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1
아름다운 사람 (2)
전날, 도욱의 솔로 앨범 첫 번째 타이틀곡인 ‘제발 가지 마’가 이미 음원 차트에 공개되면서 진입 순위 1위를 찍으며 ‘강도욱 열풍’을 예고하고 있었다.
‘혼자 부르는 노래는······. 이런 느낌인 건가.’
도욱은 무대 위에 홀로 서 있었다.
무대 위에서는 언제나 멤버들과 함께였기 때문에 이러한 기분은 처음 느껴보는 것이었다.
무대가 너무 넓어보였다. 오른쪽을 보아도, 왼쪽을 보아도 아무도 없었다.
도욱은 정면을 바라보았다. 케이케이일 때는 삼사백 명도 거뜬히 모을 수 있었던 객석 인원이었다. 오늘 얼마 정도의 팬이 올까 도욱도 조금 떨리는 마음이 있었다.
바라본 정면에는 키링의 응원도구를 든 팬들이 잔뜩 있었다. 도욱의 개인 팬들만으로도 객석은 꽉 들어찼다.
당초 KVS 음악 방송 측에서 예상했던 인원은 백여 명 정도였는데 너무 많은 팬들이 몰려들어서 인원을 많이 늘린 상태였다.
KVS에서 솔로 데뷔 무대를 하게 된 건 조명국 국장의 다른 조건 중 하나였다.
도욱이 솔로를 준비하고 있어 ‘캠핑 48시간’ 출연이 불가능하다고 둘러대자 걸어온 조건이었다. 도욱은 조명국 국장과 계속해서 좋은 관계를 유지할 필요를 느꼈다. 조명국 국장은 막무가내인 양, 가벼운 사람인 양 보여도 오히려 그런 이미지를 이용해서 일을 밀어 붙여온 영리한 사람이었다.
케이케이 멤버인 석지훈이 KVS 중심 예능의 고정 출연자로 발탁도 된 만큼 앞으로 케이케이나 힛 엔터테인먼트와 우호적인 인연을 맺자고 허심탄회하게 말한 건 조명국 국장이었다.
MVS나 몇몇 방송사, 신문사들이 아라 엔터테인먼트와 아예 손을 잡고 있는 부분을 생각하면, 부당하거나 불법적인 관계가 아닌 이상 도욱은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저 사람들이 모두 나를······.’
자신만을 바라보며 눈을 빛내고 있는 팬들을 보자니 가슴 한편이 뭉클해졌다. 이런 저런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다.
‘냄새 나는 화장실 구석에서 마음속으로나 노래를 부르던 내가 이곳에서 혼자 노래를 부를 만큼 달라졌다.’
비록 ‘강도욱’의 몸을 하고 있었지만, 도욱은 이제 도욱 그 자체였다.
도욱의 정신이 ‘강도욱’의 몸까지 변화시켰다. 이전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혼자 서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대를 꽉 채우는 듯한 아우라가 도욱에게는 있었다. 가만히 서서 정면을 응시하는 도욱에게 압도당한 채, 객석은 도욱의 노래가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찰나의 정적 후에 피아노 건반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피아노 소리가 정적을 가르는 형태는 잔잔한 호수 위에 바람이 불어 파문이 이는 느낌과 유사했다.
이미 공개된 음원을 듣고 온 팬들이었음에도 노래가 시작되자 마치 처음 듣는 것처럼 마음에 강렬한 울림을 느꼈다.
도욱의 목소리가 너무나도 절절했다.
이런 나를 두고 가버리면 어떡해
아름다운 추억들과 함께 나만 쓸쓸하게 이 자리에 서 있어
가지 마, 가지 마, 제발―
정확한 음정과 적당한 기교가 더해져 노래가 전달하고자 하는 바가 확실하게 전달되었다.
음의 피치가 올라가면서 감정이 진해질수록 도욱을 응원하다가도 도욱의 목소리를 더 잘 듣기 위해 동시에 숨죽이던 객석의 팬들은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을 느꼈다.
마치 자신에게 부르는 듯한 도욱의 노래 때문이었다. 쓸쓸한 감정이 너무 잘 전달되었다.
감수성 풍부한 소녀들 중에는 이미 눈가가 촉촉해진 이들도 있었다.
“왜 이렇게 슬퍼······.”
노래가 끝나갈 무렵 손등으로 눈가를 닦아내며 팬이 중얼거렸다. 그 옆에 있던 친구가 눈물 흘리는 친구에게 휴지를 건넸다.
“야아··· 왜 울어······.”
달래는 친구도 상황이 별반 다를 건 없었다. 목소리가 떨렸다.
도욱은 언제나 화려하게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가수였지만, 자신들과 다름없이 쓸쓸하고 아프기도 한 ‘한 인간’ 같았다.
슬프면서 동시에 어떤 위로가 되었다.
“이거 라이브는 맞아?”
한쪽에서는 라이브가 맞는지 궁금해 하고 있었다. 고막을 녹일 듯한 노래에는 숨소리 하나 허투로 섞이지 않았다. ‘CD를 씹어 먹은’ 것 같은 노래였다.
“당연히 라이브지. 그나저나 오늘 도욱 오빠 컨디션 좋아 보인다. 얼굴두, 노래두.”
“그 컨디션 안 좋을 때가 있어?”
“하긴. 없지.”
무대가 끝났다고 생각해 대화를 하던 이들이 깜짝 놀라며 무대를 바라보았다.
도욱이 입고 있던 수트의 재킷을 벗어 던졌기 때문이었다.
오늘 도욱의 의상이었던 푸른빛이 도는 정장은 무려 세계 최고의 명품 브랜드 중 하나인 마크러스에서 협찬해준 옷이었다.
마크러스 코리아에서는 수트는 물론이고 구두, 도욱이 착용하는 액세서리까지 빠지지 않고 협찬 의사를 밝혀왔다.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마크러스였다. 물론 곳곳에 다른 명품 브랜드의 소품도 섞여 있었다.
마크러스에 협찬을 의뢰한 건 도욱의 개인 활동 스타일리스트인 한정아 스타일리스트팀이었다. 이번 활동 컨셉들이 마크러스 새 시즌 의상과 무척이나 잘 어울렸기 때문이었다.
거기에 도욱이라면 마크러스에서도 협찬이 가능할 거라고 한정아가 판단을 내렸다. 뉴욕 패션위크에 다녀왔을 때의 반응을 생각한 뒤 내린 판단이었다.
마크러스는 이름이 이름이다 보니 연예인 협찬이 자주 이루어지는 곳은 아니었다. 시상식 시즌에 대배우들에게만 종종 수트 협찬을 하곤 했다.
때문에 한정아 팀장의 제안을 거절하려고 했었다. 아무리 케이케이가 패셔니스타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고, 다른 아이돌들과 달리 도욱의 이미지가 가볍지만은 않더라도 쉽사리 깨기 힘든 브랜드 정책이었다.
그러나 마크러스 코리아의 이런 이슈를 들은 본사 측에서 오히려 새로운 시도로 도욱에게 활동 기간 동안 새 시즌 상품들을 협찬해줄 것을 적극 권유했다.
마크러스 본사 사람들이 마크러스 패션쇼에서 사진이 찍힌 후 ‘Bomb’지에 실린 도욱의 모습을 본 것이다.
물론 돈을 들여서도 마크러스나 기타 브랜드의 의상을 사들여 무대 의상으로 쓸 수도 있었다. 그러나 협찬을 해주었다는 것은 해당 브랜드에서도 인정했다는 느낌이었다. 다른 개념이었다.
그렇게 무대에서는 잘 쓰지 않는 명품 브랜드를 착용한 도욱은 오늘 KVS 음악 방송에 출연하는 그 누구보다 화려하고 고급스러웠다.
재킷을 벗자 드러난 몸에 붙는 흰 셔츠 또한 고급스러움 그 자체였지만, 팬들이 환호한 건 셔츠가 아닌 도욱의 몸이었다.
적당하게 붙은 가슴 근육이 여실히 드러나 있었다.
거기에 베이스가 쿵, 쿵, 울리며 새로운 노래의 비트가 시작되자 넋을 놓았던 팬들도 참지 못하고 환호성을 내질렀다.
“꺄아아아―!”
“도욱 오빠!!!”
“도욱아! 아악―!!!”
오늘 KVS 음악 방송에서 도욱이 공개할 무대는 ‘제발 가지 마’뿐만이 아니었다.
도욱의 이번 솔로 앨범은 두 가지 버전으로 출시되었다. 거기에 투 타이틀이었다. 그룹에서 나와 첫 솔로 데뷔, 그런데 투 타이틀까지. 누가 보아도 대단한 자신감이 아닐 수 없었다.
이건우와의 작업을 성사시킨 것만으로도 자신감에는 이유가 있어 보였다.
‘제발 가지 마’라는 발라드 곡 외에 도욱이 준비한 곡은 댄스곡이었다. 발라드와 댄스 투 타이틀. 어떤 장르도 상관없이 잘한다는 자신감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 자신감에는 정확한 근거가 있었다.
도욱이 리듬에 맞춰 발을 구르며 안무를 시작했다.
Cry, Cry, Don’t cry, darling!
여기로 오면 돼 바람을 맞으며 달리는 거야!
기존의 케이케이가 해 왔던 댄스곡이 힙합에 가까운 장르였다면, 도욱의 솔로 댄스곡인 ‘Darling’은 재지한 분위기를 살린 곡이었다.
탭 댄스를 추는 듯 빠른 발놀림과 함께 도욱은 연인을 위로하는 듯한 가사를 읊조렸다.
빠르게 몸을 움직이면서도 전혀 흔들림 없는 라이브였다. 모두 AR을 깔았다고 의심할 만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도욱은 이번 솔로 댄스곡을 준비하면서 여러 명이서 나눠하던 노래를 혼자 불러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똑같은 성량으로 노래를 부르더라도 춤을 출 때 마이크 중심에 입을 잘 모아 부를수록 소리가 잘 모여서 숨소리도 끼어들지 않고, AR과 같은 선명한 소리가 나오게 된다.
도욱은 그러한 기술들까지도 끊임없이 연구하고, 연마했다.
Hey! (Hey!) Darling! (Darling!)
내 손을 잡아 봐!
후렴구에 이르자 어느새 홀린 듯 팬들이 노래를 따라 부르고 있었다.
도욱은 흰 셔츠의 소매를 접어 올리며 시계를 확인하는 제스처를 취하며 유연하게 웨이브를 했다. 소매를 접어 올려 남성미를 과시하는 안무는 안무가와 심혈을 기울여 만든 안무였다.
도욱이 움직일 때마다 길다라 십자가 모양의 은색 귀걸이가 찰랑였다. 촌스러울 수 있는 아이템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주 세련되게 보였다.
귀에서 찰랑이는 은색 귀걸이가 빛나는 그 순간, 도욱이 윙크를 카메라에 날리며 두 곡의 연이은 무대가 끝이 났다.
“아아아아악!”
“꺄악!!!”
“어떡해!”
“대박이다!!!”
“미쳤어······ 미쳤다고······.”
“강도욱!”
“강도욱!”
“강도욱!”
무대가 끝나자 환호가 터졌다. 도욱이 무대를 내려가고 있음에도 도욱의 이름을 연호하는 팬들의 함성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도욱의 온몸이 땀으로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발끝이 저릿할 정도의 흥분이 몰려왔다.
긴장과 흥분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며 도욱이야말로 무언가에 홀린 듯한 상태였다.
‘잘······ 해낸 건가?’
대기실로 향하며 도욱은 힐끔 뒤를 돌아봤다. 자신의 이름을 연호하는 팬들이 보였다.
무대 위에 모든 기운을 다 쏟아 내버린 도욱은 녹초가 된 상태로 그러나 진심으로 기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사람들이 자신의 무대에 환호했다. 기뻐하는 얼굴들이 어렴풋하게 보였다.
‘다행이다.’
***
방송으로 도욱의 무대를 본 이들의 반응도 폭발적이었다.
동시에 공개된 두 번째 타이틀 곡 ‘Darling’도 진입 순위가 1위였다. 시간이 지나자 차트 순위는 도욱의 두 곡인 ‘Darling’과 ‘제발 가지 마’가 1, 2위 접전을 벌이는 상태가 되었다.
때마침 사방신화가 발표한 스페셜 음원의 차트 순위가 30위권에 머무르면서 아이돌 음원 강자는 누구도 따라올 수 없이 케이케이, 그리고 도욱이라는 점이 증명됐다.
‘내 라이벌은 나뿐’이라고 말한 운동선수의 말이 무슨 말인지 정확히 알 수 있는 사례였다.
심지어 두 곡의 분위기가 완전히 다르면서도 한 앨범에 들어가기에 통일성을 잃지 않고 있는 상태여서 평론가들의 평도 좋았다.
무대 영상은 라이브 논란이 일어날 만큼 칭찬으로 자자했다. 케이케이를 나와서 혼자 다해도 되겠다는 말까지 심심찮게 나오고 있을 정도였다.
“도욱아! 축하해!”
“장하다!”
“형, 진짜 최고였어요.”
대기실로 돌아온 도욱을 맞이한 건 케이케이 멤버들이었다.
멤버들은 도욱의 무대가 끝날 시간에 맞춰 대기실로 와 도욱을 기다리고 있었다. 도욱을 응원하려 한 것이었다.
“고맙습니다. 고마워.”
멤버들 한 명, 한 명에게 도욱은 인사했다. 솔로 앨범을 내기까지 이런 저런 고민들을 같이 해주고, 자신의 일처럼 도와준 멤버들이었다.
실질적으로 모든 일을 해낸 건 도욱이었지만, 멤버들의 응원이 큰 힘이 되었다.
사심 없이 자신의 성공을 응원해주는 멤버들이 도욱은 정말로 고마웠다. 멤버들이 협조적이지 않았다면, 케이케이의 멤버이기도 한 도욱이 솔로 앨범을 낼 때 힘든 점이 많았을 것이다.
다른 그룹에서 멤버들 간 삐그덕거리는 소리가 나는 시점도 대체로 이런 때였는데 케이케이 안에서는 아무런 잡음도 없었다.
“아, 이런 날 사진이 빠지면 안 되지! 사진 찍자! 형 사진 좀 찍어주세요.”
안형서의 말에 구철민이 휴대폰을 받아 들었다.
멤버들이 일렬로 섰다. 도욱은 멤버들에게 전달 받은 꽃다발을 들고 있었다.
“하나, 둘, 셋!”
구철민이 ‘셋’ 하는 순간 버튼을 눌렀다.
***
이번 활동, 음악 방송을 제외한 도욱의 첫 번째 단독 스케줄은 화보 촬영이었다.
청담동의 한 스튜디오에 도착한 도욱은 매니저인 구철민이 차를 주차시키는 동안 혼자 스튜디오 내부로 들어서고 있었다
원래 예정된 시간은 3시였지만, 일찍 와서 준비하려는 마음에 도욱이 도착한 시간은 2시 45분 정도였다.
계단을 밟아 올라가던 도욱은 위층의 복도에서 들려오는 말소리에 걸음을 멈췄다.
에디터와 포토그래퍼인 듯한 이들의 대화가 들려오고 있었다.
“강도욱?”
“엉. 걔 저번에 재킷 촬영한 적 있었는데 케이케이. 예의바르고 괜찮더라. 기사 잘 써줘.”
“예의는 무슨.”
“왜에···. 다들 칭찬하는데.”
“그거? 다 가식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