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1
푸른 하늘 (1)
도욱은 말을 잇지 못했다.
이대형 팀장도 굳은 표정이었다. 평소 서글서글하게 웃던 인상과는 사뭇 다른 인상이 되어 있었다.
어떤 의도를 가지고 하는 말인지 쉽사리 파악되지 않았다.
도욱은 일부러 당황을 숨기지 않았다. 그게 더 자연스럽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눈을 몇 번 더 깜박인 뒤, 도욱이 물었다.
“왜 그렇게 생각하시는 건가요?”
도욱의 질문이 이대형 팀장이 답했다.
“어쩐지 자꾸만 그런 생각이 들어서요. 도욱 씨가 저에게 선을 그으시는 것 같기도 하고······.”
이대형 팀장이 표정을 풀며 덧붙였다.
“하하. 아직 같이 일한 지도 얼마 되지 않았는데 이런 말 한 게 부끄럽네요. 제가 조금 오바한 건가 싶고.”
때마침 승무원들이 지나가며 더 마시고 싶은 음료가 있는지 물었다.
목이 타는 듯한 기분에 도욱은 따뜻한 홍차를 주문했다. 이대형 팀장은 입가심으로 가볍게 한 잔할 생각으로 와인을 부탁했다.
주문을 한 후 도욱이 이대형 쪽으로 보며 도욱이 손사레를 저었다.
“아닙니다. 그렇게 생각을 하게 해드렸다면 제가 오히려 죄송하네요.”
“제가 너무 도욱 씨랑 빨리 친하게 지내고 싶은 마음에······. 성급했을지도 모르겠어요.”
“그런 걱정은 하지 마세요. 저야말로 이 팀장님과 잘 지내고 싶습니다. 마케팅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해주면 제가 고맙죠. 뉴욕 출장을 하는 동안 ‘역시’라는 생각을 몇 번이나 했는지 몰라요. 정말 제가 본 이들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엔터테이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도욱은 이어지는 이대형 팀장의 칭찬에 어찌할 바를 모른 채 어색하게 웃어 보일 수밖에 없었다.
매번 듣는 칭찬들이라도 항상 부끄러운 마음이 드는 게 사실이었다.
도욱을 향해 쏟아지는 칭찬들이 단지 개인적인 감정이 아닌, 모두 사실에 기반한 칭찬이었어도 본인이 듣기에는 부끄러운 법이었다.
“진심이에요. 갖춰야 할 자질을 모두 갖췄달까······. 그러니 도욱 씨와 더 친해지고 싶은 욕심이 자꾸만 드는 겁니다, 제가.”
이대형 팀장이 말을 마치며 하하, 하고 웃었다.
함께 일한 시간이 짧은 탓도 있었지만, 사실 그렇게 따지자면 이번 뉴욕행 스타일리스트였던 한정아는 며칠 전 처음 만난 사이였다.
확실히 이대형 팀장을 처음부터 도욱이 경계했기 때문에 이대형 팀장이 느끼기에도 다른 직원들을 대하는 도욱과 자신을 대하는 도욱이 다를 수 있었다.
‘뉴욕에 와서부터는 적극적으로 친하게 한다고 했는데도 어쩔 수 없이 풀리지 않은 경계가 티가 났나보군.’
그런 생각과 함께 도욱은 역시 이대형 팀장이 사람 좋게 웃고 있어도 예리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왜 팀장님이 아라 엔터에서 왔기 때문에 제가 불편해할 거라고 생각하셨나요?”
도욱이 묻자 이대형 팀장은 잠시 고민하는 듯하다 답했다.
“사실 케이케이와 맨투맨이 라이벌이라고 불렸었잖아요. 거기에 특히 도욱 씨와 서준은 비교하는 기사도 많이 올라왔고······. 그래서 아무래도 아라 엔터 사람은 불편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아라 엔터테인먼트에서 힛 엔터테인먼트로 자리를 옮기면서 고민한 부분인 듯했다.
도욱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최근 케이케이가 급격하게 성장하면서 라이벌 구도가 생긴 것일 뿐, 아라 엔터와 힛 엔터는 규모적으로 아직까지도 큰 차이가 있었다.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3대 기획사 사이에서 이직을 하지 않는 것은 불문율에 가까웠다.
특히 3대 기획사 중에서도 오랜 기간 라이벌 구도를 구축해온 아라와 청월, 두 회사 간에 이직하지 않는 건 더욱 엄격한 불문율이었다.
누가 ‘안 된다’고 말한 적은 없지만, 좁은 업계이니만큼 그러한 일은 웬만하면 지켜져 오고 있었다.
그렇지만 대형 기획사에서 중견 기획사로 스카우트 되어 옮기는 건 생각보다 있는 일이었다.
대형 기획사의 노하우를 전수받기 위해 실무진 중에 가장 높은 중간관리자들을 빼오려고 중견 기획사들은 노력했다.
그러나 대형 기획사에는 아무래도 ‘이름값’이라는 게 있기 때문에 제대로 스카우트를 하려면 훨씬 높은 보수 등을 쳐주어야 했다.
아라와 힛 엔터가 라이벌이라고 불릴 만한 위치는 아니었기 때문에 이대형 팀장의 이직은 대형 기획사에서 중견으로 승진 및 연봉을 올려 이직한 경우에 해당했다.
다만, 회사 차원의 라이벌은 아니어도 담당하게 되는 그룹이 라이벌 관계에 있는 그룹인 것이 이대형 팀장의 마음을 찝찝하게 만든 듯했다.
도욱이 이대형 팀장을 경계했던 이유도 바로 그 이유였다.
도욱은 어차피 이렇게 이대형 팀장이 말을 꺼낸 이상, 앞으로의 일을 위해선 어느 정도 자신도 솔직해져야겠다고 생각했다.
속내를 다 드러낼 필요는 없어도, 어느 정도는 자신의 카드도 보여줘야 상대도 자신을 드러내기 마련이었다.
“아예 아무렇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죠.”
이대형 팀장이 조금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가 이내 수긍했다.
“역시······ 그렇군요.”
“아무래도 라이벌이라는 말들에 신경을 쓰고 있긴 해서···.”
도욱의 말에 이대형 팀장이 말했다.
“조금 의외라는 생각도 드네요. 도욱 씨는 그런 생각 잘 안 하실 줄 알았습니다.”
“저도 사람이라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하하. 오히려 도욱 씨의 인간적인 면모를 발견한 것 같아서 좋네요.”
조금 웃던 이대형 팀장이 웃음기를 지우곤 말했다.
“그렇다면 더 다행인 것 같기도 합니다.”
도욱이 무슨 말이냐는 듯 쳐다보자 이대형 팀장이 픽하니 웃었다. 평소 아무 시름없어 보이던 웃음과는 다른, 무척이나 허무한 웃음이었다.
“조애니 부장님한테도 말씀드렸던 부분인데······ 사실 저는 케이케이를 더 잘되게 하고 싶어서 이곳에 왔습니다.”
너무 당연한 면접용 답변처럼 느껴져 도욱은 그저 이대형 팀장을 보고만 있었다.
“힛 엔터에 비전이 있다고 느낀 것도 사실이지만, 진짜 이유는 거기에 있었습니다. 맨투맨보다 지금도 잘되고 있지만, 앞으로는 더 잘되게 하고 싶었거든요. 케이케이를요.”
그냥 단순히 케이케이를 잘 키워보겠다는 포부가 아니었다. 무언가 뼈가 있는 말들이었다.
“아라 엔터에 있을 때는 케이케이가 싫었던 때도 있었어요, 우스운 얘기지만. 하하. 제가 이렇게 유치합니다.”
“···싫어하셨다고요?”
“네. 제 자랑 같지만 저도 꽤나 능력 있는 걸로 인정 받던 사람입니다. 맨투맨 기획에 참여한 것도 그 덕분이었죠.”
도욱은 끄덕이며 이대형 팀장의 말에 귀기울였다.
“앨범 제작이나 다른 분야까진 모르겠지만, 저는 마케팅 부분에 있어서는 맨투맨에 대한 제 기획이 엉망이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맨투맨의 마케팅 방식은 이전에 사방신화가 성공했던 마케팅 방식과 거의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사방신화 마케팅에서 좋았던 점들을 취하면서도, 맨투맨이라는 그룹의 특성에 맞게 약간 변형했다. 노출을 극대화하면서도 신비주의를 잃지 않는 형태였다.
좋은 마케팅이었다고 도욱 또한 생각했다. 게다가 원래대로였다면 맨투맨은 케이케이보다 높은 위치에 가 있었을 것이다.
케이케이가 너무 잘하게 되었을 뿐이지 맨투맨이 못한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제 실패라고 하더군요.”
이대형 팀장의 말에 씁쓸함이 묻어났다. 도욱은 놀람과 동시에 안타까움을 느꼈다.
“도대체 왜······.”
“뭐 저만의 실패라고 한 건 아닙니다. 맨투맨을 제작한 스태프들이나, 맨투맨 멤버들이나 압박을 받는 건 모두 마찬가지였으니까요.”
“사실 그 정도도 실패라고 하기엔······ 이제 맨투맨도 2집인데, 성공한 것 아닙니까? 아직 다른 기회도 많이 남아있고요.”
“실패와 성공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른 거니까요. 아라 엔터에서는 실패인 거였겠죠. 특히 서 본부장에게······.”
말을 잇던 이대형 팀장이 입을 다물었다. 아무래도 너무 특정한 개인까지 거론하며 자세히 얘기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여태까지 잘해왔는데. 케이케이에게 조금 밀렸다고 해서 곧바로 저를 심하게 몰아붙이는 회사를 보면서 회의감을 느꼈습니다.”
도욱은 이대형 팀장의 말을 들으며 속으로 고개를 저었다.
‘서중원 본부장······. 스스로 사람을 잃는구나.’
아마도 아들인 서강준이 멤버의 한 명이었고, 자신이 야심차게 기획한 만큼 당연히 1등을 하며 성공할 거라는 생각이 서중원 본부장에겐 있었을 것이다.
그러한 자신의 오만이 깨어지는 과정에서, 더 잘해볼 생각은 하지 않고 아랫 사람들만 괴롭힌 결과가 오늘이었다.
이대형 팀장과 같은 인재가 힛 엔터테인먼트로 넘어오게 된 것이다.
“사실 맨투맨 멤버들은 만나도 아무 감흥이 없습니다. 오히려 내가 기획하고 홍보를 하면서도 만나고 싶지 않았달까······. 공적인 이야기 몇 마디 나누고, 한참 나이 많은 저한테 뒷배를 믿고 반말이나 하는 멤버도 있었고요.”
도욱은 그랬던 멤버가 서강준이냐고 굳이 묻지 않았다. 안 봐도 뻔했기 때문이었다.
“회의감을 느끼던 차에 조 부장님께 연락을 받았고, 훨씬 좋은 조건도 들었습니다. 조건도 조건이었지만, 처음엔 도대체 얼마나 잘하는지 케이케이를 직접 눈으로 보고 싶은 생각도 있었어요.”
“그랬군요.”
“아라를 나오기로 맘 먹은 건, 케이케이의 무대를 보고서였습니다. 전혀 다르더군요. 맨투맨 멤버들의 눈빛과. 무대를 정말로 즐기는 모습들······. 진심을 다해 마케팅할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봐주셨다니 감사합니다, 팀장님.”
“실제로 만나니 더 피부로 와닿았습니다. 그리고 아라를 나오기 전, 마지막 면담에서 역시나 회사에서는 그러지 말고 시 한 번 잘해보자는 말 대신 폭언을 퍼풋더군요. 잘 되나 보자고. 남은 정마저 다 떨어졌습니다.”
아라로는 절대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상태였다.
도욱은 이대형 팀장이 그동안 여러 과정을 거쳐 이곳에 오게 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많은 고민이 뒤따랐을 것이다.
이대형 팀장은 자신의 속내를 다 보여주고 있었다.
뉴욕에서 짧은 시간 동안 도욱의 바로 옆에서 도욱을 지켜 보며, 도욱에 대한 확신을 굳힌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비록 자신을 경계하고 있는 듯해도 어쩔 수 없는 선한 본성이 느껴졌다.
이대형 팀장에게는 나름대로 야망이 있었다. 마케팅 관련 기획자로서 이 업계 최고의 자리에 오르고 싶다는 야망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도욱이 인생을 걸고 열심히 노력해 볼 만한 스타임은 벌써 여러 번 확인한 상태였다. 아라와 등지고 힛 엔터에 온 것에 어떤 후회도 남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그러기 위해선 도욱의 신뢰가 무엇보다 필요했다.
그리고 허심탄회한 고백을 통해 어느 정도 신뢰를 얻었다는 느낌이었다.
실제로 도욱은 진심으로 이대형 팀장을 이해하고 있었다. 한때 기획사 직원으로서 인간적인 동질감도 느꼈다.
아무래도 기획사는 아티스트 위주이다보니 때로 직원들은 아티스트의 모자란 면을 커버해주는 것도 모자라 자신이 대신해 끌어안아야 할 때가 많았다.
“팀장님.솔직하게 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피곤할 텐데 제 개인적인 이야기 들어주셔서 고맙네요. 도욱 씨가 이해하기 힘든 회사 문제일 수도 있는데.”
“아닙니다. 앞으로는 더 잘해볼 수 있을 것 같아 좋습니다.”
이대형 팀장과 도욱이 마주 보며 웃었다.
도욱은 적의 내부까지도 잘 아는 든든한 아군을 한 명 더 얻은 셈이었다.
***
뉴욕에서 돌아온 며칠 후, 도욱은 숙소에 남아있던 멤버들을 자신의 작업실로 불러 모았다.
“뭔데?”
“왓 해프은~!”
안형서와 김원이 도욱의 작업실로 들어왔다.
도욱은 곧 나오게 될 3집 앨범의 타이틀곡을 가장 먼저 케이케이 멤버들에게 들려 주고 싶었다.
이번 앨범은 케이케이가 정점에 가게 될 아주 중요한 앨범이었다.
“곡이 나와서요.”
“리얼리? 타이틀 곡 나온 거야?!”
“네. 의견 듣고 편곡을 해봐야 알겠지만······.”
“빨리 들어볼래! 빨리!”
안형서가 도욱을 재촉했다. 멤버들도 어서 컴백을 하고 싶다는 열망으로 가득한 상태였다.
이미 콘서트 투어와 시상식 무대 등으로 무대의 즐거움을 최상까지 알아버린 상태였다. 어서 무대에 또 오르고 싶었다.
도욱이 웃으며 노래를 재생시켰다.
“어?”
후렴구에 다다르자 안형서가 들어본 듯한 멜로디에 미간을 찌푸렸다.
“이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