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9
조준기 (2)
“L 면세점?!”
“진짜?”
“와. 대박!”
메시지를 확인한 깜짝 놀란 멤버들이 저마다 외쳤다.
안 그래도 얼마 전부터 급속도로 광고 섭외가 들어오고 있다는 것을 전해 들었던 터였다.
회사에서는 우후죽순처럼 들어오는 광고들에 나름 고심하며 광고를 고르고 있었다. 케이케이의 몸값을 올리는 것도 고려 중이었다.
그중에 L 면세점은 금액을 떠나 꼭 잡아야만 하는 광고였다.
L 면세점은 영역이 영역인 만큼 대형 한류스타가 아니면 웬만해서는 모델로 쓰지 않는 곳이었다.
물론 L 면세점의 모델이 사방신화 하나뿐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본래도 사방신화를 비롯해 많은 한류스타를 모델로 쓰고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 배우들로 구성돼 있었고, L 면세점의 모델 중 아이돌은 사방신화가 유일했다.
단순히 한국 내에서 인기가 많아서는 안 됐고, 해외에서의 인기 또한 상당해야만 L 면세점의 모델이 될 수 있었다.
케이케이가 일본과 중국에서 반응이 오고 있다는 것을 가장 발 빠르게 캐치한 것이 면세점처럼 해외 영업이 중요한 업계의 마케팅팀들이었다.
영상 촬영 없이 지면 촬영뿐인 서브 모델이라고는 해도 케이케이가 어느 정도의 위치에 올랐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좋은 예시였다.
이로써 케이케이는 ‘교복, 치킨, 면세점’이라는 아이돌이 할 수 있는 최고의 광고 3종을 모두 데뷔한 지 2년여도 안 돼 이뤄낸 셈이었다.
[그럼 촬영은 언젭니까?]
정윤기가 대표로 오백호 실장에게 물었다.
[촬영은 12월쯤이고 신년 광고부터 들어가게 될 것]
[한복 입고 새해 인사하는 컨셉]
[반응봐서 3월 광고는 촬영 하나 더 간다]
외부 미팅에 나가 있는 오백호 실장으로부터 중요 내용만 요약된 간결한 답변들이 돌아왔다.
안형서가 신이 나서 하트를 그리는 토끼 이모티콘을 무차별적으로 보냈다.
“오 실장님이 뭐라 할 것 같은데······.”
휴대폰을 보고 있던 석지훈이 말했다.
아니나 다를까 오백호 실장이 안형서에게 핀잔을 주는 메시지를 보내왔다.
그러거나 말거나 안형서는 신이 나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다른 멤버들은 그런 안형서를 보며 피식 웃었다. 모두 기분이 좋은 게 사실이었다.
“우리 가는 길 막을 자 아무도 없어어어―!”
안형서가 자리를 빙빙 돌며 스포츠 만화 주제가를 불렀다.
귀를 막는 시늉을 하며 안형서를 말리던 정윤기와 도욱의 눈이 마주쳤다.
도욱은 케이케이의 L 면세점 광고 소식을 이미 접했을 아라 엔터 쪽의 반응을 생각하던 중이었다.
‘분명 사방신화를 이을 모델로도 맨투맨을 생각했을 텐데······.’
도욱과 눈이 마주친 정윤기가 중얼거렸다.
“난 사실 요즘 무섭기도 해.”
무슨 말이냐는 듯 도욱이 눈으로 되묻자 정윤기가 조용히 입을 뗐다.
“그렇잖아. 이렇게 계속 잘되기만 하진 않을 텐데······.”
정윤기가 느끼고 있는 불안감을 도욱도 이해했다. 불안한 게 당연했다.
도욱이라고 해서 아무리 미래를 알고 있어 앞서나갈 수 있다지만, 모든 게 맞아떨어질지 아닐지까지 알고 있는 게 아니었다.
도욱에게도 이 삶은 매일 매일이 도전이고, 모험이었다.
그렇지만 한 가지 확실한 믿음이 있었다. 이상한 길로 빠지지 않고, 정해진 길대로 걸으면 도착지에 제대로 도착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최선을 다해 하루를 살아내면 되는 것이었다.
“돈 케어, 브라더. 계속 열심히 하면 되는 거지!”
도욱이 하고 싶었던 말을 김원이 대신했다. 김원의 말에 정윤기가 끄덕였다.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박태형도 마찬가지였다.
때마침 자리를 비웠던 노윤태 선생이 돌아왔다.
다시 콘서트 연습 시작이었다.
***
콘서트 준비로 정신없이 바쁜 와중에 도욱은 유성패션의 이유민 사장과 짧은 만남을 가졌다. 도산공원 근처의 한적한 카페에서였다.
두 사람의 대화를 방해하지 않기 위해 약속장소까지 차로 도욱을 데리고 온 구철민은 옆 테이블에 앉았다.
“안녕하십니까, 사장님.”
“뭐 그렇게까지 딱딱하게 인사를 해요? 편하게 해요. 오랜만이네.”
“네, 그간 잘 지내셨습니까?”
“덕분에요?”
이유민 사장이 웃으며 답했다.
이유민 사장은 브랜드 7days와 오케이의 콜라보레이션 결과에 무척이나 만족한 상태였다. 아무리 욕심이 많아도 만족하지 않으면 이상할 정도로 완벽한 결과였다.
“우리 팀장이랑 얘기해도 되지만, 내가 직접 얘기하는 게 더 낫지 않겠어요?”
커피를 주문한 후, 이유민 사장이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내가 도욱 씨 한 번 더 보고 싶기도 했고.”
오늘도 이유민 사장은 완벽하게 세팅된 상태였다. 빈틈이 하나도 없으면서도 너무 딱딱하지 않고, 여유로워 보이는 태도. 이유민 사장을 보며 도욱은 그러한 것들을 배워나갔다.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래요. 다음 시즌 7days 모델로 케이케이를 쓰고 싶어서요. 오케이 때처럼 콜라보는 아니고 단순히 모델이지만요.”
이번 콜라보 이후 서로에게 윈윈이라는 생각에서 이미 힛 엔터테인먼트와 7days 마케팅팀 간에 어느 정도 이야기가 오고 간 상태였다.
이유민 사장이 특별히 도욱을 챙기려고 형식상의 자리를 만든 것뿐이었다. 인맥 관리라면 관리였다.
“저야 언제나 유성패션과 일할 수 있다면, 영광이라고 생각합니다.”
도욱의 답에 이유민 사장이 커피를 홀짝이며 말했다.
“그렇게 말해주면 고맙네요. 이번에 케이케이가 L 면세점 모델로도 발탁됐다면서요.”
“아, 들으셨습니까?”
“네. 어쩌다 보니.”
이유민 사장이 애매하게 답하다가 이내 웃으며 덧붙였다.
“L 면세점 대표랑 개인적인 친분이 있어서요.”
도욱은 뒤늦게 그 사실을 깨닫곤 아, 하는 감탄사를 내뱉었다.
이유민 사장의 친척이 L 호텔을 보유하고 있는 이유진 대표였다. L 호텔이 대표적이라 L 호텔의 대표라고만 생각해왔는데, L 면세점도 이유진 대표의 것이었다는 게 뒤늦게 떠올랐다.
“그쪽 업계에서 맨투맨이랑 라이벌 구도라면서요?”
“아······.”
무언가 이유민 사장에게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도 같아 궁금한 마음이 앞섰지만 도욱은 말을 아꼈다.
그러한 도욱의 마음을 알아챈 것처럼 이유민 사장은 알아서 도욱에게 말을 이었다.
“그 소속사 쪽에서 밀어붙였다고 하더라고요?”
“그렇습니까?”
역시나였다. 아라 엔터 쪽에서 얘기가 나오지 않았을 리 없었다.
“네. 그런데 뭐, 케이케이가 해외에서 워낙 반응이 좋으니까.”
“노력한 보람이 있네요.”
도욱이 답하며 자연스럽게 미소 지었다.
너무 과하게 겸손하지 않고 내세울 건 내세우는 모습이 이유민 사장도 마음에 들었다.
“그래도 맨투맨 서준? 그 친구가 드라마로 중국에서 반응이 좋아서 모델이 됐대요.”
“몰랐습니다. 잘 됐네요.”
도욱은 표정을 굳히지 않으려 노력하며 답했다.
“우리 쪽에서도 모델 찾다가 그 친구 이름 올라와서 눈여겨보던 중이었거든요.”
“네에······.”
“그렇지만 저희한테는 도욱 씨가 있으니까.”
이유민 사장의 말에 도욱이 몸 둘 바 몰라 하며 앞에 놓인 커피를 마셨다. 이유민 사장이 표정을 조금 굳히자 날카로운 인상이 됐다.
“전 그렇게 생각해요.”
도욱이 진지한 얼굴로 물끄러민 이유민 사장을 보았다.
“깎아 만들어진 다이아몬드보다 더 가치 있는 건 하늘에서 떨어진 별이라고.”
가만히 두 사람의 시선이 교차했다.
도욱은 이유민 사장의 말들 속에서 대충 분위기를 파악할 수 있었다.
아라 엔터테인먼트 쪽에서 유성패션이나 L 면세점 쪽에 맨투맨을 밀어 붙였다는 것과 그 과정에서 이유민 사장의 마음이 오히려 더 돌아서버렸다는 것 정도를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도욱은 이대로 이유민 사장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 이유민 사장이 생각보다도 더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줄 것 같단 생각을 하게 되었다.
***
케이케이의 첫 번째 콘서트 일정은 케이케이가 콘서트 준비를 하기 전에 이미 발표된 상태였다. 포스터와 예매 일정, 공연 일시 등이 발표되자 팬덤이 들썩거렸다.
팬 커뮤니티는 매일 같이 콘서트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했다.
첫 번째 콘서트는 핸드볼 경기장에서 금, 토, 일 3일간 각 1회씩 총 3회차 공연이었다.
지금 케이케이의 인기를 생각하면 공연장의 크기가 작은 편이었다. 그런데 공연도 세 번뿐이어서 모든 팬들을 수용할 수 없을 게 분명했다.
더 큰 장소를 빌리지 못한 건 콘서트 장소 대관을 이미 연초에 해놓은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이미 케이케이의 인기가 많아질 걸 감안한 상태였는데 예상보다도 팬이 증가하는 추세가 더 빨랐다.
예매 전쟁을 예감하는 팬들이 대부분이었다. 심지어는 빠르게 포기하고 일본, 중국 콘서트 이후 아마도 다시 서울에서 하게 될 앙코르 콘서트를 기다려야겠다는 팬까지 있었다.
회차 추가에 대한 이야기가 회사 차원에서도 오갔지만 첫 번째 콘서트이니만큼 질에 더 집중하기 위해서는 하루 한 회가 적당할 거라는 의견에 입이 모아졌다.
-일본은 전국투어 해주는데 한국에서는 오ㅐ 안 하냐 오ㅐ!
-지방 급식인데.. 어떻게 올라가..ㅠㅠ? 용돈 예매때까지 모을 수 있을까?
-첫 번째 콘서트라니 너무나 기대! 케이케이 라이브 쩔겠징
-도욱 완댜님 첫 실물 영접 D-31..
-나 제정신일 수 있을까???
-직딩인데 금요일 8시 공연 넘 아슬아슬하다. 올콘 하고 싶은데... 연차 써야 하나.
-키링임? 키링 아니면 올콘 하고 싶어도 못 할 듯
-ㅇㅇ키링1기
-금수저네
그나마 빠르게 입덕해 팬클럽인 키링에 가입되어 있는 팬들만 심적으로 마음의 여유가 있는 편이었다. 좋은 자리에 가기 위한 걱정은 있었어도, 아예 표가 없을 거라는 걱정은 하지 않았다.
팬클럽 선예매가 일반 예매 전날 미리 진행되기 때문이었다.
콘서트 예매가 진행되던 날, 오케이 활동을 위해 정윤기, 김원, 도욱까지 숙소를 비운 사이 석지훈은 숙소 거실 컴퓨터에 앉아 예매 사이트에서 표를 예매해 보고 있었다.
박태형은 그 뒤에서 구경 중이었다.
“왜··· 예매하는 거야?”
“그냥 맨날 팬카페 들어가 보면 예매 전쟁이라고 울고 있길래요. 팬들이 어떻게 예매하는 건지 궁금해요.”
박태형도 궁금한 건 마찬가지였다.
시간에 맞춰 예매 사이트에 들어간 석지훈은 팬들이 말하던 대로 예매시간인 오후 8시 정각이 되자마자 F5키를 눌러 페이지를 새로고침했다.
“어?”
뒤에 서 모니터를 보던 박태형이 멍하니 소리를 냈다. 나름 빠르게 마우스 움직일 자신이 있었던 석지훈도 멍청하게 모니터만 바라봤다.
새로고침한 화면은 뜨지 않고 흰색 화면만 떠 있었다.
아무리 버튼을 눌러도 들어가지지 않았다. 십 분이 지난 후에야 겨우 좌석 선택을 하는 곳까지 들어갈 수 있었지만, 이미 표는 남아있지 않았다.
거의 5분 만에 선예매 좌석 전석 매진이었다. 다음 날 일반예매에 남아 있던 얼마 안 되는 표는 2분 만에 사라졌다. 전석 매진이었다.
“팬들 정말 대단하구나······.”
“그러게요.”
석지훈과 박태형, 두 사람이 큰 깨달음을 얻은 날이기도 했다.
***
그렇게 전석이 매진된 콘서트가 코앞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다름없이 콘서트 연습을 하고 있던 멤버들은 오랜만에 팬-마케팅팀 회의실에 소집되었다.
콘서트를 앞두고 준비할 것들이 꽤 있었다.
또 팬-마케팅팀 내부에 변화가 있었다.
조애니 전 팬-마케팅 팀장이 기획운영팀 부장으로 승진하며 부서를 옮겼고, 팬-마케팅팀에 새로운 팀장이 들어온 것이 그 변화였다.
케이케이 멤버들은 회의실로 들어오는 장신의 남자를 바라보았다. 연예인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훤칠한 외모였다.
“안녕하세요, 이대형입니다. 새롭게 팬-마케팅팀 팀장이 되었는데, 앞으로 잘 부탁합니다.”
시원시원한 소개에 케이케이 멤버들이 인사를 받으며 ‘오오―’ 하는 감탄사를 작게 내뱉었다. 이대형의 첫 인상이 워낙 좋았다.
도욱은 이대형과 악수를 나누고 돌아서 자리에 앉으며 미간을 찌푸렸다.
‘아라 엔터에 있어야 할 이대형 팀장이 왜 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