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3
확장팩 (2)
“당연히 도욱 군이죠.”
커피 잔을 내려놓으며 용수철이 답했다. 용수철은 어느 때보다 진지한 표정이었다.
“저 말입니까?”
“그래요.”
사실 앨범제작팀 심준 팀장도 도욱에게 넌지시 다음 케이케이 앨범의 프로듀싱을 직접 해보면 어떻겠냐고 물은 적이 있었다.
“아직은······.”
“심 팀장도 얘기했다고 들었어요. 스무 살에 프로듀서, 나 같은 범인이야 상상도 못 할 일이었겠지만, 도욱 군은 달라요.”
천재지 않습니까? 덧붙이며 용수철이 반문했다. 도욱은 세게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이 세계에서 도욱은 이미 천재였다. 도욱이 알고 있는 지식과 재능은 스무 살의 것이 아니었고, 더해 어마어마한 노력이 쏟아 부어졌다.
시간까지 앞서고 있으니 천재라는 소리가 따라붙는 건 당연한 결과이기도 했다.
“하나의 앨범, 팀 성적을 책임져야 하는 일이나 마찬가지니 부담 되겠지요. 그렇지만 부담만 이겨내면 재능을 발휘할, 정말로 좋을 때라고······ 도욱 군을 보는 이라면 누구나 생각하는 거요.”
“피디님.”
“절대 강요하는 건 아니에요.”
도욱은 보잘 것 없었던 자신과 천재와 다름없는 지금의 자신 사이에서 여전히 갈팡질팡할 때가 있었다.
현재로서는 자신만큼 트렌드를 빠르게 읽어내고, 케이케이라는 팀의 색깔에 맞는 곡을 쓰고 앨범을 만들 이가 없다는 사실을 자각하면서도 자꾸만 뒤로 물러나려 했던 건 그런 이유에서였다.
때마침 식당 내에 케이케이의 ‘Very Sorry’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제가 정말 잘할 수 있을까요?”
도욱의 물음에 용수철이 입꼬리를 올렸다. 허심탄회한 웃음이었으나 용수철의 외모 때문에 어쩐지 뒤가 구린 웃음처럼 돼 버렸다.
작곡 능력은 이미 검증돼 있는 상태였다. 공동 작곡이 아닌 단독으로 작곡한 곡들도 이미 많았다. 앨범에 싣지 않았던 건 더 좋은 퀄리티를 위해 도욱 스스로가 수록을 미뤄왔기 때문이었다.
연차가 몇 년 안 된 게 문제라면 그건 용수철도 마찬가지였다. 용수철도 작곡을 한 지 얼마 안 돼 케이케이의 프로듀서가 된 것이었다.
나이에 구애받을 필요도 없는 거라 용수철은 설명했다.
표면상 스무 살일 뿐, 나이로 따지면 용수철과 크게 다를 바 없는 도욱이었다.
“또 심 팀장도 능력 있습니다. 심 팀장한테 도움도 받고, 하다하다 또 안 되겠으면 드러누워 버리면 돼요. 후후.”
덧붙인 용수철의 말은 농담 비슷했지만 모두 진심 어린 충고였다.
‘얼마 후면 자신의 곡들을 직접 작곡하고, 제작하는 아이돌들이 생겨난다. 그런 아이돌들이 대세가 되고.’
도욱은 차를 한 모금 삼켜 말라 오는 입안을 적셨다.
‘그러면서 아이돌은 예쁘고, 입만 벙긋거리면 된다는 편견도 완전히 깨지기 시작한다. 그 선두에 케이케이가 있다면······.’
어떻게 보든 현재의 최선이었다. 도욱은 결심을 굳힌 듯 용수철을 향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
‘LAST DANCE’의 첫 컴백 무대는 ‘K.K 방송’ 스페셜 방송분을 위해 TBN에서 이루어졌다.
‘K.K 방송’은 TBN 예능 최초로 2.9%라는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다. 덕분에 TBN 방송사 차원에서 케이케이의 무대를 적극적으로 지원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때문에 그날 TBN 음악방송은 케이케이 컴백 스페셜 방송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케이케이의 무대로 화려하게 꾸며졌다.
케이케이는 미니 앨범 타이틀곡인 ‘LAST DANCE’뿐 아니라 수록곡인 ‘Dancing with sunlight’을 완곡으로 불렀을 뿐더러 특별히 이제까지의 타이틀곡인 ‘Sorry but I Love You’, ‘Very Sorry’, ‘바람 부는 날’을 메들리 형식으로 구성해 불렀다.
무대 뒤에는 거대한 조각상이 세워졌고, 그 어느 때보다 눈부신 조명과 특수효과들이 쏟아졌다.
케이케이의 화려한 컴백 무대에 역대급 무대라는 기사들이 쏟아졌다.
노래나 춤은 물론이고 무대에서의 제스처나 표정까지 전 멤버들의 실력이 한 층 더 성장했음을 알 수 있는 무대이기도 했다.
제목 : 여기서 더 잘할 수 있냐고 누군가 물을 때 더더 잘하는 게 뭔지 보여주는 게 케이케이다(냉무)
-반박 X
-진짜 매일 역대급 무대.. 소름..
-끝에 형서랑 도욱이 애드리브 파트에서 고막 청소됨ㅠㅠ
-도욱마리휴지단 탈퇴한다..휴지 따위로 닦을 미모가 아니었다..에르X스 손수건 가져와..
-뭐야ㅋㅋㅋ 글쓴이 명언충임? 오글거림ㅋㅋㅋㅋㅋㅋㅋ
-더잘누물더더잘! 오글거리는데..넘 맞는 말ㅋㅋ
-오늘 무대 보고 내가 키링인 거 자랑스러워짐ㅠㅠㅠㅠㅠㅠㅠ
음악방송 무대가 끝날 때마다 팬들의 반응은 뜨거워졌다.
인생가요 컴백 무대를 끝으로 전 방송사의 음악 방송 컴백 무대를 마친 케이케이였다. 이번 활동 기간은 역시 한 달 정도로 잡고 있는 상태였고, 역시 음악 방송 위주 활동이었다.
다만, 홍보를 위해 예능 출연이 필요할 경우에는 안형서와 김원 두 사람을 얼굴도 알릴 겸 내보내겠다는 게 회사의 전략이었다.
당장 내일 있을 퀴즈쇼 패널로도 두 사람이 나가기로 됐다.
지식 많은 김원의 활약이 기대되는 바였다. 안형서가 얼마나 빨리 탈락할지는 멤버들간의 내기거리였다.
“도욱이 널 내보내면 홍보야 더 되겠지만, 넌 바쁘기도 하고······ 얼굴도 이미 많이 알려져 있으니까······.”
스케줄을 마친 도욱은 따로 오백호 실장과 함께 회사 회의실로 향하는 중이었다.
오백호가 띄엄띄엄 눈치를 보듯 하는 설명에 잠시 어리둥절해진 도욱이었지만, 이내 오백호가 그러는 이유를 이해했다.
그룹을 홍보하고 키우는 방식은 처음에는 한두 명의 중심 멤버를 밀어주다가 이후에 그룹의 인기가 높아졌을 때 다른 멤버들도 추가로 방송에 끼워 넣는 형태가 일반적이었다.
그때부터는 팬덤 내의 분열과 멤버들간 신경전도 생기게 된다.
처음부터 중심 멤버였던 이들은 자신들이 키운 그룹인데 이후에 덕을 보는 건 다른 멤버고, 밀려나는 기분을 느껴 서운함을 토로한다.
또 남은 멤버들은 왜 자신들은 밀어주지 않냐고 성화를 부리기 일쑤였다.
그런 부분을 잘 관리하고 조정하는 것 또한 오백호 실장의 일이었다.
“형.”
“어?”
“저는 곡 작업도 하는 데다, 이제 연기까지 시작하기로 한 거잖아요. 그룹 활동인데 혼자만 다 할 수도 없고. 그런 쪽으로는 신경 안 쓰셔도 돼요.”
오백호가 머쓱하게 뒷머리를 긁적였다. 역시 치기어린 보통의 스무 살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성숙한 도욱이었다.
그래도 인기를 얻게 되면 사람이 변하는 법이라, 에서 시작된 오백호의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다.
“그래. 이렇게 바쁠 때 알아서 연기 선생까지 붙여달라는 너한테 내가 괜한 걱정이지.”
오백호가 회의실 문을 열며 중얼거렸다.
노크를 하고 들어간 회의실 안에는 긴 생머리를 단아하게 늘어뜨린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여성이 앉아 있었다.
힛 엔터에도 연기 담당 선생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녀는 특별히 ‘대한예술종합학교’에 진학하고 싶어 하는 도욱의 연기 지도를 위해 초빙한 선생이었다.
“안녕하세요, 이 선생님.”
이 선생이라 불린 여인이 일어서며 자신에게 인사한 오백호와 그 옆의 도욱을 돌아보았다.
도욱이 꾸벅 이 선생을 향해 고개 숙여 인사했다.
“여기는 앞으로 너 연기 지도해주실 이강연 선생님. 이 친구가 강도욱입니다, 선생님.”
“몰라볼 수가 없죠! 요즘 얼마나 유명한 친구인데요. 호호.”
오백호의 소개에 이강연이 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으며 답했다.
“안녕하세요.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도욱의 인사말에 이강연이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띠었다. 단아해 보이는 첫 인상만큼이나 말투나 행동 모두 차분하고 여성스러웠다.
“이렇게 직접 보니 왜 인기가 있는지 알겠네~ 앞으로 잘해 봐요.”
세 사람이 자리에 앉자 바깥에 있던 직원이 차를 내왔다.
오백호가 이강연 선생에 대해 간략하게 소개했다.
“아주 실력 있는 분이셔. 모시느라 회사에서 애 좀 썼다. 지금 충무로에서 난다 긴다 하는 배우들은 다 이 선생님이 가르치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이강연은 대한예술종합학교를 차석으로 졸업한 인재 중의 인재였다. 그러나 학교 성적과는 별개로 좋은 작품을 만나 지 못해 2년 여간 짧게 영화판에 있다 배우 생활을 접었다.
또 영화를 하며 본인이 직접 연기를 하는 것보단 연기 지도가 자신의 적성에 맞고 그것에 재능이 있다는 것도 깨달았다.
그렇게 연기학원 강사 일을 시작한 이강연은 뛰어난 연기 지도 실력을 점점 인정받았다. 현재는 일대일로 이름 있는 스타들의 연기 지도를 도맡아하는 중이었다.
“오 실장님도 참, 너무 과장하시는 거 아니에요?”
“과장이라뇨! 그 <달리기> 주연한 신인배우 누구야, 임승우도 선생님 제자라고 들었습니다.”
임승우라면 영화 <달리기>에서 전국민의 눈물을 뽑아 낸 연기파 배우였다. 이후에는 영화, 드라마는 물론이고 뮤지컬계까지 장악하며 최고의 배우 반열에 드는 인물이었다.
‘임승우의 연기 선생이 이 사람이었구나······.’
연기 쪽으로는 문외한이나 마찬가지였던 도욱으로선 새삼 신기한 눈으로 이강연을 볼 수밖에 없었다.
인사만 나눈 뒤 오백호 실장은 며칠 후에 있을 케이케이 1주년 기념 팬미팅 경호 관련 문제로 미팅을 떠났다.
이강연 선생과 도욱 두 사람은 앞으로의 일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대예종 진학 문제가 우선이겠죠? 당장 6월이 입시 시험이니까. 너무 빠듯하긴 해요. 발성이야 어느 정도 돼있다 해도······. 연기 경력도 배운 경험도 전무하니까요.”
“네, 선생님.”
“그리고 도욱 군이 유명한 가수인 게 사실 대예종 입학에는 오히려 걸림돌이 될 수 있어요. 워낙 프라이드가 강한 학교라······ ‘연기’에 미친 인재를 발굴하고 싶어 해서. 다른 분야와의 겸업에 대해 선입견이도 있을 테고······.”
“힘든 일인 것 잘 알고 있습니다.”
“지금 가수로도 잘되고 있는데 연기가 꼭 하고 싶은 거죠, 도욱 군은?”
도욱은 진지한 얼굴로 이강연을 보았다. 본격적으로 가르치기 전, 이강연은 도욱의 마음가짐부터 확인하고 싶었다.
어차피 돈을 받고 하는 연기 지도였지만, 이제는 아무나 제자로 받지도 않을 뿐더러 상대의 마음에 따라 가르치는 이의 마음도 달라지는 게 사실이었다.
“네. 하고 싶습니다. 진학은 꼭 올해가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그러니 그 부분은 너무 부담 갖진 말아주세요. 다만 제가 진짜, 제대로 된 연기를 할 수 있게 부탁드리겠습니다.”
“좋아요. 연기는 도욱 군, 본인에게 달린 거고, 저는 방법밖엔 알려 줄 수가 없을 거예요. 그래도 지금 같은 마음이면 충분히 해볼 만 한 것 같네요.”
이강연이 싱긋 웃으며 답했다. 귀에 걸린 진주귀걸이처럼 고운 미소였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저도 최선을 다할게요.”
***
올림픽공원 핸드볼 경기장.
꽃샘추위가 물러나고 봄이 성큼 다가 온 주말의 날씨가 쾌청했다. 케이케이의 1주년 기념 팬미팅이 열리기 직전 경기장 주변은 길게 늘어선 팬들의 줄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이러한 팬들 덕분에 올림픽공원에 위치한 편의점의 매출은 항상 전국 1위의 매출을 기록했다.
“배고픈데 삼김 하나 사려면 십 분은 기다려야 돼, 줄 대박.”
“나두 목마른데!”
“저쪽 자판기에서 뽑아 마셔. 굿즈는 사지도 못하고 이게 뭐냐······. 도욱 오빠 부채 꼭 사고 싶었는데!”
“독한 것들. 무슨 굿즈 줄을 새벽부터 서.”
사실 이곳에 줄을 서 팬미팅 시간을 기다리는 팬들은 운이 좋은 편에 속했다.
이번 팬미팅은 케이케이의 팬클럽인 ‘Key Ring’ 1기들만 참석할 수 있는 팬미팅이었다. 일반 예매도 열렸지만, 일반 예매자들에게까지는 표가 가지 않았다. 2회 차 공연이었음에도 이미 팬클럽 예매 기간에 전석 매진이었기 때문이었다.
1기 모집 이후 케이케이의 팬이 된 이들은 땅을 치고 하루라도 빨리 케이케이의 팬이 되지 못한 것을 후회했다.
때문에 원래 오천 원에 판매한 표가 몇 만원에 팔리는 등 암표도 심심찮게 등장했다.
이른 아침 공연장에서의 리허설을 마친 케이케이 멤버들은 다시 밖으로 나가 샵에 들러 머리를 하고, 점심을 먹고 공연장 쪽으로 돌아왔다.
주차장에도 몰려 있는 팬들을 보며 멤버들은 기함했다.
“······내릴 수 있을까?”
가만히 창밖을 보던 박태형이 도욱에게 물었다. 도욱도 주차장의 상황을 보자 걱정이 됐다. 괜히 오백호 실장이 새로 경호업체와 계약을 하고 평소의 1.5배 수준으로 경호원을 늘렸는지 이해가 되는 부분이었다.
케이케이의 팬덤은 ‘LAST DANCE’ 활동을 기점으로 국내 팬덤 중 다섯 손가락 안에 들 만큼 커진 상태였다.
그때.
창밖을 살피던 도욱의 눈에 체조경기장을 두른 거대한 공연 현수막 하나가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