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슈퍼스타-60화 (60/225)

# 60

새로운 발견 (2)

케이케이 멤버들 중 작년에 고3이었던 멤버는 도욱과 박태형. 두 사람이었다.

그러나 박태형은 수능시험은 아예 보지 않았다. 실기와 내신만 있으면 되는 수도권의 한 대학교 방송연예과에 수시 전형으로 지원했기 때문이었다.

어느 정도 수능 성적이 나온 도욱은 국내 실용음악과 중에서는 가장 높은 주원대에 지원했다. 수능 성적 10%에 실기 90%를 반영하는 곳이었다.

경쟁률이 꽤 높긴 했지만, 도욱 정도의 성적과 실력으로는 떨어지는 게 더 힘들다는 게 모두의 평이었다.

“무슨 문자야?”

“아. 오늘이 발표일이었네요.”

“대학? 얼른 확인해 봐!”

합격 여부가 발표되었다는 메시지였다.

“도욱이도 이제 대학생 되는구나~! 캠퍼스 라이프!”

물론 대학에 가더라도 활동으로 인해 김원이 말하는 ‘캠퍼스 라이프’를 즐기긴 힘들 것이다. 지금은 방학이지만, 김원부터도 다음 학기 휴학이 예정이었다.

게다가 도욱은 두 번째 대학에 입학하는 게 되는 것이었으므로 새삼 설렐 것도 없었다. 다른 점이라면, 과가 상당히 달랐다.

곡 작업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선택한 실용음악과였다.

도욱이 인터넷 창을 켜 주원대학교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들어가자마자 팝업창으로 합격자 발표 페이지가 떴다.

이름과 함께 메모해둔 수험번호를 입력하고 조회 버튼을 눌렀다.

[응시번호 789789123 강도욱 님 불합격]

순간 화면을 같이 들여다보고 있던 김원의 얼굴도 굳었다.

보통 수험생과는 아무래도 다른 입장이었으므로 불합격의 충격이 학생들과 같진 않았지만, 도욱으로서도 당황스러운 게 사실이었다.

‘너무 쉽게 생각했던 건가······.’

도욱은 실기 시험 당일을 돌아봤다. 컨디션이 나빴던 것도 아니었다. 수능 성적도 평균치를 훨씬 웃돌았고, 노래는 객관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을 만했다.

“어, 음, 어엄······. 근데 대기번호 받았네. 음, 7번? 러키세븐이니까!”

도욱보다 더 당황한 김원이 보이는 대로 말했다.

그러나 실용음악과는 정원도 워낙 조금이고, 학과 성향이 뚜렷하다 보니 대기가 빠지지 않기로 유명한 과 중 하나였다.

주원대 실용음악과보다 좋은 곳이라 봐야 한두 군데뿐이니 많이 빠지면 3명이었다.

“괜찮아요, 형. 꼭 올해 대학을 가야 하는 것도 아니고.”

“응. 그런데 이상하네. 도욱이 네가 패스 못 할 성적이 아닌데.”

김원이 납득하기 힘든 듯 턱을 괴며 중얼거렸다. 도욱도 이상하긴 했지만, 실기 시험이라는 게 어느 정도는 주관적일 수밖에 없는 부분이 있었다.

‘노래가 심사를 하는 교수진들과 안 맞았을 수도 있고······. 이유야 여러 가지 있을 수 있다.’

아무리 연예인에게 대학이 중요하지 않다고 해도 불합격을 하고 기분이 좋긴 힘들었다. 도욱은 애써 무거워지는 마음을 추슬렀다.

‘앞으로의 대학 진학에 대해서는 조금 더 생각해봐야겠어.’

***

리얼리티 촬영과 함께 숙소는 물론이고 연습실, 작업실 등 곳곳에 카메라가 설치됐다.

촬영일은 매주 목요일과 금요일. 일주일에 이틀이었지만, 지급된 개인 카메라로는 언제든지 셀프 카메라를 찍을 수 있도록 해두었다.

오늘은 촬영이 없는 수요일이었지만, 뮤직비디오 촬영이라는 스케줄이 있었기 때문에 ‘K.K 방송’ 촬영일도 당겨지게 됐다.

신윤호 PD가 뮤직비디오 촬영 현장을 담고 싶어 했기 때문이었다. 프로그램 미팅 및 촬영 동안 만난 신윤호 PD는 특별히 까다롭지도 않고, 그렇다고 특별히 성격이 좋지도 않은 평범한 PD였다.

촬영을 하다 스태프가 실수를 하면, 화를 내긴 했지만 적당한 선에서였다.

‘보기엔 너무 평범해서······ 앞으로 예능에 드라마 판까지 휩쓸 PD라는 게 믿기지 않는다. 이래서 사람 일은 모르는 일이라는 건가.’

도욱은 신윤호 PD를 볼 때마다 그런 생각을 했다. 곧 뮤직비디오 촬영 현장에 갈 시간이었다. 준비를 마친 도욱이 거실로 나왔을 때였다. 안형서의 방에서 큰소리가 났다.

“이 카메라는 진짜 언제 봐도 신기해!”

안형서가 숙소 자신의 방에 달린 소형 카메라 앞을 기웃대며 외쳤다.

처음 촬영을 시작할 때만 해도 혼자 있을 때도 중얼중얼 생각을 말로 해야 한다는 것에 어색함을 느끼던 멤버들이었지만, 이제 카메라 앞에 대고 아무 말이나 잘도 떠들었다.

물론 안형서나 김원처럼 원래도 말이 많은 편인 멤버들이 많은 분량을 차지했다.

“왼쪼오옥~! 오른쪼오오옥~!”

안형서가 왼쪽으로 움직이면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움직이면 오른쪽으로 움직였다.

도욱이 방 안에서 카메라 앞에서 이리저리 움직이며 카메라와 놀고 있는 안형서를 불렀다.

“얼른 준비하셔야······.”

“도욱아! 너는 안 신기하냐? 어떻게 자동으로 이렇게 잡지. 과학의 신비! 너도 이리 와서 움직여 봐.”

안형서가 도욱을 잡아끌었다. 뒤에서 팔을 잡고는 조종하듯 움직였다. 도욱의 움직임에 따라서도 카메라가 움직였다.

너무 신기해하며 아이처럼 즐거워하는 안형서를 보고 있자니 도욱은 웃음이 났다. 형이라고 부르고 있지만, 실제로는 한참 어린 나이였기 때문에 가끔 이런 모습을 볼 때면 조카 재롱을 보는 듯해 귀여웠다.

도욱이 안형서를 속삭이듯 부른 뒤 귓속말을 하는 시늉을 하자 안형서가 귀를 세웠다.

“형. 그거 알아요?”

“왜, 뭔데. 뭔데!”

“이거 수동이에요. 카메라 뒤에 사람 있어요.”

여태껏 감지 센서를 통해 자동으로 움직이는 것이라 믿었던 카메라는 사실 사람이 조작하는 카메라였다.

뒤늦게 말뜻을 이해한 안형서가 소리를 질렀다. 거짓말이라고 외치며 안형서가 배신감에 찬 표정으로 카메라를 보았다.

카메라 앞에서 떠나지 않을 기세였지만 진짜 뮤직비디오 촬영 현장으로 떠나야 할 시간이었다. 오백호가 방에서 나오지 않고 있는 안형서의 뒷덜미를 잡아 끌어냈다.

***

‘LAST DANCE’ 뮤직비디오 촬영 현장.

뮤직비디오 촬영팀뿐 아니라 ‘K.K 방송’ 촬영팀까지 추가돼 평소보다 더 많은 인원이 현장을 채우고 있었다.

안무 버전은 따로 스튜디오 촬영을 진행하기로 했고, 오늘 드라마 버전 촬영은 남양주의 한 폐공장에서 진행됐다.

이번 뮤직비디오 감독은 ‘진영’ 감독이었다. 본명은 이진영이었지만 진영이라는 감독명을 사용 중이었다.

국내에서 손꼽히는 최고의 CF 감독이었는데 ‘랑데부 프로젝트’ 뮤직비디오를 보고 뮤직비디오에 관심을 가지게 돼 얼마 전 솔로가수 계나리의 뮤직비디오를 찍었다. CF와는 다른 분야였기 때문에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으나 진영의 뮤직비디오 감독 데뷔는 무척이나 성공적이었다.

뮤직지비디오 속에서 계나리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했을 뿐더러 열 배 정도 계나리의 분위기를 확장시켜 놓았다. 노래와도 아주 어울리는 화면 구성이었다.

그리고 케이케이의 뮤직비디오가 두 번째였다. 진영 감독은 케이케이 뮤직비디오에서는 스토리가 있는 뮤직비디오를 만들고 싶어 했다.

“지난 미팅 때 설명했듯이 도욱 군의 연기가 중요해요. 실패하고, 좌절한 청춘을 잘 연기해줘야 해요.”

“네. 알겠습니다.”

“우선 첫 컷은 모든 걸 다 잃은 소년이 공장 안으로 힘없이 들어오는 씬이에요.”

진영 감독이 도욱에게 설명한 후 옆에서 함께 설명을 듣고 있던 멤버들에게 말했다.

“콘티에 있는 순서대로 한 명씩 도욱 군 옆을 스쳐지나가며 감정을 담아서 립싱크를 해주면 됩니다.”

콘티를 짚어가며 하는 설명에 멤버들이 모두 정신을 바짝 차린 채 고개를 끄덕였다.

이전까지 찍었던 뮤직비디오는 연기력이 필요한 뮤직비디오는 아니었다. 무대 연기와 동일하게 립싱크만 하면 됐었다.

그러나 이번 뮤직비디오에는 스토리가 있었고, 주인공으로 연기를 하게 된 도욱뿐 아니라 다른 멤버들도 어느 정도 연기를 할 필요가 있었다.

촬영이 시작되기 전, 도욱은 따로 얼굴을 맞은 듯한 분장을 하고, 허름한 옷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멤버들은 무대에서 입을 힙합 스타일 의상을 입은 채였다.

“으으, 너무 춥다. 어! 도욱이~”

“도욱이 얼굴 완전 엉망이다, 마.”

분장을 마치고 온 도욱을 안형서가 발견하고, 정윤기가 감상을 늘어놓았다. 정윤기의 말대로였다. 도욱의 오른쪽 얼굴에는 푸른 멍이, 입가와 왼쪽 볼에는 피가 말라붙은 듯한 자국이 있었다. 여기저기 긁히고 상처도 나 있었다.

물론 다 가짜였지만, 진짜라고 믿을 만큼 현실적이었다.

“너무 잘생겨서 분장하고도 잘나 보일까봐 걱정했는데 이렇게 하니까 그건 아니네~!”

“진짜 어디서 맞고온 것 같아요.”

놀리듯 안형서가 중얼대자 석지훈도 보탰다.

“그··· 그래도 잘생겼는데. 자세히 보면.”

박태형의 말에 그건 사실이라고 다들 낄낄대며 웃었다.

“역시 숨길 수가 없는 거죠.”

막내인 석지훈의 칭찬에 도욱이 머리를 긁적였다.

뮤직비디오 연기라지만, 연기는 도욱이 생각도 해본 적 없는 분야였다. 나 아니 다른 누군가의 감정을 ‘연기’한다는 게 생소하기만 했다.

때문에 처음 뮤직비디오 주연으로서 연기를 해야 한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도욱은 조금 고민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회사와 진영 감독은 연기가 되는 석지훈과 도욱을 놓고 고민하다, 아직 미성년자여서 석지훈보단 도욱이 이미지적으로 더 맞고 화제성도 있다는 판단 하에 도욱에게 뮤직비디오 주연을 맡기기로 한 것이었다.

회사 입장에서는 도욱의 활동 스펙트럼을 넓히고, 연기력을 시험해볼 좋은 기회이기도 했다.

도욱은 역할에 대한 설명을 듣고선 조금 해볼 만하다는 생각을 했다. 전형적인 멋있는 남자 주인공 역할이었다면 조금 더 힘든 기분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좌절하고, 슬퍼하는 것······. 그건 도욱에게 무척이나 익숙한 감정이었다.

“잘해야겠죠.”

처음 하는 일에 답지 않게 긴장한 듯한 도욱의 어깨를 정윤기가 두드렸다.

“도욱이 연기 함 보자!”

그렇게 촬영에 들어가기 전 멤버들끼리 도욱의 주변에 모여 떠드는 모습들도 ‘K.K 방송’ 팀이 빠짐없이 녹화 중이었다.

“레디, 컷!”

진영 감독의 외침과 함께 두 번째 장면 촬영이 시작되었다.

첫 번째 장면 촬영은 단 세 번의 촬영만에 오케이가 났기 때문에 속전속결로 두 번째 촬영이 시작될 수 있었다.

촬영이 세 번까지 간 것도 진영 감독이 더 좋은 장면을 만들고 싶고, 립싱크를 하는 멤버들과의 합을 더 잘 맞추기 위해서 간 것이었지 특별히 NG가 나서는 아니었다.

터덜터덜 공장 안으로 들어오는 도욱은 그야말로 ‘패배자’의 모습 그 자체였다.

표정을 과하게 짓지도 않았음에도 무표정한 얼굴 위로 떠오른 허무한 분위기가 주인공의 모습 그 자체였다.

그리고 두 번째 장면은 폐공장의 한편에 쭈그려 앉은 도욱이 서러움에 차 우는 단독 씬이었다.

도욱은 벽에 기대 감정을 잡았다. 멤버들이나 스태프들도 도욱의 연기를 돕기 위해 최대한 조용히 도욱을 지켜 보았다.

“컷!”

카메라를 줌인하던 진영 감독이 컷을 외쳤다.

화면 속 도욱의 눈가가 붉었다. 입술을 꽉 깨문 채 눈물을 참고 있었다.

진영 감독은 밀려오는 흥분감에 무릎에 올려놓은 주먹을 꽉 쥐었다.

“한 번 더 갈게요!”

진영 감독의 목소리에 다시금 폐공장 안에 ‘LAST DANCE’ 전주가 흘러나왔다.

그리고 도욱의 마음 속에서는 ‘꿈이었으면’을 부르며 아침이 밝아오길 기다리던 어느 날이 재생되었다.

후드득. 도욱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다.

‘아······!’

줌인된 화면에 비친 눈물에 모두의 코끝이 찡해졌다. 어쩐지 모르게 마음을 울리는 눈물이었다. 시상식 때 도욱이 보인 눈물이 화제가 된 것도 어쩌면 이런 느낌 때문일지 모르겠다고, 멤버들은 떠올렸다.

다시 한 번 후드득, 이번에는 연속해서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도욱의 얼굴이 축축하게 젖어들어갔다.

고생 한 번 해본 적 없을 것 같은 도욱이었는데, 도욱의 눈물에는 처절함이 있었다.

“······.”

“······.”

모두가 숨죽여 지켜보는 가운데, 촬영장 안에는 어떠한 적막이 감돌았다. ‘LA, LA, LAST DANCE······’ 하는 멜로디가 어쩐지 구슬프게 느껴질 정도였다.

“컷! 좋았어요! 아주 좋았어요!”

두 번째 장면이 끝났을 뿐인데 만족스러운 장면 탄생에 진영 감독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며 외쳤다.

역할에서 빠져 나온 도욱이 손등으로 얼굴을 문지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시 김보명의 얼굴을 하고 있던 도욱은 어느덧 다시 케이케이의 중심 멤버, 강도욱이 돼 있었다.

촬영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폐공장에서 다함께 모여 안무를 하는 장면들도 찍었고, 립싱크 개인 컷도 땄다.

새벽 한 시가 넘어가자 멤버들은 물론이고 스태프들도 슬슬 지친 기색이 보였다.

그러나 오늘 마지막 장면 촬영이 남아 있었다.

폐공장의 옥상에서 해가 떠오르는 새벽 하늘을 바라보는 장면이었다. 때문에 멤버들은 차 안으로 돌아와 대기를 하고 있었다.

“오 실장님. 히터 좀 더 세게 틀어주세요.”

담요를 둘둘 덮고도 석지훈이 말했다. 추운 날씨, 난방이 제대로 되지 않는 폐공장에서의 계속된 촬영에 석지훈은 몸살 기운을 느꼈다.

“도욱아, 아까 무슨 생각하면서 울었어? 진짜 잘 울더라.”

“그러게. 마, 연기까지 잘하면 다른 사람들은 우야노.”

안형서와 정윤기의 잇다른 칭찬에 도욱은 그저 웃을 뿐 별다른 대답은 하지 않았다. 과거의 기억과 생을 떠올렸다고 할 수도 없었다.

사실 멤버들은 얼마 전 당연히 도욱이 붙을 줄 알았던 대학에 떨어진 것에 대해 오히려 도욱보다 신경을 쓰고 있었다.

설마하는 마음이었지만, 그래서 잘 운 것은 아닌지 안형서는 혼자 추측하며 눈치를 보는 것이었다.

그런 안형서의 마음을 알 리 없는 도욱은 긴 대기 시간을 버티기 위해 휴대폰을 열어 기사를 검색했다.

<맨투맨 서준, 주원대학교 실용음악과 입학!>

<입학과 함께 주원대 홍보대사 된 서준, “같이 학교 다녀요!”...>

도욱이 이를 꽉 깨물었다.

“서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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