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슈퍼스타-61화 (61/225)

# 61

새로운 발견 (3)

서강준이 합격했다는 기사를 보자 정신이 번쩍 든 도욱이었다.

주원대 실용음악과는 연예인들도 많이 지원하는 곳이었고, 이전의 시기에도 서강준이 재학한 학교이기도 했다.

합격하게 된다면 본격적으로 겨뤄 볼 생각만 했었지, 불합격은 염두에 둔 적 없었던 도욱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불합격. 예상치 못한 결과에 당황했지만, 꼭 대학을 가야만 하는 것도 아니라 넘어갔었다.

그러나 홍보대사 된 서강준을 보자 의심이 생겼다.

‘수상한 냄새가 난다······.’

도욱 자체가 비열함과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에 가끔 이렇게 서강준이나 그 주변 인물들의 비열함이 어디까지인지 놓치고 부분들이 생겼다.

‘내 대학 진학이 문제가 아니군. 알아봐야겠다.’

주원대 정문 앞에서 웃으며 손을 흔들고 있는 휴대폰 속 서강준의 사진을 도욱은 노려보았다.

서강준이 현재에도 다른 피해자들에게 저질렀을 학교 폭력의 경우에는 시간이 지나 밝히기도 쉽지 않았고, 이를 밝히기 위해선 다른 피해자들을 내세워야 했다.

찾아내기 쉽지 않을뿐더러 그들이 2차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있었다.

또 과거처럼 아라 엔터테인먼트에 의해 너무 쉽게 묻힌다면, 오히려 피해자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만 남길 뿐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대학 진학에 관련해 문제가 있다면······. 오히려 내겐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

도욱은 우선 실용음악과 교수진들의 이름을 다시 한 번 살폈다. 학과장의 이름이 낯이 익었으나 그저 유명해서인지 판단이 잘 서지 않았다.

그리고 주원대학교 총장의 이름을 검색해보던 도욱은 또 한 번 낯익은 이름이 나오자 손을 멈춘 채 기억을 더듬었다.

머리가 지끈거릴 정도였다.

‘누구지······. 이 이름들······!’

마침내 도욱은 어째서 자신에게 주원대학교 총장의 이름이 익숙했던 것인지 깨달았다. 뇌물수수, 금품, 횡령 등과 같은 범죄 유형들이 도욱의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설마······.’

도욱은 휴대폰 화면을 끄고 잠시 눈을 감았다.

서강준이 제 무덤을 판 것이라면, 무덤까지 파헤칠 생각이었다.

그리고 언제, 어떻게 제대로 이용할지에 대해서도 생각해야만 했다.

어느덧 검기만 하던 하늘이 푸르스름한 빛을 띠기 시작했다.

운전석에 팔짱을 끼고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던 오백호 실장 옆 창문으로 똑똑 문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눈을 뜬 오백호 실장이 창문을 내리자 스태프가 외쳤다.

“촬영 준비할게요!”

오백호가 얼른 고개를 끄덕이고는 멤버들을 챙겼다.

다들 한껏 몸을 웅크린 채 자다 깨다를 반복하던 중이었다. 억지로 기지개를 켜며 멤버들이 겨우겨우 눈을 떴다.

잠시 눈을 붙였던 도욱도 일어나 차 문을 열었다. 차가운 공기가 폐속으로 들어오는 느낌에 확 졸음이 달아났다.

폐공장의 옥상에서 멤버들은 ‘LAST DANCE’ 뮤직비디오의 오늘자 마지막 장면을 촬영했다.

도욱의 경우에는 며칠 후 집에서 쫓겨나는 장면, 소매치기를 당하는 장면, 거리를 방황하다 폭행을 당하는 장면 등의 야외 추가 촬영이 잡혀 있었다.

어쨌든 전원이 촬영은 마지막 장면이었다.

푸르기만 하던 하늘이 붉은빛을 나타냈다.

“와우! 뷰리풀!”

김원이 떠오르는 해를 보며 외쳤다.

해 뜨는 장면은 촬영하기 어려운 장면 중에 하나였다. CG 작업까지 생각했던 촬영팀은 날씨까지 케이케이를 돕는 것 같다고 저들끼리 수군댔다.

‘LAST DANCE’ 노래를 한 번이라도 들은 스태프라면 누구라도 케이케이가 이번 앨범까지도 초대박을 칠 것임을 예감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도욱을 중심으로 어깨동무를 한 멤버들이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며 감격에 젖는 장면을 진영 감독이 화면에 잡아냈다.

따로 연기를 요구할 필요도 없었다. 멤버들은 진심으로 아름다운 하늘을 바라보며 벅차오르는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옥상 위에 ‘LAST DANCE’ 노래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컴백까지 이제 2주도 채 남지 않았다.

박수와 함께 현장 촬영이 마무리되었다.

“감사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멤버들이 허리를 숙이며 함께 고생한 스태프들에게 인사했다.

진영 감독과 특별히 따로 악수를 나누고, 다음 촬영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도욱도 뒤늦게 구석진 곳까지 일일이 찾아다니며 스태프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추운 날씨에 자신들을 위해 누구보다 애써 주었다는 것을 잘 아는 도욱이었다. 종일 짐을 나르느라 고생한 막내 스태프에게 가 인사를 하자 막내 스태프가 고개를 저었다.

“도욱 씨가 고생 더 많았어요.”

“아닙니다. 아, 그거 주세요! 같이 드시죠.”

“에? 아아니, 괜찮은데······!”

스태프가 말릴 새도 없이 도욱이 스태프가 들고 있던 무거운 장비 꾸러미 중 하나를 나눠 들었다.

같이 장비를 정리한 후, 케이케이 멤버들이 있는 쪽으로 가던 도욱에게 신윤호 PD가 다가왔다.

“도욱 군.”

“아, 네. PD님.”

사실 신윤호 PD까지 뮤직비디오 촬영 현장에 끝까지 남아있을 필요는 전혀 없었다.

‘K.K 방송’ 팀에서는 현장에 방해가 되지 않게 최소한의 VJ들만 보내놓은 상태였고, 신 PD는 촬영분을 방송국에서 편집만 보면 되는 입장이었다.

그런 신윤호 PD가 굳이 촬영 현장을 지키고 있었던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연기······ 처음 해본다고 하지 않았나요?”

“아, 예. 너무 부족했죠. 대사도 없어서 연기라고 하기도 뭣 하지만.”

도욱이 겸손하게 답하자 신윤호 PD가 인상을 찌푸렸다.

“너무 겸손해도 안 좋게 보일 수 있어요.”

“네? 아, 죄송합니다.”

“내내 보니 착한 척은 아닌 것 같고. 하하.”

역시나 피곤에 절은 듯 졸린 눈을 한 신윤호 PD가 졌다는 듯 너털웃음을 지었다.

“관심 있어요?”

“PD님 한테요?”

“하하. 도욱 군도 많이 졸리죠. 연기 말이에요.”

그 순간 도욱은 신윤호 PD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었다.

‘설마?!’

신윤호 PD가 점퍼 지퍼를 목 끝까지 끌어올리며 말을 이었다.

“후반기에 내가 야심차게 기획하고 있는 프로 하나가 있는데 거기 딱 도욱 군이 맡으면 좋을 인물이 있어서. 하하.”

“제가요?”

“공부, 운동 다 잘하는 수재 역할인데. 아직 기획 단계에요.”

도욱이 출연했던 예능 프로그램 ‘유한도전’을 보다 신윤호 PD는 박수를 쳤다. 자신이 찾던 이미지 그대로의 인물이 브라운관에서 웃으며 인사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신윤호 PD는 케이케이에게 관심을 갖게 됐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케이케이 멤버들에게도 매력을 느꼈고, 우선 상반기에는 아이돌 관련 프로그램을 하는 게 좋겠다고 국장이 말했을 때 곧장 ‘K.K 방송’ 카드를 내밀었다.

그리고 촬영을 하며 신윤호 PD는 다른 누구보다도 도욱을 눈여겨 보고 있었다.

오늘 뮤직비디오 촬영 현장에 남은 것도 그 연장선상이었다. 신윤호 PD로서 보람이 있는 하루였다.

도욱은 오늘 훌륭한 표정 연기를 보여주었다. 대사는 시켜봐야 알겠지만, 발성이나 평소 말하는 걸로 봐선 걱정할 게 없을 듯했다. 신윤호 PD가 생각했던 이미지 이상으로 도욱은 ‘그’ 인물에 제격이었다.

이제 신윤호 PD의 머릿속에서 도욱을 제외하고는 ‘그’ 인물을 떠올릴 수 없을 정도였다.

“수재······.”

“예능이 아니라 드라마에요.”

도욱이 눈을 크게 뜨며 깜박였다.

“예능 PD가 드라마라니 의외죠?”

물론 의외의 도전이었다. 하지만 신 PD의 이 도전이 끼치는 영향력을 생각하면 입을 다물기 힘들었다.

“아닙니다. 오히려 신선한걸요.”

“맞아, 우리가 노리는 것도 그거예요.”

신윤호 PD가 기획하고 있는 ‘준비하라 1999’는 1999년도를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였다.

다섯 명의 고등학교 동창이 얽히고 설키며 그들의 사랑과 우정을 그리는 동시에 그 시대의 가족상을 보여주는 게 신윤호 PD의 기획 의도였다.

‘기존의 남녀 주인공 위주의 드라마와는 확실히 다르고 99년도의 향수도 자극하면서, 전 세대를 아우르는 드라마가 된다.’

도욱도 재미있게 봤던 드라마였다.

‘수재 역할이라면······.’

다섯 명의 주인공 중 수재 역할은 메인 중의 메인 캐릭터였다.

신윤호 PD와 같이 방송을 한다고 생각했을 때만 해도 ‘준비하라 1999’에 어떤 배역으로든 출연할 수 있다면, 인기를 얻을 좋을 방법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주인공이라니 너무나도 큰 기회다!’

잠이 홀딱 깬 듯 눈을 빛내는 도욱을 보며 신윤호 PD 또한 다시 한 번 확신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관심 있으면 나중에 같이 한 번 해봅시다.”

“네, PD님. 저야 영광입니다.”

“하하. 내가 도욱 군이랑 꼭 하고 싶어서 마음이 급해요. 시놉도 없는데 섭외부터 하려고 하네. 시놉 완성되는 대로 회사에 보낼게요. 도욱 군이 회사에 말 좀 잘해줘.”

케이케이는 점점 더 바빠질 예정이었다.

그룹 활동이 우선이었기 때문에 회사 쪽에서는 굳이 도욱에게 개인활동을 시키려고 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게다가 정식 드라마도 아니고 케이블 방송에서 시작하는 드라마.

그렇기 때문에 신윤호 PD는 도욱 본인에게 먼저 밑밥을 깔아두고 싶었던 것이다.

물론 ‘준비하라 1999’의 성공을 아는 도욱이었으므로 그렇게하지 않아도 도욱은 제의가 들어오면 무슨 수를 써서든 출연했을 테지만 말이다.

멀리서 오 실장이 도욱을 찾고 있는 게 보였다. 신윤호 PD와 함께있는 도욱을 보곤 손짓했다.

어느덧 해가 하늘 위에 완전히 떠 있었다.

공기 맑은 겨울 아침이었다.

***

뮤직비디오 가편집 버전이 나오던 날, 모여서 모니터링 회의를 마친 도욱은 오백호 실장에게 면담을 요청했다.

오늘은 오후에 있을 무대 연습 외에는 ‘K.K 방송’ 촬영도 없는 날이었다.

오백호 실장은 손수 종이컵에 믹스커피를 탔다. 케이케이 멤버들 만큼은 아니었지만, 오백호 실장 또한 컴백이 다가오자 여러 스케줄 미팅을 하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하아암······ 로드 하나 더 뽑느라 면접 보고 있는데 괜찮은 애가 없네.”

하품을 하며 오백호 실장이 푸념했다.

오 실장이 언제까지 케이케이의 모든 스케줄에 다 따라다닐 수도 없었던 데다 팬들도 많아지는 추세라 케이케이 전담 로드 매니저를 채용 중이었다.

“도욱이 넌 물이면 돼?”

“네.”

오백호가 도욱에게는 물 잔을 내밀었다. 회의실에 두 사람이 마주 보고 앉았다.

“할 말이란 게 뭔데?”

“저······ 연기를 배우고 싶은데요.”

“어? 연기?”

턱끝을 문지르며 오백호 실장이 생각에 빠졌다.

도욱은 명실상부 케이케이의 비주얼 멤버였다. 뮤직비디오 주인공도 괜히하게 된 게 아니었다. 게다가 이번 뮤직비디오 촬영을 통해 연기에 대한 가능성도 확인 받았다.

회사에서도 그런 도욱에게 연기자를 시킬 계획이 어느 정도 있었다. 하지만 케이케이 활동이 이제 2년 차에 접어든 지금은 아니었고, 조금 더 먼 미래였다.

“연기에도 욕심이 있는 줄은 몰랐네. 연기자 준비하기엔 너무 이른 것 같은데······.”

도욱도 오백호 실장이나 회사의 생각에 대해선 예상할 수 있는 바였다.

“미리 준비를 해두고 싶어서요. 선생님 한 분 구해주실 수 없을까요?”

“붙이는 거야 문제 없지만, 네가 소화가 가능하겠냐는거지. 활동만 해도 바쁜데 너는 곡 작업도 하잖아.”

‘음’ 하는 소리를 내며 오백호가 잠시 말을 골랐다.

“너도 알다시피 용 피디도 이번 앨범이 마지막이고······ 그러고 나면 도욱이 네가 실질적인 프로듀서 되는 수준 아니겠냐. 너한테 프로듀서를 하라는 게 아니라. 다른 누가 와도 결국 실질적으로는 그렇게 되지 않겠냐는 거지.”

“그렇겠죠. 하지만 본격적인 것도 아니고, 배우는 정도는 충분히 병행할 수 있습니다.”

오백호는 마주한 도욱의 결연한 의지를 느꼈다.

하기야 새벽 운동을 아직까지도 시간 날 때면 빼먹지 않는 도욱이었다. 그런 도욱이 할 수 있다면, 할 수 있는 거라는 믿음도 오백호 실장에게는 있었다.

“그래. 그럼 일단 해 보고 힘들면 말해라. 일단 회사에 연기 선생 붙여달라고 해두지.”

“감사합니다. 형.”

“하여튼 일 욕심은······.”

오백호가 밉지 않게 도욱을 타박했다. 이런 저런 이유를 달았지만, 도욱이 지치지는 않을지 걱정되는 마음이 컸다.

“형, 대학 말이에요······.”

“그래. 대학은 어떻게 할래? 주원대는 인재도 못 알아보고, 내가 어이가 없다. 인맥이라도 만들어서 왜 떨어졌는지 알아보든가 해야지.”

도욱은 오백호 실장의 말에 희미하게 웃었다. 오백호 실장이 진심으로 자신을 인정하고, 걱정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대한예술종합학교 연기과에 지원해 보려고요.”

“뭐? 대한예술종합학교?”

“네. 연기 선생님도 우선은 그쪽 입시전문 선생님이 좋을 것 같습니다.”

오백호는 얼핏 도욱의 큰그림을 본 듯했다.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다.”

국내 걸출한 연기자들은 모두 대한예술종합학교 출신들이었다. 국내 난다긴다하는 연기자들의 집합소이자 양성소였다.

어차피 도욱은 이름있는 가수이자 작곡가가 된 상태였다. 굳이 실용음악과에 가지 않아도 내로라하는 작곡자들은 언제든 만나서 배울 수 있었다.

뮤직비디오 촬영을 하고, 신윤호 PD의 제안을 받으며 도욱은 주원대학교 실용음악과에 불합격한 게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새로운 길로 발을 내디딜 생각이었다.

‘어차피 서강준도 시간이 지나면 연기를 시작하겠지······. 이른 게 아니다. 한 발 더 빠르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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