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5
Go Higher (2)
김원의 휴대폰에 떠 있는 건 메모장 어플과 그 위에 적힌 가사들이었다.
도욱은 가만히 화면을 내려다보았다.
“이게 뭐예요, 형? 형이 쓰신 거예요?”
김원이 답지 않게 쑥스러워하며 뒷머리를 긁적였다.
“어. 혼자 써 봤는데 괜찮은지 좀 봐 달라고. 윤기 형은 자고 있어서···.”
도욱은 의아했다. 김원은 정윤기와 마찬가지로 원래부터 랩 메이킹을 스스로 해오던 인물이었다. 가사를 직접 작사해온 것은 물론이었다.
도욱의 의아함을 눈치챈 김원이 설명했다.
“내가 팀에서도 주로 영어 랩만 해왔잖아. 한국어 랩이 부족한 것 같단 생각이 들어서.”
“안 부족한데. 형 잘하시고 계세요.”
“아냐. 그래도 한국에서만 살던 윤기나, 너에 비해서 아무래도 가사 쓸 때 한국적인 뉘앙스 파악이 잘 안 되는 것 같아.”
김원의 휴대폰 속 화면을 한 번, 김원의 진지한 눈을 한 번 보고 도욱은 고개를 끄덕였다.
김원은 자신의 얼마 안 되는 단점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사실 ‘뉘앙스’ 파악이라는 것도 잘하고 있었지만, 아주 세밀한 부분에서 놓치는 것들이 있을 뿐이었다.
김원이 진지한 자세로 부탁을 해온 만큼 도욱도 제대로 가사를 봐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부탁해 온 상대에 대한 예의였다.
“음······.”
도욱이 가사를 보는 동안 김원은 옆에 있는 의자에 앉아 도욱의 평가를 기다렸다.
바쁠 텐데 갑작스러운 부탁에도 한 줄, 한 줄 짚어가며 자신의 가사를 봐주는 도욱에게 김원은 진심으로 고마움을 느꼈다.
동생이었지만, 도욱은 늘 든든한 존재였다.
“확실히 영어로 써진 게 더 매끄러운 느낌이 있는 것 같아요. 영어는 저도 잘 모르지만.”
“하. 역시 그렇지.”
도욱의 말에 한숨 한 번, 바람 빠지는 웃음 한 번 쉰 김원이 답했다.
“그리고 여기 꽃이라는 표현은 약간 진부한데. 다른 거 생각해 보시면 어때요?”
“그래? 알았어.”
김원이 도욱의 말을 체크한 뒤 메모했다.
도욱은 몇 줄 더 거슬리는 부분들을 기분 나쁘지 않게 지적했다.
“봐줘서 고맙다.”
“아니에요, 형. 형 진짜 잘하고 있는데······.”
“아이 씨, 아이 씨. 그냥 나 나름대로도 노력해보고 싶어서 그래. 윤기 점점 더 잘하는 모습 보니까 아무래도.”
역시 선의의 경쟁심은 발전에 토대가 되기 마련이었다.
정윤기가 쇼미더허니에 나가 활약하는 모습들을 보며 같은 랩 파트인 김원은 당연하게도 경쟁의식을 느꼈다.
뒤쳐지기 싫다. 나도 잘하고 싶다. 그러한 긍정적인 경쟁심리가 김원을 자극했다.
도욱이 끄덕이며 말했다.
“형은 또 윤기 형 못 하는 걸 하니까요.”
“그건 그렇지!”
김원이 동의하며 웃었다.
“근데 이 가사는 무슨 비트 바탕으로 쓰고 계신 거예요?”
“그 있잖아, DREKE의 Still dreke!”
“아아. 완성되면 좋은 곡 될 것 같아요.”
“그래?”
“네. 나중에 믹스 테이프 같은 걸로 내도되고······.”
“아, 뭘 또 그렇게까지. 믹스 테이프 잘못 냈다가는 그 윤기 형도 겨우겨우 살아남은 사이트에서 완전 털릴 거라고. 칭찬이 과해, 브라더!”
김원이 오버하며 도욱의 어깨를 쳤다. 도욱은 지긋이 웃을 뿐이었다.
진심이었다. 김원이 써온 가사는 몇 부분 도욱이 지적한 곳을 제외하고는 당장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듯한 가사였다.
활동을 하면서 느낀 바가 많은지 가사 안의 내용에도 조금 더 ‘진짜’ 김원이 할 수 있는 내용들이 들어가 있었다.
예전에 쓰던 가사들이 케이케이의 곡사이에 들어가기 위해 쓰인 구색 맞추기 용이었다면, 지금 김원이 쓰고 있는 가사에는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진짜 김원의 마음이 있었다.
“그럼 바쁜데 방해해서 쏘리. 하던 거 해.”
“네···. 아, 형!”
도욱이 돌아서 나가려던 김원을 불러 세웠다.
왜 부르냐고 물으며 김원이 방문 손잡이를 잡은 채 돌아봤다.
도욱은 잠시 생각하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방금 떠오른 아이디어였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었다.
“아, 아니에요.”
“심심해? 심심하면 말해. 애니타임, 암 오케이 포 유.”
“아니에요. 저 하던 일 할게요.”
그렇게 김원을 내보낸 후 도욱은 떠오른 생각들을 정리했다.
그건 바로 케이케이의 힙합 유닛 활동이었다.
***
‘Howl’ 활동을 정리하는 마지막 음악방송 무대일.
TBN 음악방송에서는 특별히 케이케이를 위해 70분 스페셜 편성을 해둔 상태였다. 컴백이면 모를까 굿바이 무대를 위한 스페셜 편성은 굉장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굿바이 무대는 편집되지 않은 풀버전으로 세 곡이 나갈 예정이었다.
정규 2집 타이틀곡인 ‘Howl’과 수록곡인 ‘Yummy’와 ‘여름밤’이었다.
‘Yummy’와 ‘여름밤’은 사전녹화로 진행됐다.
사전녹화의 방청석은 마치 콘서트처럼 케이케이 팬들로만 이루어졌다. 500여 명의 케이케이 팬들이 현장을 꽉 메웠다.
톡톡 튀는 느낌의 댄스곡인 ‘Yummy’는 팬들로부터 후속곡으로 해달라는 요청이 많았던 곡이었다. 교복 스타일의 의상을 입고 격렬한 춤을 추는 ‘Howl’의 분위기와는 전혀 다른 곡이었다.
알록달록한 무대 의상을 입고 나와 신나게 무대를 하는 케이케이를 보며 케이케이 팬들도 유쾌한 기분을 즐겼다.
새벽부터 사전녹화 현장에 들어오기 위해 출석체크를 하고, 줄을 선 팬들의 고생이 단번에 날아가는 무대였다.
‘여름밤’은 발라드 무대였다. 여섯 명이 앉을 의자가 준비되었고, 각각 멤버들이 차례로 앉아 자신의 파트를 소화했다.
‘바람 부는 날’ 이후 전체적으로 상향된 보컬 실력들이 돋보였다.
무더운 낮을 견딘 후, 어두운 하늘 아래 불어오는 바람을 느끼며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한다는 내용의 노래였다. 여름 밤 분위기를 잘 표현한 서정적인 노래였다.
눈과 귀가 호강한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았다.
가만히 앉아 노래만 부르는 무대라 자칫하면 지겨워질 수도 있지만, 팬들로선 더 자세히 멤버들의 얼굴을 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오후가 되기 전 사전녹화를 마친 케이케이 멤버들은 팬들이 보내온 서포트 도시락으로 끼니를 때우고 본방송을 준비했다.
‘Howl’ 활동의 마지막 무대라는 생각에 멤버들은 들뜨기도 하고, 아쉽기도 한 여러 가지 감정의 교차점 위에 서 있었다.
“벌써 2집 활동이 끝나가네······.”
“이번에도 진짜 정신없었다. 그제?”
도욱의 말에 정윤기가 말했다. 도욱이 끄덕였다.
2집은 준비할 때부터 일정이 몰아치는 바람에 더욱 정신없이 진행된 감이 있었다. 막 드라마를 마친 상태로 드라마 김민기 역의 여운에서 헤어 나올 새도 없이 다시 강도욱이 돼야 했다.
“이번 활동도 다들 수고했다, 마.”
“아직 방송 남았잖아요.”
“그래도 거 끝났다 아이가.”
정윤기가 제법 리더답게 멤버들에게 말했다.
“마지막까지 잘하자.”
“예엡!”
“예쓰, 예쓰!”
멤버들은 도시락으로 준비된 장어 덮밥을 입 안에 욱여넣으며 답했다.
“도시락 한 개 더 없어요?”
도시락을 이미 다 비운 석지훈이 묻자 구철민이 두리번거리며 답했다.
“벌써 다 먹었어? 이거 수량대로 온 거라 너희 거랑 같은 메뉴는 없고. 남은 거는 다 스태프용 도시락이야.”
“상관없어요. 그거 주세요.”
석지훈은 요즘 식욕이 부쩍 왕성해져 있는 상태였다. 키가 작은 편은 아니었지만, 180cm를 넘기지 못해 늘 안달이었는데 얼마 안 가 180cm를 넘을 기세였다.
“스무 살까지도 큰다니까 막내야말로 마지막까지 화이팅이네!”
새로운 도시락을 꺼내 먹는 석지훈을 보며 안형서가 말했다.
“그러고 보니 내년이면 이제 우리 팀에 미자 없다.”
“미자? 후 이즈 더 미자?”
“미성년자요, 형. 원이 형은 똑똑한데 이런 생활국어에 약하단 말야. 낄낄.”
안형서가 낄낄대자 정윤기가 핀잔을 주었다.
“그게 생활국어야? 그냥 줄임말이잖아.”
“아, 뭐. 왜.”
김원은 아무렇지 않았는데 괜한 두 사람이 투닥대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박태형이 소리 없이 고개를 저었다.
“도욱아. 밥 남긴 거야···?”
가만히 옆자리에서 도시락을 내려놓는 도욱을 본 박태형이 물었다. 두 숟갈 정도 밥이 남아 있는 상태였다.
“어? 어. 배부르네.”
“그래? 이거 양 얼마 안 되는 것 같은데······.”
“잘 안 먹혀서. 어차피 무대 할 때 너무 배불러도 안 좋잖아.”
도욱의 대답에 끄덕이던 박태형이 그래도 더 먹으라는 듯 디저트로 들어온 과일들을 내밀었다. 도욱은 박태형의 성의를 거절하기 힘들어 방울토마토 두어 개를 추가로 집어 먹었다.
‘속이 안 좋은가······.’
평소 양과 비교했을 때 도욱이 생각해도 아직 배부를 만한 양은 아니었다. 그러나 먹고 싶은 마음이 하나도 들지 않았다.
사전녹화를 끝내고 난 후라 너무 피곤해 몸에 힘이 없는 것 같기도 했다.
‘오늘 방송이 끝나면 당분간 휴식이니까. 쉬면서 체력을 좀 쌓아야겠어.’
도욱은 생각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대기 시간 동안 대기실 소파에서라도 잠시 눈을 붙인 후 무대에 오르는 게 좋을 듯했다.
“도욱이 너 배터리 충전해야 하는 거 아니야?”
“네? 저 휴대폰 배터리 아직 남았는데.”
“호호, 아니이. 휴대폰 말고 너 말이야~!”
본방송 시간이 다가와 피부 메이크업을 해주던 코디가 웃으며 말했다. 도욱은 무슨 뜻인지 모른 채 눈을 감으라는 대로 얼굴을 내어주곤 눈을 감았다.
“제일 바쁜데 안 지쳐서 우리가 너 로봇이라고 했는데, 오늘따라 꾸벅꾸벅 졸길래 하는 말이야.”
“아······.”
도욱은 의미를 파악하고 슬며시 눈을 떠 웃었다.
“오늘따라 피곤하네요. 마지막 방송이라 저도 긴장이 풀리나 봐요.”
말하며 웃는 모습에 코디는 잠시지만 심장이 떨어지는 줄 알았다. 매일 가까이서 보는 얼굴인 데도 가끔은 믿을 수 없이 잘생긴 도욱의 얼굴이었다.
“끝나면 꼭 쉬어.”
“그래야겠어요.”
MC의 아쉬워하는 멘트와 함께 케이케이의 정규 2집 굿바이 무대가 진행됐다. 사전녹화해둔 ‘Yummy’와 ‘여름밤’이 VCR을 통해 흘러나오자 본방송 방청에도 참여한 팬들이 환호했다.
VCR 재생이 끝난 후 생방송으로 ‘Howl’의 마지막 무대가 시작되었다.
멤버들은 온몸으로 열정을 불태웠다. 전주부터 첫 소절, 후렴구에 이르기까지 단 한 번도 흔들리지 않고 노래와 안무를 소화해냈다.
“꺄아아아아―”
팬들의 함성 소리가 케이케이 멤버들의 열정에 보답하듯 터져 나왔다.
김원이 무대 앞으로 나서 살짝 상의를 들어올리며 복근을 공개하자 다른 팬석에서도 함성이 나왔다.
안형서가 고음으로 치고 올라가며 곡이 클라이막스에 다다르고 있었다.
후렴구에는 도욱이 가장 중심에 서서 무리를 이끄는 듯한 카리스마를 선 보이며 춤을 췄다.
카메라를 잡아먹을 듯 인상을 찌푸린 도욱의 얼굴이 클로즈업 되자 다들 숨이 멎을 듯한 느낌에 가슴 부근을 부여잡았다.
멋지게 자신의 파트를 마친 도욱이 뒤쪽 대형으로 빠질 때였다.
‘어?’
도욱은 시야가 한 바퀴 도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머리가 핑 돌았다.
‘어지럽다······!
그러나 계속해서 뒤로 걸어가야만 했다. 한 발짝, 두 발짝 뗄 때마다 잘 걷고 있는 것인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때 함께 뒤쪽 대형에 서는 석지훈이 도욱의 걸음걸이가 정상적이지 않다는 걸 눈치챘다. 워낙 쉼없이 빠르게 진행되는 안무이다 보니 눈치채기도 힘들었지만, 평소 같은 자리에서 도욱의 움직임을 많이 봐온 석지훈이라 알 수 있었다.
평소보다 훨씬 무거웠다.
‘형.’
마이크에는 잡히지 않게 입모양으로 석지훈이 도욱을 불렀다. 석지훈은 본래 가운데에 가 서 있어야 했지만, 도욱 쪽인 왼쪽으로 와 서 있었다.
자신의 옆에 선 석지훈을 도욱이 발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