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1
조준기 (4)
화면 속에는 멤버들이 초대한 가족들이 비춰지고 있었다.
“아.”
도욱은 저도 모르게 마이크에 대고 소리를 냈다.
정윤기의 부모님, 안형서의 어머니, 석지훈의 부모님과 큰형, 박태형의 아버지, 김원의 누나 등이 차례로 화면에 나왔다.
평일이다 보니 스케줄이 있어 멤버들의 가족 중에는 주말에 오기로 한 분들도 있었다.
그러나 웬만하면 첫 콘서트인 오늘 가족들은 모이려고 노력했다.
차례로 넘어가던 인물들 중에는 도욱의 어머니와 아버지도 있었다. 도욱은 화면을 보며 침을 한 번 삼켰다.
노래 MR이 흘러나오고 있었지만, 노래를 불러야 할 대부분의 멤버들이 울음을 겨우 참고 있었기 때문에 제대로 된 무대는 불가능했다.
하지만 그것에 신경을 쓰고 있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감사합니다.”
울먹이며 안형서가 부모님을 향해, 또 이 자리를 있게 해준 팬들을 향해 어렵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건넸다.
울고 있는 멤버들을 보며 팬들도 가슴이 뭉클해져왔다. 이미 멤버들에게 동화되어 훌쩍이는 팬들도 많았다. 콘서트장의 열기가 다른 의미로 뜨거워지고 있었다.
팬들은 무대 위로 올라가 멤버들을 안아주고 싶었지만, 팬과 가수의 거리는 상당했다. 마음으로 응원하는 수밖에 없었다.
도욱은 자신의 부모님이 있는 쪽을 향해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초대석이라지만 거리가 꽤 있어 제대로 인사를 받을 수 있을까 싶었는데, 다행이 도욱만을 보고 있던 부모님이 도욱의 인사를 받은 듯 손을 흔들고 있었다.
손을 흔드는 두 사람의 눈이 반짝거리고 있었다. 도욱의 어머니는 조금 눈이 그렁그렁한 듯도 했다.
‘정말로 이상한 기분이다······.’
사실 부모님이라고 해도 이전까지 보명이었던 도욱이 두 사람을 본 건 아주 짧은 시간이었다. 심지어 집에 산 지 얼마 안 돼 연습생을 하겠다고 바쁘게 돌아다녔고, 종종 숙소 생활을 하다가 집에 다녀올 때 밥을 함께 먹은 것이 전부였다.
전화나 메시지로는 안부 차원에서 연락을 하기도 했지만, 도욱으로선 약간 의무감을 가지고 하는 것들이었다.
그럼에도 이 자리에서 진심으로 도욱을 보며 자랑스러운 얼굴을 한 두 사람을 보자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지금까지도 그랬지만 앞으로도 내가 정말로 부모로 모셔야 할 분들이다.’
그들에게 정말로 좋은 아들이 되어주고 있는 듯해 다행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보명이던 시절의 부모님이 생각났다.
‘그분들도 좋아하셨겠지······. 그분들께도 정말로 보여드리고 싶었는데.’
도욱의 눈에서 눈물이 한 줄기 흘러내렸다.
울고 있는 도욱의 모습이 VCR에 잡히자 도욱의 팬들이 오열했다.
‘하지만 지금은 평범한 대학생이 된 김보명이 그분들을 행복하게 해드리고 있을 거다.’
도욱은 캠퍼스에서 만난 여대생 김보명을 떠올렸다.
‘오히려 다행이야. 나 때문에 슬퍼하고, 힘든 시기 안 보내셨을 테니.’
가만히 눈을 감았다 뜬 도욱은 북받쳐 오르는 감정들을 삼켰다.
“이게 마지막 곡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도욱의 말과 함께 ‘바람 부는 날’ 곡이 끝났다.
조용해진 공연장 내에 팬들이 외치는 ‘앵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앵콜!”
“앵콜!!!”
“꺄악― 도욱아!”
“앵콜!!!”
“앵콜!―”
***
한국에서의 성공적이고도 감격적인 콘서트를 마치고, 다음은 곧바로 일본 아레나 투어였다.
케이케이는 고베, 나가노, 후쿠오카, 요코하마, 시즈오카, 나고야, 치바, 도쿄, 오사카까지. 일본 전역에서 콘서트를 해냈다.
역시 외국에 나가 각지를 돌아다니며 콘서트를 하는 일이 쉬운 일만은 아니었지만, 멤버들은 공연을 거듭하면 할수록 자신들의 실력이 성장하고 있는 것을 느꼈다.
단독 콘서트가 왜 가수에게는 꿈의 무대로 불리는지도 알 수 있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좋은 것을 보여주고, 함성으로 보답할 것을 이미 알고 있는 상태에서의 무대란 자신감으로 채워질 수밖에 없었다.
무대에 서면 환호 속에서 어쩐지 머릿속 나사 하나가 풀려버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엄청난 집중력이 발휘됐고, 흠뻑 빠져서 공연하게 됐다. 무대 위에 있다는 행복감이 최고조에 달하는 순간들이었다.
일본에서의 공연 다음은 중국 쪽이었다.
충칭, 청도, 상하이, 난징, 광저우, 홍콩, 대만까지 케이케이는 쉼 없이 달렸다.
중국에서의 콘서트 일정은 주마다 하나씩 띄엄띄엄 있는 편이었기 때문에 체력을 비축하면서, 시상식 무대 준비도 할 수 있었다.
사실 시상식 무대 준비가 따로 필요할까 싶을 만큼 콘서트에 이미 다양한 무대가 준비되어 있었다.
그러나 케이케이는 팬뿐 아니라 대중들이 볼 수 있는 시상식에서는 또 색다른 무대를 준비해 대중들에게 다시 한 번 케이케이의 퍼포먼스 능력을 각인시키고자 했다.
안무가인 노윤태 선생이 몇날 며칠을 고민해 케이케이의 퍼포먼스 무대를 구상했고, 멤버들은 한국에 들어와 쉴 때면 시상식 무대 연습을 했다.
“어, 도욱아. 왔어?”
“네. 안녕하세요.”
심준 팀장이 도욱을 부른 건 중국 콘서트 투어가 거의 끝나갈 무렵이었다. 대만과 홍콩에서의 콘서트만 남아있었고, 그 후에는 시상식 시즌의 시작이었다.
케이케이의 시상식 준비도 어느 정도 다 정리된 상태였다. 멤버들은 이제 공연이라면 자신있다며 자신감이 충만한 상태였다.
회사에서 다양한 규모, 다양한 곳에서의 공연 일정을 잡은 데에는 이러한 이유도 있었을 것이라고 도욱은 생각했다.
‘무대는 경험이 정말 중요하다. 연습생 때보다 데뷔 이후 급속도로 실력이 느는 건 아무래도 그 이유겠지.’
한국에 들어와 쉬고 있는 도욱을 불러내며 심준 팀장은 무척이나 미안해했다.
그러면서도 꼭 빨리 와달라고 덧붙였다.
투어가 힘들긴 했지만, 자잘한 스케줄 없이 콘서트만 소화하면 되는 일정이라 괜찮았다.
“너 살 빠진 거 아냐?”
오랜만에 만난 심준 팀장이 걱정스럽게 물었다.
“아, 그런 건 아니에요.”
“하긴 몸은 아닌 것 같은데.”
갸우뚱하며 심준 팀장이 도욱을 살폈다.
스무살이 된 지 꽤 지났고, 이제 곧 스물한 살이 되는 도욱이었다. 살이 있는 편이 아니었으나 기본적인 젖살이 얼굴에 남아있었던 모양이었다.
최근 볼에 붙어있던 살이 빠지면서 도욱의 얼굴 윤곽은 한층 더 뚜렷해졌다. 턱선도 날카로워져 이전보다 더 샤프한 느낌이었다.
“더 잘생겨졌네.”
“아하하.”
도욱이 어색하게 웃자 심준 팀장이 고개를 저었다.
“그만 잘생겨져라. 더 잘생겨지다니. 그 어려운 걸 해내네.”
심준 팀장의 말에 도욱이 웃으면서 속으로는 엉뚱하다고 할 만한 딴생각을 하고 있었다.
‘몇 년 후에 드라마에서 유행하는 말투인데······.’
문득 그 드라마에 자신이 출연할 수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가 고개를 저었다. 그 드라마에 출연해 주인공이 된다면, 그야말로 ‘슈퍼스타’가 되는 셈이었다.
“더 잘생길 구석이 있었다는 게 신기하다. 그나저나 내가 오늘 부른 이유가 뭐냐면······.”
“네 말씀하세요.”
도욱이 자리에 자세를 고쳐 앉자 뜸을 들이던 심준 팀장이 말을 꺼냈다.
“도욱아, 너 이진리 알지?”
눈을 끔벅거리던 도욱이 안다고 답했다.
이진리는 모르고 싶어도 모를 수가 없는 인물이었다. 대한민국에서 TV를 하루만 봐도 이진리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벌써 8년 전, 아이돌 그룹 ‘루비’로 데뷔해 여자 그룹으로는 최초로 대상을 탔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루비 해체 이후에 이진리는 오히려 더 활발하게 활동했다. 가수뿐 아니라 예능에서 특히 크게 활약하며 국민적인 인기를 끌었다.
눈을 뗄 수 없는 외모와 몸매, 거기에 솔직하고 털털한 성격까지. 남녀를 불문하고 모두 이진리에게 관심을 갖고, 매력을 느꼈다.
이진리는 패션 스타이기도 해서 이진리가 하고 나오는 모자에서부터 옷, 액세서리, 신발까지 유행했다.
몇 년 전이 이진리 열풍의 절정이라고 볼 수 있었다. 하나의 ‘현상’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대한민국 국민들이 이진리의 일거수일투족을 들여다보길 원하고, 따라하길 원했다.
앨범도 흥행해 여성 솔로 가수 최초로 한 방송사에서는 대상을 거머쥐기도 했다. 거기에 예능대상에서까지 최우수상을 탄 전력이 있었다.
당시에는 이진리가 바깥에도 제대로 나가지 못할 만큼의 인기였지만, 요즘은 그나마 잠잠해진 편이었다. 그러나 여전히 최고의 ‘스타’라고 하면 사람들은 이진리를 떠올렸다.
사실 연기에도 도전했었는데, 거기까진 잘 되지 않았다. 그 이후 한풀 이진리 열풍이 가라앉은 것도 있었다.
이진리는 인터뷰를 통해 차라리 빨리 매를 맞아 다행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안 그랬으면 인기에 미쳐서 너무 거만해져 주변 사람을 다 잃었을 거라는, 그런 내용이었다. 정말로 솔직한 사람이었다.
이후 현재 이진리는 예능활동에만 전념하고 있었다.
도욱은 이진리의 이력을 떠올리며 왜 심준 팀장이 이진리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는지 생각했다.
‘솔로 3집 앨범을 지금쯤 내던가······?’
얼추 시기가 맞는 것 같기도 했다.
“다름 아니라 TBN 쪽에서 연락이 왔는데. 바쁘겠지만 나는 이게 좋은 기회 같아서. 오 실장님도 괜찮은 것 같다고 하고.”
“네, 저는 괜찮아요.”
“하여튼 괜찮기는! 듣지도 않고 말야.”
“무슨 일인데요?”
“시상식 무대를 네가 단독으로 하나 더 했으면 좋겠대.”
“단독으로요?”
“아, 단독이 아니라. 이진리랑 같이.”
도욱은 순간 멍해졌다.
“둘이요?”
“그래.”
이진리는 도욱에게도 있어 꿈의 스타였다. 함께 작업했던 서태준이 전설과도 같은 인물이었다면, 이진리는 도욱에게 있어 현실적으로 함께 해보길 꿈꿨던 스타였다. 하늘만 올려다보면 볼 수 있지만, 만나기 힘든 별.
그래서 스타를 스타라고 한다는 생각도 했었다.
“이진리 쪽에서 널 추천했대.”
이진리가 직접 추천했다는 말에 도욱의 입가가 저도 모르게 올라갔다.
지금은 주로 예능에서 활약하고 있다고 해도, 여성 솔로 가수로서 이진리가 가지는 의미는 대단했다.
이진리는 한국에서는 잘 볼 수 없었던, 팝스타와 같은 무대도 많이 선 보였다.
그런 이진리와 무대를 함께할 수 있다는 것은 도욱에게도 많은 걸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짜식! 너도 이진리 좋아하긴 하는구나. 루비 활동은 너 어릴 때라 별 감흥 없을 줄 알았더니.”
“아······. 이진리 선배님 자체가 인기가 워낙 대단하시잖아요.”
“하긴 그렇지. 하여튼 너 내일 스케줄 된다고 해서 바로 내일로 미팅 잡았다. 빨리 준비할수록 좋을 것 같아서.”
“바로 내일요?”
“그래.”
사실 더 신이 난 건 심준 팀장이었다. 심준 팀장도 기획사 일을 꽤 해왔지만, 아직까지 이진리와 직접 만난 적은 없었다.
기획사가 근처라 점심 먹으러 가다가 카페에 앉아있는 이진리를 멀리서 본 게 다였다.
“도욱이 너 덕분에 우리나라 톱스타들 다 만난다, 내가 아주.”
심준 팀장의 말에 도욱이 미소 지었다.
“3집 앨범이 내년 초에 나온데. 시상식에서 특별 무대 하는 걸로 가수 이미지 다시 끌어올리려는 것 같아. 이진리가 무대하면 여기저기 기사 도배될 텐데, 우리는 이진리 이름값에 기대기도 좋을 무대지.”
“그렇군요.”
“그래서 컨셉 같은 거 그쪽에 맞춰줘야 할 것 같긴 한데.”
“네.”
“우리가 한참 후배니까 맞춰줘야지 뭐. 우리도 어느 정도 조정가능한 부분이고.”
“네. 괜찮을 것 같아요.”
이진리는 섹시 퍼포먼스를 주로 하는 댄스 가수였다. 도욱은 어느 정도 이진리가 하려는 무대들을 예상할 수 있었다.
그런 분위기의 무대를 가지는 것이 지금 도욱의 이미지에 나쁘지 않을 거라는 판단이었다.
이미 어리기만 한 이미지는 아니었지만, 조금 더 성숙한 이미지를 보여줘야 앞으로 연기 활동에도 도움이 될 것이었다.
다만 걱정되는 부분이 한 가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