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9
혼자 부르는 노래 (5)
-흐음······. 일단 제가 가이드 입힌 파일 보낼 테니까 들어 보시고 연락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도욱 씨가 맘에 안 들 수도 있잖아요.
“네? 아니에요. 그럴 일 없을 겁니다.”
-덮어놓고······. 좋다고만 하면 신뢰가 안 가요······.
이건우의 한숨을 쉬는 듯한 말에 도욱은 웃음을 흘렸다.
“다른 분이면 몰라도 선배님 노래라면, 저는 그렇습니다.
도욱의 답변에 휴대폰 너머에서 깊은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부정적인 의미는 아니었다.
-그렇게 말하면 기분이 또 나쁠 수가 없죠······. 하······.
전화를 끊고 도욱은 이건우의 메일이 도착하기를 기다렸다.
“뭐야, 무슨 전화야?”
옆에 앉아 있던 안형서가 눈을 반짝이며 물어왔다. 안형서도 통화 내용을 듣고 대충은 예상할 수 있었다. 안형서는 도욱의 솔로 앨범을 누구보다 기대하고 있는 멤버 중 하나였다.
사실 안형서도 팀 내에서 중심이 되는 보컬이었기 때문에 솔로에 대한 욕심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노래를 부르는 이라면 한 번쯤 파트를 나눠가지는 곡이 아닌, 온전히 자신만의 곡을 부르고 싶기 마련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형서가 질투와 같은 감정을 느끼기보단 그저 옆에서 응원하며, 기대하는 역할을 하게 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케이케이에서 가장 처음 솔로가 나온다면 그건 도욱이어야 한다.’
케이케이를 대표할 인물이었다. 실력적으로 도욱인 게 맞았다. 한편으로는 미안한 마음마저 들었다. 그룹에 있다가 처음으로 솔로로 나오게 되면, 큰 기대만큼 부담감이 상당할 수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이렇게 케이케이가 한창 인기가 많을 시기······.’
솔로 앨범이 나온다는 말이 나오면 이목이 집중될 테고, 케이케이의 음악과는 다른, 자신만의 음악을 보여주면서도 동시에 케이케이만큼이나 좋은 성적을 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실패로 낙인찍히기 좋은 게 솔로 활동이었다.
안형서는 자신이 도움이 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최선을 다해 도욱을 돕고 싶었다.
“곡을 보내주셨다고 하셔서요.”
“오! 그 이건우 선배님?”
“네.”
“아, ‘벌써 이렇게’ 노래 내가 진짜 좋아했는데!”
“저도요. 명곡이죠.”
“이건우 선배님이 곡 안 주기로 유명하던데. 너 곡 받은 거 알면 다들 난리겠다.”
“······뭐.”
도욱이 겸손한 모습을 보이자 안형서가 어깨를 툭툭 쳤다.
“노래. 도착했어? 같이 들어봐도 돼?”
“그럼요. 형도 들어보시고 말씀해주세요.”
어느새 이건우에게서 메일이 도착해 있었다. 도욱이 휴대폰으로 메일에 첨부된 파일을 다운받았다. 다운이 되는 동안 안형서가 신나서 들썩였다.
다른 멤버들은 이어폰을 꽂고 노래를 듣고 있거나, 잠에 빠진 상태였다.
노래를 다 다운받은 도욱이 음량을 줄인 채 재생 버튼을 눌렀다.
이건우 곡의 특징인 피아노 연주와 함께 곡이 시작되었다.
“아······. 벌써 좋다.”
안형서가 감탄했고, 도욱이 고개를 끄덕였다. 전주만 들어도 좋은 곡임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가이드를 입힌 이건우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을 때, 도욱의 눈이 크게 뜨였다.
“이 노래는······!”
“어? 왜?”
놀란 도욱에 안형서도 토끼눈을 하고 물어왔다.
“아, 아니에요. 그··· 노래가 너무 좋아서······.”
“그러게. 엄청 슬픈 노래네. 도욱이 네가 부른 버전도 빨리 들어보고 싶다.”
도욱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왜 이건우가 며칠이나 고민한 후 노래를 보내줬는지 알겠다.’
사실 이 노래는 이미 도욱이 알고 있는 노래였다. 도욱이 알고 있다는 것은 이전에 다른 가수가 불렀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 다른 가수는 다름 아닌 이건우가 본래 하고 있던 남성 듀엣이었다. 지금은 해체 상태였지만, 재결합한 후 다시 한 번 내는 마지막 앨범의 타이틀곡이었다.
그런 중요한 앨범에 썼을 곡이니 이 곡에 대한 이건우의 애정을 알 만했다.
‘그런 ‘제발 가지 마’를 나에게······.’
도욱은 솔로 앨범을 내보는 게 어떻겠냐는 회사의 제안을 처음 들었을 때보다 더 큰 부담감을 실질적으로 느꼈다.
‘이 곡을 과연 내가 잘 소화해낼 수 있을까.’
곡이 얼마나 큰 사랑을 받을지, 사랑을 받았었는지 이미 알고 있는 도욱이었다.
눈을 잠시 감았다 뜨며 도욱은 찬찬히 생각을 정리했다. 도욱에게 이 곡을 주기로 결정한 건 이건우였다. 이건우의 결정이 헛되지 않게 도욱은 최선을 다할 것이다.
‘그리고 나로 인해 미래가 바뀌더라도······.’
도욱이 새로운 몸에서 시간을 다시 살며 느낀 것들이 있었다. 도욱으로 인해 미래가 조금씩 바뀌고는 있었지만, 아주 기본적인 것들은 바뀌지 않는다.
‘누군가의 참된 노력의 결과 같은 것들은 바뀌지 않아.’
그러니 이건우의 듀엣 앨범에는 또 그 앨범대로 새로운 좋은 노래가 탄생할 것이었다.
생각을 정리하자 어서 이 노래를 부르고 싶다는 욕망이 도욱의 안에서 샘솟았다.
***
“날씨 좋은 6월! ‘캠핑 48시간’의 첫 녹화입니다!”
“날씨가 정말 좋네요! 이런 날은 어디 북한산 아래 가가지고 계곡에 발 담그고 닭백숙이나 먹어야 하는 건데.”
“아니, 형은 무슨 아저씨처럼······.”
“아저씨 된 지가 언젠데 이래.”
국민 MC로 불리는 강천호의 쩌렁쩌렁한 목소리와 함께 ‘캠핑 48시간’의 녹화가 시작되었다.
개그맨 이석근과 가수 출신 진원이 티격태격대며 강천호의 멘트에 살을 붙였다.
북한산 어쩌고 했지만, 오프닝 멘트를 하는 곳부터가 이미 한강 부근의 난지도 캠핑장이었다. 이미 ‘캠핑 48시간’ 녹화를 여러 번 해 본 출연진들은 그나마 촬영지가 서울인 것에 감사하고 있었다.
강원도 산골짜기나 남해의 외떨어진 섬이 촬영지인 적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근데 저 캠핑카는 뭐지요?!”
대본에 쓰여 있었던 것이지만, 강천호가 천연덕스럽게 마치 자신이 궁금한 것처럼 눈앞의 캠핑카를 보며 물었다.
오프닝 멘트를 시작한 곳에는 텐트와 함께 딱 보기에도 호화로워 보이는 흰색 캠핑카가 주차되어 있었다. 강천호의 질문에 다른 출연진들의 시선도 캠핑카 쪽으로 쏠렸다.
진원이 성큼성큼 캠핑카 쪽으로 다가가 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 화려한 내부가 공개되었다. 이층 침대에 조리를 할 수 있는 곳과 식탁, 샤워 시설까지 모두 구비되어 있는 캠핑카였다.
“오늘 취침 장소입니다.”
“오오오오―!!!”
엄우석 PD의 설명에 출연진들이 탄성을 내질렀다.
“이거 우리 다 자는 거 아니죠? 몇 명만 자는 거지? 다 알아!”
진원의 말에 기뻐하던 다른 출연진들도 어떻게 되는 거냐는 듯 엄우석 PD 쪽을 바라보았다.
“네. 맞습니다. 오늘 캠핑카에서 취침을 하는 멤버는 단 한 명입니다. 나머지 멤버들은 저쪽 텐트에서 취침하시면 되겠습니다.”
캠핑카를 보고 나자 텐트는 너무나도 초라해 보였다. 이제 여름을 향해가며 날씨가 따뜻해졌다지만 여전히 야외에서의 취침은 고된 일이었다.
“한 명?! 이 넓은 데 한 명이라고요? 너무한 거 아인가!”
강천호가 소리쳤다. 이석근도 따라서 너무하다며 고개를 저었다. 엄우석 PD가 이어 말했다.
“오늘부터 ‘캠핑 48시간’에 새 멤버가 들어오게 됩니다.”
“헐!”
“네?”
“뭐라고요?!!”
갑작스러운 말에 출연진들이 혼란스러워하는 리액션을 보이고 있었다. 새로운 출연진이 들어온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그게 오늘인 줄은 출연진들도 모르고 있었다.
영향력이 큰 강천호 정도만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거기에 들어올 인물도 엄 PD가 이야기해 주었지만 워낙 나이가 있는지라 석지훈이 누구인지는 잘 몰랐다.
오히려 그게 도움이 됐다. 강천호가 아는 인물이었다면, 괜한 선입견 때문에 강천호가 반대했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물론 석지훈의 어린 나이가 강천호도 걱정이 되었지만, 엄우석 PD의 의도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수긍할 수밖에 없는 문제였다.
어쨌든 강천호도 그 사실을 몰랐던 척 커다란 리액션을 취하며 이게 무슨 일이냐는 듯 난리법석을 부렸다.
“그 멤버가 오늘 캠핑카 취침의 주인공입니다.”
“아니 뭐야! 벌써 차별이에요?”
“누군데! 대통령 아들이라도 오는 거야?!”
엄우석 PD의 말에 출연진들이 들고 일어날 듯 난리였다. 엄우석 PD가 출연진들을 진정시켰다.
“아니, 제 말을 끝까지 들어보세요.”
“말해보세요!”
“이제 분장을 한 열 명의 남성분들이 나올 거고요. 그중에서 누가 진짜 새 멤버인지 여러분들께서 상의 후에 맞히면 되는 겁니다. 여러분이 정확히 멤버를 고르면 전원 이 근처의 펜션으로 가는 거고요. 틀리시면 여러분들은 텐트에, 새 멤버는 캠핑카에서 취침하게 됩니다.”
“와! 허허. 펜션!”
바보 같은 웃음을 지으며 김재민이 좋아했다. 그러나 설명을 끝까지 들은 진원은 오히려 인상을 찌푸렸다.
“누구인지 어떻게 알아요?!”
“감?”
“이 양반이 정말!”
이석근이 어이가 없다는 듯 호통을 쳤다. 그러나 출연진들이 더 반발할 새도 없이 엄우석 PD가 신호를 보내자 열 명의 남자들이 줄줄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
“형. 고맙습니다.”
KVS 분장실에서 분장을 받고 나오며 석지훈이 도욱에게 말했다. 석지훈과 도욱의 앞에는 구철민이 걸어가고 있었다.
만약 이 자리에 케이케이를 잘 아는 팬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세 사람을 그냥 지나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도리어 매니저인 구철민의 얼굴을 알아보고 자리에서 멈춰 설 수도 있었다.
언뜻 봐서는 누구도 알아보기 힘들 만큼 두 사람은 세게 분장을 한 상태였다.
석지훈은 40대 회사원과 같은 모습이었다. 허름한 양복을 입고, 무테안경에 화장으로 적당히 주름을 만들자 그렇게 보였다.
“고맙다니?”
석지훈의 인사에 도욱이 되물었다.
도욱은 누더기 옷을 입고 있었다. 거기에 어깨까지 내려오는 떡진 머리 가발을 쓰고 얼굴에는 숯칠을 해 도무지 도욱의 얼굴이라고는 상상하기 힘들었다.
“그냥 전부······. 매번 형한테는 신세만 지는 것 같아서요.”
“지훈아.”
“네?”
“내가 뭘 한다면 너를 위한 일이 아니라 다 나를 위한 거야. 그러니까 너무 부담 갖지 마.”
진심이었다. 단순히 정 때문이 아니라 멤버들이 잘되면 결국 도욱에게도 좋은 일이었다. 도욱의 말에 석지훈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열심히 할게요. 저를 위해서.”
“그래.”
각자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자신을 위해 최선을 다하다 보면 결국 전체도 좋아지는 법이었다.
“풉.”
“하하.”
진지한 대화를 나누며 서로를 바라 본 순간, 두 사람은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서로의 행색이 무척이나 우스웠기 때문이었다.
두 사람은 웃으며 ‘캠핑 48시간’의 촬영지를 향해 출발했다.
그리고 엄우석 PD의 신호에 맞춰 열 명의 보조출연자들에 섞여 줄지어 ‘캠핑 48시간’ 출연진들에 앞에 섰다.
말하자면 도욱은 미끼인 셈이었다. 도욱의 얼굴이 더 알려져 있었으므로 도욱을 알아볼 가능성이 컸고, 그럴 경우 도욱이라고 생각한 출연진들은 도욱을 선택할 것이었다.
그렇게 되면 석지훈을 제외한 전 출연진들이 텐트에서 취침하게 되는 재미있는 상황을 만들어 나갈 수 있을 터였다.
도욱은 특별출연으로 난지도 캠핑장에서 석지훈이 새 멤버인 게 공개되면, 한 게임 정도를 할 예정이었다.
그 시각, 말을 흘려 놓은 언론에서는 각종 기사를 쏟아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