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2
미래를 향해 달려라 (3)
***
스파이가 박태형이었다는 게 밝혀지자, 충격 받는 출연진들의 표정.
그리고 박태형이 어떻게 다른 출연자들 몰래 물총을 쐈는지, 조용히 움직이며 모르는 척했는지 등. 박태형이 활약한 모습이 고스란히 담긴 영상이 편집되어 방송되었다.
방송이 나가고 나자 ‘달려맨’ 시청자들 사이에서는 화제가 일었다.
‘달려맨’은 ‘유한도전’만큼이나 고정 팬이 탄탄한 프로그램이었다.
게다가 달려맨 멤버들 사이의 캐릭터가 확고한 만큼 고정 팬들 사이에서는 무슨, 무슨 특집을 빙자하며 초대되는 게스트들에 반감이 있었다.
달려맨에서 진행하는 미션들의 특성상 그날 게스트가 게임을 잘 이해하지 못하거나, 적응하지 못하는 등의 모습을 보이면 재미가 확실히 반감되기 때문이었다.
이번 캠퍼스 특집, 케이케이 편도 방송 전 고정 팬들의 반응은 전부 부정적이었다.
출연을 기다리는 건 케이케이의 팬들 정도뿐이었다.
한편 케이케이 팬들 사이에서도 ‘달려맨’이 이백프로 반가운 프로그램은 아니었다.
물론 공중파 예능에 나가게 된 것에 케이케이의 인기가 높아졌음을 실감하며 신나한 팬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유일하게 나가는 공중파 예능이라면 다른 프로가 되기를 바란 이들이 더 많았다.
달려맨의 경우 멤버들 개인의 매력을 어필하기도 힘들었고, 게임을 잘 못하게 되면 욕만 먹을 뿐 크게 아이돌로서 도움이 되는 프로는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방송이 나가자 상황이 달라졌다.
-케이케이 또 초대해라ㅋㅋㅋㅋㅋㅋㅋㅋㅋ
-또 아이돌이냐고 출연 반대했던 형들 어디갔음?ㅋㅋ
-진짜 달려맨다운 회차였다! 개달림ㅋㅋㅋㅋㅋ
-카메라맨들 보약해줘야 할 듯 후덜덜하네..엄청 달렸다 -현세대 뒤집어 놓으심
-박태형 조용해서 누군지도 몰랐는데 조용한 게 저렇게 또 도움이 되네요zz
-스파이..진짜 생각하지도 못함 지렸다.. 따로 훈련 받은 거 아님?
-뭔데뭔데 우리 동국이 형이랑 강도욱 맞붙은 거 레알? 참트루?
-심지어 강도욱 우세
-젊음이 좋긴 좋다...
-도욱마리휴지단? 그 사람들은 강도욱 눈물만 닦아줌? 뭐하냐 강도욱 땀 닦아줘야 할 듯.. 메이크업 다 지워 졌다
-케이케이 열심히 하는 모습 보기 좋네~
-다들 땀 흘리는 것 봐.. 석지훈만..ㅋㅋ같은 멤버에게 더 잔인한 태임스본드
-태임스본드ㅋㅋㅋㅋㅋㅋㅋ
-진짜 이건 역대급 물총질이었다,,,
-아올대 보니까 김원이 양궁 잘하던데 김원이 스파이였어도 좋을 듯
-내가 태임스본드 합성해옴!
(사진).jpg
-대박ㅋㅋㅋㅋㅋㅋㅋㅋ
-물총 디테일ㅋㅋㅋㅋㅋㅋ
-다음 007 시즌에 박태형 나옴??ㅎㅎ ??
시청자게시판은 케이케이에 대한 칭찬 일색이었다.
케이케이 멤버들 모두 최선을 다해 프로에 임했다는 게 티가 났다. 그러한 멤버들의 노력 덕분인지 달려맨 팬들도 대만족이었다. 한 번 더 출연해달라는 얘기까지 계속해서 나오고 있었다.
박태형의 경우에는 ‘태임스본드’라는 별명까지 얻게 되었다.
포스터 합성은 물론이고 박태형의 활약상을 편집한 영상이 마이튜브를 통해 공유되면서 달려맨 시청자가 아닌 이들에게까지 박태형의 센스가 알려지게 되었다.
더해 김동국과 대결을 펼치는 도욱의 모습도 함께 돌아다니며 화제를 일으켰다.
팬들은 케이케이의 성공적인 예능진출에 뿌듯함을 감추기 힘들었다.
게다가 남성미를 과시하는 ‘Howl’ 컨셉과도 잘 맞아 떨어지면서 ‘Howl’ 무대에 대한 반응도 더더욱 좋아졌다.
아이돌 올림픽 대회 때 잠시 보여주었던 운동을 잘하는 이미지와도 이어졌다. 체육돌, 달리기돌 등의 별명이 덧붙여졌다.
워낙 반응이 좋아 연달아 다른 예능에서도 더 많은 출연섭외가 들어오는 바람에 힛 엔터측에서는 거절하느라 곤욕을 겪었다.
미룰 수 없는 스케줄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
“태본! 뭐하시나.”
“어? 어어. 저희 무대 모니터링··· 중이었어요.”
안형서의 부름에 박태형이 한쪽 귀에서 이어폰을 빼며 대답했다.
박태형이 태임스본드로 화제가 된 이후, 멤버들 사이에서 박태형의 별명은 ‘태본’이 되어 있었다.
태임스본드의 줄임말이기도 했고, 무슨 ‘본부장’ 할 때의 느낌을 살린 것이기도 했다.
예능 가서 대세가 되었으니 예능 본부장이라는 얘기에 박태형은 그저 어리둥절해할 뿐이었다.
“형. 그렇게 부르지 말라니까요.”
“왜, 왜! 너도 그 편집 영상 봤을 거 아냐?!”
되묻는 안형서에 박태형은 아무 답도 하지 못했다.
박태형도 그 영상들을 보며 내심 뿌듯해한 건 사실이었다. 이렇게까지 화제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지만 말이다.
“그나저나 중국이라니 걱정이다.”
안형서가 박태형의 옆에 앉으며 말했다.
케이케이 멤버들은 현재 중국 북경 출국을 앞두고 공항 라운지에 들어와 있는 상태였다.
공항에서도 케이케이 멤버들을 찍으려 몰려든 팬들 때문에 사진을 잔뜩 찍힌 터라 출국도 하기 전에 피로도가 상당했다.
같은 비행기까지 타겠다고 따라 붙은 팬들 때문에 멤버들은 면세점 쇼핑도 포기하고, 라운지에 들어와 쉬고 있었다.
“저도 중국은 처음이라······.”
“난 어릴 때 가족여행으로 간 적 있는데 음식 입에 안 맞아서 엄청 고생했거든.”
안형서의 말에 박태형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형 괜찮겠어요?”
“고추장이랑 라면이랑 엄청 챙겨오긴 했어. 철민이 형한테도 말해뒀고.”
그 말에 박태형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본을 제외하고는 따로 해외에 나간 적 없었던 케이케이의 이번 북경 스케줄은 5박 6일짜리 스케줄이었다.
근 일주일에 가까운 시간 동안 케이케이는 북경 등지에서 바쁜 나날을 보내게 되었다. 우선 도착하자마자 기자회견과 ‘Howl’ 앨범 쇼케이스가 있었다.
또 북경에서 열리는 도시 축제에서 무대를 맡아 공연도 하게 됐다.
현지 잡지 인터뷰는 물론이고 TV 예능 프로그램 출연도 예정되어 있었다. K-POP 스타들이 소개되는 프로그램이었다.
중국어 버전 앨범을 낼 준비를 하면서부터 차근차근 계획해오던 스케줄들이었다.
그런데다 현지에서 반응이 오고 있어서 때마침 기세를 몰아 인기를 올릴 수 있는 방문 기회임에도 분명해 보였다.
오히려 빠르게 오고 있는 반응에 비해 한국 활동 때문에 조금 미뤄진 감이 있었다.
“중국어는 일본어보다도 더 아는 말이 없어. 공부 좀 해야지.”
안형서가 이제 와 급한 마음에 중국어 회화 책을 펼쳤다.
옆에 있는 안형서가 그러자 박태형도 괜히 불안한 마음이 들어 팬-마케팅팀 도라희 대리가 준비해준 멘트가 정리된 페이퍼를 꺼내 보았다.
이미 여러 번 보아 종이는 구겨져 있었다.
한편에서는 가장 많은 말을 해야 하는 정윤기가 또 한 번 머리를 싸매고 씨름 중이었다.
안형서와 박태형의 맞은편에서 가만히 휴대폰을 하고 있던 도욱이 말했다.
“형서 형, 이따가 출발하기 전에 다 같이 에이보 계정에 사진 찍어서 올려요.”
“어? 좋지.”
안형서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활발하게 SNS 계정을 사용하는 멤버 중 하나였다. SNS 계정을 통해 팬들과 소통하는 것에 가장 큰 재미를 느끼고 있는 멤버였다.
“근데 갑자기 왜?”
“몰랐는데 에이보 팔로워가 백만이 넘어가요.”
도욱이 얼떨떨한 기분을 떨치지 못한 채 중얼거렸다.
에이보는 중국 내에서 중국인들 위주로 사용되고 있는 SNS 계정이었다.
마이스노트에 비해 간편성이 떨어져 에이보 계정의 경우 케이케이 멤버들이 직접 관리하기보단 주기적으로 팬-마케팅 팀에서 관리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팔로워가 백만이 넘어가 있었다.
“뭐? 백··· 백만?”
“네. 백만이요.”
어마어마한 숫자였다. 도욱은 다시금 중국의 인구수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어어. 이따 꼭 찍자. 찍어서 도 대리님 보내주면 올려주시겠지?”
“그럴 것 같아요.”
안형서의 질문에 도욱이 답했다.
도욱의 옆에 있던 오백호 실장이 마침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너희 그거 백만 넘긴 것도 대단하지만, 하이두에서도 인기가 장난 아냐.”
도욱을 비롯한 안형서, 박태형의 눈이 빛났다.
하이두는 중국에서 가장 큰 포털사이트였다. 하이두에서의 검색 순위 등은 곧 인기 순위를 말해주는 것이기도 했다.
“한국 연예인 중에서는 다섯 손가락 안에 들던데?”
“진짜요?”
박태형이 입을 벌리곤 되물었다.
중국어 버전 뮤직비디오의 조회수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가고 있는 상황이었다.
최근 케이케이의 행보는 그야말로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언제는 놀랍지 않았냐만, 최근은 더욱 더 그 스케일을 키워나가고 있었다.
‘시기적절하게 중국을 겨냥한 앨범을 낸 건 역시 좋은 선택이었다.’
도욱은 생각하며 앞으로 계속해서 커져 나갈 중국 시장을 생각했다.
현재 중국은 거대한 자본에 비해 오히려 자본을 쏟을 콘텐츠가 부족한 상황이었다.
자국 내에서 현재의 한국 아이돌만 한 가수들이 나오려면 시간이 꽤 걸릴 것이었다. 그때까지의 틈을 제대로 노려 시장을 장악해둘 생각이었다.
‘가서 제대로 무대를 보여주고 오자.’
도욱은 생각하며 중국 시장을 언젠가 아라 엔터를 치기 위한 자본 마련의 발판으로 삼기 위한 계획을 다졌다.
***
북경 공항 입국장.
공항에는 역시나 케이케이를 기다리는 많은 중국의 팬들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저마다 멤버들을 응원하는 플래카드를 들고 멤버들의 이름을 외치기 시작했다.
‘달려맨’이 정식 수출된 상태는 아니었지만, 인터넷으로 퍼진 중국에서의 인기가 벌써부터 대단하기도 했다.
박태형과 007 포스터가 합성된 ‘태임스본드’ 포스터를 프린트해 가지고 나온 팬도 있었다.
그 포스터를 발견한 안형서와 석지훈이 포스터를 가리키며 웃은 것도 잠시였다.
케이케이 멤버들의 움직임이 시작되자 가드 라인 밖에 있던 중국의 팬들이 사정없이 밀려들어오기 시작했다.
공안에서 배치된 인원들이 상당했는데도 역부족이었다.
케이케이 쪽에서도 중국 현지에서 경호팀을 고용해둔 상태였다. 멤버 한 명, 한 명 밀착해 전담 마크하며 공항을 빠져나가는 길이었다.
아수라장이었다. 인천 공항을 빠져나올 때 겪었던 아수라장은 아수라장도 아니었던 게 분명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낀 멤버들은 숨이 막힐 듯한 상황 속에서도 천천히 앞으로 발을 내딛고 있었다.
여성의 귀를 찢을 듯한 비명이 들려 왔다.
멤버들을 부르느라 내는 소리와는 다른 소리였다.
“痛 !!! (아프다)”
“这里有人受伤了! (여기 다친 사람 있어요)”
난리였다.
멤버들의 움직임이 일시에 멈췄다.
여성이 바닥에 쓰러진 채 주저앉아 있었다. 그 와중에도 밀치는 사람들 때문에 여자의 몸이 흔들렸다.
굵직한 남성의 목소리가 여성을 향해 쏟아져 내렸다. 무어라 욕지기를 하는 듯했는데 케이케이 멤버들로선 알아들을 수 없는 목소리였다.
“어··· 어떻게.”
박태형이 걱정된다는 어투로 중얼거렸다.
맨앞에 서 있던 오백호가 바로 뒤에 있는 박태형을 잡아끌었다. 일단은 상관 말고 빨리 오라는 뜻이었다.
그러나 케이케이가 부른 사설 경호 때문에 여자가 저렇게 넘어진 게 분명해 보였다. 1차 책임이 어디에 있든 보기 좋은 광경은 아니었다. 큰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었다.
도욱이 다시금 뒤돌아 볼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