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2
단 한 번뿐인 영광 (2)
커뮤니티 내에는 몬스터의 팬들과 갑자기 많은 인기를 얻게 된 케이케이에게 반감을 가진 일부 타그룹 팬들이 조직적으로 모여 활동 중이었다.
신인상과 K-POP STAR상 후보 중 가장 받을 확률이 없는 그룹에게 일부러 몰표를 던지고 있었던 것이다.
“와, 무슨 시간까지 정해서 투표를 하네?”
“그러게요.”
“닉네임 보니까 몬스터 형들 팬들인데······ 왜지.”
정윤기가 도무지 이해가 안 간다는 듯 중얼거렸다. 몬스터와 케이케이는 경쟁 구도에 있는 그룹도 아니었고, 한 소속사라 오히려 유대감이 있으면 있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몬스터 팬들이 케이케이의 안티 활동에 주축이 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몬스터 팬들은 케이케이 데뷔 후부터 힛 엔터테인먼트에 대한 불만을 키워왔다. 새로 나온 그룹인 케이케이로 인해 몬스터의 활동이 자꾸 밀리고 소속사에서 케이케이만 신경 쓸 뿐 몬스터는 뒷전이라는 게 팬들의 주장이었다.
밀키웨이와 몬스터, 두 그룹을 케어해오던 힛 엔터에서 케어해야 할 그룹이 하나 더 생기면서 정신이 없어진 건 사실이었다. 또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이제 더 올라가기 힘든 몬스터보단 케이케이에게 집중하게 된 부분도 있었다.
그렇다고 해도 몬스터의 앨범 계획이 밀린 건 멤버들이 모두 만족할 만한 곡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었지 힛 엔터가 몬스터를 뒷전으로 생각한 것만은 아니었다.
그러나 몬스터 팬들의 화살은 이미 힛 엔터를 향했다.
거기에 기름을 끼얹은 게 경제전문 잡지에서 진행한 힛 엔터 사장의 인터뷰 내용이었다.
‘힛 엔터테인먼트는 최근 어느 때보다 놀라운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케이케이가 잘된 덕분이기도 하고. 물론 목표는 상장이다. 상장이 되려면 역시 소속 가수들이 잘 돼야 하지 않겠나.’
‘케이케이를 최고의 신인으로 키울 생각으로 머릿속이 복잡하다. 복잡하다는 건 나쁜 의미가 아니라 즐거운 복잡함이다. 케이케이는 가능성, 그 자체다.’
몬스터에 대한 언급은 하나도 없었던 데다 앞으로 케이케이를 키우는 데 주력하겠다는 내용에 몬스터 팬들은 격분했다.
케이케이가 있기 전까지 힛 엔터를 이끌어 온 그룹이 밀키웨이와 몬스터였다. 케이케이를 제작할 수 있었던 것도 몬스터가 벌어온 돈 덕분인데 이렇게 홀대하는 건가 하는 여론이 몬스터 팬들에게 형성됐다.
여기에 케이케이가 얼마 전 새로 모델이 된 제품 중 몇은 몬스터가 모델이었던 광고였기 때문에 몬스터 팬들의 소속사에 대한 불만은 케이케이라는 그룹에게까지 퍼져 버렸다.
“몬스터 형들을 밀어냈다는 건가?!”
정윤기가 머리가 아프다는 듯 이마를 짚었다.
“이런 얘기도 있어요.”
“이거는 진짜 억울한데!”
도욱이 켠 화면에는 몬스터와 케이케이의 관계에 관련된 루머였다.
케이케이 멤버들이 갑작스럽게 얻게 된 인기로 자신들이 최고인 줄 알고, 회사에서도 오냐오냐 해줘서 선배인 몬스터에게 제대로 인사조차 하지 않는다는 종류였다.
‘확실히 이 정도까지 우리 쪽으로 화살이 몰릴 일은 아니다. 하지만······.’
데뷔 연차가 쌓이면서 어쩔 수 없이 떨어지게 된 몬스터의 인기. 내려간다는 기분은 아이돌만 느끼는 게 아니었다. 팬들도 동일하게 느꼈다. 오히려 팬들이 예민하게 느낄 때도 많았다.
몬스터의 인기 하락은 누구의 탓도 아니었지만, 팬들의 갈 곳 없었던 분노의 대상이 정해지고, 분노가 한 곳으로 모이자 보다 강력해졌다.
‘이해하려고 해봤자 어차피 비이성적인 일이다. 어떻게 해결하냐의 문제지.’
정윤기가 정말 억울하다는 듯 표정을 구기다 말했다.
“백호 형한테라도 말해서 어떻게 해명을 하든 해야 하는 거 아냐?”
“팬-마케팅 팀에서 이 정도 모니터링은 할 테니 이미 알고 있을 겁니다. 해명도 오히려 일만 커지는 일일 테고.”
“하이고, 마.”
“네. 그리고 이런 물밑 팬들 싸움에 회사가 나서긴 좀 그렇죠.”
도욱의 말에 정윤기도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여전히 표정은 풀리지 않았다.
억울하기도 했고, 투표에 대한 걱정도 드는 게 사실이었다. 신인상까지 어떻게 많은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해도 혹시 모르는 일이었다.
또 K-POP STAR 상도 제대로 된 팬 투표가 아닌 이런 식으로 매도당해 지고 싶진 않았다.
‘확실히 팬들 싸움에 해당 연예인이나 소속사가 개입하는 건 보기에도 좋지 않아. 자연스럽게 해결되길 바라야 하는 건데······.’
***
한국에 도착한 케이케이 멤버들은 우선 숙소에서 휴식을 취했다. 도욱은 멤버들이 숙소에서 쉬는 동안 힛 엔터테인먼트 사무실을 찾았다.
사무실 내부에는 대형 화이트보드 두 개가 걸려 있었다.
하나는 전체적인 연간 계획을 적어 놓은 화이트보드였다. 1월부터 12월까지의 날짜가 적힌 보드 위에 밀키웨이, 몬스터, 케이케이의 활동 계획이 검정, 빨강, 파랑 세 가지 색의 펜으로 표시돼 있었다.
또 하나의 화이트보드에는 한 달간의 스케줄이 있었다.
3일간 진행된 케이케이의 일본 스케줄도 파란색 펜으로 꼼꼼하게 적혀 있었다.
도욱은 얼른 빨강색으로 쓰인 몬스터의 스케줄들을 확인했다. 오늘과 내일은 음악방송이 있었고, 모레 저녁 8시에 라디오 스케줄이 있었다. 이외에는 아직 별다른 스케줄이 없었다.
도욱은 휴대폰을 들어 투표현황을 다시금 체크했다.
‘투표 기간이 남아 있고 뒤집힐 수도 있을 정도의 차이가 됐다.’
당연히 맨투맨과 1, 2위 싸움을 할 것이라 예상했던 케이케이 팬들은 몬스터 팬들과 다른 팬들의 연합으로 밀려나자 뒤늦게 힘을 모아 투표 중이었다.
그러나 아직까진 밀리고 있었다. 수를 떠나 케이케이는 팬덤보단 대중성이 있는 그룹이었다. 팬들의 수가 많다고 해도 신생 팬덤.
몇 년을 모여 활동해 온 데다 분노에 휩싸인 몬스터 팬덤의 단합력을 이기기 쉽지 않았다.
‘그렇지만 나중을 위해서라도 어느 정도 몬스터 팬들의 마음을 돌려놓을 필요는 있어······ 너무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자연스럽게······.’
뚫어져라 화이트보드를 보는 도욱을 발견한 남자 직원 하나가 인사를 해왔다. 도욱도 직원에게 인사를 하며 답했다.
“뭐 필요한 거 있어요?”
“아닙니다. 그냥 확인할 게 있어서. 그럼 가 보겠습니다.”
***
이틀 후.
몬스터는 라디오 스케줄을 위해 방송국으로 향했다. 저녁 8시 타임의 라디오로 젊은 층이 주로 듣는 프로그램인지라 DJ도 아이돌 출신 DJ였고 게스트도 주로 아이돌이 나왔다.
오늘 몬스터는 <집중탐구>라는 코너에 게스트로 출연 예정이었다.
코너명에 걸맞게 게스트에 대한 집중탐구를 해본다는 취지의 코너로 평소 게스트에 대해 궁금했던 질문들을 대거 받아 답변하는 형식이었다.
앨범 홍보와 팬이 아니면 별로 알고 싶지 않은 자잘한 정보들이 쏟아지기 때문에 청취율이 높은 코너는 아니었지만, 아이돌 팬들이 가장 선호하는 라디오 프로와 코너였다.
8시 30분부터 시작되는 코너를 기다리며 몬스터 멤버들은 부스 밖 대기석에 앉아 있었다.
“휴대폰 잘 챙기세요, 형들. 생방송 때 사고 내지 말고요.”
몬스터의 로드 매니저는 이제 스물한 살 된 신입 매니저였다. 매니저의 말에 권지형도 생각났다는 듯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다행히 휴대폰은 진동 모드였다. 확인하고 다시 넣으려는데 메시지가 울렸다.
[형, 오랜만입니다. 지난번에 말씀하신 노래들 목록이에요]
‘강도욱 후배님’에게서 온 메시지였다. 권지형은 얼마 전 용수철의 작업실에서 도욱을 만났을 때 도욱에게 노래 추천을 부탁했었다. 도욱이 권지형은 알지 못하는 외국의 노래를 많이 알고 있어서였다.
메시지 아래로 열 몇 곡 되는 추천 노래들 링크가 쭈욱 떴다.
권지형조차 가볍게 부탁하고 잊었던 것이었는데 잊지 않고 찾아준 도욱에게 권지형은 고마움을 느꼈다.
‘잘나가도 변함없이 예의바르고, 뭐 하나 부족한 것 없단 말이지.’
링크들을 보며 권지형은 답장을 써내려갔다.
[너도 바쁠 텐데 찾아봐줘서 땡큐! 내가 지금 스케줄 와서 끝나고 연락할게]
[네 형! 스케줄 잘하세요!]
마침 라디오 스태프가 몬스터 멤버들을 부스 안으로 불렀다. 권지형은 기분 좋게 자리에 앉았다.
몬스터 멤버들의 소개와 함께 본격적인 코너가 시작됐다.
멤버들의 근황을 묻는 질문들이 많았고, 향후 활동 계획에 대한 질문도 많았다. 몬스터 멤버들은 하나하나 자세히 답했다. 이제 아이돌들 사이에선 중견 그룹이 된 몬스터였기 때문에 대답마다 여유도 느껴졌다.
“이런 질문도 주셨어요. ‘달빛 사랑’은 이전의 활동곡과는 분위기가 전혀 다른데··· 활동할 때 어땠는지.”
“저희도 새로운 시도라 걱정이 많았는데 좋은 반응 주셔서 즐겁게 활동했죠. 근데 춤이 없으니까 몸이 근질거리긴 했어요.”
DJ의 질문에 몬스터 멤버 중 하나가 장난스럽게 답했다. 권지형이 마이크를 이어받았다.
“‘달빛 사랑’ 얘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팬 여러분들이 가사를 많이 좋아해주셨는데요. 작사가이신 김숨 님을 소개시켜준 게 도욱이거든요.”
“케이케이 강도욱 군 말인가요?”
“네. ‘달빛 사랑’ 곡에 많은 도움을 줬죠. 앨범 작업할 때도 그렇고.”
“아! 케이케이랑 몬스터랑 같은 소속사였죠? 강도욱 군이랑 친하신가 봐요.”
“작업실에서 자주 만나다 보니까 친해졌어요. 후밴데도 배울 게 많고, 아주 좋은 친구예요.”
도욱에게 방금 받은 메시지 때문에 권지형의 머릿속에는 도욱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고마움을 표현해야겠다고 생방송 직전 생각했던 것들이 입 밖으로 나왔다.
자연스럽게 케이케이의 이야기가 나왔다.
몬스터의 다른 멤버가 나서서 케이케이에 대해 말했다. 직설적이다 못해 거친 성격과 화법으로 유명한 멤버였다.
“다들 엄청 착해요! 가끔 만나면 인사를 너무 여러 번 해서 모자라··· 아니, 착하다는 얘기입니다.”
“하하! 그만큼 인사를 잘한다는 얘기죠?”
“한 명쯤 싸가지··· 성격 더러운, 나쁜, 애가 있을 법도 한데. 그런 친구도 없고.”
신인 때는 회사에서 입도 열지 못하게 했던 멤버였다. 그러나 이제 스물 중반이었다. 화끈한 단어 선택이라고 포장 가능했고, 팬들도 그저 유머코드로 이해했다.
“그렇군요. 하긴 저도 저번에 만난 적 있는데 다들 순둥순둥한 것 같더라고요.”
“맞아요!”
그렇게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케이케이의 이야기가 마무리되고, 이야기는 다음 주제로 넘어갔다.
방송분을 듣고 있던 몬스터 팬들은 혼란에 휩싸였다.
회사가 시켜서 억지로 케이케이 칭찬을 했을 거라는 의견들도 있었지만, 그렇다고 하기엔 몬스터 멤버들의 성격을 본인들이 더 잘 알았다.
권지형까진 몰라도 절대 회사가 시킨다고 저런 말까지 할 멤버들이 아니었다. 또 분위기도 너무 자연스러웠다. ‘보는 라디오’였기 때문에 표정들도 다 생방송으로 나오고 있었는데, 표정도 진심인 게 분명했다.
케이케이한테 이럴 게 아니라 회사에 항의하는 방식으로 가야되는 것 아니겠냐는 의견이 나왔다.
그렇게 케이케이의 투표를 망쳐 분풀이를 하려던 몬스터 팬들은 분열되기 시작했다.
***
그 시각 도욱과 케이케이 멤버들은 L 면세점에서 주최하는 콘서트 현장에 와 있었다.
잠실 주 경기장. 국내에서 콘서트를 열 수 있는 가장 큰 장소였다.
일본 공연 때 돔에 갔을 때도 그랬지만, 이번엔 국내였다. 온통 반짝거리는 가지각색의 불빛들을 보며 케이케이 멤버들은 압도될 수밖에 없었다.
케이케이의 공연 순서는 더 이상 앞이 아니었다. 엔딩에서 두 번째 앞이었다.
케이케이, 맨투맨, 그리고 사방신화의 순서였다.
대기실 안에서도 바깥 무대의 공연하는 소리가 쿵쿵거리며 울릴 정도로 소리가 컸다. 커다란 베이스 소리에 심장이 같이 뛰었다.
‘역시. 권지형이 말을 꺼냈구나. 몬스터 팬들의 의견은 갈라져서 지금처럼 투표를 하진 못할 거다. 누군가를 싫어하는 힘은 거기까지다. 이제부터는 정말 팬이 많아야 투표에서 이기겠지만.’
도욱은 휴대폰을 확인하며 생각했다. 이틀 전부터 도욱은 시간이 될 때마다 라디오 프로그램 게시판에 들어가 ‘달빛 사랑’에 관한 질문들을 올렸다.
‘달빛 사랑’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면 권지형이 도욱을 언급하게 할 생각이었다.
사실 이번 라디오에서 언급하지 않아도 될 두 번째 안이 따로 있기는 했다. 그러나 두 번째 안까지 가기 전에 몬스터의 팬들이 케이케이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하게 되었으니 다행이었다.
복도에 서서 도욱은 오늘의 라이브를 위해 목을 풀기 시작했다. 다른 멤버들도 각자의 방법으로 대기실 안에서 목과 긴장을 풀었다.
곧 무대였다. 케이케이를 향한 함성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백댄서 무리가 복도를 지났다. 의상으로 보아 맨투맨의 백댄서 무리였다. 그리고 무리에는 조정민이 있었다.
조정민이 도욱을 보고 멈춰섰다.
“오랜만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