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0
조준기 (3)
이대형 팀장은 지금은 기획운영팀 부장이 된 조애니 부장님 덕분에 힛 엔터테인먼트에 올 수 있었다고 자신을 간단히 소개했다.
‘조애니 부장이 스카우트 해온 건가?’
도욱은 생각하며 우선은 오늘 있을 회의 내용에 집중했다.
이대형 팀장은 자신이 힛 엔터테인먼트에서 처음하는 프로젝트인 만큼 많은 도움을 바란다며 프로젝트를 소개했다.
이대형 팀장이 시작하려는 프로젝트는 케이케이 굿즈 사업이었다.
현재 케이케이는 다른 가수들과 마찬가지로 기본적인 굿즈들만 준비해 앨범이 나올 때마다 판매해 왔었다.
도욱의 아이디어로 팬클럽 키트에 들어가는 굿즈물의 내용이나 응원봉 디자인들이 색다르게 제작되긴 했었지만, 본격적인 느낌은 아니었다.
조애니 부장이 기획했던 아이디어를 이어받은 이대형 팀장은 본격적으로 굿즈 판매를 통한 수익 증대를 꾀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번 콘서트를 기점으로 대대적인 굿즈 사업을 해보려고 하는데요.”
이대형 팀장의 설명을 들으며 멤버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선 원래도 있어왔던 포토카드나 노트, 부채같이 자잘한 굿즈들도 낼 거지만······. 아예 멤버들을 캐릭터화해 보려고 해요.”
“캐릭터요?”
평소 만화를 좋아하는 안형서가 캐릭터라는 말에 반응했다.
“네. 멤버들의 특징들을 살려서 캐릭터로 만들고 캐릭터로 상품을 만들면 인형부터 시작해서 조금 더 다양하게 상품화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오······.”
멤버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굿즈 상품이 잘되면 잘될수록 회사만큼이나 멤버들에게도 좋았다.
음원이나 방송, 축제 등에 비해 앨범 판매나 굿즈 상품이 멤버들 개인에게 돌아오는 정산율이 훨씬 좋았다. 이름이나 얼굴을 박아 나오는 개인 굿즈의 경우에는 더욱 그랬다.
“캐릭터는 어떤 형태로 나오는 건가요?”
가만히 듣고 있던 도욱이 물었다.
“일단 만화적으로 단순화 시킨 인물이나, 동물 캐릭터를 생각하고 있어요.”
사실 이전에 이미 사방신화를 가지고 캐릭터 사업을 아라 엔터테인먼트에서도 시도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사방신화의 명성에 비하면 그다지 수익성 좋은 사업으로 남지는 못했다. 사방신화의 실제 사진이면 모를까 사방신화를 본 뜬 캐릭터들이 그렇게 팬들에게 어필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호감형이 아닌 비호감형으로 캐릭터화된 것도 큰 문제였었다.
큐 엔터에서 근무할 당시 실패 사례의 하나로 배웠던 기억이었다. 아라 엔터 내부에 있었던 이대형 팀장이 그 문제를 모르리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도욱의 눈이 조금 날카로워졌다.
“작화가 중요할 것 같은데요.”
이대형 팀장이 끄덕였다.
“안 그래도 이전 회사에서 캐릭터 사업이 실패한 적이 있었어요. 그때 가장 많이 받았던 피드백이 ‘예쁘지 않다’라는 거였습니다. 그래서 이번엔 주요 타깃인 팬들에게 어필할 수 있도록 최대한 귀엽게 만들어볼 예정이에요.”
“오, 저는 그럼 동물이 좋을 것 같아요!”
이대형 팀장의 말에 안형서가 외쳤다.
“요즘 일코하고 싶다는 팬들이 많으니까 동물로 만들어서 티 안 나게 하면 좋을 것 같네요.”
정윤기가 덧붙였다.
“일코? 왓 이즈 일코···?”
“그 일반인 코스프레라고··· 팬 아닌 척하는 그런 거예요.”
김원이 묻자 옆에 앉아있던 석지훈이 가만히 설명해주었다.
안형서와 정윤기의 의견에 이대형이 엄지를 들었다.
“역시 멤버들이 팬들에 대해서 잘 알고 있네요. 저도 동물 캐릭터로 하는 게 좋을 것 같단 생각했어요. 라희 대리님, 그 작업 같이 하실 분들 리스트 뽑아 놓은 거 있죠?”
“네, 세 명 정도로 추려서 이미지랑 함께 정리해놨습니다.”
“보시고 어떤 스타일로 가는 게 좋을지 멤버들도 의견 주세요. 각자 좋아하는 동물이나, 닮았다고 듣는 동물들도 말씀해주시면 좋고요.”
이대형 팀장의 말에 도라희 대리가 준비해 온 페이퍼들을 멤버들과 오백호 실장에게 나눠주었다.
“조 부장님 말씀하시길 힛 엔터에서는 최대한 멤버들 의견 반영하는 쪽으로 일하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네. 멤버들이 많이 참여합니다.”
이번에 답한 건 오백호 실장이었다. 오백호 실장 역시 이번에 스카우트 되어 온 이대형 팀장이 아라 엔터 쪽의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제일의 기획사인 만큼 이대형 팀장의 실력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었다.
그러나 아라 엔터테인먼트 사람들은 그만큼 콧대가 높기도 했다. 조애니 부장이 알아서 관리하겠지만, 혹시라도 힛 엔터테인먼트의 이념이나 자유로운 기업 문화를 망칠까 염려되는 부분도 있었다.
때문에 오백호 실장은 처음부터 멤버들이나 다른 팀과의 아이디어 교류 등이 중요하다는 걸 못 박고 가고 싶었다.
다행히 이대형 팀장은 말뜻을 잘 알아들은 듯했다.
이후 다가오는 콘서트의 마케팅 등에 대한 얘기가 오갔다. 당분간은 콘서트와 시상식에 주력하는 게 케이케이의 일정이었다.
“특히 도욱 씨가 팬-마케팅 관련해서 아이디어가 많다고 들었습니다. 많이 도와주세요.”
오늘은 가볍게 프로젝트의 전체적인 이야기를 하려고 했다며, 다음에 더 디테일한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면 좋겠다는 말과 함께 이대형 팀장이 자리를 정리했다.
이대형 팀장이 회의실 문을 나서는 도욱에게 특별히 첨언했다.
도욱은 이대형 팀장을 가만히 바라보다 답했다.
“네. 저도 잘 부탁드립니다. 앞으로.”
대충 얘기를 하다 보니 오백호 실장이 던진 말 속에서 이대형 팀장이 조애니 부장으로부터 아주 좋은 조건을 제안 받고 아라 엔터테인먼트에서 스카우트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도욱은 큐 엔터의 홍보팀 근무 시절, 소문으로만 듣던 이대형 팀장에 관한 이야기를 기억했다.
‘야망이 엄청난 사람이다. 단순히 스카우트 조건이 좋아 왔다고 해도······ 대형기획사인 아라 엔터를 떠나 힛 엔터로 왔다? 모를 일이다.’
이대형 팀장은 경쟁이 치열한 아라 엔터에서도 이사 자리 정도는 넘보던 인물이었다.
케이케이의 인기가 많아짐에 따라 힛 엔터테인먼트의 위상도 달라지곤 있었지만, 도욱은 이대형 팀장의 속내가 잘 가늠이 되지 않았다.
‘단순히 힛 엔터에게 더 비전이 있다고 본 걸까?’
도욱은 이대형 팀장 옆에 있는 도라희 대리를 보았다.
‘새어나가는 일은 없는지, 지켜보는 게 좋을 것 같은데.’
그라나 도라희 대리가 있어서 일이 아주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가진 않을 거라고 믿는 도욱이었다. 도라희 대리는 확실한 조애니 부장의 사람이자, 힛 엔터테인먼트 사람이었다.
이대형 팀장이 내부에서 프로젝트를 망치려고 한다 해도 도라희 대리 선에서 조애니 부장으로 얘기가 넘어갈 수 있었다.
“그럼. 대리님도 안녕히 계세요.”
도욱은 이대형 팀장에게 깍듯하게 인사하며, 도라희 대리 또한 콕 집어 인사했다.
도라희 대리가 수줍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그래요, 도욱 군 또 봐요~!”
***
드디어 케이케이의 첫 콘서트 날이었다.
금요일, 평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굿즈를 파는 임시판매소가 공연장 앞에 열리자 케이케이의 팬들은 이른 아침부터 줄을 서 굿즈를 구매하기 시작했다.
멤버들의 싸인이 인쇄된 포토카드, 엽서, 슬로건 타월부터 시작해 케이케이의 로고가 새겨진 후드 티셔츠 등의 굿즈가 차례로 오후도 되기 전에 매진되었다.
토요일과 일요일에 풀릴 물량을 생각하면 어마어마한 판매고였다.
판매소 옆에 세워진 여섯 멤버들의 캐릭터 판넬도 큰 인기를 끌고 있었다.
각 멤버를 상징하는 동물들이 유명 일러스트레이터의 손을 거쳐 귀엽게 표현되어 있었다. 공식 출품은 아직이었고, 출품 전 팬들의 반응을 보기 위해 세워둔 판넬들이었다.
판넬 앞에는 케이케이의 온라인 공식 굿즈 샵이 곧 오픈된다는 공지가 부착되어 있었다.
“아아아, 완전 떨려.”
“나도, 나도. 저번에 팬미팅도 좋았는데. 콘서트라니······. 아까 리허설 소리 들리는 거 들었어?”
“당연하지. 아 근데, 굿즈 이것밖에 못 산 게 한이다.”
“너 뭐 샀는데?”
“나. 도욱이 배지랑 형서 포카랑, 후드티.”
“헐? 도욱이 배지 샀어? 난 도욱이 얼굴 구경도 못 함.”
“새벽부터 줄 섰잖아. 도욱이 굿즈 진짜 순삭됨.”
“어. 도욱이 준비하라1999 하고 난 다음부터 이모팬들 붙어가지고, 도욱이 관련된 굿즈 뭘 살 수가 없어.”
“나중에 온라인 샵 연다니까 거기서 사. 에효.”
“그래야지. 저기 서 있는 캐릭터 봄? 귀엽던데. 내 통장 털어가려고 별걸 다 만들어.”
“그니까. 으으. 근데 우리 애들 더 슈스되면 우리 콘서트 자리도 없는 거 아냐? 요즘 중국 팬들 몰려와가지고 넘 힘들다. 팬클럽 선예매 아니었음 못 봤을 듯.”
“맞아. 아, 다음 콘서트 때는 인기 더 많아지겠지?”
“인기 많아지는 거 좋긴 한데. 우리가 못 보게 될까봐······.”
“그러니까.”
콘서트를 기다리며 팬들은 정신 없이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긴장을 풀고 있었다.
준비하는 멤버들에게도 첫 번째 콘서트라는 것이 긴장되는 일이었지만, 기다리는 팬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긴 기다림 끝에 공연장 문이 열리고, 끝없이 길게 늘어선 팬들이 입장을 시작했다.
스탠딩부터 3층 좌석까지 단 한 곳의 빈자리도 없이 공연장이 꽉꽉 채워졌다.
팬들은 응원봉을 손에 꼭 쥔 채, 케이케이가 등장하길 기다렸다.
조명이 어두워지고, 쿵―, 쿵― 울리는 비트 소리에 팬들의 기대감이 최고조에 달하기 시작했다. 꺄아아악― 하는 고막을 찢을 듯한 함성과 함께 케이케이가 무대 위로 등장했다.
멤버들은 불꺼진 무대 위에서 반짝반짝 빛나며 자신들을 응원하는 응원봉의 물결을 바라보았다.비트 소리처럼 심장 소리가 커지는 듯했다.
팬미팅 때 이미 겪어 보았지만, 콘서트는 또 다른 의미였다.
최초의 단독 콘서트.
케이케이는 데뷔곡인 ‘Sorry but I Love You’로 시작해서 ‘Very Sorry’, ‘LAST DANCE’까지 그리고 가장 최근곡인 ‘Howl’의 무대를 선보였다.
힙합 유닛 앨범이었던 오케이의 무대도 도욱, 안형서와 함께 두 곡의 무대를 선보였다.
또 여태 방송된 적 없었던 앨범 수록곡들도 무대로 구성하여 처음으로 팬들에게 선사했다.
팬미팅 때와는 다르게 멘트도 별로 없이 계속해서 무대가 이어졌다.
숨 쉴 틈 없이 이어지는 무대에 케이케이 팬들은 정신없이 공연에 빠져들었다.
처음 하는 단독 콘서트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케이케이는 멋지게 공연을 해내고 있었다.
물론 너무 긴장한 탓에 멘트를 하는 시간에 정윤기가 멘트를 놓치거나, 바뀐 안무에 익숙하지 않았던 석지훈이 잠깐 실수를 하긴 했지만, 알아차리기 힘들 만큼 작은 실수였다.
공연이 막바지에 접어들자 케이케이 멤버들은 물론이고, 스탠딩석에서 공연을 즐기던 팬들까지도 온몸이 땀에 젖어 있었다.
콘서트 마지막 곡은 ‘바람 부는 날’ 아카펠라 버전이었다.
멤버들은 스탠딩 마이크를 세워 놓고 일렬로 서 ‘바람 부는 날’을 부르기 시작했다. 무대 장치로 준비된 종이 꽃가루가 흩날리기 시작했다.
서정적인 멜로디가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게 했다.
멤버들은 눈앞의 팬들을 눈에 담으며, 지금까지 정신없이 달려온 날들을 회상했다. 앞으로 가야 할 길도 많았다.
그때, 케이케이 멤버들만을 잡고 있던 VCR 화면에 하나둘 모르는 인물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팬들이 웅성거렸다. 그리고 VCR 화면을 확인한 멤버들의 눈에서 눈물이 쏟아졌다.
도욱은 마이크를 쥔 채 돌아서, 멍하니 화면을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