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슈퍼스타-87화 (87/225)

# 87

Go Higher (4)

***

이유민 사장을 만나기 전, 도욱은 케이케이 멤버들과 오백호 실장이 있는 자리에서 힙합 유닛 활동을 해보면 어떻겠냐고 의견을 구했다.

김원과 정윤기가 주 멤버가 되고, 안형서나 도욱이 피처링을 하는 수준의 곡들을 해보자는 게 도욱이 생각하는 힙합 유닛이었다.

말을 하면서도 도욱은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유닛 활동이란 게 개인 활동과 마찬가지로 팀 전체의 밸런스를 망쳐 놓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힙합 유닛에서 제외되는 멤버들이 소외된다는 생각을 가질 수도 있었다.

또 힙합 유닛에 들어가는 멤버들의 하고자 하는 의사 또한 무척이나 중요한 부분이었다.

“와, 도욱이 또 일한다!”

도욱이 말을 끝내자마자 안형서가 그것에 혀부터 내둘렀다. 다른 멤버들도 고개를 저었다.

걱정했던 부분인 멤버 구성에 대한 불만은 전혀 없는 듯했다.

“정식 활동 아니고 유닛 활동이니까 케이케이 멤버들에게 이런 면모도 있다는 것도 알릴 겸, 쉬엄쉬엄······.”

황급히 설명하는 도욱에 안형서는 웃기다는 듯 웃어버렸다.

멤버들의 반응이 좋지 않은 것 같다는 느낌에 도욱이 얼른 덧붙였다.

“다들 힘들 것 같으면······.”

자신의 욕심 때문에 다른 사람들을 무리시킬 생각은 전혀 없었다. 도욱의 말을 끊고 김원이 말했다.

“브라더, 암 오케이. 난 괜찮아. 듣자마자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고.”

도욱의 표정이 대번에 밝아졌다.

“네가 오버워킹하는 게 문제지.”

김원의 말에 도욱이 신경 쓰지 말라고 하려던 때였다. 정윤기가 나섰다.

“나도, 좋은데. 나한테나 원이한테 좋은 기획인 것도 확실하고.”

“그렇죠?!”

“생각해줘서 고맙다. 근데 조건이 있다, 마.”

“조건··· 이요?”

정윤기가 내뱉는 ‘조건’이라는 말이 무척이나 생소했다. 멤버간에 오갈 만한 단어는 아니었다. 도욱은 조금 긴장한 상태로 정윤기의 조건이라는 것을 들었다.

“앨범 프로듀싱은 도욱이 니가 할끼가.”

“네. 혹시 그게 맘에 안 드시면······.”

“아니 거는 좋다. 니만큼 우리에 대해 잘 아는 프로듀서가 어딨나. 근데 작사는 전 파트, 전곡 다 우리가 한다.”

정윤기의 조건이라는 것은 그것이었다.

정윤기는 조금이라도 도욱의 짐을 덜어내고 싶었다. 도욱은 정윤기가 나서 작사를 하겠다고 하니 그 마음이 고마워졌다.

“힙합은 내 전문 아이가.”

맞는 말이었다.

도욱도 애초에 멤버들의 역량을 더 극대화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이 앨범을 기획해낸 것이었다.

두 사람이 이 기획을 귀찮은 일로 받아들이지 않고, 의욕적으로 기회라고 생각해줘서 다행이었다.

“당연하죠. 저보단 오히려 형이 더 잘 아시기도 하니까요.”

도욱의 말에 정윤기가 빙긋 웃었다. 김원의 눈에도 의지가 보였다.

“작사뿐 아니라 컨셉부터 곡 선정까지도 형들이 같이 참여하면 좋을 것 같아요.”

“좋다, 마. 우리도 해봐야 늘지.”

정윤기와 김원은 자신들이 중심이 되는 앨범이니만큼 적극적으로 나섰다.

꽤 안정적인 궤도에 오른 정윤기와 실력을 갈고 닦은 김원이 함께한다면 충분했다. 도욱이 정규 2집 케이케이의 앨범을 혼자서 프로듀싱할 때처럼 많은 짐을 질 필요도 없었다.

“나도 조건이 있다.”

오백호 실장의 갑작스러운 말에 모두 의아한 눈으로 오백호를 바라보았다.

사실 오늘 이렇게 전 멤버와 오백호까지 모아놓은 건 오백호였다. 도욱이 모인 김에 얘기하겠다고 먼저 이야기를 꺼내면서 유닛 앨범 회의가 된 것이었다.

“스케줄상 힙합 유닛 앨범을 낸다면 두 달 정도는 준비해야겠지?”

“예······. 아무래도 그렇죠.”

오백호의 질문에 도욱이 답했다.

“그럼 다음 주에 일주일은 회사에서 하라는 거 하고, 준비 들어가자.”

“헉. 도욱이 또 스케줄이 있어요? 진짜 우리 회사 독하···.”

안형서가 기겁하자 오백호 실장이 눈썹 한쪽을 올렸다.

“도욱이만 있는 게 아니라 너희 전부 다다.”

“네?”

“뭐······ 뭐예요?”

콘서트 준비와 간간이 잡힌 큼직한 행사 외에는 스케줄이 없는 줄 알았던 터라 박태형조차 조금 놀란 듯 물었다.

“일주일 동안 휴가다.”

“예?”

“괌으로.”

멤버들의 입이 떡하니 벌어졌다.

“너희 일 년 넘는 시간 동안 안 쉬었잖냐. 이번에 제대로 쉬라고 회사에서 괌 여행 전부 지원해준대. 포상휴가 같은 거지.”

“진짭니까?”

정윤기가 침을 한 번 삼키며 물었다.

“뭐 하러 거짓말을 해. 한국에서 휴가 줘봤자 제대로 쉬지도 못할 거고. 괌에서 4박 정도 하고 남은 이틀은 집에들 다녀오고.”

“오 마이 가쉬!”

김원이 기쁨에 가득 찬 목소리로 소리쳤다.

도욱도 회사 차원에서의 배려에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의 조건이라는 것 모두 도욱을 위한 것이었다.

앨범제작팀 심준 팀장과 제작이사인 권흥조와 더 깊은 논의 후 도욱이 기획한 케이케이의 힙합 유닛 앨범 활동이 결정되었다.

권흥조 이사는 이번 앨범을 소속 아티스트의 음악적 색깔을 다양화하고, 역량을 키워주는 복지 차원의 앨범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을 테니 크게 무리하지 않아도 좋다라는 이야기까지 건넸다.

수익 창출이 목표인 회사에서 쉽지 않은 이야기였다.

그러나 도욱이나 케이케이 멤버들이 이미 어느 정도의 인기를 가지고 있는 이상, 적자가 발생하지는 않을 거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 권 이사의 계산도 밑바탕에 깔려 있었다.

아무튼 부담감은 너무 갖지 말라는 이야기였다.

앨범 발표는 두 달 후로 계획했다. 연말 콘서트와 시상식 일정 등과 겹치지 않게 음악 방송 등의 활동은 일주일만 진행하기로 했다.

팬서비스 차원에서의 팬사인회 한두 번 정도의 스케줄만을 잡을 예정이었다.

힙합 유닛의 이름은 ‘오케이(OKAY)’가 되었다. 김원(one)의 ‘O’와 정윤(yoon)기의 ‘Y’ 이니셜이 들어가 있기도 했고 케이케이의 ‘케이’ 글자가 들어가 있기도 해 정해진 이름이었다.

‘오케이’라는 말이 주는 뜻이나 어감도 좋았다.

유닛 이름의 아이디어는 석지훈에게서 나왔다. 유닛에 주축 멤버가 아닌 다른 케이케이 멤버들도 오히려 고생하는 멤버들을 위해 선뜻 발벗고 이것저것 잡다한 것들을 도와주고 나섰다.

***

차근차근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안 도욱은 유성패션 이유민 사장과의 만남을 가졌다.

그리고 유성패션 이유민 사장에게 케이케이의 힙합 유닛인 오케이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구체적인 계획까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힙합 유닛이라······. 재밌는 걸 하네요.”

“다양한 시도를 해보고 싶었습니다.”

“내가 도욱 씨랑 일하고 싶었던 건 사실 우리 브랜드 이미지를 재고하기 위해서예요.”

이유민 사장이 먼저 자세한 이야기를 꺼냈다.

유성패션 내에도 브랜드가 여럿 있었기 때문에 본래는 사장급에서 나오는 제안은 아니라 프로젝트 관련 부장이나 실장 정도가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모델 등을 섭외하고는 했다.

이유민 사장이 하는 일은 조금 더 큰 방향성을 제시하고 프로젝트들을 총괄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때때로 이유민 사장은 유성패션의 브랜드들에 새바람을 넣은 사장답게 발 벗고 나서 구체적인 프로젝트를 구상하고는 했다.

도욱을 보고 구상한 일도 그중 하나였다.

“아는지 모르겠지만 우리 SPA 브랜드 중에 ‘7days’라고 있어요.”

“알고 있습니다.”

외국 등지에서 SPA 브랜드가 강세를 나타내자 유성패션에서 발빠르게 준비하고 런칭한 브랜드였다.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유성패션이라는 대기업을 등에 업고 공격적인 마케팅 등을 통해 이름을 알리고 있었다.

“작년부터 서울을 중심으로 매장을 늘리고 있고, 목표는 물론 세계 시장 진출입니다.”

도욱은 이유민 사장의 이야기를 들으며 물로 입을 축였다.

“그런데 다른 SPA 브랜드들이랑 차별점을 내세우기가 힘들더군요. 브랜드 이미지도 아직 확실하지 않고. 그래서 도욱 씨를 브랜드의 얼굴로 세우는 건 어떨까 생각했죠.”

이유민 사장의 이야기는 무척이나 귀를 번뜩이게 하는 것이었다.

한 브랜드의 얼굴이 된다는 건 어마어마한 일이었다. 신생 브랜드라고는 해도 유성패션의 브랜드였다.

“젊지만 너무 가볍지 않은 이미지가 우리 브랜드와 딱 맞는다고 생각했어요. 랑데뷰 프로젝트를 보면서 생각하게 된 거예요. 요즘 중국 시장에서 반응도 좋다는 것 같고······.”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도욱이 정중하게 인사했다. 이유민 사장이 그런 도욱의 반응을 보며 웃음을 지었다. 왜 자신의 오빠가 도욱을 좋게 봤는지 알 만도 했다.

어느덧 코스 요리의 끝무렵이었다.

“힙합이라고 욕설이 난무하는······ 그런 건 아니겠죠?”

“물론입니다.”

이유민 사장의 짓궂은 질문에 도욱이 빠르게 답했다.

“우리 7days랑 케이케이의 힙합 유닛이 콜라보를 하면 좋겠다는 건가요?”

“꼭 그 브랜드를 염두에 둔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인연이 닿은 것 사장님께서 도와주셔서 같이 일하게 되면 큰 힘이 될 듯합니다.”

이유민 사장으로서도 나쁘지 않은 제안이었다. 자세한 건 어차피 이유민 사장도 전략기획팀에게 지시를 내려 분석을 해봐야 할 것이었다.

이유민 사장이 흔쾌히 답했다.

“좋아요, 좋아! 젊은 이미지를 주는 데는 나쁘지 않을 것 같고. 도욱 씨가 있으니 다른 건 믿죠.”

“아······. 감사합니다.”

“케이케이는 우리에게 긍정적인 이미지를 주고, 우리는 케이케이를 브랜드와 함께 대대적으로 홍보할 수 있을 겁니다. 도욱 씨 말대로 좋은 인연이 됐으면 좋겠네요.”

도욱은 끄덕였다.

이유민 사장의 루비 반지가 손가락에서 반짝거렸다. 그 반지와 같이 가치 있는 일이 되기를 도욱은 바랐다.

***

괌으로 포상휴가를 다녀온 케이케이 멤버들의 얼굴은 전체적으로 그을려져 있었다. 멤버들은 함께 웃고, 떠들고, 쉬며 재충전하고, 다시금 함께 만들어나가는 꿈을 그렸다.

그러한 시간을 가지면서 도욱의 마음에도 한 자락 여유가 생겼다.

계속해서 열심히 하겠지만, 복수만을 보며 무소의 뿔처럼 가던 일 년여의 시간들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기는 했다.

현재 강도욱으로서 앞으로의 삶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되었다.

물론 언제 다시 영혼이나 시간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불안정함이 있었기 때문에 생각이 깊게 이어지지는 못했다.

쾌청한 가을 날씨가 계속되는 가운데 케이케이의 힙합 유닛 ‘오케이’는 앨범 후반 작업에 들어갔다.

총 3곡의 트랙리스트가 나왔다.

타이틀곡인 ‘Go High’에는 도욱의 피처링이 들어갔다.

안형서가 피처링한 곡 한 곡, 그리고 김원과 정윤기 두 사람의 랩만으로 이루어진 곡이 한 곡이었다.

일주일간의 활동 동안에는 도욱과 안형서가 번갈아가며 무대에 서기로 했다.

앨범 발매를 앞두고 본격적인 홍보가 시작되자 아이돌계는 물론이고 국내 힙합씬까지 젊은층의 반응이 뜨거웠다.

오케이의 스타일링 전부를 유성패션의 ‘7days’ 디자인팀이 전담하게 되면서 오케이는 브랜드 ‘7days’가 출시하는 새로운 라인의 모델이 되었다.

더해 오케이의 컴백과 함께 ‘7days’의 전 매장과 전국 TV 광고에는 오케이의 음악이 깔릴 예정이었다.

그리고 사방신화의 컴백도 예정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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