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4
Go Higher (1)
“중국은 화약, 나침반, 종이, 인쇄술을 발명해낸 나라입니다. 4대 문명을 일으킨 곳 중 한 곳이고, 현대에 와서도 큰 흐름을 이끌고 있는 곳입니다. 저는 그러한 것들이 쉽게 이루어질 수 없는 업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중국인이라면 중국인에게 긍지가 있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고요.”
도욱의 말을 옮기는 통역의 말이 빨라졌다. 통역의 말을 받아 적는 기자들의 타자 역시 빨라지고 있었다.
“그런 점들 때문에 중국에 대해서는 늘 좋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또 옆에 배울 만한 친구가 있다는 건 좋은 일이니까요.”
도욱이 답을 마치자 질문한 기자가 끄덕였다.
단순히 ‘음식을 좋아한다.’, ‘관광지 어디가 좋다.’ 하는 답변이 아니었다. 중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경의가 묻어나는 답변이었다. 기자가 만족스러울 만했다.
동시에 친구라는 말을 써 자신의 나라나 자신을 너무 낮추지도 않았다.
듣고 있던 멤버들도 ‘역시 도욱이’라는 생각을 하게끔 만드는 말솜씨였다. 따로 준비하는 기색도 없었는데 준비라도 해 온 건가 멤버들은 궁금해졌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황헌 본부장 또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이쯤하면 볼 만큼 봤다는 생각에 권흥조 제작이사가 황헌 본부장에게 미팅룸으로 올라갈 것을 제안했다.
팬도 아닌 황헌 본부장에게 굳이 계속해서 기자회견 전부를 세워두고 보여줄 필요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권흥조 이사의 말에 황헌 본부장이 흔쾌히 걸음을 뗐다.
그사이 도욱에게 쏟아지던 질문이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됐다.
이후에는 또 소소한 질문들이 오갔다. 어느덧 정해진 시간도 끝을 향해가고 있었다.
“북경에 왔는데 멤버들, 가보고 싶은 곳은 없나요?”
“당연히 만리장성이죠! 이번엔 기회가 없지만 나중에 꼭 가보고 싶네요. 인공위성에서도 보인다던데.”
기자의 마지막 질문에 김원이 활기차게 대답했다.
작은 웃음들 사이로 케이케이는 기자회견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잘했어, 잘했어. 수고했다.”
기자회견장 뒤편에 마련된 대기실로 돌아온 멤버들을 오백호 실장이 다독였다.
“통역사분도 너희 진짜 잘한 거라고 칭찬하시더라.”
구철민이 돌아다니며 멤버들에게 물을 나눠주었다. 코디들은 멤버들 얼굴의 흐르는 땀을 닦아주고, 번진 화장을 수정해 주었다.
돌아가는 길, 호텔 로비에도 팬들이 잔뜩 깔려 있었기 때문에 그대로 나갈 수는 없었다.
가만히 앉아서 질답을 했을 뿐이지만 계속해서 터지는 플래시 세례와 뜨거운 조명 때문에 멤버들은 땀으로 등까지 젖은 상태였다.
한숨 돌린 멤버들에게 오백호 실장이 다음 일정을 전달했다.
오늘 일정은 기자회견이 끝이었다. 숙소도 이곳 호텔의 상층에 있는 룸을 이용하기로 되어 있는 상태였다.
그러나 숙소로 올라가기 전 권흥조 제작이사와 함께 있는 사업 파트너에게 인사를 드려야 한다는 게 오백호 실장의 말이었다.
“사업 파트너······. 누군데요?”
정윤기가 ‘사업 파트너’라는 말에 조금 긴장하며 물었다.
“나도 잘 몰라. 중국 쪽 투자사라는 것밖에.”
오백호도 자세히는 몰라 그렇게 답한 것이었으나 오히려 투자사란 말에 긴장감이 더해진 분위기였다.
“그냥 눈도장 찍을 겸 인사만 할 거니까 너무 부담 갖진 말고.”
“네.”
멤버들은 권흥조 이사와 황헌 본부장이 있는 최상층의 한 룸을 찾았다.
두 사람과 권 이사가 대동한 통역사까지 함께 있다는 룸은 보통들 생각하는 호텔 룸이 아니었다. 주니어 스위트룸으로 방만 두 개가 따로 있었고, 문 안으로 들어서자 거실 같은 응접실이 마련되어 있었다.
권 이사와 황 본부장은 가볍게 와인을 즐기고 있었다.
오백호 실장과 함께 케이케이 멤버들이 들어서자 두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您好!(안녕하십니까.)”
“您好,见到您很高兴。(안녕하십니까, 반갑습니다.)”
중국에 오기 전 기본적으로 준비해두었던 중국어 인사말로 멤버들은 황헌 본부장에게 인사했다.
황헌 본부장이 중국어 인사에 껄껄 웃으며 악수를 청했다.
멤버들과 악수를 마친 황헌 본부장이 말했다. 멤버들은 권 이사의 통역사를 통해 황 본부장의 이야기를 들었다.
“태화그룹 황헌이라고 합니다. 기자회견 모습 아주 인상 깊게 잘 봤습니다.”
“감사합니다.”
정윤기가 대표로 나서 인사했다.
“우리 회사에서 한국에는 처음으로 투자하는 연예기획사라 기대가 컸는데, 직접 보니 믿을 만한 투자처인 것 같다는 확신도 들었습니다. 하하.”
황헌 본부장이 웃으며 말하자 잔뜩 긴장해 어깨가 굽을 지경이었던 멤버들의 어깨가 조금 편해졌다.
“본부장님께서 자네들을 위해 선물을 준비하셨다고 하는군.”
“네? 선물이요?”
권흥조 이사의 말에 안형서가 놀라 되물었다. 권흥조 이사가 미소를 띠며 고개를 끄덕였다.
황헌 본부장은 조금 전 호텔 방으로 올라와 비서를 시켜 케이케이 멤버들을 위한 선물을 준비하라 지시했다.
그 지시를 들은 권흥조 이사가 괜찮다고 말렸지만, 황헌 본부장은 사양하는 건 자신의 마음을 몰라주는 것이라며 오히려 권 이사를 물렸다.
기자회견을 본 뒤, 황헌 본부장은 기분이 무척이나 좋았다. 자신의 회사가 투자하는 그룹에 대한 작은 애착 또한 생겨났다. 물론 그 애착은 케이케이가 돈이 될 것이라는 판단에서 오는 종류의 애착이긴 했다.
‘이 대륙에서도 지금보다 더 큰 스타로 뻗어나가게 될 거다.’
황헌 본부장은 예감했다. 잘 키우면, 어지간한 영화에 투자하는 것 이상으로 벌어들일 수 있을 것 같았다.
황헌이 테이블 위에서 준비해둔 선물을 케이케이 멤버들에게 전달했다.
멤버들은 손바닥보다 조금 더 큰, 포장된 묵직한 케이스를 받아들었다.
“非常感谢! (정말로 감사합니다)”
도욱 또한 중국어로 답하며 선물을 받았다.
황헌 본부장은 특별히 도욱에게 선물을 전달하며 어깨를 두드렸다. 기자회견장에서 도욱의 답변은 황헌 본부장이 케이케이에게 강력한 스타의 기운을 받은 주요한 이유 중 하나였다.
선물을 받고 감사 인사까지 다 한 멤버들은 어쩔 줄 몰라 하며 서 있었다.
선물을 그대로 풀어봐야 하는 것인지도 의문이었다.
‘중국에서는 포장을 그 자리에서 푸는 게 예의가 아니라고 했던 것 같다.’
도욱은 이전 회사에서 비즈니스 교육을 받을 때 들었던 내용을 생각했다. 때문에 가만히 선물을 든 채 황헌 본부장이 다음 이야기를 하길 기다렸다.
멤버들은 도욱을 힐끔 쳐다본 후 역시 선물을 손에 꼭 쥔 채 서 있었다.
나이 어린 도욱이 예의나 사회생활에 있어 웬만한 직장인만큼이나 잘한다는 인식이 멤버들에게 있었기 때문에 도욱이 하는 그대로하면 된다는 생각이었다.
“피곤할 텐데 가 봐도 좋아요. 늙은이가 계속 붙잡아 둘 순 없지.”
황헌 본부장의 말에 케이케이 멤버들이 다시 한 번 감사하다는 인사와 함께 방문을 나섰다. 권흥조 이사는 나중에 한국에서 보자는 인사를 남겼다.
그 아래층에 있는 숙소로 돌아온 멤버들은 웬 선물인가 하며 얼떨떨한 채 각자의 방으로 돌아가 선물을 열어보았다.
오늘 도욱은 박태형과 같은 방이었다.
도욱과 박태형 역시 방에 돌아오자마자 선물 포장을 풀었다.
“으악!!!”
옆방에서 무언가 쿵쾅거리는 소리가 나는 듯했다.
방음이 별로인 것인지 옆방 안형서의 소리가 너무 큰 것인지는 알기 힘들었다.
‘무슨······.’
포장을 풀던 도욱의 손이 멈췄다. 무게감 있는 고급 케이스에는 가르띠에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가······ 가르띠에?’
가르띠에는 평범한 사람들은 결혼 예물을 살 때나 사용될 정도로 고가의 브랜드였다.
사실 결혼 예물로 하기에도 부담스러운 가격대의 장신구도 포진해있는 브랜드였다. 아무리 가장 저렴한 장신구로 골라도 기본 기백 단위였다.
“도욱아···. 이거 가르띠에 맞아?”
자신의 침대에서 선물을 풀던 박태형이 멍하니 도욱에게 물었다.
도욱이 끄덕였다. 케이스를 열자 금빛의 팔찌가 광을 내고 있었다.
“지, 진짜 통이 크시네······.”
“나도 가르띠에는 처음 가져 봐.”
“이거··· 받아도 되는 걸까. 너무 부담스러운데.”
도욱도 손이 떨리긴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황헌 본부장 같은 사람이라면 천만 원에 더 가까울 금액의 팔찌를 주고도 남을 사람이라는 판단이 들었다.
‘대륙의 갑부는 클래스가 다르다더니.’
도욱은 감탄하며 떨떠름한 표정을 한 박태형에게 괜찮을 것이라 답해주었다.
***
“그래도 저희 애들에게 너무 과한 선물 아니었는지······.”
멤버들을 보내고 다시 술자리를 이어가던 권흥조 이사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황헌 본부장이 고개를 저으며 별것도 아닌데 신경 쓰지 말라고 전했다.
“권 이사님.”
“말씀하십쇼, 본부장님.”
“앞으로 케이케이 제작에 들어가는 자금은 걱정 마시고 맘껏 일 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다소 뜬금없는 황헌 본부장의 말에 잠시 당황한 권 이사였지만, 이내 그 의도를 파악했다.
권흥조 제작이사의 입가에 참을 수 없는 미소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성공적인 중국 출장이 될 것 같은 예감이었다. 예감은 이미 예감이 아닌 사실이었다.
***
중국 스케줄 이후, 멤버들 중 몇몇은 이틀 정도 배앓이를 하는 중이었다. 바뀐 물과 음식 때문에 고생을 하는 것이었다.
나름 준비를 해갔던 안형서도 영락없이 계속해서 화장실 신세를 져야 했다.
그럼에도 멤버들의 입에서는 다시는 중국 안 간다는 말 같은 건 나오지 않고 있었다. 소중한 곳을 모아놓는 곳마다 가르띠에 팔찌가 자리해 있기 때문이었다.
가르띠에 팔찌를 차치하고서라도, 실제로 중국에 다녀온 보람도 컸다.
중국에서 케이케이가 보여준 예의있고, 늘 열심히인 모습들 덕분에 중국 팬들이 케이케이를 향해 큰 지지를 보내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김원은 개인적으로 ‘스윗가이’라는 칭호를 얻기도 했다.
중국어 버전 앨범의 판매량도 크게 상승했다. 벌써 앨범이 발매된 지 한 달이 넘어가고 있었는데도 계속해서 많은 판매량을 올리고 있었다.
이 기세라면 올해 연말 시상식이 기대되지 않을 수 없었다.
‘Howl’의 리패키지 앨범을 기대하는 팬들도 많았지만, 계획상 리패키지 앨범까진 내지 않을 생각이었다.
두 개 버전의 앨범을 낸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학교에 다녀온 도욱은 잠시 책상에 앉아 일정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다.
올해 초 세웠던 활동 계획대로라면 앨범 하나를 더 내는 게 맞았다. 그러나 정윤기와 도욱의 개인 활동으로 스케줄이 조금씩 밀리게 되었다.
연말에는 계획대로 콘서트를 할 것이어서 올해는 더 이상 케이케이 앨범은 내지 않는다는 게 회사의 입장이었다.
‘조금 더 타이트하게 생각하면, 할 수 있을 것도 같은데······.’
휴식도 좋지만, 도욱은 조금 더 몰아붙이고 싶었다.
기세를 탔을 때 활동을 하는 게 중요했다.
‘이 업계는 타이밍이 반이야.’
그러나 멤버들은 충분히 지쳐 있을 것이었다. 도욱의 독단으로 몰아붙일 수는 없었다.
도욱은 크게 멤버들이 부담을 갖지 않으면서도 케이케이가 계속해서 노출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했다.
‘예능이나 드라마는 이미 올해 하기도 했고, 음악적으로 조금 더 보여주면 좋겠는데······.’
생각하며 도욱은 눈을 감았다 떴다.
그렇다고 도욱이 또 한 번 제작까지 해서 음반을 내는 건 역시 도욱 스스로나 멤버들에게나 모두에게 무리였다.
도욱도 피곤하긴 마찬가지였다. 다른 멤버들보다 피로도가 심하면 심했지 덜하지 않았다. 그저 정신이 육체를 이겨내고 있는 상태였다.
그때 방문을 두드리고 김원이 도욱의 방으로 들어왔다.
“브라더, 지금 바빠?”
지친 기색 없이 방긋 웃고 있는 김원을 보자 피곤이 조금 가시는 착각마저 일었다.
“다른 게 아니라······.”
김원이 도욱에게 휴대폰을 내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