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6
Go Higher (3)
도욱이 석지훈의 어깨를 붙잡았다. 어지러움을 견뎌내기 위해서였다. 석지훈이 옆에 서 있지 않았다면 어지럼증으로 인해 그대로 자리에서 쓰러졌을지도 모르는 순간이었다.
막내인 석지훈, 실제로는 도욱의 조카벌이나 다름없는 석지훈이 지금 이 순간만큼 의지가 될 때가 있을까 싶었다.
다른 쪽에 있던 멤버들이 힐끔거리며 도욱과 석지훈이 이상을 감지했다. 일전에 있었던 마이크 음향 사고가 떠올렸다. 그때도 아찔했지만, 지금은 단순한 기기 이상이 아니었다.
도욱을 석지훈이 받쳐주고 있는 상황이었다. 혼자서 하는 무대가 아닌 팀이 함께하는 무대라 천만다행이었다. 팀워크의 중요성을 도욱은 다시금 깨닫고 있었다.
단체로 부르는 부분에서 도욱이 마이크를 입에 댄 채 립싱크를 하는 모습을 보며 멤버들은 겨우 안도했다.
“어? 오늘 자리가 달라졌네.”
“그러게? 뭐지. 우리 비주얼라인 왼쪽으로 옮겼네.”
엔딩 대형이 달라진 것을 눈치챈 팬들이 의아해했지만, 크게 이상한 수준은 아니었다.
도욱의 좋지 못한 표정도 격한 무대 때문에 지친 정도로 이해될 수 있었다.
그렇게 ‘Howl’ 활동의 마지막 무대가 무사히 끝날 수 있었다.
***
케이케이 멤버들이 무대에서 내려오자마자 무대를 모니터링 하고 있던 오백호 실장은 도욱에게로 달려갔다. 이미 구철민에게는 주차장에 가서 차를 대기시켜 놓으라고 지시를 해둔 상태였다.
도욱을 태운 차는 곧장 병원으로 향했다.
병명은 당연하게도 과로로 인한 피로누적, 그에 따른 위장장애였다.
도욱은 이삼 일 정도 입원하며 안정을 취하는 게 좋겠다는 의사의 진단을 받은 채 왼손에 링거를 맞아야만 했다.
뒤늦게 옷을 갈아입고 병원에 도착한 멤버들이 입원실의 도욱을 보고는 한숨을 쉬었다.
“입원까지 안 해도 되는데······.”
민망한 마음에 도욱이 먼저 말했다.
오백호 실장이 혀를 찼다.
“병원에라도 가둬놔야 일을 안 하지 않겠냐. 숙소에서 쉬라고 해도 안 쉴 거잖아. 너한테 숙소는 그냥 작업실이지.”
틀린 말이 없어 도욱은 입을 다물었다.
도욱은 조금 전의 아찔했던 상황을 떠올렸다. 무대에서 그대로 쓰러지기라도 했다면 정말 큰일이었다.
‘열심히 준비한 무대를 나 때문에 망칠 뻔했다······. 이미 조금 망쳐버렸지만.’
도욱은 생각하며 멤버들과 매니저인 오백호와 구철민을 향해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괜히 나 때문에 무대도 제대로 못하고······. 죄송합니다. 미안.”
도욱의 사과에 멤버들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맞대응했다. 정윤기가 눈을 치켜뜨며 말했다.
“인마. 죄송은 무슨 놈의 죄송. 지금 무대가 문제야?”
“야, 도욱아!”
보다 못한 안형서가 도욱의 이름을 외쳤다. 미안해하는 도욱이 어지간히 답답한 모양이었다.
“무대 못한 것도 없잖아. 무대가 아니라 네 몸이 걱정되는 거야 우린.”
안형서의 진심 어린 말에 도욱은 고개를 끄덕였다.
멤버들이 자신을 얼마나 생각해주는지는 지금 자신을 향한 멤버들의 표정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도욱은 괜스레 가슴 한편이 찡해졌다.
“그러니까 걱정시켜서 미안해요······.”
다시 한 번 도욱이 사과하자 안형서가 고개를 저었다.
“죄송해야지. 그럼.”
오백호 실장이 고개를 저으며 계속 죄송하라는 식으로 말하자 멤버들이 그에게 따가운 눈길을 보냈다.
그러나 오백호 실장은 꿋꿋했다. 오백호 실장도 이제 나름대로 도욱에 대한 파악이 끝난 상태였다. 이런 성격이면 미안해하지 말라고 해봤자, 계속해서 오늘의 일을 자신의 ‘잘못’이라고 생각할 게 뻔했다.
책임감이 과하다면 과했다. 이런 인물에겐 차라리 다 네 탓이니 알아서 잘하라는 식으로 말하는 게 말이 통한다는 걸 오백호 실장은 느끼고 있었다.
“죄송한 만큼 네 몸 챙겨라. 네 몸 안 챙기면 어떻게 되는지 알았을 테니까.”
“네.”
도욱이 희멀건 한 얼굴로 답했다. 수액을 맞으면서 컨디션이 확실히 회복되고 있었지만, 아직까진 안색이 파리했다.
“형. 진짜 푹 쉬세요. 어차피 당분간 스케줄도 없으니까.”
석지훈의 말에 도욱이 끄덕였다.
“고맙다. 지훈아.”
네 덕분에 살았다는 등 긴 말은 생략했다. 고맙다는 한마디뿐이었지만 석지훈도 도욱이 느끼는 고마움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너희들도 몸 관리 잘해.”
“그럼요. 도욱이만큼 하는 멤버는 또 없으니까 걱정 마세요.”
“그걸 위로라고 하는 말이야?!”
오백호 실장의 말에 안형서가 장난스럽게 답했다. 오백호가 픽 웃으며 안형서에게 핀잔을 주었다.
도욱은 병실에 모인 멤버들을 보며 생각했다.
몸 관리를 잘해왔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견디기 힘든 부분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멈출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아이돌 그룹의 수명은 어느 정도 정해져 있었다. 제한된 시간 안에 최고치의 결과를 끌어내려면 아무래도 무리가 따르는 법이었다.
“몸 아프면 다 소용 없다. 너도 알지?”
오백호 실장이 마지막으로 도욱을 보며 말하곤 자리를 정리했다.
“이제 가 보자. 너희 여기 있으면 제대로 못 쉰다.”
오백호에게 등 떠밀린 멤버들은 곧 또 오겠다는 식으로 말하곤 우르르 병실을 빠져나갔다.
‘아프면 다 소용 없다는 말······ 맞는 말이다.’
빈 병실에 혼자 남은 도욱은 생각했다.
앞으로 더 바빠지면 바빠졌지, 한가해지진 않을 것이었다. 도욱의 목표가 조금 잘나가는 아이돌 가수가 아닌, 더 큰 곳에 있는 한 그랬다.
가수뿐 아니라 연기로까지 활동 영역을 넓혀 놓은 상태였다. 영역은 점점 더 넓힐 생각이었다.
‘이제 데뷔한 지 1년이 넘어간다. 쉬지 않고 계속해서 좋은 결과를 내야 할 때는 확실해.’
그렇지만 도욱은 자신의 템포를 조절할 필요성을 느꼈다.
이미 그러한 생각을 하던 중에 무대에서 쓰러질 뻔한 것이었다.
‘역시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때인가.’
어느 순간에는 적지만 임팩트 있는 활동이 오히려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을 도욱도 하기는 했다.
지금도 힛 엔터테인먼트의 방침에 따라 닥치는 대로 스케줄을 하기 보다는 나름대로 질 좋은 스케줄만을 골라서 소화하고 있긴 했다.
하지만 아무래도 막 데뷔한 신인이다 보니 여태까진 자잘한 케이블 방송 출연이나 지방 행사도 이름을 알리기 위해 돌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힛 엔터테인먼트 자체가 중소 기획사였다 보니 거절할 수 없는 스케줄도 많았다.
‘이제 그런 스케줄은 줄이고······. 앨범 제작에 있어서도, 케이케이가 가수로서 인정받게 되면서 이제 꽤 좋은 곡들이 많이 들어오기 시작했으니까.’
도욱은 작사, 작곡에 쏟았던 힘을 조금 덜어 프로듀싱에 주력해도 좋을 것 같았다.
이제 힛 엔터에도 자금력이 충분해졌고, 여태까진 도욱의 욕심도 작용한 것이었기 때문에 회사에 얘기하면 충분히 조절 가능한 부분들이었다.
맞고 있는 수액 때문인지 졸음이 쏟아졌다. 확실히 입원해 있는 동안에는 맘 편히 쉬면서 체력을 보충해야 할 듯싶었다.
***
도욱은 최대한 알리지 않기를 원했지만, 어쩔 수 없이 도욱이 과로로 입원했다는 기사가 나갔다.
기사가 나가자 케이케이 팬들의 반응은 무척이나 거칠었다.
도욱이 혹사시킬 때부터 알아봤다. 역시 일본이다 중국이나 해외로 벌써부터 돌리더니 이런 일이 일어날 줄 알았다. 케이케이 너무 소처럼 일했다. 다른 멤버들은 괜찮은 거냐. 건강검진 시켜라. Howl 안무 보면 안 힘들 수가 없다. 안무가 나와라. 케이케이 죽어라 돌리는 힛 엔터테인먼트 사장 나와라. 돈에 눈이 멀었다면 실제로도 눈이 멀게 해주겠다······.
거친 팬들의 반응을 보며 도욱은 여러모로 회사 직원들에게 미안해질 따름이었다.
특히 팬-마케팅팀 도라희 대리와 밑에 직원의 수고가 많았다. 팬들의 항의 전화가 빗발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도욱 씨가 나서서 한 일도 많잖아요······. 그런 거라고 공지를 올리고 싶달까요.”
잔뜩 지친 얼굴로 회사 대표 차원에서 병문안을 온 도 대리의 하소연에 도욱은 사람 좋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물론 도라희 대리는 금세 정신을 차리고 자신의 뺨을 스스로 치며 얼른 쾌차하라는 말을 전했다.
동시에 도욱의 팬들이 보내오는 응원의 메시지도 많았다.
회사로 건강식품과 영양제 등 건강과 관련된 선물이 하루에도 수십 번 도착했다. 사실 그걸 정리하는 것도 팬-마케팅팀의 일인 것을 도욱 또한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도욱은 도라희 대리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었다.
케이케이의 굿바이 무대가 도욱의 입원 기사와 함께 다시금 화제가 되기도 했다.
어지럼증을 느낀 도욱과 석지훈의 대처, 케이케이 멤버들의 팀워크가 빛나는 무대였다.
병원으로 도착하는 선물도 상당했다.
소식을 접한 회사 사람들은 물론이고 김우연과 김숨, 용감한 외동, 루카스, 신윤호 PD와 ‘준비하라 1999’의 출연진 등 도욱과 함께 작업했던 이들의 선물이 이어졌다.
도라희 대리까지만 회사 차원의 병문안이라 허용되었지만, 이후의 병문안은 오백호 실장이 일절 받지 않았다.
덕분에 메시지로만 감사함을 전하고 도욱은 정말 제대로 쉴 수 있게 되었다.
확실히 이틀 정도 병원에서 관리를 받으며 쉬고 나니 확 몸이 나아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하루도 제대로 쉬지 않고 곡 작업 등을 병행해왔기 때문에 이때 동안 쌓인 피로도 풀리는 기분이었다.
삼 일째 되던 날에는 온몸이 근질근질했다. 어서 나가서 활동을 하고 싶었다.
일중독이라면 일중독이었다.
다음 날, 날이 밝자마자 의사의 검진을 받은 후 도욱은 퇴원 수속을 밟았다.
도욱의 퇴원을 도운 구철민이 병실에 쌓인 음료와 과일들을 옮기느라 고생해야만 했다.
구철민이 마지막으로 커다란 꽃바구니를 차 조수석에 실었다.
도욱은 가만히 꽃바구니를 바라보았다. 기사를 보았는지 유성패션 이유민 사장이 보내온 꽃바구니였다.
***
며칠 후, 프랑스식을 전문으로 하는 파인다이닝에서 도욱은 이유민 사장과 만남을 가졌다.
저녁 시간이었지만, 하루에 몇 팀만 제한적으로 예약을 받는 곳이었기 때문에 한적한 분위기였다.
“보내주신 꽃은 감사히 잘 받았습니다. 이렇게까지 챙겨주시다니······. 제가 보답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요.”
“마침 기사를 봐서 알았어요. 별것도 아닌데 보답은요, 무슨.”
“그래도······.”
“제가 밥 사기로 했었잖아요. 아니, 쓰러질 뻔할 정도로 바쁜지도 모르고 내가 밥 산다고 했어. 그것도 사과해야 할 것 같던데요.”
“아. 아닙니다!”
이유민의 말에 도욱이 당황하며 손을 저었다. 주문한 코스요리의 식전 요리가 나왔다.
“먹어요. 근데 벌써 나와도 되는 거예요? 난 천천히 만나도 되는데요.”
“크게 아팠던 것도 아닌데요. 병원에서 충분히 쉬어서 이제 괜찮습니다.”
“지금 제일 잘나가는 그룹이죠? 우리 조카가 중학생인데 케이케이 노래를 부르더라고. 내가 이렇게 도욱 씨 만나고 있는 거 알면 기절하겠어.”
손바닥만 한 접시에 나온 샐러드를 입에 대며 이유민 사장이 너스레를 떨었다.
“사인 해주고 가요. 조카 이름 알려줄 테니까. 꽃바구니 보답은 그 정도면 될 것 같아요.”
“네네, 물론입니다.”
도욱은 흔쾌히 대답했다.
식사가 진행되자 자연스럽게 일 얘기가 나왔다. 시작은 루카스 패션쇼에서 모델로 선 일이었다. 이유민 사장 또한 그날의 도욱을 아주 인상 깊게 봤다는 식이었다.
“사실 그냥 밥 먹자고 한 게 아니라 같이 일하면 좋을 것 같아서···. 패션 쪽에는 관심 없어요? 요즘엔 가수들이 모델보다 패션에 관심 더 많던데.”
도욱이 눈을 빛냈다.
“있습니다, 관심.”
유성전자 사장인 이철호만큼은 아니었지만, 이유민 사장도 만만찮게 바쁜 인물이었다. 시간이 돈이었고, 사람 만나는 일이 비즈니스로 이어지는 것 또한 무척 당연했다.
이유민 사장이 만나자고 했을 때 어느 정도 예상했던 제안이었다. 이유민 사장 눈에 들었다는 것 또한 도욱에게는 큰 행운이고 기회였다.
도욱 또한 이 자리에 그저 밥을 먹으러 나온 건 아니었다. 자신의 수고를 덜기 위해서라도 행운과 기회를 충분히 활용할 생각이었다.
“그래서 말인데······ 저도 제안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사장님.”
이유민 사장이 ‘역시나’라는 얼굴로 웃었다.
“그래요? 말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