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슈퍼스타-120화 (120/225)

# 120

아이덴티티 (3)

도욱은 다시 한 번 첫 대사를 쳤다.

“뭘 쳐다 봐, 이 새X야.”

조금 비틀거리며 도욱이 자신을 잡아오는 박효원을 밀쳐냈다.

너무 세지도, 그렇다고 힘이 아예 안 들어가지도 않은 움직임이었다.

마치 너 따위 거는 제대로 힘을 쓰지 않아도 밀어낼 수 있다는 듯 건성이면서도 어쩔 수 없이 주체하지 못하는 힘이 남아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윤성아 감독의 입에서 아무런 신호도 나오지 않았다. 계속 가 보라는 뜻이었다. 박효원이 대사를 이었다.

“···뭐? 너 나한테 지금 뭐라고 했냐.”

“뭘 쳐다 보냐고. 씹X야.”

“야. 정환. 니 지금 제정신 아니야.”

“아니. 나 존나게 제정신이거든?”

불안한 두 사람의 시선이 교차했다. 카메라 앵글이 흔들리고 있었다.

“존나. 야 김정환!”

“왜! 왜! 왜!”

정환 역의 도욱이 미쳐 날뛰며 소리 질렀다. 마치 박효원에게 손찌검을 할 듯이 팔을 휘휘 저어댔다. 위협적인 팔놀림이었다.

폭력서클 우두머리였지만, 효원에게는 그저 평범한 친구일 뿐이였던 정환이 효원에게마저 폭력성을 드러내는 장면이었다.

발로는 미묘한 질투와 열등감 때문이었다.

“묻잖아. 왜 부르냐고. 이 십팔 X꺄.”

소리를 지르던 도욱이 이내 표정을 굳히며 차분하게 물었다.

흰자위를 드러내며 차분하게 묻는 도욱에게선 냉기가 흘러 넘쳤다.

모니터를 보는 윤성아 감독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오랫동안 컷 소리가 나지 않아서 도욱과 박효원은 오래도록 눈빛 연기를 하며 서로를 노려보고 있어야 했다.

정환 역을 맡은 도욱의 눈빛이 거칠었다. 황량한 비포장도로 위에 모래 바람이 이는 듯했다.

약간의 당혹감과 친구에 대한 배신감을 담은 박효원의 눈빛도 만만찮았다. 그 눈빛이 만나자 스파크가 이는 듯했다.

짙어져 가는 노을의 색이 두 사람의 감정을 더 전달하고 있었다.

처절하고 불안한 청춘을 표현하는 <푸른 고래>. 그 첫 장면부터 두 배우의 연기가 무척이나 치열했다.

“컷! 오케이!”

윤성아 감독의 컷 소리에 눈 한 번 제대로 깜박이지 않던 두 배우가 한숨과 같은 호흡을 뱉어냈다. 호흡까지도 연기에 맞춰 조절하고 있었던 것이다.

약간 풀어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두 사람 사이에는 긴장감이 돌고 있었다. 박효원이 먼저 어깨에 힘을 풀고는 자신의 역할에서 빠져 나왔다.

“후······.”

박효원이 긴 한숨을 내쉬었다.

독립영화를 몇 편 찍으면서 쟁쟁한 배우들과도 여러 번 연기를 해 본 박효원이었지만, 도욱은 도욱만의 기운이 있었다.

‘어려서 그런가. 아니지 십팔. 나 어릴 땐 저렇게 못했지.’

상대가 강렬한 기운을 뿜으며 연기한 덕에 박효원도 순간적으로 몰입하며 좋은 연기를 해낼 수 있었다.

물론 도욱이 스킬적인 면에서는 선배 배우들에 비해 모자란 게 사실이었다.

확실히 경험이 부족했다. 조금만 더 경험이 있었다면, 어제와 오늘 이어진 NG를 이렇게까지 길게 끌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윤성아 감독은 도욱에게 문제점을 직접적으로 지적하지 않았다. 박효원에게도 무엇이 문제인지 귀띔해주지 말라고 지시했다.

‘스스로 깨닫길 바랐던 거겠지. 그리고 실제로 스스로 깨달았지. 난 놈은 난 놈이다.’

오케이가 난 장면에서 도욱은 실제로 정환 역이 된 듯한 인상을 주었다.

리딩을 하던 날에도 완벽하다고 생각했었는데, 막상 촬영을 시작해 보니 문제점이 드러났다. 움직임까지 함께 보니 도욱이 너무나 잘 ‘연기’하고 있다는 게 드러난 것이다.

도욱이 연기하는 정환은 정환 ‘같아’ 보이는 것일 뿐 정환 ‘그 자체’는 아니었다.

윤성아 감독은 도욱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눈빛부터 손끝 하나까지 빠짐없이 정환 그 자체가 되길 원하고 있었다.

어떠한 시점에서 도욱은 그것을 깨달은 듯했다.

그러고 나니 박효원은 자신을 바라보고 서 있는 도욱이 도욱이란 생각이 들지 않았다. 세상 거칠 것 없는 정환으로 보였다.

도욱도 연기에서 빠져 나와 스태프들에게 수고하셨다는 인사를 전했다.

“자, 그럼 빨리 다음 장소로 이동합시다!”

윤성아 감독이 외쳤다.

사실 윤성아 감독이 욕심을 내고는 있지만, <푸른 고래>의 촬영 일정은 다른 영화보다는 빡빡한 편이었다.

제작비도 제작비였지만, 다름 아닌 도욱의 스케줄 때문이었다.

최소 2주에서 아무리 연장돼도 3주. 3주가 넘어가면 더 이상 도욱은 촬영이 불가하다는 것이 도욱의 소속사인 힛 엔터테인먼트의 입장이었다. 별다른 개런티도 받지 못하는 영화 촬영의 조건이었다.

윤성아 감독은 힛 엔터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했다. 현재 도욱은 같은 시간에 행사 한두 번만 가도 영화 출연비를 받을 수 있는 위치였다.

다행인 점은 윤성아 감독의 스타일 자체도 한 번 틀만 잡히면 그다음부터는 빠르게 촬영을 진행한다는 것이었다.

처음에 2주면 된다고 했던 것도 윤성아 감독이 먼저 뱉은 말이었다.

윤성아 감독의 외침에 따라 도욱과 박효원을 비롯한 촬영 스태프들이 이동하기 시작했다. 장소섭외를 해두었던 섭외팀은 촬영 장비를 정리하는 동안 한 발 앞서 다음 촬영지로 향한 상태였다.

다음 씬은 어둑한 골목에서 촬영하는 씬이었다.

“그, 형철이 대기 중이지?”

“네. 형철이도 골목 쪽으로 오라 그러고.”

“옙.”

윤성아 감독이 촬영보조에게 지시했다. 형철은 다음 씬에 나오는 조연급 출연자였다.

발걸음을 옮기면서도 도욱은 조금 멍한 상태였다.

야외 촬영이다 보니 바로 옆 촬영지인 골목길을 가는 데에도 도욱을 알아보는 이들이 종종 있었다.

“강도욱이다! 강도욱!”

“도욱 오빠!”

한 번 도욱을 알아본 이들이 도욱 쪽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가까이 다가서는 것은 촬영 스태프들이 저지했지만, 도욱을 부르는 것까지 저지할 수는 없었다. 커다랗게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리는 데도 도욱은 마치 들리지 않는 것처럼 멍하니 걸어가고 있었다.

정신을 차린 듯, 뒤늦게 도욱이 고개를 들어 자신을 부르는 여성팬들을 바라보았다.

도욱이 자신들 쪽으로 시선을 주자 여성 팬들이 더욱 큰소리를 냈다.

“손 한 번만 흔들어 주세요!”

“꺄아, 너무 잘생겼다!”

평소였다면 도욱은 무리 없이 팬들을 향해 손을 흔들어 주고, 웃음을 지어 보였을 것이다.

그 정도 팬서비스는 도욱에게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그러나 어쩐지 도욱은 팬들을 향해 웃어 보이기가 힘들었다.

역할에 너무 몰입해 있던 탓이다.

거기에 다음 촬영이 곧바로 예정되어 있었다. 어렵게 몰입한 만큼 몰입을 깨기 싫은 마음이 컸다.

아니, 실은 몰입을 깨기 싫다는 마음이 아니었다.

도욱은 이미 정환 그 자체가 된 상태였다. 누군가에게 웃음을 지어줄 만한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도욱은 꾸벅 자신을 부르는 팬들을 향해 고개 숙여 인사했다.

인사하는 도욱의 표정이 무척이나 무뚝뚝했다.

평소 도욱이 팬들을 대하는 모습을 잘 알고 있었던 팬이었다면, 금세 이상을 눈치챌 만한 대응이었다.

그러나 다행인지 그저 길을 지나가던 이들이었다. 촬영 중이어서 대답을 안 해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때문에 차갑다는 느낌보다는 그저 스타인 도욱이 자신들을 보고 고갯짓을 했다는 것에 만족하며 도욱에게 손을 흔들고 좋아했다.

***

“안녕하십니까.”

“어, 그래 왔어요. 강 배우! 오늘 잘 마실게.”

“안녕하십니까, 안녕하십니까!”

“여, 강 배우 잘왔어!”

촬영장에 도착한 도욱이 스태프들에게 인사를 건네는 소리가 여기 저기 울려 퍼졌다.

도욱이 촬영장에 도착하면 맨처음 하는 일이었다. 물론 다른 배우들도 인사를 하긴 했지만, 큰 소리로 자신이 왔다고 알리는 전체 인사가 다인 게 현실이었다.

그러나 도욱은 촬영장 구석구석을 찾아다니며 자신만큼 고생하는 스태프들에게 허리 숙여 인사했다.

스태프들이 한둘이 아니다 보니 인사만 해도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럼에도 도욱은 예정된 시간보다 일찍 와 벌써 네 번째 촬영이었음에도 잊지 않고 인사를 했다.

“인성 좋다더니 진짜야······. 일찍 성공해서 싸가지가 바가지일 줄 알았더니.”

“저쪽에선 유명하다던데요.”

“가식일 수도 있잖아요.”

“막내야, 가식도 저 정도면 그냥 진짠 거지 뭘 또 토를 다냐!”

조명 스태프들이 자신들에게 인사를 하고는 윤 감독과 이야기를 나누는 도욱의 뒷모습을 보며 숙덕댔다.

“빨리, 빨리 설치하자. 배우님도 오셨는데!”

“옙.”

조명감독의 외침에 남은 두 사람이 대답하곤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오늘따라 스태프들이 도욱에게 신경을 쓰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도욱의 팬들은 도욱과 촬영팀을 위해 커피차를 대절해 촬영 현장에 배치해 놓았다. 밥차도 아닌 커피차 정도였지만, 예술 영화를 하던 스태프들에게는 무척이나 생소한 문화일 수밖에 없었다.

눈이 휘둥그레해질 광경이었다.

트럭에는 도욱의 현수막이 커다랗게 걸려 있었고, 학교를 빌려 촬영이 진행되는 오늘 하루 내내 언제든 음료를 마실 수 있게 고용된 바리스타와 커피 기계, 음료 냉장고 등이 상시 대기 중이었다.

‘배우 강도욱 잘 부탁드립니다!’

‘푸른 고래 성공 기원’

‘우리 정환이.. 사실 착한 아이입니다. 예쁘게 봐주세요 ㅠㅠ’

‘정환아! 살살해, 살살!’

상투적인 멘트부터, 도욱이 맡은 배역에 대한 소식을 들은 팬들의 센스 있는 문구까지 트럭 여기저기 매달려 있었다.

도욱도 촬영장에 도착한 커피차를 보고는 뿌듯할 수밖에 없었다.

요즘 케이케이 활동을 하지 않는 데다 촬영에 힘쓰다 보니 카페에 글 남긴 지가 좀 되었는데 오늘은 꼭 인증샷과 함께 감사의 글을 올려야겠다고 생각하는 도욱이었다.

“덕분에 오늘 마실 걱정은 안 해도 되겠어요.”

윤성아 감독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하하. 다 팬들 덕분이죠.”

“맨날 이렇게 교복입고 보니까 인기 많은 줄도 몰랐는데······ 역시 강도욱이야.”

도욱이 머리를 긁적이며 겸손하게 답하자 촬영감독이 어깨를 두드리며 도욱에게 엄지를 들어 보였다.

“이렇게 착하고 순한 사람이 말이야. 촬영만 들어가면 눈빛이 변하니까······.”

도욱은 자신의 연기에 대해 말하는 촬영감독에 귀를 쫑긋 세웠다.

최근 도욱은 오직 ‘영화’, 영화만을 생각했다. 어떻게 하면 더 연기를 잘해낼 수 있을까. 그 생각뿐이었다.

좋은 시나리오와 감독, 배우들을 만난 덕분이었다. 도욱의 열정을 꺼지지 않은 캠프파이어 불처럼 활활 불타고 있었다.

“진짜 놀랐잖아. 요즘엔 이러다 촬영 들어가면 박효원이 찌를 까봐 걱정이라니까.”

“듣는 박효원 놀랍니다. 거.”

불쑥 뒤에서 등장한 박효원이 답하자 촬영감독이 놀랐다는 듯 가슴께를 부여잡았다.

“하하, 아니에요. 그럼 저 촬영 준비하러.”

도욱이 인사를 하고는 분장팀에게 다가갔다.

분장팀에 가는 도욱을 찌푸리며 바라보던 박효원이 윤성아 감독에게 말했다.

“근데 진짜 저러다 애 잡는 거 아니에요?”

“흠······.”

박효원의 말에 윤성아 감독도 생각이 많아진 듯했다.

“확실히 조금 과하지?”

“네. 과해요, 존나. 표정 변한 거 보면 몰라요? 곧 눈깔도 맛 가겠구만.”

“아직 신인이라······.”

“기성 배우도 가끔 저지르는 실순데 쟤가 무슨 수로 버티겠어요. 본성이 착한 만큼 더 클 거예요. 낙차가.”

“그건 그렇지. 지금 자기도 고민하고 있는 것 같으니······ 좀 더 지켜보자.”

“뭐.”

박효원이 일단은 끄덕였다. 박효원이 걱정하는 부분은 다른 게 아니었다. 도욱은 현재 과한 몰입으로 혼란을 겪고 있었다.

곧 촬영이 시작되었다.

오늘은 폭발한 정환이 교실에 혼자 남은 효원에게 폭력을 가하는 장면을 촬영하는 날이었다.

슬레이트가 쳐지고 폭력을 행사하는 장면이 시작되자 도욱의 분위기가 무섭게 변했다. 그리고 박효원에게 발길질을 시작했다.

물론 합을 맞춰 놓은 씬이었기 때문에 실제 폭력처럼 박효원에게 아픔이 가해지진 않았다. 그러나 무척이나 리얼했다. 박효원은 도욱의 표정과 분위기 때문에라도 실제로 아픈 것 같은 착각을 느낄 정도였다.

“악!”

박효원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촬영은 끝이 났다.

단 한 번의 NG도 없이 씬을 끝낸 도욱이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감독님.”

저벅저벅 걸어온 도욱이 윤성아 감독을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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