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2
아름다운 사람 (3)
“가식? 그런 느낌은 아니던데······.
“너는 이제 연차도 쌓인 애가 그렇게 순진해서 어떡할래? 이 바닥 다 알면서.”
여자 포토그래퍼의 말에 남자 기자가 핀잔을 주듯 말했다. 여자가 우물쭈물하며 반박하려고 했으나 남자 쪽이 너무 단호했다.
결국 여자 쪽에서 졌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최 기자. 너 강도욱 진짜 싫어하는구나?!”
“걔가 싫은 게 아니라 난 아이돌들 다 싫어.”
“그래 가지고 어떻게 연예부 기자할래?”
“그러니까 하는 거지. 싫으니까.”
강한 악의가 느껴지는 어투였다. 담배 연기가 계단 아래로 내려가고 있었다.
도욱은 오늘 있을 인터뷰가 험난할 것임을 예상했다. 때마침 주차를 마친 구철민이 건물 입구 쪽으로 오고 있었다.
일부러 계단을 내려가며 도욱은 인기척을 냈다.
“참. 들어가자, 최 기자. 시간 다됐어.”
“아, 한 대 더 빨고 싶은데.”
“담배냄새 풍기면서 인터뷰할 거야? 그 정도 예의는 있잖아, 최 기자도.”
인기척을 느낀 것인지 여자 쪽에서 말했다. 최 기자라는 남자도 시간을 확인했는지 이내 담배를 비벼 껐다.
두 사람이 스튜디오 문을 열고 들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어? 도욱아. 안 들어가고 왜 여기 있어?”
계단으로 온 구철민이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아······. 갑자기 생각 좀 하느라.”
“생각? 어서 들어가자.”
“잠깐만요, 형.”
“어? 어엉?”
성큼성큼 계단을 오르려던 구철민이 도욱의 말에 멈춰 섰다. 왜 그러냐는 듯한 얼굴을 했지만 도욱은 딱히 다른 답을 주지 않았다.
구철민을 붙잡고 있던 도욱은 잠시 후에야 올라가자며 구철민을 놔주었다.
구철민은 영문 모른 채 우선은 스튜디오 입구로 향했다.
스튜디오 안은 무척이나 분주했다. 촬영 장비 세팅이 한창이었다.
오늘 화보 촬영 및 인터뷰는 연예 전문 매체인 ‘뉴스패치’에서 이루어지는 것이었다. 화보보다는 인터뷰가 주가 되는 일이었다.
‘뉴스패치’는 대형 신문사인 ‘서울신문사’에서 연예부 국장으로 일하던 이가 온라인 시대를 맞아 연예 전문 온라인 매체를 만들겠다는 포부 아래 떨어져 나온 매체였다.
생긴 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연예 전문 매체인 만큼 연예계에선 파급력이 상당했다.
‘뉴스패치’의 창설 첫 번째 기사가 톱 연예인 두 사람의 열애설 기사였다. 사진까지 공개된 열애 소식에 대중들은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 그야말로 할리우드에서나 보던 ‘파파라치’ 컷이었다.
이후로도 톱급 연예인들의 각종 스캔들을 연달아 터뜨리며 ‘뉴스패치’는 빠르게 연예 관련 매체로서는 최고의 위치에 빠르게 자리 잡았다.
동시에 끈질기게 화제가 될 만한 연예인들의 뒤를 캐며 스캔들을 노리는 걸로 악명이 높기도 했다.
네티즌들 사이에서도 비난의 목소리가 나올 정도로 사생활 침해를 일삼았지만, 뉴스패치의 기사들은 대부분 조회수 1위를 기록했다.
영리를 추구하는 기업에게 있어 도덕성보단 수익성이 먼저였기 때문에 ‘뉴스패치’는 끊임없이 스캔들 기사를 생산해냈다. 그래도 한편으로는 연예 전문 매체답게 탐구 기사 등을 내기도 했다.
‘이후에도 점점 더 영역을 확장하는 추세였으니까······.’
도욱의 등장에 분주하던 여성 스태프들의 눈이 번쩍 뜨였다.
“안녕하세요.”
“어머! 도욱 씨, 일찍 오셨네요!”
진행 담당이 환한 얼굴을 하고 도욱을 맞이했다. 뒤이어 포토그래퍼가 다가와 도욱에게 인사하며 악수를 청했다.
“안녕하세요, 도욱 씨! 오늘 사진 맡은 김이수예요.”
목소리를 들어 보니 아까 전 최 기자와 대화를 나누었던 여자가 맞았다. 여자는 도욱에게 특별히 반감을 가지고 있진 않아 보였다. 오히려 호감을 갖고 있는 게 맞았다.
도욱은 부드럽게 웃으며 손을 맞잡았다.
“아, 안녕하세요. 사진 잘 나오게 부탁드려요.”
“제가 눈 감고 찍어도 잘 나올 것 같은걸요!”
포토그래퍼의 말에 도욱이 웃었다. 주변 스태프들도 포토그래퍼님이 너무 도욱 씨 좋아하는 것 아니냐고 묻는 등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연출되었다.
옷과 머리를 정리하고 도욱은 진행 담당의 안내하는 대로 카메라 앞에 섰다.
오늘 진행되는 기사용 화보와 인터뷰 내용이 ‘진솔한 강도욱을 만나자’는 컨셉이어서 그 컨셉에 맞춰 준비를 하고 온 도욱이었다.
화장은 거의 하지 않은 채 입술에만 색을 주어 순수하고 생기 있어 보였다.
촬영 의상은 무대 의상과 다르게 편안한 차림이었다. 물론 편안해 보여도 스타일리스트인 한정아가 보내 온 옷들은 모두 한창 패션계에서 이름 난 곳들의 옷이었다.
“일단 정면샷부터 갈게요!”
포토그래퍼의 말에 따라 도욱은 바로 선 채 짝다리를 짚고 한쪽 주머니에 손을 꽂아 넣고 포즈를 취했다.
“좋아요! 조금 더 웃어주세요. 약간 고개 왼쪽으로. 좋아요!”
도욱이 고개를 까딱이자 포토그래퍼가 ‘좋아요’ 소리를 연발했다. 다른 스태프들도 도욱의 촬영을 구경하며 얼굴을 발그레하게 붉히고 있었다.
구철민도 그 현장을 흐뭇하게 보고 있었다. 그 가운데 뒤늦게 촬영장 뒤편에서 나타난 한 남자만이 팔짱을 낀 채 무뚝뚝한 얼굴로 서 있었다.
‘저 사람인가?’
도욱은 빠르게 남자를 살핀 뒤 다시 카메라 렌즈를 응시했다.
“도욱 씨! 옆모습 찍을게요, 이제.”
“네.”
“콧대가 어쩜 그렇게 높아요. 선이 사네.”
“하하, 감사합니다.”
도욱은 옆으로 돌며 포토그래퍼에게 감사를 전했다.
그렇게 훈훈한 분위기 속에서 기사용 화보 촬영은 순조롭게 마무리됐다.
문제는 이어지는 ‘최 기자’와의 인터뷰였다. 진행 담당은 구철민과 도욱을 스튜디오 옆에 마련된 방의 테이블로 데리고 갔다.
카페식으로 잘 꾸며놓은 방이었다. 도욱이 자리에 앉기 전, 최 기자가 들어왔다.
“최성준입니다.”
“반갑습니다, 기자님! 원래 오시려던 분은 괜찮으신가요? 몸이 안 좋다고 하시던데.”
차가운 소개에도 구철민이 사람 좋게 답했다.
본래 도욱을 인터뷰하려던 기자는 ‘뉴스패치’의 다른 기자였다. 인터뷰 질답지도 이미 주고받고, 인사까지 했는데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기자가 바뀌게 된 것이었다.
“네. 그분이 그제 가벼운 접촉사고를 당했는데. 너무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예. 그렇군요. 잘 부탁드립니다.”
최성준 기자가 구철민에게 설명했다. 구철민은 아이돌이 아닌 그의 매니저일 뿐이라는 생각이 있어서인지 구철민에게까지 그리 차가운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도욱을 스치는 눈길은 싸늘하기 그지없었다.
‘피곤해질 수 있겠는걸······.’
도욱은 생각하며 착석했다. 테이블이 하나뿐이었으므로 도욱과 구철민이 나란히 앉고, 맞은편에 최성준 기자가 앉았다.
최성준 기자가 노트북을 펼치며 질문을 시작했다.
“현재 차트 1, 2위를 달리고 있던데요. 우선 축하합니다. 소감 한마디 해주시죠.”
첫 질문은 무난했다.
“기쁘다는 말 외엔······ 할 수 있는 말이 없는 것 같아요. 많은 사랑 주시는 팬분들께 너무 감사합니다. 앨범 나올 수 있게 도와준 멤버들이나, 스태프분들께도 감사하고요.”
“그렇군요.”
답변을 받아 적어나가는 최성준 기자의 표정은 역시나 무표정했다. 도욱이 하는 말들 모두 틀에 박힌 가식이라고 생각하는 게 분명했다.
“감사할 여자친구는 없나요?”
“예?”
갑자기 들어온 질문에 도욱보다 구철민이 놀랐다. 최성준 기자가 픽 웃으며 구철민 쪽을 향해 말했다.
“농담입니다. 분위기나 풀어볼 겸 던진. 너무 뻔한 인터뷰는 안 됐으면 좋겠어서요.”
“아······.”
구철민은 이내 입을 다물었다. 괜히 별것도 아닌 일에 유난을 떨 수는 없었다. 도욱은 오히려 최성준 기자의 농담이 재밌었다는 듯 웃음을 지어 보였다.
“차트 1, 2위인 데다 타이틀곡 중 하나인 ‘Darling’은 본인이 작곡하셨네요. 케이케이 앨범에도 상당히 많은 곡들을 직접 작사, 작곡한 걸로 아는데······.”
“네, 맞습니다.”
도욱이 최성준 기자와 눈을 맞추며 답했다. 여기까진 미리 받아두었던 질문과 동일했다.
“음원 수익이 상당하겠네요. 얼마 정도 벌었어요?”
그러나 최성준 기자는 질문의 뉘앙스를 묘하게 바꾸고 있었다. 이번에도 도욱은 웃으며 답했다.
“하하, 아직 정확히 계산해본 적은 없습니다.”
“얼핏 생각해도 어마어마할 것 같은데 말이죠.”
“노래를 만들면서 수익을 생각했던 건 아니라서······.”
“부모님 두 분 다 교수시라더니 금수저 출신이라서 돈보단 역시 예술성?”
도욱은 잠시 입을 닫고는 미소를 머금었다. 이럴 땐 역시 말로 대답하기보단 애매한 웃음으로 상대하는 게 제일이었다.
도욱이 쉽게 다른 대답을 내놓을 것 같지 않자 최성준 기자는 픽, 하는 비웃음을 날린 뒤 다음 주제로 넘어갔다.
이후로는 다시 무난한 질문들이 이어졌다. 무대를 연출할 때 무엇을 제일로 두는지, 가수를 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지 하는 것들이었다.
“말을 참 잘하네요. 어린 친구가.”
최성준 기자의 뼈 있는 말이었다.
구철민은 자신이 커트해야 할 부분까지 커트해가며 답변하는 도욱에게 미안함을 느꼈다. 오백호 실장이 함께 있었다면 오백호 실장선에서 정리되었을 수도 있는 질문들이 몇 있었다.
그러나 아직 매니저로서 경험이 없는 구철민은 자신이 어디까지 나서야 하는지 감을 잘 잡지 못했다.
구철민도 아니다 싶어 자르려고 했을 때는 도욱이 눈짓으로 괜찮다는 표시를 했다.
‘괜히 매니저가 나서서 말렸다가는 더 반발심이 생길지도 모른다.’
도욱은 악의로 가득 찬 최성준 기자를 보며 생각했다. 도무지 이해가 잘 가지 않았다.
단순히 아이돌에 대한 편견으로 가지는 악의라고 보기엔 뿌리 깊은 무언가가 있었다. 말하는 투를 들어보면 도욱뿐만이 아니라 다른 아이돌들에 대해서도 악감정이 있는 듯했다.
‘최성준······. 누구지.’
도욱은 잠시간 대답을 멈추고 앞에 놓인 음료를 마시며 기억을 더듬었다.
‘분명 어디서 본 듯한 인상이야. 이름도 들어본 것 같고······.’
하지만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문득 혹시 그도 ‘김보명’ 시절 관련된 인물인가 하는 의문이 도욱의 머릿속에서 솟아올랐다. ‘김보명’ 시절의 기억들은 생각하려고 하면 잘려나간 듯한 부분이 있었기 때문에 든 생각이었다.
그러나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냐. 잘려나간 건 김보명 신상정보와 같은 사실뿐이다. 그렇다면 누구지······.’
최성준 기자가 다시 질문을 시작했기 때문에 도욱은 거기에서 기억을 더듬는 일을 끊어야만 했다.
몇 개의 질문을 더 주고받은 후 인터뷰는 마무리되었다. 그리 좋은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어쨌든 최성준 기자가 크게 기분 상하지 않은 채로 끝난 것에 의의를 두었다.
이미 기사가 나가기로 합의된 마당에 기자와 트러블이 있어 봐야 좋을 일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대로 간다고 해도 과연 최 기자가 좋게 기사를 내줄지도 의문이었다.
“아······. 도욱아 고생 많았다.”
“아니에요. 형도 수고 많으셨어요.”
스태프들과 인사를 나눈 후, 구철민과 도욱은 다시 차로 돌아왔다.
데뷔 후 한 인터뷰 중에 가장 신경이 쓰이고, 고된 인터뷰였음은 확실했다. 도욱은 이런 일이 앞으로 더 많아질 거라는 생각도 했다.
‘인기가 많을수록 안티도 많아지는 법이니까······.’
그러나 좋은 이미지가 대다수의 이미지가 되는 게 중요했다. 선점의 문제였다.
연습실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도욱은 말없이 바깥을 바라보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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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곧바로 전날의 인터뷰를 엮은 세 개의 기사가 게재되었다.
여러 장의 사진과 함께 뜬 기사는 여러 방면으로 ‘어그로’ 그 자체였다.
-강도욱..몰랐는데 사치스러운 편?
부정적인 댓글이 기사에 달리기 시작했다.
도욱으로서는 처음 부정적인 이슈로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내리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