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슈퍼스타-64화 (64/225)

# 64

확장팩 (3)

<서태준 LIVE 공연 : D-38>

짧은 문구였으나 강렬했다. 서태준이라는 이름 세 글자 때문이었다.

‘서태준! 그래, 서태준이 8년이라는 긴 공백기를 깨고 돌아온다고 했었지······.’

도욱은 얼마 전 본 기사들을 떠올렸다. ‘LAST DANCE’ 앨범을 준비할 때였다. 실시간 검색어에 3일 넘게 서태준이라는 이름이 오르내렸었다.

서태준은 기존에 유행하던 음악을 대체할 혁신적인 댄스 음악을 들고 나와 데뷔한 지 불과 일 년도 안 돼 한국 가요계의 판도를 뒤집어 놓은 인물이었다.

문화대통령이라는 칭호를 받으며 음악 교과서와 사회 교과서에 등장할 정도였다.

그랬던 그는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던 8년 전 어느 날, 돌연 은퇴를 선언하며 미국으로 떠나 잠적했다.

그의 잠적 이유에 대해서는 소문만 나돌 뿐 아무도 알지 못했다.

당시 서태준은 팬들에게 있어서는 하나의 종교와 같은 존재였다. 은퇴 소식을 접한 팬들이 자살 소동을 벌이는 일도 있어 뉴스에 보도가 되기도 했었다.

그런 그가 갑자기 은퇴를 했던 것처럼 돌연 콘서트를 열고, 콘서트에서 앨범을 발표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그의 컴백 소식에 8년이나 그를 잊지 않고 있던 서태준의 열성팬들이 들끓었다. 그리움이 깊었던 만큼 결집력도 어마 무시했다.

꼭 열성팬이 아니었더라도, 그 시절에 노래를 듣던 이들은 모두 서태준의 팬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서태준의 노래를 즐겨 들었었다. 시대의 아이콘이었다. 때문에 특히 30대들은 서태준의 컴백 소식에 향수를 느끼고,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노래가 예전 같지 않을 거라는 둥, 돈이 떨어져서 나온 거라는 둥. 그러한 비난은 소수에 불과했고, 사람들이 가지는 기대심리에 댈 것이 아니었다.

‘서태준······. 정말 대단한 인물이다. 천재라는 건 그를 두고 하는 말이 맞겠지. 8년 만의 컴백에서도 시대에 결코 뒤쳐지지 않는 노래를 들고 나왔으니까······.’

약간의 우려도 우습다는 듯 서태준의 앨범은 전곡 모두 큰 인기를 끈다.

물론 8년 전과 같이 소녀들의 마음을 뒤흔든 댄스 가수의 느낌은 아니었지만, 문화대통령의 칭호를 받던 이의 권위를 세우기엔 부족함 없는 인기였다.

“바깥 대충 정리된 것 같으니까 내려라. 괜히 팬들한테 인사해주지 말고 빨리 빨리 걸어!”

오백호 실장이 차 문을 열며 소리쳤다.

도욱은 서태준에 대한 생각에서 빠르게 빠져나왔다.

멤버들이 빠르게 가방을 들고 차 문을 나섰다. 멤버들의 머리꼭지가 보이자마자 팬들이 꺄악거리는 소리가 고막을 울릴 듯 커졌다.

팬들은 경호원이 임시로 쳐놓은 가드라인 뒤쪽으로 물러나 있던 상태였지만, 케이케이 멤버들을 조금이라도 가까이서 보려고 앞쪽으로 서로를 밀고 있었다.

경호원들이 그런 팬들을 저지했다. 마음 같아서는 인사를 다 해주고 싶었지만, 멤버들의 움직임이 지체되면 될수록 안전사고가 날 위험이 높아질 뿐이었다.

도욱은 급히 걸음을 재촉하며 눈짓으로만 팬들을 훑었다. 도욱과 눈이 마주친 팬이 입을 틀어막으며 자리에 멈춰 섰다.

“와, 진짜······.”

팬이 더듬거리며 옆에 있던 친구의 손목을 잡았다. 케이케이 멤버들은 이제 뒤통수도 보이지 않는 경기장 안쪽으로 들어간 상태였다.

“왜, 뭔데 뭔데!”

“어어어어······. 강도욱이랑 눈 마주쳤어!!!”

“뭐? 착각 아냐?”

“아냐! 진심! 레알! 백퍼! 아, 나 심장 떨려! 마주치는 순간 심장 떨어지는 줄 알았어!”

“진짜? 대박. 난 얼굴도 제대로 못 봤어!”

“도욱 오빠······. 진짜 장난 없네. 저번에 공방에서 봤을 때랑 또 달라. 더 잘생겨졌나봐! 무슨 혼자 다른 세상 사는 것 같은 게 막······. 막, 이렇게!”

도욱과 눈이 마주친 팬이 침을 튀기며 정신없이 늘어놓았다.

대부분의 팬들 또한 가까이에 선 도욱을 보고 ‘미모 갱신’이라는 표현을 떠올렸다.

실제로 열아홉 살 도욱의 얼굴에 조금 남아있던 앳된 모습이 사라졌다. 선이 굵어지면서 남자다움이 물씬 풍겨났다.

그러한 외모가 도욱의 진지한 분위기와 맞물려 강력한 아우라를 만들었다.

멀리서만 봐도 ‘연예인이다!’ 싶은 스타의 아우라가 도욱에게도 진하게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1주년 팬미팅 현장.

케이케이 멤버들은 무대 위에 올라 오직 자신들만을 보러 와준 팬들을 보며 감격에 젖었다. 신인상을 받았을 때만큼 기쁜 순간이었다.

데뷔곡인 ‘Sorry but I Love You’를 오프닝 곡으로 팬미팅이 시작되었다. 쉼 없이 준비한 무대들을 케이케이 멤버들을 최선을 다해 선보였다.

음악방송에서는 보여주지 못했던 앨범 수록곡 무대도 포함돼 있었다. 팬들은 자신들만을 위한 세트리스트에 열광했다.

1주년 기념 케이크 커팅식도 하고, 간단하게 ‘다섯 글자로 말해요’ 같은 게임도 했다.

두 팀으로 나눠 코끼리 코를 한 채로 열 바퀴 돈 뒤 매달린 사탕 먹기 게임을 하기도 했다. 이 게임에서 진 팀은 2층 객석을 전부 돌며 팬들에게 사탕을 나눠주기로 돼 있었다.

“동생팀!!! 동생팀!!!”

“형어어어어어엉! 져라!”

2층의 팬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멤버가 속한 팀이 도리어 지기를 응원했다. 더 가까이서 보고 싶은 마음이었기 때문이었다.

결과적으로 이긴 팀은 동생팀이었다. 석지훈이 조금 느리긴 했지만, 박태형과 도욱이라는 운동 신경이 뛰어난 인물들이 둘이나 있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형팀’에 속한 멤버들이 커다란 사탕 바구니를 들고 무대 끝쪽으로 나와 리프트에 올랐다. 리프트에 오르는 모습 만으로 팬들이 열광했다.

경호를 맡은 이들이 가장 긴장하고 있는 순간이기도 했다. 이제 멤버들 올라간다는 무전을 받은 경호원들이 바짝 신경을 곤두세웠다.

2층으로 올라온 안형서, 김원, 정윤기가 신나서 2층의 팬들에게 사탕을 던졌다. 동시에 서로 받겠다고 손을 뻗는 팬들을 진정시키기도 했다.

평소 움직이는 걸 귀찮아하는 정윤기 조차 눈앞의 팬들을 보니 흥분이 되는 게 사실이었다. 모두가 자신을 좋아하는 사람들이었다. 좋아하고, 열광하고, 지금의 이 자리를 만든 팬들이었다.

팬들에게 손을 흔들며 사탕을 나눠 주는 2층의 멤버들을 보며 무대에 있던 멤버들도 일어나 사탕바구니를 들고 흩어졌다.

도욱 또한 돌출 무대 중앙으로 나가 팬들에게 사탕을 주곤, 아예 무대 위에 앉아 팬들에게 계속해서 웃는 얼굴을 보여주었다.

‘아······. 행복하다!’

도욱은 팬들을 내려다 보며 그 순간 생각했다.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고······ 그리고 자신의 무대를 좋아해주는 팬들이 있다는 것. 누군가 자신이 짓는 미소 하나로 행복해진다는 것. 그런 기분들이 도욱을 행복하게 했다.

***

행복한 팬미팅의 순간에도 끝이 있었다.

다음 순간을 기다리며, 도욱은 도욱대로 더 좋은 가수가 되기 위해, 팬들에게 줄 또 자신에게 돌아올 더 큰 행복을 위해 노력해야 했다.

팬미팅을 마친 멤버들도 어떠한 기운을 얻은 듯 더 열심히 하자는 각오로 가득 차 있었다.

연이어 받은 ‘LAST DANCE’ 1위 트로피들이 그러한 결심에 박차를 가하게 했다. 멤버들은 각자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선에서 노래나 춤을 더욱 연마했다.

안형서와 김원이 나갔던 예능 반응들도 잠깐 화면에만 비치는 패널일 때도 열심히 리액션한 덕분에 반응이 아주 좋았다.

심지어 김원은 퀴즈쇼에서 크게 활약하며 3등까지 거머쥐었다. 김원이 대단한 수재라는 것도 자연스럽게 알려졌다.

두 사람에게 예능 프로그램에서 섭외가 물밀듯 들어왔지만, 오히려 회사 쪽에서 조금씩 쳐내는 중이었다.

도욱은 앨범제작팀 심준 팀장과 미팅을 가졌다. 그 자리에는 정윤기 또한 함께했다.

도욱은 정윤기와 먼저 자신의 의견을 상의한 상태였다. 가만히 듣고 있던 정윤기는 도욱의 어깨를 두드렸다.

“앞으로는 나한테 의견 구할 것도 없다. 네가 하자는 건 다 할끼다.”

그런 정윤기의 말에 도욱은 조금 웃어버리고 말았다. 데뷔한 지는 일 년이 지났고, 함께한 지는 일 년 반 정도의 시간이 지난 상태였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에 리더인 정윤기와의 신뢰가 이 정도로 쌓였다는 것이 도욱은 든든했다.

회의실에 있던 앨범제작팀 심준 팀장이 도욱과 정윤기를 맞이했다. 심준 팀장뿐 아니라 제작팀 팀원도 함께였다.

“어서들 와. 요즘 진짜 바쁘지? 윤기 넌 살 빠진 거 아니야?”

일 년간 함께 일하다 보니 심준 팀장과는 어느덧 막역한 사이가 된 멤버들이었다. 몇 번의 회식으로 급격하게 친해진 것도 있었다.

지내보니 심 팀장은 성격적으로 그렇게 까다로운 편도 아니었고, 능력도 좋아 큰형으로 삼기 좋은 인물이었다.

때문에 정윤기를 비롯한 멤버들은 얼마 전부터 심 팀장을 ‘팀장 형’이라는 요상한 호칭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아니에요, 마. 괜찮습니더.”

“그래. 도욱이한테 대충 얘긴 들었는데. 무슨 공연을 하고 싶다고?”

도욱이 고개를 끄덕였다.

심준 팀장에게 공연을 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전했을 뿐 자세한 이야기는 아직 하지 않은 상태였다. 정윤기는 침을 삼켰다. 도욱의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정윤기는 역시 도욱이 평범한 인물은 아니라는 걸 다시금 실감했다.

물론 케이케이도 이제 어느 정도 인기 가수의 반열에 오른 상태였다. 국내에서 인기가 가장 많은 그룹은 아니었지만, 가장 ‘뜨거운’ 그룹이 된 것만은 확실했다.

‘그렇지만 도욱이가 말한 공연은······ 너무 스케일이 달라. 정말 가능한 건가?’

하지만 도욱이 아예 불가능한 이야기를 하진 않을 거라는 믿음이 정윤기에게는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발상을 했단 자체만으로도 도욱은 대단한 것이었다.

“네. 서태준 선배님 공연에 케이케이가 초대가수로 섰으면 좋겠습니다.”

도욱의 말에 심준 팀장이 자신이 뭘 들은 거냐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회의 내용을 기록하려 노트북을 가져와 메모장을 켜고 있던 팀원도 비슷한 표정이었다.

“서······ 서태준? 아. 이번에 복귀한다고 난리가 났지. 나도 어렸을 때 서태준 팬이었어서 진짜 기대하고 있······ 고. 나도 공연 표 구하느라고 힘들었다. 그 서태준 말이야?”

“네. 팀장님. 그 서태준이요.”

잠시 회의실에 적막이 돌았다. 심 팀장이 도욱의 옆에 앉은 정윤기를 보았다. 마치 도욱이가 제 정신이 맞냐고 정윤기에게 묻는 듯한 눈빛이었다.

서태준은 신비주의로도 유명한 인물이었다. 교류하는 사람도 별로 없었고, 그렇기 때문에 8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대중들은 그에 관한 아무 소식도 들을 수 없었다.

그런 서태준의 공연에 케이케이가 서겠다고 하니 심준 팀장으로선 도대체 무슨 말인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서태준이 공백을 깨고 나오는 공연 당일, 연예계는 물론이고 국민적인 관심이 서태준에게 몰릴 것은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사실이었다. 당장 심준 팀장도 그날은 공연을 보러 가려고 했었다.

그러니 그런 서태준의 공연에 초대가수로 선다면, 초대가수에게 또한 엄청난 스포트라이트가 향할 것이다.

서태준에 무대에 섰다는 것은 그에게 음악적으로도 인정받은 셈이었으므로 그럴싸한 뒷배가 생기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게 가능한 일인가? 정윤기와 같은 의문이 심준 팀장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애초에 서태준은 자신의 공연에 다른 누군가를 부른 이력이 없었다.

“방법이 있어요.”

심준 팀장에게도 우상이었던 서태준이다. 그런 서태준의 공연에 케이케이가 선다. 도욱의 말에 심준 팀장의 심장까지 뛰기 시작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