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5
이슈메이커 (1)
“피디님?”
도욱도 놀라 용수철 피디를 보았다. 갑작스러운 등장임은 확실했다.
한겨울임에도 용수철은 징이 박힌 라이더 재킷을 입고 있었다. 첫만남을 떠올리게 하는 의상이었다.
물론 많은 돈을 벌게 된 용수철이었기 때문에 현재의 라이더 재킷은 이전의 재킷과는 가격대가 다른 것이었다. 남대문에서 샀던 재킷은 이제 이태리 브랜드 재킷이 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용수철 개인이 가지는 특색은 하나도 달라진 게 없는 듯해 도욱이나 멤버들은 그러한 용수철의 모습이 반가울 따름이었다.
“오랜만이네요.”
용수철 피디가 멤버들을 살피며 인사했다. 멤버들이 반갑게 용수철 피디에게 다가가 악수를 주고받았다.
자연스러워 보였지만 막내인 석지훈은 용수철 피디에게 앙금과도 같은 감정이 남아 있었다. 자신들과 함께 성장하던 피디였는데, 다른 회사에 가겠다고 하니 어쩐지 버림받은 기분을 당시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또한 애정이 있어서 느끼는 감정이었다.
“신인상 축하드려요.”
악수를 나누며 도욱이 용수철에게 축하를 건넸다.
“내가 받은 것도 아닌데요.”
“피디님이 키우신 그룹인 거잖아요. 이번에는 기획부터 전부, 피디님이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하하. 뭐······.”
“여자 그룹 앨범도 잘 만드실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어쩐 일이십니까?”
대화를 나누며 도욱이 물었다.
“힛 엔터에 제안했던 게 있어서 미팅을 하기로 했어요. 가던 길에 얼굴이나 볼 겸 왔습니다.”
용수철의 대답에 도욱은 용수철 피디가 말하는 ‘제안’이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이제 저녁 먹으러 가는데 같이 가세요, 피디님.”
정윤기가 리더로서 용수철 피디에게 말했다. 용수철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나도 또 가봐야 해서. 어제 정말 무대 최고였어요. 이 말 꼭 해주고 싶어서 온 거요.”
용수철의 칭찬에 멤버들이 미소 지었다.
“점점 케이케이가 앞으로 뻗어나가는 게 자랑스럽더군요.”
“다 피디님 덕분입니다.”
“내 덕은 무슨. 전부 노력한 덕분인 거요.”
이전에는 용수철 피디가 무서워 말도 잘하지 못했던 안형서가 용수철 피디와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었다.
자신들의 데뷔 앨범을 함께 한 프로듀서로부터 자랑스럽다는 말을 듣는 일은 꽤나 뿌듯한 일이었다.
용수철 피디가 지금까지 케이케이의 앨범을 프로듀싱 해주었어도 좋았겠지만, 케이케이에게는 이미 도욱이라는 프로듀서가 있었다. 용수철 피디가 자리를 옮긴 덕분에 오히려 점점 더 노력해야 했고, 발전할 수 있었는지도 몰랐다.
“그럼 또 보면 좋겠네요. 난 이만 갈게요.”
“네, 피디님.”
용수철 피디가 인사를 하며 나갔다. 나가던 길, 도욱과 마주하고는 특별히 어깨를 두드렸다.
용수철 피디로서도 언제나 도욱이 각별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무슨 일······.”
용수철 피디를 마중하며 도욱이 개인적으로 살짝 물었다. 용수철 피디가 씨익 웃으며 곧 알게 될 거라 답했다.
“도욱 군. 잘 부탁해요.”
그러며 덧붙인 말에 궁금증만 더 커졌다.
용수철 피디의 짧은 방문 이후 케이케이는 멤버들끼리 저녁을 먹었다.
이제 워낙 알아보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회사 앞에만 나가도 팬들이 많았기 때문에 회사 근처 패밀리 레스토랑에 가서도 따로 분리된 단체석에 앉아서 먹어야 했다.
자리에 없는 오백호 실장 대신 구철민이 멤버들을 관리했다.
스테이크만 인당 한 개씩 일곱 접시를 시키고, 파스타 세 접시에 샐러드 두 접시. 치즈가 잔뜩 올라간 감자튀김까지 시키면서 단체석 테이블이 꽉 들어찼다.
“······저희 이렇게 먹어도 되는 거예요?”
이미 식전용으로 나온 스프를 단번에 마셔버린 석지훈이 테이블에 들어찬 접시들을 멍하니 보며 물었다.
“먹어, 먹어. 걱정하지 마라, 마.”
정윤기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답했다.
“그래. 이럴 때 먹어야지. 하루 정도는 이렇게 먹어도 돼. 보상데이!”
안형서가 외쳤다.
앨범을 준비할 때처럼 강력하게 식이 조절을 하고 있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시상식 무대가 연달아 있었고 멤버들은 거의 1년 365일 몸 관리 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러나 매일 닭가슴살만 먹고 살아서는 버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이런 날도 있고, 저런 날도 있다는 게 안형서의 주장이었다.
물론 오백호 실장이나 트레이너도 365일 음식 제한을 하는 게 말이 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다.
따라서 활동기 직전이나, 활동기가 아닌 때에는 어느 정도 제한을 풀고 운동으로 몸 관리를 대체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도 이건 아니었다. 기름진 음식이 너무 많았다. 패밀리 레스토랑에 올 때만 해도 구철민은 멤버들에게 스테이크 정도만 허락할 예정이었다.
안형서의 말대로 어제까지 시상식 준비 및 무대로 고생했으니 보상의 개념이었다.
그러나 메뉴판을 잡자마자 정신없이 종업원에게 멤버들은 주문을 해댔고, 구철민 혼자서 그러한 멤버들을 막기에는 턱없었다.
언제나 이런 일이 벌어지면 자신이 멤버들을 제어하는 데 도움을 주는 도욱 쪽을 쳐다보았으나, 도욱조차 구철민을 모른 척하고 있었다.
구철민은 오백호 실장보단 훨씬 짧은 시간 케이케이를 관리했다. 별달리 관리해본 연예인도 없는 신참 중에 신참이었지만, 확실하게 아는 사실이 있었다.
케이케이가 다른 그룹에 비할 수 없을 만큼 인성이 바르고, 팀워크가 좋다는 것이었다.
한 명, 한 명 개성이 각자 다름에도 불구하고 잘 어우러졌다. 오히려 서로 다르기 때문에 부족한 부분들을 채워가고 있는 게 구철민의 눈에도 보였다.
그리고 그중에서 도욱은 혀를 내두르게 될 정도로 바른 인성을 가지고 있었다.
도욱은 부족한 부분이 없어 보일 정도로 완벽한 능력치를 자랑했다. 그렇게 한 명이 뛰어남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불화가 없는 데는 다른 멤버들이 모난 구석이 없는 것도 한몫했지만, 도욱 본인이 그것에 대해 거들먹거릴 때가 단 한 번도 없다는 것이었다.
또한 케이케이 멤버들이 스케줄에 밀려 피곤해지고, 예민해지고, 조금 비뚤어지려고 할 때도 가장 잘 나가는 멤버라고 할 수 있는 도욱이 흔들리지 않고 버티고 있기 때문에 다른 멤버들도 어떻게 할 수 없는 부분이 있었다.
자석의 중심으로 철이 끌어당겨지는 것과 비슷한 원리였다.
구철민은 그러한 사실을 케이케이를 담당하고 얼마 안 가 깨달았다.
때문에 오백호 실장이 없을 때에, 돌발적인 상황에서 무언가를 결정할 때면 도욱의 결정을 따랐다.
아직은 주도적으로 무언가 결정하기엔 어려움이 있는 신입 매니저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그리고 그건 대체로 늘 정답이었다.
“실장님께는 비밀로 해줄게. 편하게 먹어.”
구철민은 도욱이 오늘 정도는 편하게 식사를 하고 싶어 한다면 그렇게 해도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구철민의 말에 안 그래도 편하게 먹으려고 했던 멤버들은 바지 지퍼까지 내려가며 더욱 편하게 식사를 즐겼다.
도욱도 사람이었다. 오늘만큼은 정신없이 탄수화물과 범벅인 파스타를 흡입했다.
식사가 끝나고 후식으로 나온 케이크까지 멤버들은 말끔히 해치웠다. 단 것을 좋아하지 않는 박태형과 도욱 정도만 포크를 내려놓은 채 휴대폰을 하고 있었다.
[선배님 잘 쉬고 계신가요?]
[그럼 난 잘 쉬고 있죠! 어제 진짜 좋았다고 다들 난리네ㅋㅋ 회사에서도 반응 좋다고 신났어요ㅋ 내가 제대로 도욱 씨한테 묻어가네ㅋㅋ 나중에 한 번 또 무대 서요]
[영광입니다ㅎㅎ 꼭 나중에 한 번 더 뵈면 좋을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도욱은 어제 시상식이 끝난 후, 퍼포먼스 여파로 혼란해진 시상식장에서 팬들을 피해 빠져나가기 급급했다.
때문에 이진리와 제대로 인사도 나누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려 이진리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이진리의 말에 도욱은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여전히 실시간 검색어에는 이진리와 도욱의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었다. 케이케이 칼군무를 담은 영상도 커뮤니티 사이트의 베스트 글에 올라와 있었다.
부른 배를 두드리며 멤버들이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할 때였다.
서빙을 했던 종업원이 멤버들에게 다가왔다.
“저······.”
식당에 가면 한두 번 있는 일이 아니었다. 곧바로 종업원이 사인을 받으러 온 것임을 알아차린 구철민이 눈썹을 찌푸렸다.
밖에서 밥을 먹으면 손님들의 사인 요청에 밥을 제대로 먹기 힘들었다. 그나마 종업원들은 식사 전이나 후에 와 이렇게 사인 요청을 하기 마련이었다.
그때마다 다 해줄 수도 없는 노릇이라 웬만하면 오백호 실장이나 구철민선에서 막았다.
그러나 오늘은 멤버들의 기분이 유난히도 좋은 날이었다. 어제 시상식에서 받은 환호가 아직 가시지 않은 채였다.
안형서가 신나선 종업원이 말을 꺼내기도 전에 물었다.
“사인이요?”
“아, 네! 네. 부탁드려도 될까요?”
평소 사인 요청에 가장 보수적인 입장이었던 정윤기마저도 고개를 끄덕이자 종업원이 신나서는 들고 있던 종이와 펜을 내밀었다.
식당에 붙여놓을 용이었다. 하나의 종이에 빼곡하게 여섯 명의 사인이 들어찼다.
마지막으로 도욱에게 사인을 받으며 종업원이 수줍게 말했다.
“도욱 씨. 너무 팬이에요.”
“아, 감사합니다.”
도욱이 싱긋 웃으며 답하자 종업원의 얼굴이 새빨갛게 변했다. 어쩔 줄 몰라하며 종이를 집어 드는 손이 떨리고 있었다.
“너··· 너무··· 섹시하세요!”
종업원은 그렇게 말하며 거의 얼굴이 터지기 직전의 얼굴이 됐다. 꾸벅 감사하다고 인사하며 종업원이 뒷걸음질쳐 나갔다.
확실히 어제 시상식 무대의 영향이 거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멋있다, 잘생겼다는 얘기는 많이 들어왔지만 섹시하다는 칭찬을 앞에서 들은 건 거의 처음이었다.
‘이미지의 영역을 확장시킬 수 있다는 건 좋은 일이다.’
도욱은 생각하며 멤버들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
며칠 후, 도욱은 앨범제작팀 심준 팀장과 미팅을 가졌다.
“어, 도욱아. 왔니.”
심준 팀장은 어쩐지 많이 피곤해 보였다.
물론 언제나 다음 앨범 준비를 위해 사전 조사를 하고, 경향 파악을 해야 하는 바쁜 팀이었지만, 사실 앨범을 제작에 본격적으로 들어간 기간도 아니었기 때문에 한창 바쁜 시기는 아니었다.
“팀장님 무슨 일 있으세요? 얼굴이······.”
“이런 게 행복한 고민이라는 걸까.”
“네?”
“하아암―”
심준 팀장이 늘어지게 하품을 했다.
안 그래도 연말이면 사업 차, 개인적인 인맥관리 차 술자리가 잦았는데 요즘엔 나름 술 좋아한다는 심준 팀장도 견딜 수 없을 만큼 술자리가 많았다.
케이케이의 성공 덕분이었다.
케이케이와 어떻게든 함께 작업을 해보고 싶은 업계 관계자가 넘쳐 났고, 심준 팀장에게 연락을 해오는 사람들이 작년에 비하면 두 배 정도로 늘어나 있었다.
나중 일은 모르는 것이라 기분 나쁘지 않게 돌려서 거절하다 보면 술을 궤짝으로 마셔야 했다.
그러한 이유로 어제도 새벽까지 술을 마셨다는 심준 팀장의 말에 도욱은 조금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숙취해소제라도 드셔야 하는 거 아니에요?”
“마셨지, 마셨어.”
심준 팀장이 ‘새벽500’의 빈병을 흔들며 답했다.
“내가 왜 불렀냐면 그 같이 일하고 싶어하는 사람 중에 용감한외동 피디도 있어서야.”
“네? 아······.”
도욱은 얼마 전 연습실에서 만났던 일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저희 프로듀싱을 하겠다고 하신 건가요?”
“아니. 완전히 독립한 상태라 이제 제작사까지 차린다는 데 그럴 리가 있나.”
“그러면······.”
심준 팀장은 용수철 피디가 시기적절하게 나갔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 하나였다. 뒤돌아보니 결과적으로 그랬다.
“사실 더 일찍 나갔으면 마음에 앙금이 생겼을 수도 있지만. 하하.”
부연설명하며 심준 팀장이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 용수철 피디가 키우는 걸그룹 ‘원미닛’ 있잖아.”
“네.”
“그쪽이랑 너랑 같이 작업을 했으면 좋겠다고 하네?”
“작업이라는 게······.”
“그 그룹 여자애 중 하나를 솔로로 내보낼 예정인데 너랑 같이 프로듀싱을 하고 싶대. 아무래도 너랑 같이 공동 작업했을 때 워낙 결과가 좋았으니까······. 이건 너 개인에게 들어온 일이라 회사 차원에서 자를 게 아니라 말은 해줘야 할 것 같아서.”
도욱은 생각했다. 원미닛에서 솔로로 나올 멤버라면 누군지는 알기 쉬웠다. 게다가 솔로로서도 큰 성공을 거두게 될 것이었다.
도욱은 빠르게 생각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고개를 저었다.
“글쎄요.”
“음?”
“거절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일단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