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슈퍼스타-119화 (119/225)

# 119

아이덴티티 (2)

***

윤성아 감독은 자신이 아는 한, 그리고 가능한 최고의 영화팀을 꾸리기 위해 애썼다.

감독 다음으로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촬영감독부터 시작해 조명감독, 스크립터 한 명까지도 꼼꼼하게 생각해 사람을 골랐다.

투자를 받긴 했지만 첫 작품이었다. 게다가 영화판에서 한동안 떠나 있다 보니 끊긴 연들이 많아 팀을 꾸리기가 쉽지만은 않았다.

그러나 윤성아 감독은 크게 개의치 않았다.

효원과 정환, 가장 중요한 두 배우의 캐스팅이 윤성아 감독이 생각했던 그대로, 완벽한 캐스팅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미 배우들만으로 반은 된 거야. 나만 잘하면 된다.’

윤성아 감독의 마음가짐은 그런 것이었다.

효원 역을 맡은 박효원은 윤성아 감독이 <푸른 고래>의 시나리오를 처음 집필할 때부터 염두에 두고 썼던 이름이었다.

역 이름도 박효원의 본명에서 따온 건 그러한 이유에서였다.

정환 역은 처음부터 도욱을 생각했던 건 아니었다. 그러나 ‘준비하라 1999’에서 연기하는 도욱을 보았을 때 윤성아 감독은 정환이라는 역할에 도욱이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윤성아 감독이 꿈꾼 캐스팅은 이미지 그대로의 캐스팅이 아니었다.

제대로 반전을 노려보고 싶었다.

실제로 박효원은 학부생시절 별명이 ‘쓰레기차’였다. 이런 저런 술자리에서 만난 후배였는데 첫인상부터 좋지 않았다.

박효원의 입에서 나오는 게 전부 욕이었다. 학창시절에도 꽤 놀았을 걸로 보였다. 못생기고 잘생긴 걸로 따지자면 박효원은 잘생긴 편이었지만, 도저히 잘생겼다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

너무 날카롭고 사나운 인상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다행인 건 진짜 양아치는 아니었다. 행동이나 말투가 거칠어서 그렇지 실제 폭력을 휘두르는 이는 아니었다. 고등학생 시절 술 담배를 한 정도의 날라리였다.

그래도 이미지가 배우에게는 무서운 법이라 여태 박효원이 했던 연기는 죄 그런 식이었다. 뒷골목 깡패 같은 것들이었다.

거기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남기긴 했지만, 거기까지였다. 윤성아 감독은 박효원에게서 다른 인물을 끄집어내고 싶었다.

도욱도 마찬가지였다.

매체에 비춰진 도욱은 바르고, 건실한 소년 그리고 청년의 이미지였다. 실제로 그랬기 때문에 위화감은 없었지만 배역까지 그런 걸 맡은 걸 보자 조금 도전 정신이 들었다.

너무 잘 맞는 옷을 입고 있는 배우를 보면 어쩐지 완전히 새로운 옷을 입히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윤성아 감독은 도욱에게도 날카로운 부분이 있을 거라 믿었다. 실제로 만났을 때, 자신에게 위로를 건네던 도욱은 물론 따뜻했지만······.

‘차가운 구석이 있었어. 다 드러나지 않은 빙하처럼······. 그런 본성을 끄집어내고, 더 본격적인 연기자의 길을 걸으면 정말로 훌륭한 배우가 될 거야.’

그렇게 생각했던 윤성아 감독이었다. <푸른 고래>에 도욱이 출연하는 것을 결심하며 그러한 일을 자신이 하게 된 것에 어떠한 희열을 느꼈다.

캐스팅이 먼저 되고, 촬영팀을 꾸리는 건 또 희한한 일이었는데 어쨌든 장단이 있었다.

특히 도욱 때문에 소소한 해프닝도 있었다.

도욱이 출연을 하기로 했다는 얘기에 투자사 쪽에서는 버선발로 뛰어 나올 기세로 윤성아 감독을 환영했다.

투자를 하기로는 했지만, 예술영화 지원 정책의 일환이었지 큰 수익까진 기대하지 않았던 투자사였다. 이미 이름을 알릴 대로 알린 도욱의 출연으로 본래보다 훨씬 큰 홍보효과를 누릴 수 있게 된 것은 분명했다.

영화는 처음이었으므로 도욱의 티켓 파워가 어느 정도나 될지까진 예상할 수 없었으나 상영관을 늘려야 할 것은 분명했다.

자신들은 생각도 못한 캐스팅을 해온 윤성아 감독에 다들 박수를 칠 정도였다.

그러나 막상 현장 스태프들에게 연락을 돌릴 때는 반응이 반반이었다.

일단 기본적으로 윤성아 감독과 건너라도 아는 이들이었기 때문에 윤 감독의 시나리오에 대한 믿음은 있었다.

그러나 투자사처럼 도욱의 캐스팅에 적어도 망하는 영화는 아니겠다고 좋아하거나, 평소 도욱을 눈여겨 봐왔다고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건 절반 정도였다.

나머지 사람들은 아이돌인 도욱이 주연인 영화라면 그건 더 이상 ‘예술영화’가 될 수 없다며 윤성아 감독의 요청을 거절했다.

아무래도 보수적인 면이 강한 이들이었다.

윤성아 감독은 그들을 탓할 생각은 없었다. 그들 나름대로의 기준이 확실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과연 영화를 보고도 도욱에 대해 그렇게 생각할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바뀔 거야. 분명히.’

윤성아 감독은 일정 부분 확신할 수 있었다.

영화 촬영에 들어가기 전, 리딩을 해보기 위해 모인 자리에서 윤성아 감독은 정말이지 확신했다.

첫 대사부터 도욱은 정확한 톤으로 연기하고 있었다.

윤성아 감독이 시나리오에 녹여 낸 그 미묘한 감정들을 다 잡아내고 있었다.

도욱의 첫 대사에 놀란 건 윤성아 감독만이 아니었다. 자리에 함께 있었던 박효원 역시 마찬가지였다.

“쓰차, 다음 대사 해야지. 인마.”

“아. 씨. 잠시만요.”

윤성아 감독과 박효원은 이미 막역한 사이였다. 윤 감독의 핀잔에 박효원이 고개를 젓고는 다시 감정을 잡고 있었다.

윤성아 감독이 낄낄대며 박효원을 자극했다.

“놀랐지? 도욱 씨 연기 잘해서.”

“이제 대사 처음 쳤는데 벌써 비교질입니까. 거 못 해먹겠네.”

“못 해 먹겠다고? GG친 거야?”

박효원이 낮게 욕설을 읊조렸다. 그러나 이내 깐죽대는 윤성아 감독을 무시하곤 자신의 대사에 집중했다. 윤 감독이 자신의 능력을 더 끌어내려 처음부터 아주 대놓고 도발한다는 걸 모르는 바보는 아니었다.

도욱으로선 윤성아 감독과 박효원의 관계가 조금 적응이 되지 않는 것도 사실이었다.

말하자면 정윤기와 안형서처럼 두 사람이 티격태격 대는 것이었는데 그 온도가 훨씬 높았다. 욕설이 섞여 있으니 더욱 그렇게 느껴졌다.

꽤 길었던 연습이 끝나고 윤성아 감독의 작업실에서 박효원과 도욱 두 사람이 함께 걸어 나왔다.

행동 없이 리딩일 뿐이었지만 치열하게 연기를 한 탓에 두 사람 모두 조금 진이 빠진 상태였다. 걸음이 평보소다 훨씬 느렸다.

“거. 말 놔도 되죠?”

먼저 말을 건 것은 박효원이었다.

박효원의 말에 도욱이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윤성아 감독과 마찬가지로 학교에서 본 적 없지만 박효원 역시 도욱의 학교 선배였다.

거기에 이번엔 제대로 연기 전공 선배인 셈이었다. 학번, 나이, 경력 어느 것으로 보아도 박효원이 도욱의 위였다.

“네. 편하게 하십쇼.”

도욱이 깍듯하게 답하자 박효원이 찌푸렸다.

“나만 편하게 하면 뭐해. 그쪽도 편하게 해.”

“저 말입니까?”

“그래. 2주지만 친구로 살 건데 평소에도 편하게 하는 게 연기할 때도 도움 되지 않겠어?”

박효원의 말에 도욱은 깨달음을 얻고 크게 동감했다.

생각해 보면 ‘준비하라 1999’ 때도 실제로 촬영장 밖에서도 편안한 분위기로 친분을 다져두었기 때문에 연기할 때 자연스러움이 묻어날 수 있었다.

“효원아, 라고 해도 별 상관없어.”

도욱은 확실히 박효원이 생긴 것이나 말투와는 다르게 속으로는 여러 가지로 잘 챙겨주는 성격임을 알 수 있었다.

따뜻하다고까진 할 수 없었지만, 어쨌든 연기에 대한 열정 하나만은 뜨거운 듯했다.

“아······. 아닙니다. 거기까진 제가 불편합니다.”

“그럼.”

“선배······ 라고 부를까요?”

“선배? 학교도 아니고. 형이라고 해.”

도욱은 끄덕였다.

“연기는 어디서 배웠어?”

작업실을 나와 주차장으로 향하며 박효원이 물었다. 박효원은 개인 차가 있었고, 도욱은 구철민이 오기로 되어 있었다.

“학교 준비하면서 몇 개월 개인 레슨 받았어, 형.”

도욱이 곧바로 형이라 부르며 말을 놓자 박효원이 픽 웃었다. 보통 인물은 아니라는 느낌이었다.

“누구?”

“이강연 선생님.”

“아, 들어본 이름 같기도 하고. 하여튼 존나 부럽네.”

레슨을 받은 게 부럽다는 것인지, 무엇이 부럽다는지 잘 이해되지 않는 얼굴을 하자 박효원이 답했다.

“네 재능.”

단 한 마디였다. 여태 칭찬을 안 받은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박효원에게서 들은 칭찬은 무언가 도욱의 명치를 세게 치는 것이었다. 방금 전까지 박효원의 연기를 봤기 때문에 더욱 그랬을 수 있었다.

***

작게나마 연출진과 출연진들이 모여 고사를 지낸 후, <푸른 고래>의 촬영이 시작되었다.

영화 촬영장은 드라마 촬영장과는 또 다른 분위기였다.

드라마 촬영을 대부분의 배우들이 영화 촬영보다 힘들어 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짧은 시간 동안 여러 화를 찍다 보니 생기는 문제들이었다.

처음 1, 2화 많게는 4화까지도 대본이 나와 있어 대본 분석도 하고, 촬영장에서 밤샘도 잘 없지만 막상 방송이 시작되고 나면 상황이 달라졌다.

기본적으로 방송은 일주일에 두 번. 4화까지 찍어놨어도 따라잡히는 건 한순간이었다.

촬영분이든, 대본이든 마찬가지였다. 대본이 급박하게 나올수록 배우들은 분석하기보단 외우는 데 급급하게 됐고, 촬영도 빠르게 넘어가는 씬들이 발생했다.

여러모로 고생이었다. 그럼에도 드라마에는 드라마만의 매력이 있었다.

방송이 나가면 또 바로 시청자들이 호응을 해주고, 파급력이 어마어마했다.

어쨌든 시스템적인 면에서부터 각각의 사람들이 추구하는 가치관까지도 다른 점이 많았다.

‘준비하라 1999’도 사전 제작이었기 때문에 드라마 촬영장치고는 환경이 괜찮은 편이었지만 어쨌든 도욱은 드라마 촬영장과 영화 촬영장의 차이를 확연하게 느끼고 있었다.

무엇이 좋다 나쁘다 결론 내리기는 힘든 차이였다. 짧은 러닝타임 대비 준비 기간이 길다고 해서 영화라고 촬영이 힘들지 않은 건 아니었다.

‘어디에 중점을 두냐니까······.’

감독의 차이도 있겠지만, 오히려 심적으로는 더 몰아붙여지는 기분이었다.

도욱은 생각하며 의자에서 일어났다. 스태프들이 다시 한 번 더 촬영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단 한 컷의 좋은 장면을 위해서 도욱은 몇 번이고 첫 대사를 날려야 했다.

같은 컷이었지만 오늘이 벌써 이틀째 촬영이었다. 노을이 진 공원이 배경이었기 때문에 노을이 지고 나면 촬영이 불가능했다.

내일 다시 스태프들을 고생시키지 않기 위해선 오늘 도욱이 잘해야 했다.

리딩 당시만 해도 윤성아 감독이 칭찬했던 첫 대사였다. 그러나 윤성아 감독은 어쩐 일인지 계속해서 NG를 내고 있었다.

“뭘 쳐다 봐, 이 새끼야.”

“NG! 다시!”

윤성아 감독의 외침에 도욱의 어깨에서 힘이 빠졌다.

앞에 서 다음 대사를 치려고 준비 중인, 아직까지 한 마디 대사도 치지 못한 박효원에게도 미안해졌다.

박효원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물론 도욱 때문이 아니라 이 상황에 몰입한 채라는 건 알고 있었다.

‘그땐 분명히 완벽하다고 했었는데······. 그때의 감정 그대로인데 어째서······.’

도욱은 생각하며 다시금 자신을 다잡았다.

도욱은 지금 폭력서클의 우두머리였다. 불우한 환경, 방황, 폭력······. 도욱은 그것들에 대해 계속해서 떠올렸다.

어쩔 수 없이 서강준이 떠오를 수밖에 없었다.

불우한 환경도 방황도 없었던 서강준이었지만, 누군가를 괴롭히는 순간에 가장 폭력적인 인물.

서강준의 모션 하나 하나를 생각해 보았다.

‘김보명. 지금 나 쳐다본 거야? 더러운 눈깔로 어딜 쳐다봐 이 새끼야!’

자신에게 폭력을 가하던 서강준을 떠올리는 일은 그것 자체로 트라우마가 될 만큼 힘든 일일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 도욱은 도욱이었다. 김보명이 아니었다.

도욱은 떨어져서 당시의 상황을 분석할 수 있었다. 그만큼이나 자신을 김보명에게서 분리시킬 수 있게 된 것이었다.

‘리딩 때는 오케이였던 게 지금 아닌 이유는 역시 눈빛이나 몸짓이······.’

도욱의 등 뒤로 지는 노을이 붉디붉었다. 도욱은 다시 한 번 카메라 앞에 서서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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