들이 관련 되어 있는 사회적 이슈였다. 수능 날이면 전 국민이 수험생을 응원했다. 주식 시장을 개장하는 시간까지 늦추는 나라이니 더 말할 필요가 없었다.
“누구 드라마 망치게 하려고 환장을 했나.”
<신데렐라>의 연출을 맡은 이가 담배를 뻑뻑 피우며, 중얼댔다.
그는 처음부터 서강준 캐스팅이 맘에 들지 않았던 이였다.
서강준이 <해와 달의 연인>에서 호평을 받았다지만, 아직 주연을 맡을 만큼 연기력이 검증된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거기에 작가와 함께 서강준을 만났을 때, 연출은 좋지 않은 느낌을 받았다. 그냥 흔히들 말하는 촉이었고, 느낌이었기 때문에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다른 이들을 설득할 설득력은 부족했다.
그에 반해 아라 엔터 쪽과 돈독한 관계를 맺고 있는 CP는 주연으로 서강준을 밀어 붙였다. 그래서 서강준이 주연으로 낙점된 것이었다.
“서준 쪽에선 뭐래.”
“아니라고······. 수습하겠다고 연락이 오긴 했는데······.”
국장의 물음에 CP가 답했다. 국장이 얼굴을 찌푸렸다. 원래 세 겹이던 이마의 주름이 다섯 겹이 되었다.
“검찰 조사 결과는 언제쯤 나올지 모르는 거지?”
“네······.”
늘 거들먹거리던 CP가 쩔쩔 매는 모습은 오랜만이었다. 그러나 연출은 하나도 통쾌하지 않았다. 당장 제 이름 달고 다나는 작품이 망하게 생겼으니 달가울 리 없었다.
“결과는 지금 안 중요하지.”
국장이 다시금 담배 케이스에서 담배를 하나 더 꺼내 물었다. 회의실이 담배 연기로 자욱해져 있었다.
“어쨌든 조사 들어간 거고, 기사까지 났다는 거는 심증이든 물증이든 확정적인 게 있다는 소린데. 그걸 사람들이 모를 리도 없고 말이야. 이미 사람들 뇌리에 쟤는 입학비리 저지른 애야.”
“어떻게 드라마 시작되고 잘 되면······. 이미지 세탁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배우들 원래 작품 들어가면 잘들 넘어가고 하니까. 나중에 아니라는 결과 나오면 사람들도 잠잠해질 거고.”
국장이 담배 연기를 뱉었다.
“이미 4회까지 촬영 다했고, 당장 오늘이 첫 방인데 어떡합니까. 당장 다섯 시간 후에 간담회입니다.”
CP가 말을 이었다. CP의 말도 맞는 말이었다. 아예 드라마를 엎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나 대학 문제였다. 다른 배우들처럼 넘길 수 있을지, 회의적이었다. 게다가 서강준의 주요 팬층이 십, 이십 대라는 부분도 걸렸다.
“서준 촬영분 몇 회부터 나와.”
국장이 연출 쪽을 향하며 물었다.
“3회까진 아역이고, 4회부터 본격적으로 나옵니다. 아! 후······. 3회 끝에도 나오네.”
“3회 끝?”
국장이 턱 부근을 쓰다듬었다.
그때 국장이 연락을 돌려놓은 이로부터 메시지가 도착했다. 국장은 휴대폰을 확인했다. 검찰 쪽과 인연이 닿은 기자였다.
“안 되겠다.”
“네?”
CP가 무슨 뜻이냐는 듯 물었다.
“스페셜 방송으로 한 주 미룰 테니까 다른 애 구해와.”
“네에?”
이번엔 연출이었다. 물론 연출도 서준이 그대로 가는 것에 무리가 있다는 생각을 하긴 했다. 하지만 대타를 쓰는 것도 현실적으로 큰 무리가 따랐다.
그나마 다행인 게 3회 중반부까지 아역 촬영분이라는 것이었다.
“국장님. 저 죽으라는 소리예요. 촬영 언제 다시 하고 편집해서······,”
“후······. 알지. 그래서 한 주 미뤄준다고. 더는 무리야.”
“그리고 이걸 누가 합니까.”
“구해야지. 나도 같이 연락 넣어 볼 테니까. 급 좀 떨어져도 당장 스케줄 되는 애로······.”
국장과 연출의 대화는 깊은 한숨뿐이었다.
연출은 이가 갈렸다. 다시는 서준의 털끝도 보고 싶지 않은 심정이었다.
“이렇게까지 해야겠습니까?”
CP가 조심스럽게 묻자 국장이 손에 쥔 휴대폰을 던지다시피 하며 답했다.
“나라고 이러고 싶겠냐. 조용히 넘기고 싶지. 근데 일이 그렇게 작은 일이 아니라잖아. 더 커질 것 같대.”
기자에게서 받은 메시지에 따르면 그랬다.
검찰 조사가 생각보다 더 대대적이 될 것 같다는 이야기였다.
연출은 고개를 저으며 자신의 휴대폰 연락처를 살폈다. 각종 연예인들과 소속사 관계자들의 번호를 살펴보며 서준의 대타로 들어올 만한 인물이 있는지 보고 있었다.
“그럼 간담회는 취소하고, 바로 보도자료 작성해서 내보내겠습니다.”
“그래. 후, 어디 가서 굿이라도 하든가 해야지. 왜 이런 게 걸려선.”
CP의 말에 국장이 낮게 욕을 지껄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국장의 뒤를 CP가 따라 나갔다.
“그럼 서준 쪽에는······.”
“알아서 처리해. 그쪽에서 지금 빌러 와도 모자랄 판에 거기 입장까지 우리가 걱정해줘야겠냐.”
“그건 그렇죠.”
끄덕이며 CP는 지끈거려오는 관자놀이를 짚었다.
***
<서준 주연 ‘신데렐라’ 방영 연기... 다음 주 방송>
<‘신데렐라’ 주연배우 교체! 신인 연기자 박건우 주연 발탁!>
<논란 속 주연배우 교체.. 관계자 “시청자들의 의견 무시 못 해..”>
<부정입학 비리 의혹.. 아이돌 그룹 멤버 S!>
<검찰 주원대 입학 비리 관련 “아직 조사 중. 발표 일러.”>
<특별기획 : 연예인의 대학생활 -출석 엉망, 대리 레포트 등 각종 문제>
<서준 측 “입장 정리 중...”>
<서준 측 “S, 본인 아냐... 루머에 참담한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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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 이렇게 훅 가는 거냐?
-아라 엔턴데 어떻게든 다시 띄우겠지ㅋㅋㅋ 범죄자도 다시 뜨는 세상임ㅋㅋ
-부정입학이라니.. 연예인이 굳이 왜??ㅋㅋㅋ
-연예인도 하고 싶고 학력도 갖고 싶고
-대학 잘간 다른 애들도 조사해 봐야 함
-남한테는 진짜 인생이 걸린 건데.. 쉽다 쉬워~!
-서준 오빠 루머 유포하지 말아주세요 고소 들어갑니다
-검찰을 고소하시게요?ㅋㅋㅋ
-검찰이 유포한 루머ㅋㅋㅋㅋㅋㅋㅋ
-검찰 찌라시긔?ㅋㅋㅋㅋ
-저기요 아직 조사중인 거고 결과 나온 거 아니거든요..
-아 결과는 아니라고 나올 수도 있겠지 돈 있는데 뭐가 걱정?
-결과 아니라고 나오면 그때 욕 안 할게~
-본인이 아닌데 드라마를 잘림? 촬영까지 해놓고?
-어지간하면 방송국도 그냥 눈감고 넘어갈 텐데,, 저렇게 된 거 보면 백퍼 진짜라는 거 아님?
-서준 좋게 봤는데...
-웃는 얼굴로 침 뱉을 상ㅋㅋ
-군대나 가라~
-군대도 빼겟지 저 정도 빽이면
-서준 뭔데?ㅋㅋ
-금수저요~
포털 사이트 뉴스란이 난리였다.
그대로 기사며 댓글란을 보던 서강준이 입꼬리를 올렸다. 머리카락 한 올 빠짐없이 올백으로 넘긴 머리에, 잘 차려 입은 수트까지. 서강준의 오늘 모습은 팬들이 봤다면 그야말로 기절할 만한 비주얼이었다.
그러나 팬들이 기절한 건 서강준의 비주얼 때문이 아니라 서강준의 비리 때문이었다.
기자 간담회에 가기 위해 모든 세팅을 마치고 간담회장으로 출발하려던 서강준은 그대로 벤 안에 갇힌 신세가 되었다.
쾅― 파앗―!
서강준은 들고 있던 핸드폰을 그래도 창문에 집어 던졌다.
기자들에게 쏟아지는 전화를 받으며 대학 비리와 서준은 관련이 없다고 열변을 토하던 매니저가 깜짝 놀라 돌아봤다.
벤의 단단한 유리 창문에 부딪힌 핸드폰이 금이 간 채 바닥을 나뒹굴고 있었다.
서강준의 악에 바친 눈빛에 매니저는 오한을 느낄 정도였다. 대충 전화를 마무리하고 끊은 매니저가 서강준을 살폈다.
“저······, 준아.”
“아버지는 뭐래요.”
“일단 숙소 가서 나오지 말고······. 어떻게든 해결해 보신다고 하니까.”
“시발 아버지 때문에 인생 조지게 생겼는데······.”
서강준은 열이 오르는 듯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불끈 쥔 주먹은 언제든 내지를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때였다. 매니저의 휴대폰이 다시금 울리기 시작했다. 동시에 금이 간 서준의 휴대폰도 울렸다.
커뮤니티 사이트에는 서준에 관한 새로운 글이 게재되고 있었다.
서강준이 학교폭력 가해자라는 이야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