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3
미래를 향해 달려라 (4)
“Are you OK?”
넘어져 있는 여성 팬에게 물은 건 뒤쪽에서 걸어오던 김원이었다.
김원이 멈춰 서 무릎을 구부리고 손을 내밀었다. 사설 경호원이 무어라 소리쳤지만, 김원은 팬이 자신의 손을 잡길 기다렸다. 머리가 엉망이 된 팬이 어쩔 줄 몰라하며 김원의 손을 잡았다.
뒤쪽에서 소리를 지르며 여전히 팬들이 이리 저리 서로를 밀고 있었지만, 넘어진 팬과 김원 쪽으로 미는 힘은 그래도 덜한 편이었다.
여성 팬이 김원의 손을 마주잡자 김원이 그녀를 일으켜 세웠다.
김원은 평소에도 팬들의 이름을 잘 기억하고, 빠짐없이 시선도 마주쳐주는 다정한 성격으로 유명했다.
그런 김원으로선 자신의 앞에서 팬이 넘어졌는데 그대로 둔 채, 차마 그냥 지나칠 수 없었던 것이다.
팬의 손을 잡아 일으켜 세운 김원이 다시 한 번 팬을 향해 괜찮냐고 물었다. 경황없는 와중에도 김원의 물음에 여성 팬이 고개를 끄덕거리자 안심한 듯 김원이 웃어 보였다.
팬의 상태를 확인한 김원은 빠르게 다시 걷기 시작했다.
조금이라도 꾸물댔다가는 더한 혼란이 올 게 뻔했기 때문이었다.
다행이라고 할 순 없었지만, 그래도 한 번 팬이 넘어지기까지 해서인지 여전히 혼란한 상황에서도 밀고 잡아당기는 게 덜했다.
인파를 헤쳐나온 끝에 멤버들은 무사히 공항 앞에 세워진 벤에 도착할 수 있었다.
“와.”
“휴우······.”
간신히 공항을 빠져 나온 멤버들은 벤 안에 들어서자마자 말없이 한숨만 내쉬었다. 진이 다 빠진 기분이었다.
“역대급 난리였네······.”
“내는 죽을 뻔했다.”
석지훈이 혼잣말처럼 중얼대자 정윤기가 앓는 소리를 했다.
오백호 실장은 통역에게 말을 전해 빠르게 기사가 차를 출발시키도록 했다. 차까지 쫓아온 팬들이 차에 붙어 창문을 열어 달라 성화였기 때문이었다.
한국 팬들과는 차원이 다른 열정이 넘쳐흐르고 있었다. 혼이 나간 듯한 기분으로 멤버들은 창밖, 멀어져가는 팬들을 보았다.
“기자회견장으로 바로 갈 거야. 두 시간 정도 가야 하고. 가서 메이크업하고, 기자회견 할 거니까.”
오백호 실장조차 지친 듯 말을 대충 끊었다. 멤버들은 끄덕였다. 가는 동안 체력을 빠르게 보충해야 할 듯싶었다.
“아까 진짜 위험할 뻔했다. 니 괘않나.”
정윤기가 옆에 앉은 김원에게 물었다.
“어. 나야 뭐. 안 다쳤어요.”
김원이 가볍게 답했다.
“그래도 괜히 팬 돕다가 네가 큰일 나는 수가 있어. 다음부터는 경호원들한테 다음 일 맡기고 그냥 지나가. 알았어?”
오백호가 엄격하게 말하자 김원이 끄덕였다.
도욱의 생각도 오백호 실장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번엔 김원이 도와준 덕분에 팬도 잘 일어나고, 팬들도 조금 진정이 되긴 했지만, 오히려 일이 더 커질 수도 있었다.
그렇지만 김원은 자신의 앞에서 경호원에게 밀려 넘어진 팬을 보자 몸이 먼저 반응했다고 했다.
“경호분이 밀었어요?”
석지훈이 되묻자 김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뒤쪽의 팬들에 의해 밀려 넘어진 게 아니라 케이케이 측에서 고용한 경호원 때문에 넘어졌다는 말을 들으니 도욱은 일이 크게 될 수도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전에도 인기 연예인들 중 경호원들이 아티스트를 경호하다가 팬들을 밀치는 등의 행위를 하면서 구설수에 오른 일이 많았다.
경호원들도 무작정 밀고 들어오는 팬을 막아야만 하는 직업적인 의무가 있어서 그러한 행동을 하는 것일 테지만, 가끔은 도욱이 보기에도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과할 때도 있었다.
그 때문에 과잉경호 논란이 나오게 되면, 직접적인 상관이 없다고 해도 아무래도 해당 연예인의 이미지에도 안 좋은 영향을 끼치는 건 사실이었다.
“이거 봐봐, 형.”
인터넷이 빠르게 터지지 않아 답답해하던 안형서가 김원을 향해 휴대폰을 내밀었다.
“뭔데?”
“원이 형 영상 떴어요!”
정윤기도 궁금하다는 듯 묻자 안형서가 답했다. 김원의 영상이 떴다는 얘기에 조수석에 타고 있던 오백호도 등을 돌렸다.
“뭐야. 무슨 영상인데?”
“방금 전 공항 영상이요.”
“마, 이걸 다 찍었네.”
휴대폰을 돌려 본 김원과 정윤기가 오백호에게 핸드폰을 넘겼다.
영상은 북경 공항에 도착한 케이케이의 모습을 담고 있었다. 핸드폰으로 찍은 듯 화질이 좋지 않았지만, 누가 누구인지 정도는 알아볼 수 있었다.
또 아수라장이 된 공항의 모습도 고스란히 찍혀 있었다.
여기저기 고성이 오가는 가운데 케이케이 측 중국 사설 경호원이 팬을 밀치는 모습과 팬이 쓰러지며 바닥에 나자빠지는 모습, 그런 팬에게 손을 내미는 김원까지.
일련의 과정들이 편집된 영상이 에이보를 통해 빠르게 케이케이의 중국 팬들에게 확산되고 있었다.
“다시 보니까 진짜 난리도 아니네요.”
마지막으로 전달받은 석지훈이 보고선 고개를 저었다.
에이보에서 퍼지고 있으니 한국에도 금세 퍼질 듯했다. 도욱은 중국 현지 팬들의 반응을 살피고 싶었으나 부족한 중국어 실력으로는 팬들의 분위기 정도만 읽어낼 수 있었다.
도욱은 에이보 반응들 중 반복되어 써지고 있는 단어들을 복사해 번역기에 붙여 검색했다.
‘다행이다, 경호원, 화난다, 질서, 예의, 매너 좋다, 멋있다.’ 등의 문장들이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대충 연관 지어 보면 공항 질서가 엉망인 데에 중국 팬들 내에서도 염려의 목소리가 나오는 듯했다. 동시에 경호원이 팬을 밀친 것에 대한 분노가 있었다.
또한 그러한 상황에서 팬을 도와준 김원의 매너에 감탄한 팬들이 많았다.
‘달콤하다’라는 단어 역시 많이 보이는 것으로 보아 중국 내에서 김원의 이미지는 그렇게 잡힐 듯했다.
‘김원의 대처 덕분에 잘 넘어갔다. 다행이야.’
도욱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
북경 시내 중심 호텔에 마련된 기자회견장.
준비를 마친 케이케이 멤버들이 ‘Howl’의 컨셉에 맞춘 의상을 입고 회견장으로 들어섰다. 무대의상은 거의 풀어헤쳐진 교복 느낌이었다면, 오늘은 기자회견이라는 격식에 맞게 단정하게 갖춰 입은 상태였다.
멤버들이 등장하자 수많은 플래시가 동시에 터졌다.
기자들이 ‘꽤’ 와 있을 거라고 들었던 멤버들조차 기자들의 숫자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거의 백을 넘어 이백에 가까운 숫자의 기자들이 카메라를 놓고 케이케이를 향해 뜨거운 눈길을 보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까지 많이···?’
도욱도 얼떨떨한 기분이었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도욱은 익숙한 인물을 발견했다.
기자들과 조금 떨어진 자리, 관계자석에는 미리 중국으로 건너 와 비즈니스 미팅 일정을 소화한 권흥조 제작이사가 자리하고 있었다.
권흥조 이사는 힛 엔터테인먼트에 투자해준 태화그룹 한국지사의 홍운영을 통해 중국 쪽 엔터 투자사업 부서 본부장인 황헌을 소개받았다.
이번 케이케이의 중국 시장 진출 관련해 황헌 본부장의 도움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인사 차원에서라도 직접 만나는 자리를 가져야겠다고 생각하던 차였다.
그 자리에 케이케이도 직접 선보일 수 있다면 좋겠다는 것이 권흥조 이사의 생각이었다. 그래서 일부러 케이케이 기자회견 즈음하여 미팅을 잡았던 권 이사였다.
케이케이 멤버들을 직접 보면 중국 담당자인 황헌 또한 케이케이에게 더 매력을 느낄 것이라는 권 이사의 자신감이기도 했다.
미리 호텔 위쪽의 식당에서 미팅을 마친 권 이사와 황헌 본부장은 자연스럽게 기자회견장으로 발걸음 했다.
황헌 본부장 또한 기자회견장에서 케이케이를 직접 보게 될 것임을 알고 있었다.
한국 지사에서 새로운 투자처로 고른 곳이 힛 엔터테인먼트였다. 홍운영 지사장이 수익성이 괜찮은 것 같다며 황헌과 즐겁게 통화를 했었다.
때문에 회사의 수익을 위해 홍운영 지사장을 도와 케이케이의 중국 진출을 돕기도 한 황헌 본부장이었다.
잠시라지만 어쨌든 투자자와 투자처라는 한 배를 탄 입장에서 케이케이가 잘되는 것은 당연히 태화그룹으로서도 좋은 일이었다.
특히 중국에서 성공적인 결과를 안고 간다면, 그것은 더욱 태화그룹이 투자자로서의 면을 세우는 일이 될 것이었다.
황헌 본부장이 넌지시 말했다.
“기자를 몇 더 불렀습니다.”
통역을 통해 말을 전달받은 권흥조 이사가 놀란 눈을 했다.
“시작이 화려할수록 좋지 않겠습니까. 하하!”
황헌 본부장이 말하며 웃었다. 권흥조 이사가 고개를 꾸벅 숙여 감사를 표했다.
본래 기자회견장에 오려고 했던 기자들의 수는 백여 명 남짓이었다.
물론 한국 기자들도 섞여 있었지만, 그 수만으로도 이미 케이케이가 중국에서 라이징 스타로서 어느 정도의 입지를 다져 놓았음을 의미했다.
그러나 황헌 본부장의 입김으로 인해 현재는 그 배에 가까운 기자들이 몰려와 있는 상태였다. 기자들이 몰려든 수만으로도 한국에서는 화제가 되며 기사화 될 만한 숫자였다.
덕분에 중국에서의 케이케이 첫 기자회견은 아주 화려하게 치러지고 있었다.
“북경에 온 소감이 어떻습니까?”
첫 질문은 역시 무난했다.
한국에서는 보기 힘든 붉은 융단이 깔린 의자에 멤버들은 앉아 있었다. 옆에는 통역이 함께였다.
정윤기가 대표로 마이크를 잡고 중국에 온 소감을 말했다. 환영해주셔서 감사하다는 감사 인사 또한 잊지 않았다.
이후에는 케이케이의 음악적 색깔을 묻는 질문들이 나왔다. 이 또한 늘 앨범 설명을 담당하는 정윤기가 설명했다.
“······특히 이번 Howl의 경우에는 볼거리 많은 안무도 있으니까 중국 분들께서도 많이 사랑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정윤기의 답이 끝나자 안무를 보여 달라는 요청이 들어왔다. 순간적으로 당황한 케이케이 멤버들이었지만 이내 당황하지 않고 박태형을 내세웠다.
박태형이 마이크를 의자에 내려놓고 일어나 포인트가 될 만한 안무를 멋지게 소화해냈다. 뒤에선 다른 멤버들이 리듬에 맞춰 노래를 불러주었다. 팀워크가 빛나는 순간이었다.
“달려맨에서 보았는데 정말로 몸이 유연한 것 같네요. 다른 멋진 동작도 보여주세요.”
기자의 또 다른 요청에 자리에 앉으려던 박태형이 다시 일어났다.
귓불이 빨개진 채로 박태형이 리듬을 타며 자유 안무를 16마디 정도 했다. 이백 명 되는 기자들 앞에서 무반주로 춤을 추는 것이 어려운 일이었을 텐데도 박태형은 춤에 집중했다.
이후에는 안형서의 고음이 듣고 싶다는 요청이 들어왔다.
안형서는 ‘Sorry but I Love You’의 고음파트를 부르며 동시에 윙크를 다섯 번 정도 연속해서 발사했다.
그러자 기자들 사이에서도 웃음이 터졌다.
기자회견장의 열기가 뜨거웠다. 기자들이 많다 보니 이런 저런 요청사항도 많았고, 질문들 중엔 화기애애한 듯하면서도 날 선 듯한 질문도 있었다.
그리고 본격적인 개인 질문 타임이 되자 도욱에게로 질문이 몰렸다.
중국에서도 역시 도욱의 인기가 좋았다. 도욱의 또렷한 이목구비를 두고 중국에선 복이 많은 관상이라고 한다며 칭찬하는 말들이 이어졌다.
도욱이 웃을 때마다 셔터가 터졌다.
도욱이 연기한 ‘준비하라 1999’는 중국에서 그렇게 히트를 치지는 못했다. 그러나 연기를 하고 있단 걸 알아서인지 중국어로 연기를 보여 달라는 요청도 있었다.
물론 따로 준비해온 ‘중국어 연기’는 없었던 도욱은 감정 연기와 ‘사랑해’ 정도의 대사로 대처했다.
그리고 아무래도 타국에서 온 가수이다 보니 중국 팬들은 어떤지, 중국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한 질문들이 쏟아지고 있었다.
도욱은 평소 중국이 좋아하는 나라이고, 또 중국 팬들이 열정적이라 좋다는 이야기를 했으나 그 부분에 있어서만큼은 기자들의 반응이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중국의 어떤 부분을 좋아하는지 말씀해주세요.”
도욱의 말이 진심인지 아닌지 판별이라도 할 듯 기자가 파고들었다.
“어······. 저는.”
말을 고르던 도욱이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