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슈퍼스타-71화 (71/225)

# 71

과거여, 응답하라 (1)

여의도 MVC 방송국, <해와 달의 연인> 제작발표회 현장.

MVC 창사 50주년 특별 사극으로 편성된 <해와 달의 연인>은 주연부터 조연에 이르기까지 초호화 캐스팅으로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있는 기대작이었다.

제작발표회 현장에도 많은 기자들이 와 취재 열기가 뜨거웠다.

“김주현 씨, 이번에 사극 첫 도전인데 소감이 어떠십니까?”

물론 스포트라이트는 남자 주인공이자 이십 대 남배우 중 가장 큰 인기를 얻고 있는 김주현에게 우선 쏠렸다.

<해와 달의 연인>은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왕과 왕의 무녀, 그리고 왕의 이복 형제를 둘러 싼 사랑과 저주, 끊을 수 없는 애틋한 인연을 그린 드라마였다.

왕 역할이 김주현이었고, 왕의 무녀로는 세기의 미인이라 불리는 한여인이, 왕의 이복 형제로 맨투맨 서준이 캐스팅 됐다.

전체 캐스팅이 워낙 화려했다. 주인공, 서브 다음의 세 번째 남자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무사 역할에도 한류스타로 입지를 굳힌 배우가 출연하는 만큼 서브로 신인인 서준이 캐스팅 된 건 파격적이라 할 만했다.

“열심히 하면 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김주현이 기자의 질문에 짤막하게 답변했다.

김주현이 낯가림 많은 성격인 건 익히 알려진 사실이었다.

더 덧붙일 말도 없이 사실인 말이었지만 기사 한 줄이라도 더 내야 하는 기자들의 입장에선 아쉬운 답변이었다.

“대본 리딩 마쳤는데 한여인 씨와 호흡은 어떤 것 같나요?”

“한여인 씨가 워낙 잘해주셔서··· 저도 잘할 수 있었습니다.”

틀에 박힌 딱딱한 대답에 기자들은 남몰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다른 이도 아닌 김주현이었다. 김주현에게 어떻게든 이런 저런 답을 끄집어내려 기자들의 질문이 계속해서 쏟아졌다.

양옆에 앉은 한여인과 서준은 아무래도 가만히 앉아 김주현에게 쏠린 관심을 한 발 떨어져 구경하는 수밖에 없었다.

서준은 자신이 들러리에 불과한 이 자리가 무척이나 불만이었다.

그러나 서준도 이곳에서의 제 자리 정도는 알았다. 누울 자리 정도는 알고 다리를 뻗는 인간이었다.

최대한 입꼬리를 올려 웃고 있는 서준의 미소가 점점 경직되고 있을 즈음이었다.

“감독님, 왕의 이복동생 역할도 <해와 달의 연인>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인데요. 신인인 아이돌 서준 씨를 캐스팅하셨습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드디어 서준 관련한 질문이 등장했다. 서준은 목을 빼 감독의 답변을 기다렸다.

물론 좋은 말만 해줄 것을 알아 기대하는 마음이었다.

캐스팅 기사가 나자 ‘연기력도 검증 안 된 아이돌은 별로’라는 댓글이 잔뜩 달렸었다. 대형 기획사인 아라 엔터의 힘으로 캐스팅된 게 분명하다는 얘기도 많았다.

사실이었다. 아라 엔터가 아니었으면, 이런 대작 서브 남주의 롤이 서준에게까지 오긴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라 엔터라고 하더라도 영 말도 안 되는 인물을 밀어 넣는다고 될 일은 아니었다.

“마스크가 제가 생각했던 이복동생 이미지와 아주 정확히 일치했습니다. 화려하면서도 깨끗한 이미지가 어느 여인이라도 홀릴 만한 마스크 아니겠습니까? 한여인 씨도 서준 씨 얼굴을 보더니 웃음꽃이 피었다니까요.”

감독의 너스레에 발표회 현장에 웃음이 돌았다. 감독이 한여인을 보며 그렇지 않냐고 되묻자 한여인이 마이크를 집어 들었다.

한여인은 아라 엔터 소속은 아니었지만, 서준의 아버지인 아라 엔터 서중원 본부장과 친분이 있었다.

“네. 맞아요. 정말 요즘 친구들이 말하는 꽃미남?······. 꽃미남이더라구요! 서준 씨가.”

서준이 일부러 약간 부끄럽다는 듯 표정을 지으며 웃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형성되자 카메라 기자들의 셔터 소리가 커졌다.

“연기도 곧잘 합니다. 대본 읽는 거 보고 곧바로 캐스팅하게 됐습니다.”

감독의 답변은 역시나 서준이 잘한다는 이야기였다.

자신이 감독인 드라마의 배우가 연기 못 한다고 시작부터 초를 칠 감독은 없었기에 기자들은 일단은 반만 믿었다.

뭐든 까봐야 아는 법이었다.

“서준 씨! 첫 연기 도전인데 사극에, 큰 역할을 맡게 됐는데 소감이 어떠세요?”

평소 서준을 좋아했고, 서준의 마스크나 아라 엔터의 행보상 연기를 할 것 같다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 빨리 연기를 시작할지는 몰랐던 여기자가 큰소리로 물었다.

서준이 인사 후 처음으로 마이크를 들었다. 서준은 마이크를 드는 순간부터 약하게 눈웃음을 치고 있었다.

“저한테 이런 기회가 주어지다니 일단 믿기지 않고요. 운이 정말 좋았던 것 같아요. 많이 떨리는데 최선을 다해 열심히 하겠습니다! 기회 주신 감독님께 폐가 되지 않도록··· 잘하겠습니다! 지켜봐 주시고, 예쁘게 봐주세요!”

서준은 스태프들이나 기자들은 물론이고 배우들 중에서도 가장 어린 나이였다. 서준의 애교 넘치는 ‘예쁘게 봐 달라’는 말에 현장에 또 한 번 웃음이 돌았다.

타고 난 얼굴 덕을 많이 봐 온 서준은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좋아할지 정확하게 알았다.

‘아양 떨기 더럽지만 아직까진 어쩔 수 없지.’

서준은 속으로 앞에 선 기자들을 비웃으며 겉으로는 웃음을 지우지 않았다.

“서준? 확실히 얼굴은 좋던데.”

“아이돌 출신이라 그런지 확실히 화사한 맛이 있긴 한데. 연기를 잘해야죠. 생긴 거야 인정!”

“대답도 사근사근 잘하고 말이야.”

“기사 쓰기 좋게 포토타임 때 포즈도 좋더라구요.”

제작발표회 현장을 빠져나가며 기자들이 저들끼리 배우들에 대한 평가를 늘어놨다. 드라마 쪽에선 새로운 얼굴인 서준에 대한 이야기가 단연 많았다.

“난 너무 가식 같아서 싫던데.”

“손 기자는 좋아하는 거 찾기가 세상에서 힘든 사람인데 말해 뭐해.”

함께 이야기를 나누던 기자 중 하나가 ‘손 기자’라 불린 이에게 핀잔을 주었다. 손 기자는 어깨를 으쓱하곤 이내 빠른 걸음으로 발표회 현장을 빠져 나갔다.

***

<“신인 연기자로 거듭나겠습니다!” 당찬 포부 밝히는 서준>

<안 감독, 역할과 100% 싱크로율... 서준 외모 보고 반했다!>

<김주현과 어깨 나란히... 새로운 얼굴 서준 활약 기대>

도쿄에서의 ‘Very Sorry’ 첫 공연을 무사히 마친 도욱은 기사를 보며 무표정한 얼굴이 되었다.

손을 흔들며 환한 얼굴을 한 서준의 얼굴을 보자 가슴이 뜨거워졌지만, 이내 침착하게 기사를 넘겼다.

댓글에는 아이돌 출신 연기자에 대한 악플도 많았지만, 기대된다는 선플도 동시에 많았다. 어쨌든 화제를 모으는 데는 성공했다.

게다가 도욱은 이 드라마의 성공을 이미 알고 있었다.

<해와 달의 연인>은 시청률 40%대를 기록하며 MVC의 대표 사극이 되는 드라마였다.

이 작품으로 주연이었던 김주현은 20대 배우 중에서만이 아니라 전체 배우들 중에서도 톱 중에 톱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서강준이 맡은 역할은 형의 연인을 짝사랑하는 전형적인 서브 남자 주인공이었다.

끝까지 여자 주인공을 갖진 못하지만, 죽는 순간까지 여자 주인공만을 사랑하는 순정남을 연기하면서 많은 여심을 사로잡았다.

서강준은 아주 뛰어난 연기는 아니었지만, 극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연기했다. 감독의 말대로 역할과 100% 일치하는 얼굴이 큰 도움을 줬다. 첫 작품이었으니 제 몫을 다한 셈이었다.

‘그래, 이 드라마에서부터 서강준 개인의 인기가 치솟기 시작한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니 입 안이 썼다. 도욱은 호텔 냉장고에 들어 있는 생수를 꺼내 마셨다.

‘물론 그다음 작품에서 연기 논란이 있긴 하지만······. 또 그다음 작품은 잘 되니까.’

이번 도쿄에서 같은 호텔 방을 쓰는 안형서는 벌써 침대에 누워 이어폰을 꽂은 채 음악을 듣고 있었다.

도욱도 침대로 돌아와 눕고 조명을 조절했다. 안형서가 이어폰 한쪽을 빼며 물었다.

“도욱이 너 이제 잘 거야?”

“네, 형. 불 끌까요?”

“응. 얼른 자자. 내일 또 스케줄 있잖아.”

내일은 도쿄의 한 공연장에서 ‘하이터치회’가 있는 날이었다. 팬들과 일대일로 대면하고 손뼉을 마주치는 행사였다.

면대면 행사이다 보니 체력적 소모가 심한 스케줄이긴 했다.

그래도 일본에서의 인기가 점점 오르고 있다는 게 체감 돼 보람은 있었다.

도욱이 끄덕이며 침대 옆의 조명을 조절했다.

***

“죄송합니다, 강준이 아버님. 저희 애가 실수로······.”

“요즘 애들 아무리 무섭다지만, 실수로 팔을 부러뜨려요? 무서워서 살 수가 있나. 실수 두 번만 했다가는 애가 불구가 되겠어요.”

교장실. 서강준의 부모 앞에 보명의 어머니가 무릎을 꿇고 있었다.

보명은 살짝 열린 교장실 문 틈 사이로 그러한 어머니를 보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뛰어 들어가 어머니를 일으키고 싶었지만, 두 발이 땅에 붙어버린 듯했다. 무력감이 보명의 몸을 짓누르고 있었다. 서강준도 괴물이었지만, 저 부모라는 이들도 더 커다란 괴물과 같은 형상이었다.

“합의금은······ 저희가 당장 그렇게 큰돈이 없어서. 고소 취하만 해주시면······.”

“우리가 돈 없어서 이래요? 괘씸해서 이러는 거잖아요! 돈 오백도 없는 집 애가 뭘 믿고 애 팔을! 내가 속상해서 살 수가 없네!”

서강준의 어머니가 흥분하며 쏟아내자 서강준의 아버지, 서중원이 여인을 말렸다.

“어허, 조용히 해요.”

중간에 앉은 교장은 어쩔 줄 몰라하며 서중원의 눈치를 보기 바빴다. 보명의 어머니가 무릎을 꿇고 있든 눈물로 얼굴을 온통 적시고 있든 보이지도 않는 모양이었다.

“그래, 저희가 돈 없어서 이러는 게 아닙니다. 그 김··· 보민? 보민 학생이 정말로 반성하고 있는지가 의문이네요.”

“흐흑, 아이구, 네! 보명이는 제가 아주 혼을 냈어요! 우리 애가 그럴 애가 아닌데······ 흑.”

“그럴 애가 아니긴! 엄마가 이렇게 감싸고도는데 애가 반성을 했겠어요?”

“여보, 조용, 조용.”

여인이 입을 다물며 물 잔의 물을 삼켰다.

“정말인가요? 그 학생이 우리 애를 학교폭력위원회에 신고했다고 하던데. 흠. 폭력을 당한 건 저희 아이인데 말이지요.”

보명의 어머니는 잠시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보명의 등과 배, 허벅지까지 아주 고루고루 퍼져 있는 멍을 보고 놀란 게 그제였다. 보명이 학교 폭력을 당하고 있다는 것을 그제야 알았던 것이다.

그런데 보명이 누군가의 팔을 부러뜨렸다며 고소를 당한 게 바로 그다음 날이었다.

“제가 다 잘못 키운 탓입니다. 제가 돈 버느라 바빠서······. 애한테 신경도 못 써주고······. 흐흡.”

“울지 마시고요. 보민 어머님. 합의금 없이 고소를 취하해 드리겠습니다.”

“네? 정말인가요?! 감사합니다, 선생님!”

“대신. 약속 하나 해주셔야겠습니다.”

서중원이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비열하게 웃고 있었다.

‘아니야, 아냐! 엄마! 팔을 부러뜨린 건 내가 아니야!’

보명은 외치고 싶었다.

‘조금만 알아보면 이 모든 게 거짓이란 걸 다 알 수 있는데!!! 왜 아무도!!! 왜 아무도 말하지 않는 거야!!!’

교장 선생도, 그 옆에 앉은 담임도 잠자코 서중원의 말을 듣고 있었다. 무릎 꿇은 보명의 어머니에게 시선을 주는 이는 없었다. 보명은 세상이 깜깜해지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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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억―!”

꿈에서 깨어난 도욱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주변을 살폈다. 식은땀이 온몸에 흐르고 있었다.

깜깜한 호텔 방 안, 자신은 케이케이 멤버 강도욱이었다.

도욱은 조급해지려는 자신을 다잡았다. 끔찍했던 과거의 순간을 꿈으로 꾼 것도 다 그러한 마음 때문인 것 같았다.

이전에는 서강준을 무너뜨릴 누군가가 없었다. 그러나 이제 도욱은 서강준의 인성을 까발리고, 서강준을 잡을 카드들을 모으는 중이었다.

또 동시대에 서강준이 속한 맨투맨보다 인기 있는 그룹, 케이케이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연기자 서강준을 잡기 위해 자신도 고군분투 중이었다.

‘분명히 나를 쓰고 싶어 했다. 그렇다면 이제 연락이 올 때가 됐어.’

현재로썬 케이케이의 입지를 더 단단하게 다져놓은 것이 중요했다. 그래야 개인활동을 하면서도 케이케이의 인기를 이어나갈 수 있을 것이었다.

‘기다리자. 모든 걸 바꿔놓을 그 작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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