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슈퍼스타-94화 (94/225)

# 94

스포트라이트 (3)

처음 도욱이 이진리에게 시상식 무대 제안을 받았을 때 도욱은 기억을 다시금 더듬어야 했다.

원래 이진리가 시상식 무대를 함께한 인물을 기억해내려 애썼다. 그리고 곧 맨투맨 유명제가 당시에는 이진리와 함께했었다는 것을 기억해냈다.

맨투맨이 한창 인기를 얻고 있던 때였다. 이진리와의 시상식 무대는 핫한 스타들의 만남으로 나름 시선을 모았었다.

스캔들은 덤이었다. 시상식 무대를 준비하는 과정을 공개하는 기사에서 두 사람이 다정하게 있는 사진 또한 공개됐다.

두 사람이 너무 잘 어울리는 게 문제였다.

나이는 어렸지만 유명제는 이십 대 후반까지 보일 정도의 외모였다. 그런 유명제와 이진리가 붙어 있으니 둘이 소위 말해 ‘케미’가 있다는 말이 나왔다. 거기까진 괜찮았다.

그러던 중 친해진 두 사람이 연습 후 저녁을 먹는 장면이 따로 사진이 찍히면서 말이 많아졌다.

실제 두 사람이 무대 때문에 친해진 것이라고 여러 번 밝혔어도 멋대로 한번 어울린다고 생각하기 시작한 사람들은 두 사람이 사귀는 게 아니냐는 의심을 했다.

기자들도 자극적으로 기사를 쓰기 위해 그런 식으로 몰아갔다.

아라 엔터 쪽에서 기사를 막으려고 했지만 방법도 마땅치 않았다. 차라리 실제로 사진이라도 찍힌 게 있다면 뒷돈으로 막았겠지만, 단순 의혹 기사들이었다.

두 사람이 밥을 먹었다. 잘 어울린다. 하는 내용의 단순한 기사들까지 돈을 줘가며 막기는 힘들었다.

워낙 매력적인 면모들로 자주 남성 연예인과 스캔들이 났던 이진리였다. 게다가 유명제 역시 팬들 사이에서는 여자가 많다는 이미지가 있었다.

그런 두 사람이었기 때문에 불을 떼지 않아도 연기가 났다.

물론 시상식 무대가 끝나고, 다른 이슈들이 많이 생겨나면서 두 사람의 이야기도 자연스럽게 들어갔다.

‘시상식 무대 준비 과정을 숨기려고 했던 건 혹시나 같은 일이 생길까봐였는데······.’

소문은 사라졌지만, 유명제에게는 이진리와 관련한 미미한 잔상이 남은 게 사실이었다.

때문에 도욱은 이진리와 무대 위에서의 모습만 보여줌으로써 퍼포먼스 외에는 아무것도 대중의 기억에 남기지 않을 생각이었다.

두 사람의 기사가 나면 기자들이 붙을 것이었고, 연습을 하고, 연습실을 오가거나 밥을 먹는 일상적인 모습이 공개되면 곧바로 사람들은 일상적인 관계를 생각하게 된다는 판단 하에서였다.

“아, 내가 좀 늦었죠. 많이 기다렸어요?”

연습실에 이진리와 이진리의 매니저가 도착했다. 구석에 있던 구철민이 일어나며 인사했다. 도욱도 휴대폰을 넣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닙니다. 여기까지 오시게 해서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나도 잘나가는 아이돌 연습실도 와 보고 좋지. 젊은 기운도 좀 받아가야지!”

이진리의 농담에 도욱이 웃었다.

분명히 스캔들이 난 것을 알았을 텐데 이진리는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

대신 이진리 매니저의 휴대폰이 계속해서 진동하고 있었다. 전화에 뜬 이름을 확인한 이진리 매니저가 미간을 찡그리며 잔뜩 피곤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전화기 꺼버려! 공식입장 발표했구만 왜 자꾸 전화질이야.”

이진리가 약간의 짜증을 담아 투덜대자 이진리 매니저가 휴대폰을 무음으로 바꾸곤 주머니에 넣었다.

“아, 혹시 봤어요?”

“네?”

“내 기사.”

도욱이 차마 먼저 얘기를 꺼낼 수 없어 눈치만 보고 있자 이진리가 먼저 도욱에게 물었다. 도욱이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거리자 이진리가 말했다.

“아니 곧 나올 앨범에 명제랑 같이 피처링한 곡이 있거든요.”

“아······.”

“그래서 좀 친해져서 밥 먹었다고 이렇게 기사가 나버렸네.”

도욱은 이진리의 말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미래가 조금 바뀌어도 어떻게든 일어날 일은 일어나는 건가······.’

우습다는 듯 이진리가 웃었다.

“아니 내 이미지가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띠동갑 남자애랑. 너무한 거 아냐? 말도 안 돼서 조금 편하게 지냈더니. 나야 오해도 고맙지만.”

“하하. 곤란하시겠어요.”

“팬들이 아주 난리 났죠, 뭐. 사실 아니라고 공식입장 내긴 했는데. 별다른 사진이 있는 것도 아니라 금방 얘기 들어가겠지.”

“네. 그래야죠.”

“앨범 녹음 작업 같이 했다는 것도 밝혔으니까.”

도욱은 가만히 이진리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이진리도 어지간히 억울하고 피곤한지 푸념을 늘어놓았다.

“이래가지고 누가 나랑 작업하겠어? 후배 인기 얻어가려다가 괜한 폐만 끼쳤네.”

“너무 그렇게 생각하지 마세요.”

“안 하려고 해도······. 아니, 내가 어린 사람 앞에 두고 징징대고 있네. 미안해요.”

“아닙니다, 선배님!”

“그래도 도욱 씨랑은 하루 무대만 하고 끝날 거니까 괜찮겠지.”

“네. 괜찮을 거예요.”

게다가 이미 맨투맨 멤버와 스캔들이 난 터라 어떻게 생각하면 도욱은 미약하게 남아 있던 불안도 떨쳐낼 수 있었다.

“그럼 연습 시작하죠!”

“넵.”

도욱이 대답하자 구철민이 연습 준비를 했다.

그러는 동안 이진리도 춤을 추기 위해 스트레칭을 했다. 거울 앞에서 이리저리 몸을 움직이던 이진리가 말해다.

“근데······.”

“네? 말씀하세요.”

“생각해보니까. 스캔들 조심하려고 한 사람치고 후배님이 제안한 퍼포먼스······. 너무 센 거 아냐?”

이진리의 질문에 도욱이 웃었다.

도욱은 단번에 모든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수 있는 퍼포먼스를 고안해낸 상태였다.

사실 퍼포먼스 자체 수위가 센 편이라 이진리의 의문도 맞는 말이었다. 그러나 도욱은 대중들은 무대 위와 아래를 확실하게 구분한다고 생각했다.

“무대잖아요.”

“대담한 부분이 있네. 그래, 잘해 봅시다!”

“네.”

곧 연습실 안에 음악이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

TBN 가요 시상식 당일.

이진리와 맨투맨 유명제의 스캔들은 어느 정도 정리가 된 상태였다. 그러나 시상식 엔딩에 두 사람이 한 자리에 선다는 사실에 사람들은 두 사람을 주의 깊게 지켜볼 생각을 하고 있었다.

팬들 사이에 무대 큐시트가 돌아다니게 되면서 이진리와 도욱이 거의 마지막 순서로 합동 무대를 하게 된다는 것도 알려지게 되었다.

팬들로서는 도저히 무슨 무대인지 알 수도 없었다. 팬카페는 흥분에 휩싸였다.

두 사람을 남녀로 엮는 분위기보단 일단은 어떤 무대를 할지 기대된다는 반응이었다.

이진리가 섹시댄스를 주로 하는 여가수인 만큼 섹시한 컨셉의 무대를 예상할 수 있었고, 그러한 무대에 도욱이 선다는 것에 팬들은 기대감으로 정신을 잃기 직전이었다.

동시에 TBN 측에서도 시상식 홍보를 위해 당일 오후, 이진리와 도욱의 합동 무대에 대한 내용을 공개했다.

비밀리에 준비했고, 두 사람의 완벽한 호흡으로 섹시 댄스를 출 예정이니 기대해 달라는 기사였다.

대중들에게도 이미 많은 인기를 얻고 있는 두 사람의 만남이니만큼 기사가 나가자 시선이 집중되었다.

리허설을 마친 케이케이 멤버들은 대기실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오늘 케이케이는 ‘Howl’ 리믹스 버전 무대를 준비했다.

안 그래도 쉬는 순간 없이 계속해서 이어지는 ‘Howl’ 안무여서 힘들었는데, 중간에 단체 군무로 삼십여 명에 달하는 백댄서들과 함께하는 부분까지 넣으면서 더욱 체력 소모가 많은 무대가 돼 있었다.

“나 이거 하고 나면 쓰러질 것 같아.”

“하아······.”

“지쳐서 상 못 받는 거 아니야?”

“마,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정윤기와 안형서가 대기실 소파에 거의 쓰러지다시피 한 상태로 투닥였다.

삼십여 명의 백댄서와 함께하는 군무파트는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리허설을 마친 후 스태프들이 모두 박수를 쳤을 정도였다.

한 사람도 틀리는 부분 없이 무대에 선 이들이 합을 맞춘 상태였다. 파워풀한 안무였다. 거기에 박태형이 공중제비까지 넘으면서 케이케이 무대만으로도 하나의 큰 볼거리가 될 예정이었다.

그렇게 멤버들이 쓰러져 있을 때, 한숨 돌린 도욱은 의상을 갈아입었다.

이진리와의 무대까지는 시간이 꽤 있었지만, 항상 함께하는 멤버들이 아닌 이진리와는 처음 서 보는 무대였기 때문에 약간의 긴장감이 있었다.

시상식 무대 순서는 거의 데뷔순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케이케이, 맨투맨 다음으로 몇 개의 그룹이 공연을 하고 나면 사방신화와 이진리의 무대였다.

커다란 함성 속에서 TBN 시상식이 시작되었다.

오늘 케이케이는 본상을 수상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 외의 상들은 투표 결과나 심사에 따라 결정되었기 때문에 수상 여부를 알기 힘들었다.

맨투맨 또한 본상 수상은 확정되어 있는 상태였다.

‘아직까진 맨투맨이 뒤집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도욱은 가수 대기석에서 오프닝 무대를 보며 생각했다.

분명 맨투맨과 케이케이 사이에는 차이가 벌어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따라잡을 수 없을 정도는 아니었기 때문에 생기는 불안이었다.

곧 신인상이 발표되었다.

작년, 케이케이가 받았던 신인상을 받은 그룹은 이제 외부로 나간 용감한외동이 제작한 여자 아이돌 그룹이었다.

“와우···! 용 피디님.”

수상 소감을 하는 리더의 입에서 용감한외동 이름이 나오자 김원이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용감한외동으로선 2년 연속 자신이 프로듀싱한 그룹이 신인상을 받게 된 셈이었다. 도욱도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 뒤로는 본상 수상이 이어졌다.

케이케이는 세 번째 수상자로서 본상을 받게 되었다. 다음은 곧바로 맨투맨의 본상 수상이었다.

그러나 이후에 케이케이는 연달아 ‘신한류상’과 ‘한국문화진흥원장상’, ‘퍼포먼스상’을 수상하며 4관왕에 오르게 되었다.

케이케이의 무대와 맨투맨의 무대가 함께 있었는데 함성에 있어서도 커다란 차이가 났다.

물론 거기에는 케이케이의 무대가 함성을 내지를 수밖에 없는 놀라운 무대였다는 것도 한몫했다.

현장이 아닌 집에서 TV를 틀어놓고 있던 시청자들조차 무대를 꽉 채운 댄서들과 케이케이의 움직임에는 잠시 하던 일도 멈추고 볼 수밖에 없는 무대였기 때문이었다.

‘이대로만 가면 되겠다.’

차원이 다른 함성을 들으며 도욱은 확신할 수 있었다.

그리고 대망의 대상 발표였다.

가장 긴장되어야 할 순간이었지만, 현재로썬 사방신화가 대상을 받을 것이 너무나 자명했다.

그러나 케이케이의 인기가 여기까지 올라온 이상 다음 해까지 사방신화가 대상을 받을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게 관계자들이 입을 모아 하는 말들이었다.

게다가 논란도 있었다. 사실 케이케이가 음원 성적 등에서 앞섰기 때문이었다. 앨범판매량이 훨씬 높다는 이유만으로 사방신화가 대상을 받는 게 말이 되냐는 이야기도 조금씩 나오던 상황이었다.

어쨌든 대상은 사방신화였다.

MC가 사방신화를 외치는 순간, 축포가 터졌다. 커다란 함성이 장내를 채웠다.

‘다음 해에는······.’

도욱은 트로피를 받는 사방신화를 보며 생각했다. 다음 해에는 반드시, 무슨 일이 있어도 케이케이의 이름으로 대상을 받겠다는 굳은 의지가 도욱에게 있었다.

***

다음 날 아침, 포털 사이트 메인 화면은 물론이고, 스포츠신문 지면 1면에 대문짝만 하게 박힌 건 대상을 받는 사방신화의 모습이 아니었다.

풀어 헤쳐진 흰 셔츠를 입고 이진리와의 무대를 마친 도욱의 사진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섹시한 모습의 도욱과 이진리가 키스를 할 듯 말 듯 붙어 있는 사진이었다.

<충격 퍼포먼스! 이진리-강도욱, 무대 뜨겁게 달궜다!>

<4관왕에 빛나는 케이케이, 퍼포먼스까지 甲>

<대박! TBN 시상식 역대 최고 시청률 깼다!>

진짜 한 거냐, 아니다. 논란이 뜨거웠다. 동시에 도욱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한 사람들이 열광했다.

너무 섹시하다는 반응들이었다.

반듯하기만 한 이미지인 줄 알았는데, 이런 식으로 보니 새롭다는 의견도 많았다.

파격적인 퍼포먼스에 충격을 받은 팬도 있었지만, 무대는 무대일 뿐이라는 게 대부분 팬들의 반응이었다.

심장은 아프지만, 도욱의 섹시한 모습을 보게 되어서 좋다는 반응들이었다.

어제의 주인공은 대상을 받은 사방신화가 아니었다. 도욱이었다.

“야, 반응 장난아니다.”

“그니까.”

“와······ 근데 나도 놀랐어. 리허설에선 그런 장면 없었잖아.”

멤버들도 몇 번이고 무대를 돌려보며 감탄했다.

도욱은 쑥스럽게 웃어 보일 뿐이었다.

그렇게 서로 이야기를 나누느라 시끄러운 와중에 연습실 문을 열고 누군가 들어섰다.

“어?! 피디님?!”

먼저 그를 발견한 안형서가 뛰어나갔다.

거대한 존재감을 뽐내며 문을 열고 들어선 건, 용감한외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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