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2
푸른 하늘 (2)
안형서의 얼굴을 보며 도욱이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맞아요.”
“정말?”
“네.”
안형서는 벙찐 채 노래에 더욱 집중했다. 김원은 안형서가 놀라는 이유를 알지 못해 어리둥절했다.
동시에 고개를 까닥이며 발을 구르고 있었다. 처음 듣는 노래인데도 언젠가 들어본 듯 익숙했고, 쉬운 멜로디는 머리에 쏙 박혀 들었다. 입에서 저도 모르게 흥얼거리는 소리가 흘러 나왔다.
이번 정규 3집 앨범은 기획 단계에서부터 ‘조금 더 쉬운’ 노래를 만들기로 했었다.
‘Sorry but I Love You’, ‘Very Sorry’, ‘바람 부는 날’, ‘LAST DANCE’, ‘Howl’까지.
리패키지 앨범까지 하면 케이케이는 벌써 다섯 곡의 타이틀을 가진 그룹이었다.
퍼포먼스적으로 완벽한 그룹이라는 인상은 물론이고 대중의 귀를 황홀하게 하는 그룹이라는 평가가 어느덧 케이케이에게 따라 붙었다. 제 믿고 듣는 가수라는 타이틀도 어색하지 않았다.
언제나 세련되고 트렌드를 선도하는 노래들로 평론가들의 찬사까지도 얻어냈다. 실제로 케이케이의 음악은 기존의 음악들보다 반보 정도 앞선 지점이 있었다.
때문에 대중성이 약할 만도 한데 그 강약을 아주 잘 조절했기 때문에 신선함을 던지면서도 절대 대중성은 잃지 않아왔다.
그런 덕에 케이케이가 노래를 띄어 놓으면 그러한 장르의 곡들이 우후죽순 따라 나왔다. 용감한외동 피디가 쓰는 스타일의 비트가 유행하게 된 것도 그런 종류였다.
그러나 뒤늦게 산발적으로 나온 곡들은 몇 곡을 제외하고는 성공하기 힘들었다. 오히려 대중들을 질리게 만들 뿐이었다.
케이케이는 자신들의 스타일을 복제하지 않고, 오히려 계속해서 새로운 스타일을 보여주고 있었다.
때문에 3집 앨범의 방향을 놓고 앨범제작팀과 멤버들, 특히 프로듀서인 도욱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해야만 했다.
이번 앨범 또한 지난 앨범들처럼 반보 앞서는 음악으로 트렌드를 이끌며 성공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상당했다.
그러나 도욱은 생각을 달리했다.
‘이제까지 충분히 세련된 이미지는 구축해왔다. 어느 정도냐 하면······.’
케이케이가 하는 것이 곧 트렌드라는 생각까지 업계인들은 어느 정도 하고 있었다.
젊고 세련된 멤버들의 이미지에 더해 패션 쪽까지 케이케이가 섭렵하면서 그러한 생각은 더욱 굳어졌다.
‘지금 필요한 건 그런 게 아니다. 톱으로 가기 위해선······.’
사방신화라는 거대한 팬덤을 가진 그룹을 넘어야 했고, 이진리와 같이 ‘국민’이라는 타이틀을 앞에 붙인 가수들 또한 넘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Very Sorry’보다 더 넓고 깊게 사람들의 귀를 파고들어야 했다.
‘세대를 넘어야 해.’
도욱의 결론은 그러기 위해선 본래 케이케이의 노래를 듣는 주요 세대를 넘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그 정도는 포섭해야 최고의 자리로 올라갈 수 있을 것이었다.
“오······. 나 후렴 나오기 전까지는 진짜 몰랐어.”
“왓?”
노래를 다 들은 후 안형서가 말하자 김원이 뭘 몰랐냐는 듯 물었다. 김원은 엄지를 치켜세우며 노래가 좋다는 표현을 하고 있었다.
“리메이크 곡이에요.”
김원이 놀란 듯 눈을 깜박였다.
“리메이크? 진짜? 아 돈 노!”
“네. 원곡은 지문제 씨의 푸른 하늘이라는 곡이에요.”
그래서 선택한 게 리메이크였다.
현재의 오십 대들도 푸른 하늘이라면 잘 알고 있는 곡이었다.
도욱은 이미 서태준의 ‘친구에게’ 리메이크 작업을 하면서 리메이크의 힘을 알게 되었다.
쉽게 갈 수 있는 길이었다. 그러나 쉽게 가는 길이라 오히려 여러 함정에 빠질 수 있었다. 위험요소가 역시나 존재했다.
제일 큰 문제는 원곡을 뛰어넘지 못할 때 벌어졌다.
리메이크하게 되는 곡들은 당연하게도 이미 유명하고, 충분히 좋은 곡들이었다. 그러한 곡을 재편곡하는 것이니 편곡의 방향에 따라서 원곡보다 못하다는 욕만 듣고 끝나는 리메이크곡들이 수두룩했다.
거기에 질린다는 평까지 들을 수 있었다. 이미 많이 들었던 노래를 대중으로는 또 듣게 되는 셈이니 당연하게도 그랬다.
그래서 도욱은 전국민이 알고 있는 노래들 중에서도 어떤 노래를 정할지 심사숙고했다. 앨범제작팀 사람들과도 하루가 멀다 하고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여러 노래들을 고민했다.
그러다 도욱은 자신만의 기준을 몇 가지 세웠다.
일단은 최소 십오 년 전 노래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너무 많이 들어 질린다는 느낌은 피할 수 있을 듯했다.
두 번째로는 후렴구 정도가 귀에 익어 있어야 한다는 점이었다. 오래 된 노래임에도 불구하고 리메이크 곡으로서의 이점을 취하려면 그 정도 익숙함은 필수였다.
또 한국인에게 맞는 서정성과 흥겨운 리듬을 가진 곡을 찾아야 했다. 케이케이의 색깔을 덧씌우기엔 그런 곡이 좋았다.
그러한 조건을 정한 뒤 찾은 노래가 지문제의 곡이었다.
지문제의 곡 중 무척이나 좋은 노래들이 많았음에도 푸른 하늘은 아직까지 리메이크 된 적이 없었다.
그것 또한 도욱이 생각하는 최상의 조건이었다. 도욱이 곡을 정하자 앨범제작팀 쪽에서는 곧바로 지문제 쪽과 협의에 들어갔다. 푸른 하늘 작곡가 쪽에서는 흔쾌히 리메이크를 허락했다.
지문제 또한 나중에 꼭 한 번 들어보고 싶다는 말을 남겼다.
“오리지널 멜로디 들어볼래!”
김원의 요청에 도욱이 지문제의 푸른 하늘을 들려주었다.
곡을 듣던 김원이 안형서와 같이 놀란 얼굴을 했다.
“처음만 들어서는 전혀 모르겠네. 후렴구 가면 완전히 알겠고!”
도욱은 자신의 의도가 정확하게 먹혀 들어간 것에 입꼬리를 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편곡에 있어서 도욱이 신경 쓴 부분이 바로 그 점이었기 때문이다.
리메이크를 하면서도 절대 케이케이의 색깔을 완전히 벗어서는 안 됐다. 때문에 일부러 처음 시작에는 자주 쓰던 비트를 깔고 랩 파트를 넣어놓았다.
그래서 처음 들었을 땐 그저 신나는 요즘 노래라고만 생각되다가 후렴구에 이르면 ‘어?’ 하고 익숙한 멜로디를 저도 모르게 따라 부르게 되는 것이었다.
“곡······ 어떤 것 같아요?”
도욱의 물음에 김원이 뭘 묻냐는 듯 다시 한 번 엄지를 들었다.
“우리 회의한 그대로의 노래네. 우리 색깔은 안 잃으면서도 좀 더 넓은 세대를 공략할 수 있는······! 도욱아, 너 진짜 천재 아니야?”
안형서의 말에 도욱이 뒷머리를 긁적였다.
“다행이에요. 다른 멤버들도 좋아해야 할 텐데.”
“걱정 마! 진짜 수고 많았다. 뉴욕까지 다녀오느라 피곤했을 텐데. 형도 빨리 작곡 공부할게.”
안형서의 말에 도욱이 웃었다. 사실 도욱은 언제나 멤버들에게 약간의 미안함을 가지고 있었다.
성공을 하면 좋은 일이겠지만, 사람마다 가치관은 다른 법이었다. 큰 성공보단 약간이라도 여유를 가지는 삶이 더 좋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케이케이의 스케줄이나 활동이 쉴 틈 없이 돌아가고 있는 건 도욱의 욕심이 크게 작용하고 있었다. 원래대로라면 케이케이는 이러한 성공을 얻지도 못했겠지만, 대신 이렇게 바쁘고 부담감에 눌려 있지도 않았을 것이다.
다행인 점은 멤버들 모두 점점 더 인기를 키워나가고, 한 단계씩 올라가는 것에 큰 성취감을 느낀다는 것이었다.
말뿐이어도 고마운 말이었다.
“나 진짜 작곡 공부 하고 있어.”
“알아요. 고마워요, 형.”
“고맙긴. 나도 케이케이 멤번데!”
메시지 알림음이 뜨는 휴대폰을 확인하곤 안형서가 말을 이었다.
“윤기 형이랑 다른 멤버들 지금 숙소온대.”
“그래요?”
“엉. 백호 형도. 회사에 쌓여있는 팬들 선물 다 챙겨 오고 있다는데?”
“아아······.”
도욱은 끄덕이며 곧 올 멤버들에게 곡을 들려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근데 도욱아.”
“네?”
안형서가 조금 말하기 꺼려진다는 듯, 하지만 어쩔 수 없다는 듯 말을 이었다.
“너······. 옷 갈아입어야 하는 거 아닌가.”
“네?”
순간 도욱은 자신의 몸을 위아래로 훑었다. 그제부터 오늘까지 후반부 작업을 하며 며칠 내 작업실에 박혀있던 도욱은 보라색 트레이닝복을 입고 있었다.
삼 일이나 입은 트레이닝복이 조금 추레해 보이긴 했다. 어제 새벽 먹다 튄 짜장라면 국물이 가슴팍에 묻어있는 게 가장 문제였다.
“하하. 샤워는 매일 했는데.”
도욱이 조금 머쓱하게 중얼거렸다. 숙소에서는 다들 편한 상태였기 때문에 이런 지적은 흔치 않은 일이었다.
“아니······, 뭐, 지금도 나쁘진 않은데. 그냥.”
말을 꺼낸 안형서가 더 미안해하는 듯한 표정을 짓자 도욱은 아무렇지 않게 일어나 그럼 옷 갈아입고 올게요, 했다.
도욱의 말에 안형서가 끄덕였다. 옆에 선 김원도 안형서과 비슷한 생각이었는지 답지 않게 아무 말 없이 어색한 웃음만 흘리고 있었다.
***
도욱이 샤워를 하고, 보라색 트레이닝복 대신 새 검은색 트레이닝복으로 갈아입고 나오는 사이, 숙소에는 어느덧 멤버들이 모여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타이틀곡이 될 곡을 다른 멤버들에게도 들려주고 싶은 도욱이었지만, 거실에는 선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고 각자 멤버별로 자신에게 온 선물과 편지 등을 나눠 갖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렇게 헤집지 말고, 천천히 해라.”
도욱을 등진 채 오백호 실장이 멤버들에게 무어라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오셨······.”
도욱이 오백호 실장과 멤버들에게 인사를 하려던 때였다.
“인마야, 네가 글케 말하면 도욱이가 뭐가 되는데?”
“아니. 내가 뭐 틀린 말 했어?”
정윤기와 안형서였다. 두 사람은 연습생 때부터 워낙 친하게 지내 와서 멤버들 중에선 유일하게 서로 말을 놓는 사이이기도 했다.
사실 엄격하게 형, 동생 사이에 존대를 해야 한다는 규칙은 연습생 때 있었던 규칙이었고, 이제 그런 규칙들을 별로 상관하진 않았지만, 안형서를 제외한 동생들은 꼬박꼬박 형들에게 존대를 해오는 상황이었다.
두 사람은 친한 만큼 잘 티격태격 대는 사이이기도 했다. 늘 하는 투닥거림이라고 생각하기엔 두 사람의 목소리가 몹시 좋지 못했다.
도욱은 갑자기 정윤기의 입에서 튀어 나온 자신의 이름에 숨죽이고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틀린 말? 그게 말이가. 입 밖으로 뱉으면 다 말인 줄 아나.”
“뭐. 내가 도욱이 욕한 것도 아닌데 왜 그래? 그냥 그렇잖아. 도욱이 선물이 나머지 멤버들 합한 것만큼 있는데.”
“그래서, 뭐. 뭐가 불만인데.”
“불만이 아니라 그냥 그렇다는 거지. 도욱이 혼자 인기 많다고. 부럽다고!”
“니가 지금 그냥 부러워하는 말투가.”
두 사람의 말투가 점점 거세지고 있었다. 서로를 노려보는 눈빛에도 불꽃이 일었다.
도욱은 선물 꾸러미들을 보며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이전에도 멤버별로 약간씩 차이가 나는 건 어쩔 수 없는 사실이었다. 신경전이 있을 법도 했지만, 멤버들 모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자신들도 왜 차이가 가는지 납득이 갔기 때문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그랬다. 인기에 차이가 있는 건 별수 없는 일이었다.
이제 와서 이런 말다툼이라니, 것도 자신 때문이라니 도욱은 무어라 입을 열지 못한 채였다. 게다가 자신이 보기에도 평소와 달리 선물에 너무 큰 차이가 났다.
“야. 너네 뭐하냐.”
오백호 실장이 두 사람을 가리키며 말했다. 분위기는 오히려 더 무거워지고 있었다.
“형. 제가 뭘 잘못했어요? 윤기 형이 도욱이만 예뻐하니까······.”
안형서가 억울하다는 듯 외쳤다. 상황은 점점 이상한 쪽으로 흐르고 있었다.
‘안형서가 평소 저런 마음이 있었던 건가······.’
정말로 아무런 티도 나지 않았기 때문에 도욱은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마음이었다.
안형서도 나름대로는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차이가 나니 문득 서러웠을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도욱은 안형서를 이해하려 했다.
자신이 멤버들을 더 챙기지 못한 것 같아 도욱의 마음 또한 무거워졌다. 이래서야 케이케이가 분란에 휩싸이는 이유가 자신이 될 수도 있었다.
“형, 도욱이 형 듣겠어요······.”
“뭐! 너도 도욱이 편이냐?”
“아니 그런 게 아니라!”
눈치를 보며 안형서에게 한마디하던 석지훈이 우두커니 서 있는 도욱을 발견하곤 말을 멈췄다.
모두 석지훈의 시선을 따라 도욱을 바라보게 되었다. 분위기는 걷잡을 수 없어지고 있었다.
“아, 저······.”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할 듯 싶어 도욱이 입을 열었을 때였다.
“도욱아, 너도 눈이 있으면 이거 보이지? 이 선물들 다 네 거야.”
“형! 도대체 왜 그래요!”
안형서가 이제는 아예 도욱에게 시비를 거는 듯하자 석지훈이 화를 내며 안형서를 말렸다.
“인마, 니 진짜 미친나!”
“형들 진짜 싸우지 말란 말이에요!”
“지······ 지훈아, 너 울어?”
난장판이었다.
화를 내는 정윤기와 안형서. 처음 있는 멤버들 간의 분열이었다. 그런 상태를 견디지 못하겠는지 석지훈이 분한 듯 눈물을 흘렸다. 박태형이 석지훈을 달랬다.
“일단은······. 내가 죄송해요. 제가 뭔가 섭섭하게 해드렸다면 죄송해요, 형서 형.”
도욱이 어렵게 입을 떼던 때였다. 어떻게든 안형서의 마음부터 풀어주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때였다.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에 도욱이 돌아보자, 자리를 비웠던 김원이 들어오고 있었다. 김원의 손에는 초가 꽂힌 케이크가 올라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