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8
조준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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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케이의 앨범이 발매되자 속속들이 반응이 나왔다.
힙합이라는 장르는 언젠가부터 일부 매니아만 즐기는 장르가 아니었다. 음악시장에서 트렌드를 선도하는 장르 중 하나가 되어 있었다.
그 가운데에서도 오케이의 앨범은 단연 돋보이는 앨범이었다.
힙합 음악의 주류를 생산하는 미국에서 나온 앨범이라고 해도 믿을 만했다. 몇몇 평론가가 미흡한 부분도 존재한다고 평하긴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평론가의 입장이었다.
그러한 평론가들조차 올해 나온 힙합 앨범 중 가장 대중성 있는 수작이라는 평가를 내리는 데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오케이는 아이돌 장르가 아닌 힙합 장르 그 자체로 보아도 괜찮다는 평은 당연했다.
곡은 세 곡뿐이었지만, 세 곡의 배리에이션이 상당했다.
도욱과 함께한 ‘Go High’는 함께 높은 곳으로 가자, 뛰어 보자는 내용의 신나는 곡이었다. 쉬운 가사, 빠른 래핑, 중간마다 치고 나오는 도욱의 시원시원한 목소리까지.
대중들에게 어필할 수밖에 없는 노래였다.
안형서와 함께한 곡인 ‘돌아가지 마’의 경우에는 과거를 뒤돌아보지 말자는 내용이었다. ‘Go High’보단 템포가 느린 곡으로 정윤기와 김원, 두 래퍼의 문학적인 가사가 일품이었다.
게다가 안형서가 애절한 목소리로 뽐내는 고음은 가을비와 같이 축축하게 귀를 적셨다.
케이케이의 앨범에는 부담스러워서 시도하지 못했던 감정과잉에 가까운 안형서의 창법이 새롭기도 했다.
마지막 곡인 ‘talk to you’는 그야말로 정윤기와 김원의 이야기였다. 두 래퍼는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모든 실력을 다해 두 사람만의 곡을 만들어냈다. 가장 힙합 매니아들을 자극할 만한 곡이기도 했다.
이렇게 완벽한 곡 구성은 프로듀서인 도욱의 손에서 탄생하기도 했지만, 유명 힙합 그룹 출신 래퍼이면서 얼마 전부터 작곡가로 나선 탠디를 영입한 덕분이기도 했다.
“요즘 괜찮은 작곡가가 있나?”
“탠디······.”
앨범의 타이틀곡을 생각하던 중 정윤기가 물었을 때 도욱은 탠디의 이름을 슬쩍 흘렸다.
탠디가 힙합 장르 쪽에선 가장 대중적이고 세련된 음악을 하고 있다는 걸 도욱도 잘 알고 있었다. 이후에는 용감한외동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한 히트곡 제조기가 되기도 하기 때문이었다.
그 시작점이 오케이가 되는 것도 나쁘지 않은 이야기였다.
도욱이 흘린 ‘탠디’라는 이름에 정윤기는 반응했다.
탠디는 쇼미더허니의 심사위원이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정윤기는 적극적으로 쇼미더허니 때의 인연을 이용해 탠디에게 연락, 곡을 받아냈다. 탠디가 보내온 곡은 오케이가 타이틀로 생각하는 이미지의 곡과 무척이나 잘 맞아 떨어졌다.
그렇게 탠디가 오케이의 앨범에 참여하게 되었다.
“반응······. 진짜 좋아. 아직도 실시간검색어에 있어.”
휴대폰을 보며 정윤기가 얼떨떨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앨범을 발매한 지는 이제 3일이 지나 있었다. 어제 녹화한 음악 방송이 방송되고 나자 실시간검색어에 다시금 오케이의 그룹명과 케이케이, Go High 등이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며칠 동안 심심찮게 실시간 검색어에 등장했다. 하루 잠깐 이슈가 되고 사라지는 그런 류가 아니었다.
“신나! 익싸이티이이이잉―!”
김원이 신나서 외쳤다.
오늘은 ‘7days’ 명동 매장에서 오케이 앨범 발매 기념 공개 팬 사인회가 열리는 날이었다. 오케이 멤버인 정윤기와 김원에 7days 주요 모델이기도 한 도욱까지가 팬 사인회 멤버였다.
오늘 팬사인회 행사를 위해 막아놓은 매장 한편에서 세 사람은 팬 사인회 시작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까 뒤쪽으로 들어올 때 보니까 사람 많이 몰리는 것 같던데.”
도욱이 걱정된다는 듯 바깥쪽을 힐끔거리며 말했다. 구철민이 끄덕이며 공개 팬 사인회라 그런지 인원이 몰려 경호팀에서도 비상이라고 답했다.
도욱은 오케이 활동이 시작되면서 새삼 케이케이의 인지도가 정규 2집 이후를 계기로 해 한 계단 올라간 것을 느끼고 있었다.
클럽이며 옷가게, 길거리 어딜 가도 오케이의 노래들이 울려 퍼지고 있다는 얘기가 실제임을 오늘 명동에서 오자 체감이 됐다.
‘케이케이에 대한 기대감이 고스란히 오케이에게도 이어진 거겠지······.’
거기에다 아이돌 음악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던 일부 대중들까지도 힙합이라는 장르를 통해 오케이가 포용한 부분도 있었다.
“이제 나가자. 시간 다 됐다.”
구철민의 말에 도욱과 정윤기, 김원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팬 사인회장인 1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으로 매장 앞의 광경을 볼 수 있었다.
“오 마이 가쉬.”
명동에 사람이 가장 많은 크리스마스 시즌을 방불케 할 정도로 7days 매장 앞에는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저게 다······.”
아래를 내려다보며 정윤기가 말을 잇지 못했다.
실시간으로 올라오던 ‘오케이 팬 사인회로 몰린 인파’ 등의 제목으로 올라오던 기사를 봤음에도 직접 눈으로 보니 그 이상이었다.
“우리 사인회 가능한가?”
“팬들에다가 지나가던 사람들도 너희 보려고 난리라···. 빨리 끝내야 할 것 같아.”
안전사고가 걱정될 정도의 인파였다. 안 그래도 근처 경찰들까지 출동한 상황이었다.
도욱은 고개를 끄덕였다. 7days의 옷을 사고 당첨된 150여 명과의 사인회는 속전속결로 이루어져야 할 듯싶었다.
너무 빠르게 진행되는 사인회에 팬들이 서운해 하지 않도록 최대한의 팬서비스를 해야겠다는 생각 또한 들었다.
“얼른 내려가요.”
“그러자.”
도욱의 말에 정윤기와 김원이 걸음을 서둘렀다.
4층 건물을 매장으로 쓰는 7days 명동 매장 전면에는 오케이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명동의 중심부에 걸린 자신들의 사진 앞에서 오케이는 사인회를 시작했다.
오케이의 대형 사진이 걸려 있는 곳은 명동뿐만이 아니었다. 강남대로 한복판에도 오케이가 있었다. 7days의 광고가 붙는 곳이면 어디든 커다란 오케이의 모델컷이 부착되어 있었다.
7days와의 제휴로 인한 홍보효과는 어마어마했다.
물론 오케이로 인해 7days가 누리는 홍보 효과도 상당했다.
멤버들이 오케이 활동 기간 동안 음악방송과 팬 사인회 등 언제 어디서나 착용하고 있었던 7days의 운동화는 선풍적인 인기를 얻고 있었다.
흰색과 검은색 두 가지 버전으로 나온 하이탑 운동화였는데, 국민 운동화라 불릴 정도로 학생들부터 20대에까지 인기가 많았다.
길거리를 걷다 보면 다섯 명 중 한 명꼴로 7days 하이탑 운동화를 신고 있는 수준이었다. 전문 신발 브랜드도 아닌 7days로서는 놀랄 만한 일이었다.
물론 하이탑 운동화에 대한 수요가 트렌드처럼 많아지고 있는 추세라 출시한 운동화였지만, 수많은 하이탑 운동화 라인 중에서 7days의 운동화가 대표 브랜드를 선점하게 된 건 오케이가 가장 먼저 하이탑 운동화를 신고 무대에 선 덕분이었다.
그리고 7days에서 내놓은 오케이 라인의 모든 의상에 들어가는 ‘will be okay’ 문구는 유행처럼 번져 쇼핑몰 판매 상품에도 심심찮게 같은 문구가 들어간 옷들을 만날 수 있었다.
특히 도욱이 착용했던 맨투맨은 벌써 십만 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리고 있었다.
오케이라는 그룹이나 도욱이 패션 리더로서의 역할도 해낼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일이었다.
그렇게 짧고 굵었던 일주일간의 오케이 활동이 막을 내렸다.
김원과 정윤기로선 조금 더 활동을 하고 싶은 아쉬움이 남을 정도로 이제 한창 반응이 달아올라 있었다.
여전히 음원 차트에서도 세 곡이 각각 1, 3, 10위라는 순위에 올라 있었다.
팬덤도 중요하지만, 대중이 움직이면 어마어마하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은 활동이었다.
그러나 서울에서 시작해 일본과 중국까지 오가는 첫 케이케이 콘서트 투어가 있었기 때문에 더 이상의 활동은 불가했다.
“활동 안 해도 한동안 계속 노래는 순위 유지할 것 같던데.”
첫 콘서트의 세트리스트가 막 나온 상황이었다.
기존에 없었던 곡들의 안무를 먼저 숙지하고자 멤버들은 모여서 연습을 진행했다. 안무가인 노윤태가 자리를 비운 사이 잠시 쉬는 시간, 안형서가 음원 차트를 보고 있는 정윤기를 향해 말했다.
“어, 내도 그럴 것 같긴 한데.”
정윤기가 뒷머리를 긁적였다.
“돌아가지 마도 계속 2, 3위 하는 거 신기하고 좋다.”
“그제.”
안형서가 자신이 피처링한 곡을 짚으며 말했다.
오케이 유닛 앨범은 케이케이 정규 앨범과는 또 다른 의미였다. 조금 더 멤버들이 하고 싶었던 음악 색깔을 뚜렷하게 내보일 수 있었다.
확실히 참여도가 높아지니 앨범에 대한 애정도 남다른 듯했다.
도욱은 안형서와 정윤기를 보며 내년에 낼 다음 케이케이 앨범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단체라는 특성을 살리긴 하겠지만, 조금 더 개성을 드러낼 수 있는 앨범이 돼도 좋을 것 같다.’
박태형이 도욱에게 스윽 무언가를 내밀었다.
음용 홍삼팩이었다.
“아. 고마워.”
도욱이 웃으며 홍삼팩을 받아들었다. 박태형은 도욱이 나은지 꽤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시시때때로 도욱에게 홍삼팩이나 영양제 등을 내밀며 도욱의 건강을 챙기고 나섰다.
따로 말은 하지 않지만, 도욱의 도움으로 데뷔를 하게 된 박태형은 도욱에게 늘 고마움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박태형의 마음이 전해져 도욱도 박태형이 내미는 것들을 마다하지 않고 고마운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근데 오늘 사방신화 앨범 나온다 아이가. 순위 밀릴 것 같다.”
정윤기가 중얼대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형서도 사방신화 때문에 순위가 밀릴 것이라는 말에는 별다른 이견을 달지 못했다.
“또 엄청 멋있겠지?”
“티저 봤는데 까리하대.”
사방신화는 파워풀한 퍼포먼스로 아이돌 팬덤을 집어삼킨 그룹이었다.
도욱은 가만히 생각했다.
‘어차피 내년 정도에 사방신화는 내리막길을 걷는다.’
사방신화 내 멤버들 간의 불화가 커지면서 안 좋은 소문들이 사방신화를 둘러싸기 시작한다. 멤버들의 불화는 곧장 팬덤 분열로 이어진다.
어차피 대상을 2년 연속해서 탄 대형 그룹이었다. 오르막길이 있으면, 내리막길이 있는 법이었다. 그러나 사방신화는 서서히 내려오는 게 아니라 추락이라는 말이 붙을 정도로 급격하게 인기가 떨어지게 된다.
사방신화 스스로가 자초한 일이었다. 아라 엔터테인먼트 쪽에서는 사방신화의 뒤를 이을 맨투맨이 자리를 잡아가는 상황이었으므로 사방신화에 더는 투자할 가치를 느끼지 못한 부분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케이케이 때문에 맨투맨이 완벽하게 자리를 잡지는 못한 상황이다.’
사실상 맨투맨이 다음 앨범을 어떻게 들고나오느냐에 따라 완벽하게 케이케이와 맨투맨은 갈리게 될 것이었다.
그리고 그 부분에 있어서 도욱은 케이케이의 승리를 확신했다. 현재 케이케이의 상승세는 보통의 방법으로 꺾을 수 있는 상승세가 아니었다.
연기자로서 서강준 개인과 도욱의 대결은 아직 누구의 승리도 아니었지만, 맨투맨과 케이케이라면 그러했다.
‘사방신화도······. 제 발에 걸려 넘어지기 전에, 케이케이가 치고 올라가면 좋을 텐데.’
도욱은 생각하며 다 마신 홍삼팩을 휴지통에 던져 넣었다.
어차피 이번 앨범부터도 팬덤 결집력이나 규모면에서는 1위이지만, 대중성이 조금 떨어지는 사방신화는 곧 음원차트에서는 오케이에 밀릴 것이었다.
그러나 넘을 수 없는 벽이라 불리는 앨범판매량이 사방신화에게는 있었다.
‘내년 케이케이 앨범으로 승부를 본다.’
도욱은 생각하며 아라 엔터테인먼트를, 서강준과 서중원 본부장을 서서히 무너뜨릴 계획을 세웠다.
그러한 한 수를 위해 생각해둔 방법 또한 존재했다.
그때 멤버들의 휴대폰이 일제히 울렸다. 오백호 실장으로부터 도착한 단체메시지였다.
사방신화가 메인인 L 면세점의 광고에 케이케이가 서브 모델로 들어가게 된다는 이야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