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슈퍼스타-108화 (108/225)

# 108

혼자 부르는 노래 (4)

문을 열고 들어서자 곧바로 김우연이 보였다. 인사하는 도욱에게 김우연인 핀잔을 주었다.

“이젠 선생도 아닌데 선생님은 무슨 간지럽게!”

“하하.”

도욱이 웃자 김우연이 인상을 찌푸렸다.

“얼굴 한 번 보기 차암 힘들다! 어?!”

“죄송해요. 자주 못 봬서.”

“자주 보면 그건 그거대로 문제지. 일단 안쪽으로 들어와 봐.”

도욱은 김우연을 따라 녹음실 안으로 들어갔다.

녹음실 안에는 김우연의 후배 가수이자 작곡가인 이건우가 앉아 있었다.

이건우는 유명 대학 작곡과 출신으로 남성 듀엣으로 데뷔해 단 세 개의 앨범만으로 대한민국 R&B, 발라드의 한 획을 그은 이였다.

듀엣의 다른 멤버에 비해서 아주 뛰어난 보컬리스트는 아니었기 때문에 해체 후 낸 솔로 앨범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진 못했었다.

그러나 차곡차곡 자신만의 음악 세계를 좋아해주는 팬들을 모아가고 있었고, 그가 작곡하는 피아노 연주를 바탕으로 한 섬세한 곡들은 여전히 유효했다.

김우연과는 김우연의 앨범에 피쳐링을 해주면서 인연을 맺게 되었다.

“여기, 알겠지만 도욱이고. 여긴, 모르겠지만 이건우다.”

김우연의 장난스러운 소개에 도욱이 조금 어쩔 줄 몰라하며 얼른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선배님. 꼭 만나 뵙고 싶었습니다.”

“반가워요. 하아······. 형은 저렇게 꼭 사람을 무시한다니까요······.”

한숨을 한 번 크게 쉬고는 이건우가 느릿느릿하게 말을 이었다.

자신이 만드는 음악처럼 무척이나 말소리가 조용조용했다. 그럼에도 할 말은 또 하는 성격인 듯했다.

“그렇게 서 있지들 말고 일단 앉자고. 도욱이 넌 젊어서 모르겠지만, 늙은 우리는 다리가 아프다.”

“형······. 저는 형보다 다섯 살이나 어린데. 자꾸 묶지 마세요.”

그렇게 투덜대면서 이건우가 김우연이 앉은 테이블 맞은편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도욱도 테이블에 앉으며 자신이 사 온 음식들을 올려놓았다.

“이 앞에 프랑스에서 온 파티쉐가 하는 케이크 가게가 있어서 몇 조각 사 왔는데······. 선배님 입에 맞으실지 모르겠네요.”

“난 단 거 싫은데.”

김우연이 고개를 저으며 불퉁하게 말했다.

“그래서 일부러 제일 안 달다는 케이크도 챙겨 왔어요.”

“그래 봐야 케이크잖아.”

“하······. 잘 먹을게요. 여기 케이크 꼭 먹어 보고 싶었는데······. 줄 서야 해서 힘들었거든요.”

김우연이야 싫다고 하든 말든 이건우가 색색깔의 케이크를 보며 눈을 빛냈다.

도욱은 일단 시작은 좋은 것 같아 보기 좋은 미소를 지었다.

사실 이건우가 달디 단 디저트를 좋아한다는 이야기는 김우연으로부터 들은 것이었다.

김우연도 이건우가 아무에게나 곡을 주지 않는 건 알고 있었다. 때문에 도욱이 이건우에게 잘 보여야 하는 시점임도 알았다.

듀엣 앨범을 낼 당시 대한민국 음악사에 길이 남을 주옥같은 명곡들의 작곡자가 이건우임을 아는 제작자나 가수들은 이건우가 본격적으로 작곡가 활동을 시작하자 벌떼같이 달려들었다.

그러나 이건우는 자신의 곡을 함부로 넘기지 않았다. 이건우는 작곡가로서 상업적인 마인드보단 예술적인 마인드가 더 큰 사람이었다.

때문에 정말로 곡에 어울리고, 곡을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곡을 줄 생각이 없었다.

빛을 보지 못한 발라드 명곡들이 잔뜩 이건우의 컴퓨터 하드디스크에 쌓여 있다는 사실은 꼭 도욱처럼 미래를 아는 이가 아니어도 관계자들이면 충분히 아는 사실이었다.

김우연이 이건우와 인연을 맺을 수 있었던 것도 처음 연락이 작곡가에게 한 연락이 아닌, 보컬 이건우에게 한 연락이었기 때문이었다.

피처링 작업을 하며 이건우는 김우연의 노래에 경이로움을 느꼈다.

그리하여 이건우는 자신이 먼저 김우연에게 곡을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때 받은 노래로 김우연은 솔로 3집 앨범까지 2집에 이어 성공시킬 수 있었다.

“흐음······. 제 곡을 받고 싶으시다구요.”

초콜릿 맛이 진하게 느껴지는 티라미수를 일회용 포크로 찍어 먹으며 이건우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네.”

“댄스 가수이신데 발라드라······. 사실 전 잘 모르겠어요. 우연 형이 만나라고 강압적으로 굴어서······. 이렇게 뵙기는 하지만.”

“이야, 너 내가 묶어 놓기라도 했냐. 그냥 한번 만나 보라고 하니까 니가 알았다며.”

“허얼······. 도욱 씨 안 만나주면 내 솔로 앨범 피처링 안 해준다며······.”

도욱이 관자놀이 부근을 긁적이며 애매하게 웃었다.

“하여튼 형 아끼는 제자라고 하니까······. 노래는 잘 부르시겠죠?”

“야. 내가 사람 다 만들어 놨다니까!”

김우연이 일부러 과하게 으스댔다. 이건우도 도욱이 김우연 정도의 실력을 가지고 있길 바라는 것은 아니었다. 김우연은 대한민국 세 손가락 안에 드는 보컬리스트였다.

다만, 김우연이 가르쳤다고 하고, 김우연이 추천했기 때문에 어느 정도 믿음이 있는 것이었다.

“흠. 발라드라도 여러 장르가 있고 한데······ 어떤 노래를 하고 싶으신 건가요.”

도욱은 케이크 위에 올라가 있던 초콜릿을 입 안에서 녹여 삼킨 후 입을 열었다.

도욱도 단 것을 즐기는 편은 아니었지만, 일단 단 것이 들어가고 나니 뇌세포가 더 활발해지는 느낌이었다.

“슬픈 노래요. 너무 슬픈데 그 슬픔 때문에 남들에게 위로가 되는, 그런 노래가 하고 싶어요.”

도욱의 대답에 두 사람의 시선이 깊어졌다.

사실 이건우의 질문은 애매한 것이었다. 정확하게 세분화된 장르를 묻는 질문으로 받아들였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도욱이 내놓은 답은 무척이나 감성적인 것이었다.

“선생님께는 말했던 적 있는데 제가 슬플 때 ‘꿈이었으면’이라는 노래로 많은 위로를 받았거든요. 그런 의미로······. 저도 그런 노래가 부르고 싶어요. 할 수만 있다면요.”

“흐음······.”

이건우가 도욱을 마주보았다.

“선배님 곡이라면 그렇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그런 분위기를 생각하고 쓴 곡이 있긴 해요. 처절한 분위기의······. 하아······. 일단 도욱 씨 노래를 제대로 들어봐야겠어요.”

포크를 내려놓으며 이건우가 말했다. 손 안에 스며드는 긴장감을 꾹 그러쥐며 도욱이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우의 노래······. 꼭 불러 보고 싶다.’

이건우에게 전한 말은 도욱의 진심 그대로였다.

도욱은 이제 단순히 서강준이나 서중원 본부장을 무너뜨리는 것 외에도 작지만 큰 바람을 가지고 있었다.

자신의 노래로 사람들의 상처 난 마음을 위로하고, 희망을 주고, 무언가 변화를 일으키고 싶다는 바람이었다.

어느 정도 영향력이 있어야지만 가능할 일이었다.

이제 그 첫걸음이 될 도욱의 솔로 앨범이었다.

도욱은 그래서 당연히 모두들 도욱이 솔로를 낸다면 댄스곡일 거라는 예상을 뒤엎고 발라드를 발표할 생각이었다.

사람들의 마음에 파문을 던지려면 이건우 정도 감정에 축축하게 젖어드는 곡을 쓰는 이의 곡이 필요했다.

‘그리고······.’

도욱이 생각하고 있는 건 발라드만이 아니었다.

“그럼 부르고 싶은 곡 아무거나 한번 불러 봐요. MR 틀어줄 테니까.”

녹음 부스 안으로 들어간 도욱에게 이건우가 말했다. 이건우의 뒤에는 김우연이 팔짱을 낀 채 두 사람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스승 앞에서의 노래라 더욱 긴장이 되기도 했지만, 그는 도욱을 응원해주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힘이 되기도 했다.

도욱은 최근 가장 인상 깊게 듣고 연습해 오던 팝송을 말했다.

Tain의 Soulmate라는 곡이었다. 진정한 사랑을 찾고 싶어 하는 남자의 절절함이 담겨 있는 노래였다. 멜로디라인이 무척이나 강하고, 보컬의 역량이 중요한 곡이었다.

Hey, you’re my soulmate―

노래를 부르는 도욱을 보며 바깥에서는 짧은 대화가 오갔다.

“흐음······. 음색은 좋은데 형처럼 기교가 완벽한 스타일은 아니네요.”

“나처럼 완벽하려면 십 년은 멀었지.”

김우연은 이건우의 반응과는 관계없이 도욱의 노래 실력이 굉장히 많이 늘었다는 것에 감탄하고 있었다.

‘정신없이 바빴을 텐데······. 하여튼 독한 구석이 있어.’

도욱의 처음 실력부터 지금까지 지켜 봐온 김우연이었기 때문에 알 수 있는 부분들이 있었다. 처음에도 자신의 하드 트레이닝을 군말 없이 따랐던 도욱이었다. 여기까지 과연 따라올까? 싶었던 때도 도욱은 모두 따라와 주었다.

그 이후에도 혼자서 무척이나 노력했음이 여실히 들어나는 노래 실력이었다.

‘솔로를 한다기에 인기에 생각이 흐려져서 괜한 일을 하는 게 아닌가 싶었는데······. 내가 너무 저 애를 과소평가하는구나. 매번.’

지금 당장 솔로 발라드 가수로 데뷔한다고 해도 손색없을 실력이었다. 아니 기존의 몇몇 가수들보단 훨씬 나은 노래였다.

그러나 대단한 발라드 가수들의 요청도 이미 거절한 전적이 있는 이건우였다. 과연 이건우의 마음에까지 들었을지는 김우연도 확답하기 힘들었다.

“거기까지면 된 것 같아요.”

1절이 끝난 후, 이건우의 말에 도욱이 헤드셋을 벗고 녹음실 밖으로 나왔다.

도욱은 여전히 조금 전까지 부르던 노래에 젖어 있었다. 어색한 웃음을 짓고 있었지만, 노래에 빠져들어 있었던 게 보였다.

“도욱 씨에게 맞을 곡이 있을지······. 솔직히 당장 결정하긴 어려울 것 같아요.”

“아······. 그렇습니까.”

“네. 최대한 빨리 답변 드리죠.”

도욱은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이건우의 곡이 안 된다면 다른 발라드 작곡가의 곡을 받아야 했다.

‘지금은 꼭 이건우의 곡이었으면 좋겠는데······.’

지금 시대의 감성이 이건우와 아주 잘 맞는다는 것을 도욱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조금 더 절실했다. 이건우가 도욱을 거절한다면, 도욱은 삼고초려할 생각 또한 있었다.

‘그래도 안 된다면 어쩔 수 없이 2안을 찾아야겠지만······.’

자리가 정리되고 도욱이 녹음실 밖으로 나섰다. 김우연은 따로 찾아보고 감사 인사를 어떻게든 전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뒤따라 문을 열고 나온 이건우가 도욱을 불러 세웠다.

“저······. 도욱 씨!”

“네?”

도욱이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반가운 얼굴을 하며 뒤를 돌아보았다.

그런 도욱에게 이건우가 내민 건 흰 종이와 펜이었다.

“정말 죄송한데 여기 사인······.”

“아······?”

“그게······ 제 여자친구가 케이케이 팬이에요. 도욱 씨 팬······. 아까부터 고민했는데 사인 안 받아두면 분명히 싸우게 될 것 같아서······.”

“아! 네네. 해드릴게요. 여자친구분 성함이······.”

도욱이 웃으며 펜을 집어들었다. 이건우가 민망한 듯 찌푸리면서도 더듬더듬 여자친구의 이름을 말했다.

문득 도욱은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별것 아닌 부탁이었지만, 사인을 받아가 놓고 이건우가 영 모른 척할 것 같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

그리고 예상대로 이건우에게서는 며칠 지나지 않아 연락이 왔다.

꽤나 많이 고심한 듯한 목소리였다. 사실 도욱에게 곡을 주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게 결정했다고 했다. 문제는 다른 것이었다.

“감사합니다. 선배님. 곡 주신다니······. 너무 감사해요.”

-아니에요. 저도 감사하죠. 그런데 제가 사실 이 곡을······. 하아······

수화기 너머로 이건우의 한숨 소리가 전해졌다.

‘대체 무슨 곡이길래······.’

‘푸른 하늘’ 마지막 음악 방송 무대로 향하는 벤 안, 이건우의 전화를 받은 도욱은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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