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5
확장팩 (4)
“방법?”
“네. 잘하면 2부 끝에 설 기회가 있을 겁니다. 서태준 선배님 기획사 쪽에 연락을 한번 넣어주세요.”
“연락이야 넣어볼 수 있지······.”
“그때 공연할 커버 댄스팀을 찾고 있다는 소문이 인터넷에 계속 돌더라고요. 마땅한 댄스팀이 없는지······. 댄스팀 대신 저희가 들어가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도욱의 말에 심준 팀장은 확신하지 못하면서도 우선은 고개를 끄덕였다. 서태준 정도의 인물이라면 단발성 이벤트로 뒤에서 백댄서를 해도 괜찮은 정도였다.
연락을 해보는 데 시간이 많이 필요하거나 따로 돈이 많이 드는 것도 아닌지라 서태준이 아닌 다른 댄스팀의 공연이 예정되어 있다면, 그 자리라면 한 번 노려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욱은 심준 팀장의 대답에 안도했다. 사실 인터넷에서 돌고 있다는 소문은 거짓이었다. 서태준은 기밀유지를 생명으로 생각하는 이였다.
이때쯤까지 공연에 세울, 딱 마음에 드는 댄스팀을 구하지 못해 일주일 전에서야 급히 구하게 됐다는 후일담은 도욱만이 알고 있는 이야기였다.
“서태준은 공연에 다른 출연자를 세우는 법이 없었는데, 왜 따로 댄스팀을 구하는 거지.”
혼잣말을 하듯 심준 팀장이 중얼거렸다. 옆에 있던 팀원도 바로 그 점이 궁금하다는 눈치였다.
도욱은 이유를 이미 알고 있었지만 말을 아꼈다.
서태준의 나이도 이제 서른을 넘긴 나이였다. 이전처럼 라이브로 공연을 하며 춤을 추기엔 무리가 따랐다.
이번에 나올 노래도 모두가 생각한 그런 서태준의 노래가 아니었다. 이전에 하던 팝댄스가 아닌 아주 빠른 템포의 록댄스였다. 창법도 바뀌어 있을 것이다.
파격적인 시도에 다시금 문화대통령이라는 찬사가 쏟아지고, 록댄스라는 장르의 부흥도 가져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전의 자신의 모습을 그리워할 팬들을 위해 서태준은 댄스팀을 불러 자신의 히트곡 무대를 재현하도록 했다.
팬 서비스 차원도 있었지만, 그도 사람인지라 8년 만의 복귀라는 부담감이 서태준에게도 존재했다.
전략적으로 공연 끝에 히트곡 무대 재현으로 과거의 영광을 재현함으로써 공연에 찾아온 이들로 하여금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실제로 서태준의 신곡이 좋았든, 좋지 않았든 관계없이 공연 끝에 ‘역시 서태준’이라는 인상을 심어놓는 것이다.
어차피 사람은 중간 즈음의 인상은 잊기 쉬웠다. 공연장 밖으로 나가는 순간의 고조된 기분이 공연을 본 감상을 좌우하게 된다.
‘정말이지 데뷔부터 은퇴, 그리고 그 나중까지 음악에 있어서도 천재이지만, 그 외의 것들도 무섭도록 전략적인 사람이다.’
함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정윤기가 물었다.
“댄스팀 단독 공연이면 노래는 안 불러도 된다, 맞나.”
“네. 아마 그럴 거예요.”
도욱의 답에 심준 팀장이 달력을 보며 말했다.
“만약에 케이케이가 댄스팀으로 선다고 해도 연습 기간이 문제일 것 같은데······. 괜찮겠어?”
“안 되도 되게 해야죠, 마! 서태준인데.”
정윤기가 나서서 굳은 의지를 표명했다.
‘이 일은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팀원 모두의 힘이 필요해. 적극적으로 서태준의 공연에 서기를, 더 큰 무대에 서기를 원해주어서 다행이다.’
도욱은 안도했다.
어차피 ‘LAST DANCE’ 활동은 얼마 후 마무리가 된다. 주말에 지방 행사도 있었지만 정윤기는 괜찮다는 식이었다. 일주일 정도 죽었다고 생각하고 연습하면 된다는 말에 심준 팀장이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
“너희 보면 왜 잘되는지 알겠다.”
다른 아이돌들은 바쁜 스케줄에 떠밀려 있는 스케줄도 미루고 싶어 했다. 그런데 케이케이에게는 높은 수준의 향상심이 있었다.
계단을 밟아 올라가는 일이라면, 조금 고생하더라도 해보자는 식의 마음가짐이 새겨져 있었다. ‘바람 부는 날’을 전 공연 라이브로 한다고 했을 때도 멤버들은 한두 번 투덜대곤 이내 라이브 연습에 매진했다.
그렇게 성장해왔다. 케이케이 멤버들 개인의 성향도 있을 테고, 팀 전체적인 분위기도 있을 터였다.
‘팀 분위기를 이렇게 만든 건 아마······ 도욱이겠지. 리더인 윤기가 그런 도욱이와 반목하지 않고 지지해준 것도 클 테고.’
심준 팀장은 생각하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 나서 팀원에게 서태준 쪽 담당자 연락처를 알아보라고 지시를 내렸다.
***
앨범제작팀과 이야기를 나눈 지 4일 째 되던 날.
도욱과 정윤기는 최대한으로 차려 입었다. 깔끔하면서도 한껏 멋을 낸 차림이었다.
오늘 케이케이의 예정된 스케줄은 두 개였다. 오전에는 음악방송 사전녹화, 오후에는 라디오 녹음이 있었다.
원래는 도욱과 정윤기도 라디오 스케줄에 갔어야 하지만, 오백호 실장은 급히 둘을 제외한 나머지 멤버들만 출연하기로 스케줄을 조정했다.
중요한 미팅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그 미팅은 바로 서태준과의 미팅이었다.
“미칬다. 와, 뭐이리 떨리노.”
긴장 상태에 들어가면서 정윤기의 사투리가 극심해졌다.
사실 서태준은 정윤기 세대의 우상이라고 보긴 어려웠다. 서태준의 전성기는 정윤기가 유치원생이었을 때였고, 정윤기가 제대로 음악을 듣기 시작했을 무렵에는 이미 서태준이 은퇴한 시절이었다.
그렇지만 서태준의 명성은 정윤기에게도 작용했다.
마치 외국의 탑 가수인 마이클 잭슨이 시대나 나라를 뛰어 넘어 케이케이 멤버들 모두에게 우상 같은 존재인 것처럼 말이다.
래퍼가 되기 위해 음악 공부를 꽤 열심히 했던 정윤기였다. 정윤기는 서태준의 음악을 뒤늦게 들으면서도 늘 감탄해 마지않았다.
“저도······. 떨리네요.”
“그제, 도욱이 니도. 내만 떨리는 줄 알고.”
도욱의 말에 정윤기가 가슴을 쓸어내렸다. 정윤기에게서 보기 드문 호들갑이었다.
“너네만 떨리는 게 아냐. 나도 떨린다. 살다 보니 서태준을 직접 보는 날이 오다니······.”
운전을 하고 있던 심준 팀장도 덧붙였다.
세 사람은 그렇게 떨리는 마음으로 서태준의 저택으로 향했다.
미팅은 빠르게 진행된 것이었다.
공연을 할지 말지부터 얼른 정해져야 케이케이가 준비에 들어갈 수 있을 터였다. 심준 팀장은 바로 당일 서태준 기획사 쪽에 연락을 넣었다. 다행히 바로 다음 날 답변이 돌아왔다.
서태준도 케이케이의 음악을 들은 적 있으며, 어떻게 알았는지는 몰라도 댄스팀을 찾고 있는 건 사실이다.
단순 커버 댄스 공연이고, 이름 있는 가수의 경우 이미지가 너무 맞지 않거나, 부담감이 상당할 것으로 생각해 연락을 돌리지 않았는데 이야기를 들어 보니 기존 가수여도 상관없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덧붙여 서태준이 직접 만나고 싶어 하니 미팅 일정을 잡았으면 좋겠다. 공연이 얼마 안 남은 만큼 최대한 빠르게 부탁한다.
그러한 내용이었다.
심 팀장은 서태준 측에서 원하는 대로 최대한으로 일정을 당겨 바로 이틀 후인 오늘로 미팅 일정을 잡았다.
케이케이의 스케줄이 아예 비는 날은 일주일 후에나 있었고, 오늘 정도가 조정 가능한 스케줄이었다.
메일로 날짜와 시간이 정해지자 서태준 측에서는 담당자의 개인 연락처와 주소를 하나 보내왔다.
주소는 아직 공개되지 않은 서태준의 숨겨진 자택이자 작업실 주소였다.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내비게이션에서 안내 음성이 흘러 나왔다. 심 팀장이 차를 세웠다.
“와······.”
정윤기가 감탄했다. 심 팀장도 입을 벌리고 바깥을 내다 봤다. 내비게이션에 동네를 찍을 때부터 부자 동네라는 것은 감안하고 운전한 심 팀장이었지만, 도착한 곳은 상상 이상이었다.
“이게 집······.”
도욱도 순수하게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주변에도 좋은 저택이 많이 있었지만, 한 번에 올려다보기도 힘든 크기였다. 막 새로 지은 건물인 듯 세련된 디자인은 대형 박물관이나 미술관이라고 해도 믿을 만한 모양새였다.
서태준 측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어 집 앞에 도착했다고 하자, 문이 열렸다.
열린 문 뒤로 푸른 잔디밭이 끝없이 펼쳐졌다.
전화를 받은 인물이 걸어 나와 세 사람을 맞이했다.
“안녕하세요. 연락 나눴던 매니저 서삼원입니다.”
“안녕하십니까. 힛 엔터 앨범제작팀 심준입니다.”
두 사람이 명함을 주고받았다. 이후에 도욱과 정윤기도 매니저인 서삼원과 인사를 나눴다.
서삼원은 자신을 매니저라고 소개했지만, 평범한 매니저는 아니었다. 서태준은 대외 교류를 전혀 하지 않기 때문에 서삼원이 모든 대외업무를 대신하고 있었다. 내부적으로나 외부적으로나 서태준의 모든 일을 전담하는 인물로 서태준 기획사의 대표이기도 했다.
서삼원의 안내에 따라 서태준의 집 내부로 들어갈 수 있었다.
내부도 눈이 휘둥그레질 만한 풍경이었다. 문화대통령이라는 칭호를 누리던 자의 집이니 당연했지만, 평범한 집은 절대 아니었다.
안쪽 거실에서 머리를 턱 아래까지 기른 남자가 나왔다. 서태준이었다.
서태준을 발견하자 서삼원을 제외한 세 사람의 움직임이 경직되었다.
“태준아, 여기.”
서삼원이 세 사람을 가리키자 서태준이 가장 끝 쪽에 있던 도욱 쪽으로 손을 내밀었다.
“안녕하세요? 서태준입니다.”
도욱은 침을 한 번 꿀꺽 삼키고는 의연하게 내밀어진 하얀 손을 잡았다.
“케이케이 강도욱입니다. 만나 뵙게 돼 영광입니다.”
“저······ 정윤기입니다.”
“케이케이 담당자인 앨범제작팀 심준입니다.”
차례로 세 사람과 악수를 나눈 뒤 거실에 모인 사람들은 우선 소파에 앉았다.
소파에 앉자 어디에 있었는지도 모를 가사도우미가 소리 없이 다가와 어떤 음료를 마실 것인지부터 물었다. 마치 카페처럼 메뉴판까지 있었다.
“손님이 잘 안 오시긴 하는데, 가끔 오실 때가 있어서 메뉴판을 만들어 놓으니 편하더군요.”
잔뜩 긴장한 세 사람을 향해 서태준이 가볍게 말했다.
극도로 외부와의 접촉을 꺼리는 것과는 별개로 서태준은 사실 방송에 나왔을 때나 팬들에게 말을 전할 때는 조금 부끄러움을 타지만 제법 활기찬 청년 같은 이미지였다.
그리고 그 이미지 그대로의 모습으로 세 사람을 대하는 중이었다. 그럼에도 뿜어져 나오는 카리스마가 있었다.
“그렇군요. 이렇게 직접 집까지 초대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심준 팀장의 말에 서태준이 빙긋 웃었다.
“아니에요. 공연하실 분들을 찾고 있던 중에 어려움이 있었는데, 먼저 연락 주셔서 기뻤어요. 제 지인들도 케이케이를 무척 좋아하거든요.”
케이케이를 안다고는 들었지만, 직접 서태준의 입으로 들으니 기분이 달랐다. 눈을 빛내는 정윤기와 도욱을 보며 서태준이 본론을 꺼냈다.
“공연을 하고 싶다고요.”
도욱이 서태준과 눈을 맞추며 답했다.
“네. 선배님 공연에 함께하고 싶습니다. 폐가 되지 않을 자신이 있습니다.”
***
미팅을 마치고 나온 세 사람은 차에 올라타기 전, 심호흡을 했다.
고작 한 시간이었는데 다섯 시간은 흐른 듯한 긴장감이 있었다. 문을 나서자 긴장감에 깨닫지 못했던 피로가 확 몰려왔다.
이리저리 어깨와 팔을 돌리며 경직되어 있던 근육을 풀던 심 팀장이 차 쪽으로 향하며 말했다.
“정말 준비 많이 했던데? 나 진짜 놀랐어.”
“당연히 준비해야죠. 저희가 설 무댄데.”
정윤기가 당당한 말투로 답했다. 정윤기와 도욱은 서태준의 공연에 서게 될지도 모른다는 가정을 한 순간부터 서태준의 공연들을 찾아보며 시간을 쪼개 연구했다.
혹시 무대에 서지 못하게 된다고 하더라도, 앞으로 있을 케이케이의 공연들에 도움이 된다는 마음가짐으로 임했다.
“오늘 정말 수고 많으셨어요.”
도욱의 말에 심 팀장이 고개를 저었다.
“덕분에 좋은······.”
끼이익―
심 팀장의 말이 끊겼다. 세 사람이 타려던 심 팀장의 차 옆으로 파란색 스포츠카 한 대가 멈춰 섰다.
스포츠카에서 내린 건 체크무늬 투피스를 세련되게 차려입은 여인이었다. 한눈에 보아도 이 동네에 산다는 재벌 일가 중 한 명으로 보일 정도로 부티가 흘러 넘쳤다.
그러한 여인이 세 사람을 향해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