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슈퍼스타-54화 (54/225)

# 54

단 한 번뿐인 영광 (4)

***

권흥조 제작이사가 전해 온 좋은 소식은 다름 아닌 케이케이가 유성전자 노트북의 새 모델이 되었다는 것이었다.

안 그래도 ‘랑데부 프로젝트’의 성공과 더불어 도욱의 인기가 더욱 좋아지면서 유성전자 측에서는 도욱을 또 한 번 모델로 쓰고 싶어 했다.

그런 가운데 유성전자 노트북 광고 모델 자리가 났다.

현재 도욱은 아이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신뢰도 면에서 연기자와 같은 수준의 신뢰도를 가지고 있었다.

동시에 인기는 여느 아이돌 못지않고, 모델료도 크게 뛴 상태는 아니었다. 그러니 당연하게도 유성전자 마케팅 팀의 분석 결과 도욱은 적합한 모델 후보 중 하나였다.

최근 저렴하고 혁신적인 이미지의 신흥 브랜드가 강세를 보이는 노트북 업계에서 조금 올드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던 유성전자였다. 때문에 그중에서도 신선한 이미지를 가진 모델을 원했다.

도욱은 물론이고 케이케이라는 그룹 자체도 신선한 이미지였다. 유성전자는 브랜드 이미지를 이어가기도 좋다는 판단 하에 케이케이를 광고 모델로 선택했다.

‘유성전자 노트북 단독 모델이라······. 단발성으로 3개월 정도 진행하는 광고였지만, 그래도 큰 건임은 틀림없다.’

도욱은 오백호의 전화 내용을 생각했다.

국내 최고의 그룹이라 할 수 있는 유성전자와 계속해서 좋은 인연을 쌓아나간다면 분명히 점점 더 큰 도움이 될 것이었다.

“네. ······네, 이사님.”

오백호는 권 이사의 이어지는 이야기에 답했다.

소식 전달이야 어차피 자세한 내용도 전달하게 될 팬-마케팅팀 조애니 팀장이 하면 그만인 일이었지만, 권 이사가 오백호 실장에게 직접 전화를 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권 이사 자신이 얼마나 케이케이에게 신경을 쓰고 있는지 오백호 실장을 비롯한 멤버들에게 각인시키는 것이었다.

그를 통해 멤버들의 사기도 높이고, 자신의 공도 알려 인정받기 위함이었다.

“네. 멤버들에게도 잘 전달하겠습니다.”

확실히 칭찬도 높은 사람한테 들을수록 기쁘고 효과가 있는 법이었다.

“그리고 이사님 여쭐 말씀이 있는데 시간 괜찮으십니까? ······네, 네. 그럼 오후에 찾아뵙겠습니다.”

오백호 실장은 전화를 끊고 도욱에게 유성전자 노트북 모델 건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다.

“다들 수고 많다고, 덕분에 좋은 결과 있는 것 같다고 좋아하시네. 아주. 특히 도욱이 네가 수고가 많단다.”

“수고는요, 멤버들이 들으면 좋아하겠네요.”

“그러게.”

“광고 촬영이랑 방송은 내년 1월이라고요?”

“응. 1월 초?”

내년 1월이라고는 하지만 3주도 채 남지 않은 시점이었다. 도욱은 곰곰이 생각하다 오백호 실장에게 말했다.

“그럼 권 이사님께 이런 부탁을 드려도 될까요?”

“부탁? 네가 부탁을 드릴 게 있어?”

오백호가 미간을 찌푸렸다. 단지 의아함에 놀라 찌푸린 것뿐이었지만, 보는 이로서는 위협을 느낄 만한 포스였다.

물론 이미 오백호의 표정 정도에는 숙달된 도욱은 전혀 놀라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생각을 전하며 진지하게 눈을 빛낼 뿐이었다.

***

그리고 며칠 뒤.

<케이케이, 유성전자 노트북 모델 전격 발탁!>

<더 얇고, 가벼워진 유성전자 노트북······ 케이케이처럼 새롭게!>

<유성전자 노트북 새 모델, 케이케이! 대세 입증!>

<광고계의 떠오르는 별! 케이케이의 광고계 접수記>

인터넷은 케이케이가 유성전자 노트북의 모델로 선정됐다는 기사로 도배됐다.

도욱이 오백호에게 부탁해 권 이사에게 전한 내용은 다름 아닌 광고 모델 발탁 기사를 조금 더 일찍 내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이유까지 알게 된 권 이사는 해 봐야 알겠지만, 좋은 생각인 것 같다며 도욱의 의견대로 유성전자 측과 협의해 기사를 배포했다.

권 이사는 유성전자 측에 가요대상 신인상 수상이 유력하기 때문에 미리 기사를 낸 뒤, 신인상을 수상하면 다시 한 번 기사를 재배포하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유성전자 쪽에서야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광고가 나갈 때까지 모델을 숨겨야 하는 것도 아니었고, 오히려 일찍 기사를 내보내 화제가 되면 홍보 효과에 이득을 보는 건 유성전자였다.

기사가 나가자 팬덤은 환호했다. 이미 인기 있는 신인이었지만, 유성전자 제품 단독 모델이 되었다는 건 신인을 넘어서 정말 인기 스타 반열에 오른 듯한 인상을 주었다.

그렇게 느낀 건 팬들뿐만이 아니었다.

대중들 사이에서도 케이케이에 대한 인식이 라이징 스타 이상의 것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렇다 보니 다가오는 시상식에서 케이케이가 신인상을 휩쓸 거라는 의견이 지배적이 되었다.

도욱이 노린 게 바로 이 화제성이었다.

사람들은 쉽게 화제성이 있는 그룹이 더 인기가 많을 것이라 생각하곤 했다. 물론 화제성이 곧 인기로 직결되기도 했지만, 절대적인 비례관계는 아니었다.

아무튼 맨투맨보다 케이케이가 시상식 직전 시기에 더 많이, 더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화제성을 독차지한 것만은 분명했다.

때마침 유성전자 노트북 모델로 발탁된 게 신의 한 수였다.

처음에는 몬스터 팬덤까지 합세한 안티 세력으로 인해 밀리던 인터넷 투표에서도 케이케이의 투표율이 상승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몬스터 멤버들의 언급으로 케이케이에 관심을 갖게 된 이들이 몬스터 팬덤에서 케이케이의 팬으로 유입된 경우도 있었다.

투표는 케이케이가 맨투맨과 시간 단위로 각축을 벌이는 형세였다.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인터넷 투표만은 결과를 알기 어렵게 됐다. 현재로선 오히려 케이케이가 맨투맨을 역전하는 추세였다.

신인상 투표의 경우에는 케이케이가 6% 정도 차이로 맨투맨을 이긴 상태였고, K-POP STAR상은 맨투맨이 1% 차이로 앞섰다.

SVS 방송국 회의실.

‘가요대상’ 시상식 수상자 선정 및 진행 관련 사항들을 논의하기 위해 주요 연출진들이 소집되었다.

가요대상의 총책임자인 남운영 CP가 시상식 홈페이지 투표 현황을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맨투맨한테 신인상 가능하겠어, 이거?”

“보시다시피 투표도 뒤집혔어요. 지금까지 집계된 앨범 판매량도 케이케이가 높아졌어요. 맨투맨은 멈췄는데, 케이케이는 계속해서 팔리고 있습니다. 음원이야 말할 것도 없이 케이케이가 압승이고요.”

“사람 돌겠네, 이거.”

인생가요 PD이기도 한 현주혁 PD의 답에 남운영 CP가 혀를 찼다.

맨투맨의 소속사인 아라 엔터테인먼트에서의 압력이 거셌다.

“맨투맨 그, 누구야 서준? 그 자식 애비가 서 본부장이라는데. 안 줄 수도 없고 말이야. 안 주면 보복한다고 아주 지X 난리가 났어.”

“근소한 차이면 비율 조정이라도 해서 덮고 맨투맨한테 주겠지만······. 그렇지만 이 정도 차이면 말 안 나오기 힘듭니다, 씨피님.”

“이거이거, 수상자 가지고 말 나오는 거야 하루 이틀인가?”

그렇게 되물으면서도 상황의 곤란함에 남운영 CP는 혼잣말처럼 온갖 종류의 육두문자를 중얼댔다.

현주혁 PD를 비롯한 서브 PD들이 고개를 저었다. 남운영 CP가 아라 엔터 서 본부장에게 골프 접대까지 받았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오히려 드문 자리였다.

“유성전자 담당자가 한 말도 마음에 걸리고, 시부럴.”

유성전자는 매해 SVS 시상식의 공식 후원사 중 하나였다.

이번 해에도 당연한 듯 유성전자의 후원을 받게 됐다. 매해 후원하는 회사이지만, 때마다 달라지는 후원 범위를 조정하기 위해 얼마 전 남 CP는 유성전자 담당자를 만났다.

그때 협의를 마친 담당자가 지나가듯 케이케이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자신들이 꾸준히 모델로 써 보려고 하는 그룹이고, 다음 달에도 광고가 나올 예정인데 신인상 유력후보라고 하니 기쁘다는 내용이었다.

유성전자는 단지 케이케이를 모델로 쓰는 회사일 뿐이었다.

그러니 담당자의 말은 어떠한 협박도 아니고, 그저 진심으로 지나가듯 한 말일 텐데도 유성전자와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만 하는 남운영 CP로서는 신경을 안 쓰려야 안 쓸 수가 없는 것이었다.

“아폴론 모델 중엔 맨투맨 오빈도 있었지 않습니까.”

서브 PD 중 한 명이 남 CP의 고민을 덜어보겠다고 나서 말했다. 그러나 남 CP는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그래, 근데도 십팔, 케이케이 어쩌고 하니까 영 찝찝해.”

회의실에 정적이 돌았다. 누구 하나 선뜻 나서서 말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결국 결정은 남운영 CP의 몫이었다.

잠시 후, 남운영 CP가 눈썹을 구기며 입을 열었다.

“무조건 공정하게 간다. 원칙대로 점수 산출해서 상 나눠줘!”

그렇게 되면 신인상이 맨투맨에게 가지 않을 확률이 무척이나 높았다. 현주혁 PD가 근심스러운 어투로 물었다.

“네? 그럼 아라 엔터는······.”

“몰라, 십팔. 네 말대로 정도껏 차이가 나야 대충 덮어서 주지. 괜히 탈나는 수가 있어.”

한두 해 알아온 사이도, 거래를 해온 사이도 아니다. 아라 엔터의 서 본부장도 근소한 차이였기 때문에 자신에게 그런 협박을 던졌을 거란 걸 남운영 CP도 알았다.

아무리 날고 기는 기획사라고 한들 대상도 아닌 신인상 때문에 지상파 방송국을 통째로 등지는 일이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남운영 CP가 턱 끝을 손끝으로 긁으며 현주혁 PD에게 지시했다.

“상 하나 그럴싸한 거 만들어 봐. 안 되면 그거라도 가져가라고 해. 그래도 우리가 방송국인데 기획사한테 질질 끌려 다닐 수만도 없지.”

남운영 CP의 앞뒤 다른 말에 PD들은 속으로 혀를 차면서도 알겠다고 입을 모아 답했다.

***

고양시에 위치한 일산 킨텍스.

잠시 후 밤부터 SVS 가요 시상식인 가요대상의 무대가 될 장소였다.

“와······. 죽겠다······.”

리허설을 마친 안형서가 죽는 소리를 했다.

멤버들 모두 녹초가 된 상태였다. 안형서에게 무어라 대꾸해줄 멤버조차 없었다.

한파가 들이닥쳤다는 한겨울에 케이케이 멤버들은 온통 땀범벅이 돼 있었다. 실내라고 하지만 워낙 넓은 공간이라 아직 온도는 바깥의 온도와 다를 바 없었다.

코디들이 다가와 물을 나눠주고, 부채질을 해주었다.

오백호 실장이 케이케이 멤버들의 리허설 무대를 찍은 캠을 가지고 왔다. 그 옆에는 안무가인 노윤태도 함께였다.

노윤태는 시상식 무대를 봐주기 위해 오늘 특별히 리허설 현장에 참여했다.

늘어져 부채질을 받던 멤버들이 모두 일어나 캠코더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어땠어요?”

“잘했는데······. 중간에 대형이 좀 흔들렸어.”

정윤기가 묻자 노윤태가 답했다. 다른 멤버들이 노윤태의 말에 끄덕였다. 자신들도 무대를 하면서 깨닫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백호가 플레이 버튼을 누르자 모두 모니터를 하기 위해 화면에 집중했다.

오늘 케이케이가 준비한 무대는 총 두 개였다.

하나는 SVS 측의 제안으로 준비하게 된 올 한해 댄스 그룹 인기곡 커버였다. 다섯 개 정도의 곡을 하이라이트 부분만 2~30초 정도 따서 리믹스한 곡이었다. 멤버들은 다섯 가지 각기 다른 안무를 외워야만 했다.

그러나 커버 무대는 오히려 쉬웠다. 신인상 결과 발표 이후에 있을 자신들의 무대가 더 고됐다.

데뷔곡인 ‘Sorry but I Love You’와 ‘Very Sorry’ 리믹스 버전이었는데 중간 간주 부분에 대형을 만들어 아크로바틱한 동작 등을 하는 등 고난이도의 안무가 곳곳에 포진돼 있었다.

첫 시상식 무대인 만큼 강렬한 인상을 남기고자 하는 멤버들과 회사의 강력한 의지가 낳은 안무였다.

이 무대를 위해 멤버들은 짧은 시간 동안 밤낮 구분 없이 연습에 매진했다.

“여기부터 흔들리네요.”

도욱이 정확히 문제되는 부분을 짚어냈다. 멤버들은 다시금 머릿속으로 안무를 재생시켜 보며 마지막 리허설 때는 절대 틀리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밤 10시.

늦은 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공연장 내부에는 수많은 팬들로 자리가 꽉 채워져 있었다.

관객석 앞에는 열 개 정도의 둥그런 테이블에 오늘 참여 가수들이 잘 차려입은 채로 앉아 무대의 시작을 기다렸다.

여자 아나운서와 젊은 남자 배우의 MC멘트를 시작으로 화려한 효과음과 조명이 쏟아지고, 무대 위로 불꽃 등이 튀어 오르며 화려하게 ‘가요대상’의 막이 열렸다.

테이블에 앉은 케이케이 멤버들도 떨리는 마음으로 박수를 보냈다.

곧 여자 아이돌 그룹의 발랄한 무대로 오프닝 무대가 열렸다.

이후에는 VCR 영상과 함께 오늘 시상 부분이 소개됐다. 첫 번째 시상이 다름 아닌 신인상이었다.

시상자는 국민 여동생, 설레임이었다. 설레임의 호명에 카메라가 자리에 앉아있는 신인상 후보들을 화면에 비추었다.

‘······심장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늘 평정을 유지하던 도욱이었지만, 지금 이 순만만큼은 귓가에 심장 소리가 쿵쿵대는 것만 같았다. 다른 멤버들도 모두 상기된 표정이었다.

“저도 재작년에 받은 신인상이 여태껏 받은 상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데요. 아무래도 신인상은 데뷔 이후 단 한 번밖에 기회가 없다는 점에서 더 영광스러운 상인 것 같습니다.”

설레임이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카드에 적힌 멘트를 읽었다. 한차례 뜸을 들인 후, 설레임이 입을 열었다.

“올해 SVS 가요대상, 단 한 번뿐인 신인상의 영광을 누릴 그룹은······!”

설레임이 살짝 미소 지었다. 그룹명을 외치는 소리에 관객석에서 비명 같은 함성이 터졌다. 화면에는 아무런 표정도 짓지 않고 있는 케이케이 멤버들이 잡혔다.

도욱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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