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8
LAST CHANCE (4)
‘이전의 현실에서도 용수철 피디는 케이케이와의 작업을 통해 이름을 알리고, 케이케이를 어느 정도 위치에 올리는 데 성공한다.’
도욱은 빠르게 생각을 정리했다.
당시에도 ‘Sorry but I Love You’는 큰 인기를 끌었고, 이후 작곡한 곡은 도욱이 참여하지 않았으므로 현재의 ‘Very Sorry’가 아닌 다른 곡이었지만, 연달아 중박 이상의 곡을 내며 히트를 쳤다.
그렇게 케이케이와 두어 번의 앨범 작업을 한 용감환외동에게 작업 제의가 여기저기서 물밀듯 들어왔다.
어차피 그 팀 자체를 키워낸 제작자가 아닌 이상 프로듀서, 작곡가는 회사에 잠시 소속된다 하더라도 프리랜서에 더 적합한 직업이었다. 꼭 힛 엔터테인먼트에 묶여 있어야 할 이유가 용감한외동에게는 없었다.
작업실을 힛 엔터테인먼트에서 내어주긴 했지만 용감한외동과 힛 엔터와의 계약 또한 전속계약이 아닌 앨범별 계약이었다.
‘그때에도 앨범 두 개를 내는 정도였다. 날짜가 빨라진 건 그가 빨리 케이케이와 작업했기 때문이겠지, 케이케이의 데뷔도 빨랐고. 그렇지만······.’
도욱은 용수철은 바라보았다.
‘그렇지만 케이케이에게 그의 곡이 필요하다. 아직까진 케이케이의 현재 그룹 색깔을 용수철만큼 표현해 낼 자가 없어.’
용수철은 자신과 한 몸과도 같은 금목걸이를 만지작대고 있었다. 머릿속이 복잡할 때 나오는 습관이었다. 용수철의 마음도 편할 수만은 없었다.
도욱과의 작업으로 협업의 즐거움도 알았고, 케이케이 앨범 작업을 통해 얻는 이득은 부와 명성만이 아니었다.
케이케이의 데뷔 때부터 함께해 온 만큼 케이케이가 자신의 곡으로 아무것도 없는 신인에서 대중들에게 스타가 되어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일은 용수철로서도 보람 있는 일이었다.
“특별한 이유라도 있으신가요? 혹시 저희와의 작업이······.”
“아니! 도욱 군 덕분에 작곡가 데뷔는 물론이고, ‘Very Sorry’라는 내 인생에 남을 곡까지 남겼어요. 회사에서의 대우도 좋고, 문제가 있는 게 아니에요. 사실 더 같이 작업하고 싶은 맘도 있고······.”
“그렇다면 왜······.”
“다만 새롭게 도전을 해보고 싶을 뿐인 거요.”
용수철은 본래의 성향부터 도전 정신이 강한 인물이었다. 나이트 DJ를 하다가 작곡을 시작한 것만 해도 그랬다.
“도전이요?”
“얼마 전 여자 솔로가수 ‘제이니’ 제작사에서 다음 앨범 프로듀싱을 해달라는 요청이 왔어요. 여성 솔로 앨범 프로듀싱은 케이케이와는 완전히 다른 도전이 될 거고요.”
가만히 용수철의 말을 듣고 있던 도욱이 ‘제이니’라는 말에 눈썹 한쪽을 올렸다.
제이니는 싱글앨범으로 데뷔한 지 2개월 정도 된 신인이었다. 맑고 깨끗한 음색에 청순한 이미지로 순식간에 많은 남자 팬들의 팬심을 확보하는 중이었다.
‘그렇지만 용수철 피디의 곡과는 너무 어울리지 않아. 피디님의 곡이 무너지거나, 제이니의 이미지가 무너지거나 둘 중 하나다.’
게다가 더 큰 문제가 있었다.
‘제이니는 스폰서 의혹으로 일 년도 안 돼 사라진다.’
티를 내지 않으려고 했지만, 어쩔 수 없이 도욱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용수철은 조금 더 덧붙였다.
“또 하반기 작업이지만, 데뷔 전 걸그룹 프로듀싱 제안도 들어왔어요. 정말 해보고 싶은 일이었기도 하고요.”
“아······, 그렇군요. 피디님 능력이라면 충분히 잘 해내실 겁니다.”
도욱이 자신을 말릴 거라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잘 해낼 거란 말을 건네자 용수철의 표정이 풀어졌다. 고맙다는 말을 하려던 용수철을 도욱이 막았다.
“그런데 피디님.”
“그래, 말해 봐요.”
도욱은 용수철을 반드시 붙잡아야 할 이유가 두 개나 있었다.
첫 번째 이유는 케이케이였다. 케이케이에게는 용수철의 곡이 한 번 더 필요했다. 두 번째는 용수철을 위해서였다.
제이니와의 작업은 용수철의 미래를 불투명하게 할 뿐이었다. 그다음 들어왔다는 하반기의 걸그룹은 도욱도 예상 가능한 걸그룹이었다.
원래에도 그 시기쯤, 용수철은 신인 걸그룹을 프로듀싱하게 된다. 그리고 그 걸그룹은 케이케이만큼이나 큰 성공을 얻는다.
“케이케이와는 더는 해보고 싶은 도전이 없는 건가요?”
단 두 번뿐이었다. 용수철에게도 하나쯤 아직 케이케이와 도전해 보고 싶은 곡이 있을 법했다.
도욱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피디님께서 조금이라도 고민하셨던 건, 케이케이와도 함께하고 싶은 곡이 아직은 남아 있어서 아닙니까?”
“후······. 맞아요.”
“이번이 아니어도 또 피디님이랑 작업할 기회는 있겠지만, ‘지금’해야 하는 것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용수철도 도욱의 말뜻을 이해했다.
이번 케이케이 앨범의 장르는 데뷔 앨범과 같이 팝과 힙합의 혼종이지만, 팝보다는 보다 강력하게 힙합 이미지를 내세울 예정이었다.
힙합을 메인 장르로 하자고 한 건 도욱의 아이디어였다. 힙합 사운드가 곧 대세가 될 것이라는 흐름을 도욱이 남들보다 두 발 더 빠르게 캐치한 것이다.
용수철도 미국 음악시장이 흘러가는 흐름을 보며 ‘이건가?’ 싶었지만, 확신은 하지 못하고 있던 부분이었다. 그러나 도욱에게는 확신도 있었다.
힙합 사운드를 메인으로 내세우고 동시에 케이케이의 컨셉은 ‘자유를 향한 열망으로 가득한 뜨거운 청춘들’이 됐다.
거기까지 정도 이야기가 나온 수준이었지만, 용수철로서도 한 번쯤 꼭 해보고 싶은 작업이었다. 아마 제이니와의 작업은 발라드라던가 아예 다른 장르의 작업이 될 것이었다.
도욱의 말대로 그러한 음악과 컨셉은 케이케이에게도 ‘지금’이어서 가능한 것이다. 케이케이의 다음 앨범이나 그다음 앨범까지 계속 그러한 컨셉이 유효하다는 보장은 없었다.
“피디님. 저희 앨범, 한 번 더 부탁드리겠습니다. 하반기에 걸그룹 프로듀싱 하시면 너무 급할 것도 없고······ 솔직히 말씀드리면, 그쪽이 제이니라는 가수보단 더 피디님께도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합니다.”
“아니, 도욱 군. 솔직하게 말해줘서 고마워요. 도욱 군 생각도 듣고 싶어서 회사에 말하기 전에 말한 거기도 하니까.”
“아······.”
용수철은 도욱을 보았다. 이제 스무 살. 갓 성인이 된 도욱은 열아홉 때도 지금과 같은 진중함으로 용수철의 신뢰를 얻었었다.
함께 작업하며 도욱에 대한 용수철의 신뢰는 더 단단해졌을 뿐, 한 번도 흔들린 적 없었다. 그만큼 도욱은 모든 부분에 있어 나이 차이를 뛰어 넘어 존경스러울 만큼의 철저함이 있었다.
도욱의 말을 듣자 용수철은 역시 쏟아지는 제안들 속에 들떠 너무 성급하게 새로운 일을 하고자 한 것 같다는 마음 한편의 생각에 한 표를 던지게 됐다.
용수철은 더는 흔들리거나 고민하지 않기로 했다. 물론 자신의 곡이 좋아서였지만, 어떤 의미에서 도욱은 자신을 이 자리로 이끈 은인이기도 했다.
그런 도욱이라면, 감사의 표시라도 앨범 하나쯤은 더 함께 작업할 수 있을 정도였는데 심지어 이성적으로 판단을 내려도 결과는 같았다.
“그러면 회사에는 이번 앨범까지라고 말해두는 게 좋겠군요.”
“······감사합니다, 피디님.”
“이번에도 잘 부탁해요.”
용수철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손을 내밀었다. 도욱이 얼른 그 손을 잡았다. 꽈악 한 번 손을 맞잡은 손을 떼자마자 용수철은 기계 앞 의자로 가 앉았다.
“일단 그때 힙합사운드를 메인으로 해 보자고 해서 생각해둔 비트들이 있는 들어 볼래요?”
“네, 좋습니다!”
도욱도 자연스럽게 용수철의 옆 의자에 앉았다.
쿵, 쿵, 쿵, 쿵― 버튼을 누르자 용수철이 말한 비트가 흘러나왔다.
‘그래, 이거다!’
도욱은 귀를 집중시켰다. 용수철이 만들어 낸 비트는 도욱이 정확히 원한 스타일이었다.
그렇게 케이케이의 두 번째 미니앨범 ‘LAST DANCE’ 곡 작업이 시작되었다.
***
본격적인 앨범 준비 작업이 시작되면서 멤버 전원이 모두 참여한 상태로 회의가 열렸다. 오 실장을 비롯한 팀장들과 직원들이 모인 대회의였다.
오늘 회의로 ‘LAST DANCE’ 앨범 컨셉 구체화는 물론이고, 전체적인 활동 계획까지 세울 예정이었다.
‘용감한외동은 이번까지다. 다음, 다음에 대한 방법을 찾아야 해. 물론 가장 좋은 방법은 내가 직접 프로듀서로 나서는 것이겠지······. 과연 할 수 있을까?’
도욱으로선 이번 앨범 준비만큼이나 다음에 앨범에 대한 것까지 내다 볼 필요가 있었다. 때문에 매일 시간을 쪼개 더 열심히 곡 작업에 열중하고 있었다.
‘물론 회사 쪽에서도 나름의 준비를 하겠지만······.’
회의실에 자리를 잡고 앉아 도욱이 혼자만의 생각에 빠져 있을 때였다. 팬-마케팅 팀 인턴 직원이 팬-마케팅팀에서 준비한 페이퍼들을 나눠주면서 회의가 시작됐다.
앨범제작팀 심준 팀장이 앨범 전체 컨셉을 정리했다.
“본격적으로 힙합을 기반으로 한 앨범이 될 겁니다. 컨셉은 ‘자유와 열정’이라는 키워드가 될 거고요.”
케이케이 멤버들은 앞쪽의 PPT 화면을 보며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앨범에 대한 기대가 부담감만큼이나 모두 컸다.
‘Very Sorry’이 기록적인 성공을 했고, 리패키지였음에도 불구하고 ‘바람 부는 날’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걸 뛰어넘어야 한다는 강박이 모두에게 어느 정도 있는 상태였다.
그런 가운데 듣게 된 ‘LAST DANCE’ 곡 초안은 불안을 어느 정도 상쇄시켜줄 만한 좋은 곡이었다. 게다가 컨셉도 너무나 자신들이 잘할 수 있는 것이었다.
무대에서 열정넘치는 자유로운 영혼을 연기하게 될 거라는 이야기에 모두들 자신감을 표출했다. 무대에서 보다 자유롭게 움직이고 싶었던 래퍼 정윤기와 김원은 특히 더 그랬다.
“흐음. 안무나 의상도 컨셉 흐트러지지 않게 동일한 선상으로 갈 예정이고. 안무는 노윤태 안무가님이 맡을 겁니다.”
조애니 팀장이 특유의 조금은 거만한 듯한 말투를 고수하며 회의를 이어갔다.
“아무래도 스타일링이 더 주요한 포인트가 될 무대겠죠. 때문에 스타일리스트는 힙합 스타일에 더 맞는 쪽으로 찾는 중입니다.”
앨범 컨셉에 관한 이야기를 마치자 그다음은 활동 스케줄에 관한 얘기였다.
활동에 관해 케이케이 멤버들은 간간이 의견을 냈다.
음악방송을 많이 하는 것도 역시 좋지만, 더 큰 무대에도 서고 싶고, 단독 활동도 많이 하고 싶다는 얘기였다.
또 너무 스케줄이 많으면 무대 퀄리티가 떨어지니까 적당한 선에서 부탁한다고 정윤기가 리더로서 의견을 전달했다. 조애니 팀장이 맞은편에 앉은 오백호를 향해 물었다.
“오 실장? 어떻게 생각해요.”
“흠······.”
오백호 실장은 ‘물 들어올 때 노를 젓는다’는 생각이 강한 인물이었다. 오랜만에 오백호의 얼굴이 ‘백호 형’이 아닌 ‘오 실장’이 돼 있었다.
“일단 고려는 해보겠습니다.”
스케줄을 줄이는 게 간단한 문제는 아니었기 때문에 다음 화제로 넘어가게 됐다.
“그리고 컴백 2주 전부터 직전까지 활동 공백도 채울 겸 컴백 홍보까지 이어서 리얼리티를 하나 하려고 하는데······.”
앞에 놓인 페이퍼를 넘겨보며 조애니 팀장이 관자놀이를 짚었다가 떼었다.
“오퍼가 두 개나 들어와서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이에요.”
조애니 팀장의 손짓에 케이케이 멤버들도 페이퍼를 내려다보았다. 두 장의 페이퍼를 비교해보던 도욱의 눈이 커졌다.
1. <기획 프로그램명 : 떴다 케이케이! / 연출 : 임호 / SVS / 기획의도 : ... >
2. <기획 프로그램명 : 케이케이방송 / 연출 : 신윤호 / TBN / 기획의도 : ... >
도욱이 두 번째 페이퍼를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설마······. 그 신윤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