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9
새로운 발견 (1)
두 프로그램의 기획 의도나 내용은 전체적으로는 비슷했다.
케이케이의 컴백 준비 과정과 숙소 생활 등을 밀착 촬영한다는 포맷이었다. 중간 중간 미션이 있고 없고 정도의 차이였다.
“두 개가 비슷한데 하나는 공중파고, 하나는 케이블이라 아무래도 SVS 쪽을 염두에 두고 있긴 한데.”
“그러게요. 보니까 거의 다른 게 없으니 아무래도 SVS 쪽하고······.”
조애니 팀장의 말에 오백호 실장도 동조했다.
그러나 조 팀장이 쉽게 결정을 내릴 수 없는 이유는 편성 시간 때문이었다.
SVS의 경우 평일 자정 시간에 리얼타임 25분씩 4회차 편성이었다.
TBN은 토요일 저녁 10시, 리얼타임 50분씩 4회차, 플러스 1회차 스페셜방송까지 포함된 상태였다.
“그래도 TBN 쪽이 알차지 않을까요? 아이돌 리얼리티는 원래 TBN이 강세기도 하고.”
“시간대 좋아도 어차피 이런 프로그램은 팬들만 볼 텐데 SVS에서 단독 예능했다는 타이틀 얻어가는 게 낫지 않나?”
“어차피 팬들만 볼 거면 인터넷에 올리면 되죠. 방송사가 괜히 방송사가 아닌데. 황금시간대에 한 시간씩 나가는 게 낫다고 봅니다.”
“아니지. 그렇다면 오히려 SVS지. 공중파가 괜히 공중파겠어요?”
오백호 실장과 팬-마케팅팀 직원들 간에 설전이 오갔다. 양쪽의 의견이 팽팽했다. 직원 내에서도 의견이 갈렸다.
다른 멤버들은 어느 쪽이든 회사 의견에 따르겠다는 식이었다. 멤버들로서도 선택하기 힘든 부분이었다.
“저······. 그런데요.”
그때 도욱이 입을 열었다.
“뭐죠?”
도욱이 손을 들자 조애니 팀장이 곧장 발견하고는 도욱에게 물었다. 설전을 벌이던 직원과 오 실장까지 회의실 내부에 있던 전원의 시선이 쏠렸다.
“저는 방송 내용도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보면 알겠지만, 포맷은 비슷비슷하잖아요? 그래서 고민인 거고.”
조애니 팀장이 날카롭게 답했다. 도욱이 끄덕였다.
“같은 포맷이어도 편집이나 연출에 따라서 많이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그렇죠.”
조 팀장이 수긍했다. 그러나 그 부분이야말로 ‘까봐야’ 알 수 있는 부분들이었다. 임호 PD든, 신윤호 PD든 많은 프로그램을 연출한 인물은 아니었고, 조연출에서 연출로 올라온 지 얼마 안 된 신인 PD였다.
“피디들이랑 전화 미팅도 하긴 했는데. 둘 다 뭐, 비슷한 얘기만 해서.”
“······혹시 어느 쪽이 더 적극적이었나요?”
“적극성이라, 그건 임 PD 쪽이 조금 더?”
조 팀장의 대답에 도욱은 티 나지 않게 한쪽 눈을 찡그렸다. 도욱이 원하는 건 신윤호 PD였다. 오백호 실장이 치고 들어왔다.
“역시 SVS로 가야겠네!”
도욱은 연달아 다른 질문을 던졌다.
“그럼 어느 분이 더 저희에 대해서 많이 아시던가요?”
둘 다 통화는 이십 분 남짓이었다. 기억을 더듬던 조 팀장이 무언가 생각났다나는 듯 말했다.
“그건 신 PD? 한 명씩 특징들 말하면서 어떤 모습을 부각시킬 거라고는 하더군.”
원하는 대답을 듣게 된 도욱이 조 팀장에게 말했다.
“저희에 대해서 조금 더 잘 이해하고 계신 분이 하면 좋을 것 같아서요. 아무래도 첫 단독 예능이고, 리얼리티라 이 프로를 통해 개인의 이미지가 확고하게 잡힐 테니까요.”
“이해라······. 그건 PD들도 촬영하고, 편집하면서 캐릭터 잡고 하겠죠.”
조애니 팀장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답했다.
도욱은 무언가 뜻대로 되지 않는 분위기에 초조함을 느꼈다. 도욱이 신윤호 PD와 함께 프로그램을 해야만 한다고 생각하게 된 이유는 간단했다.
임호 PD는 사실 도욱이 알지 못하는 PD였다. 나름 업계 사람이었던 도욱이 들어본 적 없다는 건 너무 나쁘지도, 좋지도 않은 평범한 PD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나 신윤호 PD는 달랐다. 누구나 할 수 있을 법한 기획도 신윤호 PD의 손을 거치면 어쩐지 특별해졌다.
‘앞으로 대성하는 PD다. 하나의 브랜드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예능뿐 아니라 생각지도 못한 드라마로 큰 성공을 거두게 된다.’
이런 기회는 언제 다시 올지 몰랐다. 물론 이후에도 케이케이가 계속 잘될 경우 신윤호 PD와 작업할 기회가 또 생길 수도 있었다.
하지만 신윤호 PD가 아직 신인일 때 좋은 인연을 만드는 게 여러모로 유리했다.
‘당장이든 나중이든 신윤호 PD 쪽이 훨씬 낫다는 걸 어떻게······.’
도욱이 고민하는 사이, 직원들 간에 의견이 또 한 번 오갔다. 적극성과 이해도 사이에서 또 많은 의견들이 나왔다.
조 팀장이 자리를 정리했다.
“자, 그만들 하고. 의견이 갈리니까 결정은 저희 팀 내부에서 더 얘기해보고 결정하는 걸로 하죠.”
사실 어느 쪽으로 결정이 나도 나쁠 것 같지 않은 상황이었기 때문에 오 실장이나 다른 직원들도 수긍했다. 멤버들이야 처음부터 그러한 마음이었다.
‘미래를 안다고 할 수도 없고······.’
신윤호 PD를 적극적으로 추천할 별다른 사유를 찾지 못한 도욱도 마찬가지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회의실 문 밖으로 나오는 도욱의 표정이 개운치 못한 마음에 어두웠다.
***
다음 날, 팬-마케팅팀 조애니 팀장의 사무실.
쨍한 파란색 정장을 차려입은 조 팀장이 자리에 앉아 통화를 하고 있었다. 임호와 신윤호. 두 명의 PD와 연달아 통화를 한 조 팀장의 표정은 밝은 편이었다.
두 방송사에서 케이케이를 원해 오퍼가 들어온 것이었다. 방송사 쪽에서도 알아보고 연락이 온 것이었겠지만, 마침 힛 엔터테인먼트에서도 케이케이 단독 리얼리티 예능을 해보려 구상 중에 있었다.
게다가 타이밍이나 조건 면에서 두 곳 모두 훌륭했다.
케이케이가 한창 뜨는 그룹이고, 그래서 방송사 쪽에서 먼저 제안이 들어온 것이라고는 해도 완전히 힛 엔터가 갑의 입장인 것은 아니었다.
차일피일 미루며 재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다른 가수에게 기회가 넘어가기 전에 하루라도 빨리 답을 줘야 하는 입장이었다.
조애니 팀장은 우선 SVS 임호 PD에게 전화를 걸었다.
“시간대를 한 시간이라도 당기거나······ 리얼타임이라도 늘리거나. 조정 가능한 부분은 없나요?”
임호 PD는 곧장 난색을 표했다. 국장급에서 잘릴 뻔한 편성을 겨우 살린 거라 더 이상은 힘들 것 같다는 얘기였다.
조 팀장은 대번에 임 PD가 왜 적극적일 수밖에 없었는지 바로 눈치챘다.
진짜로 케이케이를 주인공으로 한 제대로 된 예능을 만들어보고자 하는 종류의 적극성이었다면, 이런 식의 답이 나오진 않았을 것이다.
‘케이케이 정도 급이 출연한다는 게 편성 조건의 마지노선이었겠지.’
케이케이가 출연하지 않는다고 하면, 편성은 더욱 난항을 겪게 될 게 뻔해서 적극적인 태도를 취했던 것이다.
전화를 끊은 조 팀장이 신윤호 PD에게 한 질문은 조금 다른 종류였다.
“저희가 사실 다른 쪽에서도 제의가 들어와서요. 혹시 더······.”
-TBN에서 컴백 무대 가질 때, 무대 세팅 저희 쪽에서 하려고 하는데. 그 정도면 될까요?
사실 음악 방송에서의 추가 무대 장치 세팅은 해당 가수의 소속사에서 준비하는 것이었다. 화려한 무대일수록 비용이 많이 드는 게 이치였고, 비용 전액은 소속사에서 부담하는 시스템이었다.
또 소속사에 부담된 비용은 고스란히 아티스트가 벌어들이는 수입에서 추후 정산됐다.
조금 무미건조한 어투였다. 그러나 혹시 더 해주실 것 없냐는 질문을 하기도 전에 신윤호 PD는 해답부터 던졌다.
그리고 통화를 하며 조애니 팀장은 두 PD에게 자연스럽고 가볍게 동일한 질문을 했다. 케이케이의 음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것이었다.
“트렌디하죠. 한 발 앞섰지만 과하지 않은 느낌이라 대중성도 절대 놓치지 않는 부분이 대단한 지점이랄까. 음악성이 받쳐주니까 스타성이 더욱 살아나는 거겠죠.”
이번에도 신윤호 PD 쪽에서 심도 깊은 해석을 내놓았다.
“거, 뭐, 노래 좋은 거 다 알죠.”
반면 임호 PD의 대답은 주먹구구식이었고, 안일했다. 더 알아보려는 열의도 느껴지지 않았다.
조애니 팀장은 곧장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적극성과 케이케이 자체에 대한 이해도. 어떤 프로그램에 출연할지, 조애니 팀장의 결정에 영향을 내릴 질문은 이미 도욱의 입에서 나왔던 것들이었다.
“하여튼 예리하단 말이지.”
회의 시간에 도욱이 했던 질문들을 떠올리며 조 팀장이 중얼거렸다. 자신이 서류상의 것들, 편성 시간이라든가 계약 조건들에 매여 놓쳤던 부분들을 도욱은 짚어냈다.
조애니 팀장의 통화 내용을 들은 팬-마케팅 팀 직원들도 대번에 신윤호 PD가 연출하는 ‘케이케이 방송’에 출연하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
팬-마케팅 팀 사무실을 나온 조애니 팀장은 때마침 용수철의 작업실에서 나와 숙소로 돌아가려던 도욱을 엘리베이터 앞에서 발견했다.
“여기.”
딱딱, 손가락을 부딪치며 조애니 팀장이 도욱을 불렀다.
생각에 빠져 있던 도욱이 소리가 나는 쪽에 서 있는 조 팀장을 발견하곤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팀장님.”
“안 그래도 오 실장님한테 얘기하려고 했는데 마침 잘 됐네. 프로 뭐 할지 결정 났으니까.”
“결정이 났습니까? 어떤 프로인가요?!”
도욱이 답지 않게 조금 빠른 어조로 물었다. 조애니 팀장이 입꼬리를 올리며 확정적으로 물었다.
“강도욱 군. 원하는 프로그램이 따로 있는 거죠.”
“네. 그렇습니다.”
“신 PD 쪽?”
“······네.”
“이유는?”
“방송 시간도 그렇고, 그분이 더 케이케이에 대해 이해하고 계신다고 하고······.”
“흐음. 그래요?”
“사실을 말하자면, 그냥 감입니다.”
“하!”
조애니 팀장이 혀를 찼다. 기분 나쁜 듯한 표정을 짓더니 결국에는 웃어버렸다. 조애니 팀장은 실소한 것이었지만,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조금 기괴했다. 도욱은 약간의 두려움마저 느꼈지만 뒷걸음질 칠 수는 없어 물끄러미 조 팀장을 보았다.
“하여튼 감도 좋아. 신 PD랑 하기로 했어요. 다시 생각하고, 얘길 나눠 보니 그쪽이 훨씬 좋더군요.”
조 팀장의 말에 그제야 도욱도 표정을 풀었다.
“그렇군요. 잘 됐습니다.”
“그래. 뭐 또 방송은 해봐야 아는 거겠지만.”
“좋은 반응일 겁니다.”
“그것도 감인가?”
“아뇨, 좋은 반응이 나올 수 있게 저희도 노력해야죠.”
조애니 팀장이 듣기에 크게 만족스러운 답이었다. 문이 열렸다 닫혀버린 엘리베이터를 잡기 위해 조 팀장이 버튼을 눌렀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조 팀장이 먼저 올라탔다.
“타요. 아주 좋은 자세입니다. 기대하죠.”
***
모레부터 있을 리얼리티 촬영을 앞두고 멤버들은 모두 들뜬 상태였다. 게다가 오늘 병원에서 깁스를 풀고 온 안형서는 더욱 더 들떴다.
“와, 나 답답해서 미치는 줄 알았어.”
“형. 당장 내일부터 안무연습 참여하셔야겠네요.”
“지훈아 내가 너한테 뭘 잘못한 거냐, 대체.”
“기억이 안 나세요?”
“뭐? 뭔데!”
숙소 거실을 휘젓고 다니며 피가 안 통해서 깁스를 했던 다리만 희게 질린 것 같다고 투덜대는 안형서와 막내인 석지훈이 투닥거렸다.
안형서 대신이기 때문에 계주를 더 잘해야겠다고 굳게 다짐하던 석지훈은 지금 이 자리에 없었다.
투닥거리는 두 사람 사이에서 김원이 낄낄댔다.
낄낄대고 있었지만, 웃으면서도 김원은 동시에 자신의 랩 파트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예능은 예능이었고, 앨범 준비는 계속되어야만 했다.
전체 작사를 맡은 도욱은 얼마 전 ‘LAST DANCE’ 멜로디 라인 가사 작업을 모두 끝낸 상태였다.
‘LAST DANCE’의 가사는 꿈이든 사랑이든 좌절과 상실을 맛 본 이가 열정적으로 마지막 춤을 추며 모든 굴레에서 벗어나 감정적 자유를 만끽한다는 내용이었다.
“도욱! 도욱아!”
벌떡 일어난 김원이 도욱의 방문을 두드렸다. 도욱이 기척을 내자 김원이 방문을 열었다.
케이케이가 새로 이사한 숙소는 방만 네 개였다. 오 실장은 옆 건물 원룸에 기거하기로 하고, 멤버들끼리 방을 나눴다.
김원과 박태형이, 안형서와 석지훈이 둘씩 한 방을 쓰고 남은 두 방을 각각 도욱과 정윤기가 쓰게 되었다. 아무래도 기계도 들여놓고 곡 작업할 일이 많은 도욱과 정윤기를 멤버들이 배려해준 것이다.
안 그래도 자신의 방에서 노트북과 믹싱 기계를 펼쳐놓고 곡 작업을 하던 도욱이 무슨 일이냐 물었다.
“내 파트에 말이야. La, La, Last dance, 하고 나서 여러 가지 언어로 ‘마지막 춤’을 랩으로 해보는 거 어떨까 싶은데. 어떨 것 같아?”
“음······ 어떤 식으로요?”
“라, 라, 라스트 댄스, 사이고 노 단스(最後のダンス)―, 빠슬례드늬 따녜츠(Последний танец)― 뭐 이런 식으로 읊조리듯이?”
김원의 파트는 곡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파트였다. 신나면서도 어딘가 서정적인 부분이 있는 멜로디와 김원의 굵은 목소리를 얹은 래핑이 무척 잘 어울렸다.
도욱이 김원에게 다시 한 번 더 래핑을 요구했다. 두 번을 반복하자 조금 더 매끄러워졌다. 도욱이 발로 리듬을 타 보곤 활짝 웃었다.
“저는 좋은데요?”
“나이스! 좋았어!”
“용 피디님이랑 더 얘기는 나눠야겠지만.”
“오케이. 더 다듬어 볼게. 근데 용 피디님 이번 작업하고 관두신다는 게 정말이야?”
“아, 그게······.”
김원은 서운함 가득한 얼굴이었다. 그렇다고 답하려던 도욱의 답이 휴대폰 메시지 도착 알림음 때문에 끊겼다.
주원대학교 온 메시지였다. 도욱이 얼마 전 실기 시험을 치르고 온 대학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