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슈퍼스타-107화 (107/225)

# 107

혼자 부르는 노래 (3)

***

여의도 부근의 한 카페.

KVS 방송국 본관에서 10분 정도 떨어진 거리에 위치해 바로 앞보다 한적한 프랜차이즈 카페는 관계자들이 제대로 자리를 잡고 앉아 이야기를 나눌 때 자주 오는 카페였다.

석지훈은 평소 즐겨 입는 차림대로 예전 일본 방문 때 도쿄에서 직구입한 화려한 무늬의 후드티와 검은색 스키니진을 입은 채 카페에 앉아 있었다.

한정판 운동화까지 신은 석지훈의 패션은 가로수길에서나 흔히 볼 법한 잘 나가는 젊은 모델들의 패션과 비슷했다.

실크 셔츠에 찢어진 청바지 차림으로 세련미를 강조한 무대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케이케이의 패셔니스타라고 하면 역시 도욱이지만, 도욱은 어느 스타일이나 어울리고, 자신도 거리낌 없이 때마다의 컨셉대로 사복까지 맞춰 입는 ‘프로’적인 패셔니스타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석지훈은 사복 패션만큼은 자신만의 색깔이 확실하게 드러나는 타입이었다.

“저······. 실장님께서 원래대로 입어도 된다고 하셔서 이렇게 입긴 했는데. 괜찮은 거 맞아요?”

석지훈이 옆에 앉은 오백호 실장에게 불안한 듯 물었다.

자유분장한 패션 스타일과 달리 석지훈은 오백호 실장에게 아직도 ‘실장님’이라고 부를 만큼 예의를 차리는 타입이었다.

멤버들인 형들에게도 바른 소리를 해 형들을 뜨끔하게 만들긴 해도, 꼬박 꼬박 형이라고 부르며 상하관계는 절대적으로 따르는 편이었다.

그런 점에 있어서 도욱과 비슷했고, 잘 맞았다.

“그래. 어차피 리얼리티 예능이란 게······. 너도 해봐서 알잖아. 아무리 꾸며도 안 되는 부분들이 있어. 네 모습 그대로를 보여 줘야지.”

오백호 실장의 말에 석지훈이 끄덕였다. 행동이 성숙한 편이라 가끔은 팀 막내가 박태형 같을 때도 있었지만, 확실히 끄덕이는 석지훈의 얼굴이 앳됐다.

“진짜로 하게 되면 종일 카메라로 찍을 텐데. 그리고 네 모습 그대로 보여주는 게 나는 메리트가 있다고 본다.”

“그럴까요?”

“그럼.”

오백호의 말에 석지훈은 마음을 다잡았다.

오늘은 엄우석 PD와 만나 캐스팅 미팅을 하는 날이었다. 오늘 만남을 통해 석지훈이 ‘캠핑 48시간’에 출연할지 안 할지가 결정 됐다.

오백호 실장은 긴장해 있는 석지훈을 달래고는 자신도 미리 시켜둔 아메리카노 한 모금을 삼켰다.

힛 엔터테인먼트 내부 논의에서는 문제없이 석지훈의 ‘캠핑 48시간’ 출연 건이 승인되었다. 적극적으로 푸시해보자는 식이었다.

어차피 도욱이 솔로 앨범 활동이 시작되고, 오케이의 2집까지 나오는 등의 플랜이 정상적으로 진행된다면, 콘서트 외에 다른 멤버들은 별다른 스케줄이 없었다.

팬-마케팅팀 이대형 팀장은 진짜로 ‘캠핑 48시간’에서 출연자를 찾고 있는 것이라면 케이케이 입장에선 적절한 타이밍에 좋은 기회라며 이러한 발 빠르게 움직인 오백호 실장에게 감탄을 표했다.

물론 오백호 실장은 출연 자체나 멤버로서 제가 꺼낸 얘기가 아님을 밝혔고, 이대형 팀장은 왜 조애니 부장이 도욱에게 도움을 많이 받으라고 자신에게 조언했는지 또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내부 논의가 끝나자, 오 실장은 곧바로 예능국장 쪽에 말을 흘렸다. 예능국장 측근을 통해 케이케이 쪽에서 개인 예능 고정 출연할 프로를 물색하고 있다는 말을 흘리자 ‘캠핑 48시간’ 쪽에서 힛 엔터테인먼트 담당 부서로 연락이 왔다.

조명국 국장은 케이케이에 대해서 이미 긍정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

예능국 국장인 만큼 다른 젊은 사람들처럼 아이돌을 줄줄 꿰지는 못해도 대세 연예인이 누구인지, 탑 아이돌 그룹이 어떤 그룹인지 정도는 파악했다.

거기에 자신의 딸조차 케이케이의 팬이었다. 그중에서도 도욱이 가장 인기가 많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때문에 무조건 ‘이름값’을 외치던 조명국 부장은 무려 대세 아이돌인 케이케이가 예능 고정을 원한다고 하자 ‘무조건 강도욱으로 간다!’ 하고 외치며 도욱을 밀어붙였다.

엄우석 PD로서는 조명국 부장이 원래 추천하던 래퍼 출신 연예인이나 케이케이의 강도욱이나 하나씩 자신이 원하는 조건과는 조금 달랐다.

‘한 명은 나이대가 너무 높고, 한 명은 너무 유명해서······. 친근한 이미지를 주기엔 조금······. 그렇다고 아예 어린 신인을 쓰자고 하면 조 국장님이 쳐다도 안 보고 노발대발 할 거고.’

이러한 엄우석 PD의 생각을 알기라도 한 것처럼 힛 엔터테인먼트 쪽에서는 도욱 대신 석지훈이라는 멤버를 넣고 싶다는 대답을 해왔다.

석지훈 개인은 조명국 부장도 엄우석 PD도 스치듯 들은 기억만 있을 뿐, 제대로 알지 못하는 인물이었다.

그러나 ‘케이케이’라는 이름값은 있었다.

석지훈에 대해 대충 알아본 엄우석 PD는 차라리 이쪽을 미는 편이 자신이 원하는 조건과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타협안으로서 선택한 게 석지훈이었다.

물론 여전히 조명국 부장은 ‘이왕 하는 거 강도욱 정도는 데려와야 한다’는 입장이긴 했지만, 조명국 부장도 어쨌든 절충안이라는 생각은 하고 있었다.

그렇게 이루어진 미팅이었다.

허름한 차림을 한 엄우석 PD가 카페 안으로 들어섰다. ‘캠핑 48시간’ 메인 작가도 함께였다.

두 사람을 맞으며 오백호 실장과 석지훈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엄 PD님. 여기입니다!”

“오백호······ 실장님?”

“네 맞습니다. 여기 이 친구가 지훈입니다. 석지훈.”

오백호 실장의 소개에 엄우석 PD와 메인 작가의 눈이 석지훈에게로 쏠렸다.

“안녕하세요.”

석지훈이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석지훈은 순수하게 엄우석 PD의 커다란 얼굴에 놀란 상태였다.

‘캠핑 48시간’을 보다 보면 종종 엄우석 PD가 등장하곤 했는데, TV에서 봤을 때보다 훨씬 얼굴이 커 보였다.

“엄우석입니다.”

자신을 바라보는 어린 석지훈을 훑으며 엄우석 PD가 손을 내밀었다.

엄우석 PD로서는 석지훈이 ‘캠핑 48시간’에 어울리는 인물일지 오늘 미팅으로 제대로 파악해야 했다. 새로운 출연진을 들이는 일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앞으로의 ‘캠핑 48시간’ 프로그램의 미래가 달린 일이었다.

***

며칠 후, 케이케이 멤버들은 활동을 정리하는 마지막 팬 사인회 현장에 와 있었다.

왕십리의 한 영화관에서 진행되는 팬 사인회로 멤버들의 사진을 찍은 팬페이지 마스터들에게는 최악의 사인회 장소이기도 했다.

“조명 너무 구려······.”

“이거 봐봐. 최대한 올려서 찍었는데도 이래.”

“아휴, 화질 다 깨지겠다.”

“그냥 캠 찍어야 할까봐. 짱나네. 하필 마지막 사인회를 말이야.”

“왜 이런 데로 장소를 잡았대······.”

“몰라. 일 잘하다가 한 번씩 꼭 이런다니까.”

“근데 언니 이번에 몇 장 사고 왔어요?”

“나?······.”

팬 사인회가 시작되기 전, 옆자리에 앉게 된 도욱의 팬페이지 ‘빛나는 도욱’ 마스터와 박태형의 팬페이지 ‘비주얼 서스펙트’의 마스터가 신나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나 42장 샀어. 제발 넌 조금만 샀다고는 하지 말아줘.”

“무슨 소리예요! 저 45장 사고 당첨됐어요. 보니까 이번에 40장이 컷이었던 것 같은데.”

“진짜? 와 우리 컷수 장난아니게 높아졌다.”

“인기 너무 많아져가지구···. 돈 없어서 다음 활동 다닐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애들 슈스 돼도 힘들다.”

“그러니까요.”

케이케이의 팬 사인회에 오기 위해서는 완전히 추첨 방식이 아닌 이상, 이제는 40여 장의 앨범을 사야만 했다. 백 장을 샀다는 해외 팬들도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팬페이지 마스터들이 푸념을 늘어놓는 사이, 주변 공기가 분주해졌다.

“원아―! 사랑해 원아, 민지 왔엉!”

“정윤기! 윤기 오빠아아앙-!”

“어어어어, 형서야아 여기이이이이!”

케이케이 멤버들이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소리를 지르는 팬들도 있는 반면, 팬페이지 마스터들은 카메라를 들어 멤버들을 찍기 바빴다. 멤버들이 인사를 하기 전부터 쉴 새 없이 셔터 누르는 소리가 요란했다.

“조용히 좀 해주시고요. 그럼 1번부터 10번까지 나와서 줄 서실게요.”

케이케이 멤버들이 인사를 한 후, 팬 사인회 진행자의 안내에 따라 팬들이 우르르 나와 줄을 서기 시작했다.

“도욱 오빠 오늘 의상 미쳤다! 오빠한테 내 인생 바치고 싶어.”

“이미 바쳤으면서 무슨 소리예요, 언니.”

정신없이 셔터를 누르면서도 도욱을 칭찬하기에 여념 없는 ‘빛나는 도욱’ 마스터에 ‘비주얼 서스펙트’ 마스터가 고개를 저었다. 심지어 그녀에게 도욱은 ‘오빠’도 아니었다. 그리고 그녀들이 들고 있는 카메라와 렌즈 값만 기백만 원이었다.

멤버들은 평소에 해왔던 대로, 팬들의 말에 귀 기울이며 최선을 다해 팬 사인회 스케줄에 임했다.

활동 마지막 팬 사인회였기 때문에 특별히 더 신경을 쓰고 있었다.

“이거······.”

석지훈은 내밀어진 앨범 재킷에 사인을 하곤 그 위에 붙여진 포스트잇을 유심히 보았다.

[멤버들 중 가장 좋아하는 형은?]

막내인 석지훈이 자주 받는 질문 중에 하나였다. 평소였다면 장난식으로 안형서를 제외한 모든 멤버들을 체크했을 터였다.

사실 석지훈은 형들 모두를 좋아했다.

우선 박태형은 정말로 착했다. 다른 멤버들이 착하지 않다는 게 아니라 그야말로 태어날 때부터 순둥이인지 말은 잘 하지 못하지만, 옆에서 잘 챙겨주었다.

정윤기는 가장 큰 형이자 리더답게 무뚝뚝하지만, 가끔 격려도 해주면서 팀을 이끌어 가는 타입이었다.

김원은 늘 밝고 유쾌한 모습으로 긍정적인 기운을 발산했다. 그런 김원을 보고 있으면 석지훈의 마음까지 밝아지는 듯했다.

안형서는 형이지만 석지훈이 가장 친하게 지내는 멤버이기도 했다. 철없는 모습이 친구 같아 장난도 많이 치지만, 때때로 비치는 속내는 무척이나 깊었다.

도욱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실질적인 팀의 리더였고, 정신적인 버팀목이었다. 도욱이 없었다면 지금의 케이케이는 없었을 것이라는 게 멤버 모두가 가지고 있는 생각이었다.

그렇게 모든 멤버에게 깊은 애정을 느끼는 석지훈이었지만, 오늘만은 잠시간의 고민 끝에 도욱을 체크했다.

“도욱 오빠요? 도욱 오빠랑 제일 친한 거예요?!”

석지훈과 도욱이 함께 있는 모습이 자주 눈에 띈 적은 없었다. 석지훈은 주로 박태형이나 안형서와 함께였다.

때문에 석지훈이 도욱에 체크하자 팬이 놀라 물었다. 무언가 대답하려는 석지훈을 끊고, 팬 매니저가 팬을 다음 멤버에게로 넘겼다. 대답을 듣지 못한 팬이 아쉬워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석지훈은 맨 앞에 앉아있는 도욱 쪽으로 잠시 시선을 던졌다.

석지훈은 얼마 전 있었던 ‘캠핑 48시간’ 미팅을 생각했다. 미팅은 생각보다 더 순조로웠다. 엄우석 PD는 석지훈의 나이, 성격, 지금의 위치, 이전의 이야깃거리 등을 생각하면 자신이 찾던 딱 맞는 캐릭터라며 석지훈을 무척이나 맘에 들어했다.

메인 작가의 경우 이렇게 훈훈한 외모가 ‘캠핑 48시간’에 단 한 명만 있어도 행복할 거라 말했다.

문제는 조명국 부장이었다. 조명국 부장은 어떻게든 더 유명한 인물을 끼워 넣고자 했다. ‘캠핑 48시간’이 경쟁 프로그램에 비해 부족한 것이 바로 그 지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프로그램 취지와 분위기를 망치지 않으려는 엄우석 PD와의 신경전이 며칠 사이 엄청 났다.

결국 한 가지 조건을 달고 석지훈은 ‘캠핑 48시간’의 멤버가 되었다.

첫 촬영 때까지 꽁꽁 숨겨두다 이후에 깜짝 공개할 예정이었다.

조건은 다른 게 아니었다.

‘도욱이 형의 출연······.’

석지훈은 처음부터 끝까지 도욱 덕분에 ‘캠핑 48시간’ 고정 멤버라는 커다란 기회를 얻은 셈이었다. 어제 잔뜩 축하를 받은 상태라 기쁜 마음도 컸지만, 그만큼 도욱이나 케이케이의 이름에 먹칠을 하면 안 되겠다는 부담감도 점점 커지고 있었다.

***

팬 사인회가 끝난 후, 도욱은 멤버들과는 다른 차를 타고 숙소가 아닌 신사동으로 향했다.

아직 메이크업도 지우지 못한 채라 피로가 몰려왔지만, 약속 상대가 상대이니만큼 피로보단 긴장감이 높았다.

신사동의 한 스튜디오 앞에 서 도욱은 차 안에서 편안한 자세로 눕다시피 해 앉아있느라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바로 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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