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1
단 한 번뿐인 영광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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힛 엔터테인먼트는 나카모토사와 계약을 체결하고 케이케이의 일본 진출에 박차를 가했다.
케이케이는 데뷔 이후, 10월 말까지 끊임없이 국내 활동을 해온 상태였다. 새로운 국내 앨범은 내년 초로 계획을 잡고 있었다.
그사이 일본에 정식 진출해 자리를 잡고, 시상식 활동을 한다는 계획이었다.
국내에서의 팬덤 확보는 어느 정도 되어 있는 상태였고 ‘랑데부 프로젝트’ 광고의 여파로 케이케이에 대한 관심은 11월이 된 현재까지 이어졌다.
팬들의 열기를 가라앉히지 않기 위해 팬-마케팅 팀에서는 쉬지 않고 인터넷상에 케이케이 관련 콘텐츠들을 제작해 올렸다.
도쿄 하네다 공항에 내린 케이케이 멤버들과 스태프들은 곧장 도쿄돔 시티홀로 출발했다.
오늘은 일본에서의 첫 공식 단독 스케줄이었는데 전날 지방 축제 행사가 있었기 때문에 미리 일본에 와 있을 수 없었다.
도쿄에 왔다는 흥분감과 무대에 대한 긴장감도 잠시, 멤버들은 모두 시티홀로 향하는 차 안에서 죽은 듯 잠들었다.
케이케이는 ‘Sorry but I Love You (Japan. ver)’ 발매일에 맞춰 쇼케이스 및 악수회를 열게 되었다.
쇼케이스에서 멤버들은 일본어로 개사해 녹음된 ‘Sorry but I Love You (Japan. ver)’을 처음으로 선보일 예정이었다. 싱글 앨범에 함께 수록된 ‘You’의 일본어 버전도 있었다.
더해 추가 무대로 일본 음원 발매는 아직이지만, 일본 팬들도 잘 알고 있는 곡, ‘Very Sorry’의 한국어 무대도 준비됐다.
쇼케이스 이후에는 악수회였다. 1부에서부터 3부까지 이어지는 악수회였다.
사전 기간에 앨범을 산 팬들 중 추첨을 통해 당첨권을 부여받은 천 명의 팬들에게 케이케이 멤버들이 손을 잡아 주고, 악수를 해주는 행사였다.
한국에서의 팬 사인회와 거의 같았지만, 서서 모든 팬들과 악수를 해줘야 하는 행사로 많은 체력이 요구됐다.
“다들 정신 차리고 일어나라! 도착했다.”
조수석에 앉은 오백호 실장이 뒷좌석의 멤버들을 향해 소리쳤다.
“으으, 어?!”
떠지지 않는 눈을 비비던 안형서가 창밖의 풍경을 보고 외쳤다.
이미 일본 K-POP 팬들에게도 상당한 인지도를 자랑하는 케이케이였다.
시티홀 무대 뒤편 대기실로 들어서는 길, 안형서뿐 아니라 다른 멤버들도 멀리서 보이는 대기 줄을 보며 입을 벌렸다.
지난번 오사카돔에서 공연한 적도 있는 멤버들이었지만, 그때는 다른 가수들과 함께하는 공연이었기 때문에 다른 가수들의 팬도 많았다.
이렇게 많은 일본 팬들이 오로지 자신들을 보러 왔다는 게 놀라웠다.
“정말······ 많네요.”
도욱의 말에 같은 차에 타고 있던 도라희가 설명했다.
“기세가 정말 좋아요. 굿즈도 현장 판매 많이 되고 있다고 하고. 아주 좋아요.”
괜히 ‘엔화벌이’라는 말이 있는 게 아니었다. 일본에서의 인기는 곧바로 수익으로 이루어졌다.
한국에 비해 배로 비싼 CD, DVD 판매가 원활한 건 물론이고 굿즈 수익도 어마어마했다. 일본 내 배급사인 나카모토사와 수익을 나누게 되겠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충분히 남는 장사였다.
오백호가 물었다.
“그나저나 가사는 다 외웠지?”
“형은 우리 같은 프로한테 무슨 그런 걱정을.”
“형서 너 말고, 윤기.”
막 잠에서 깨어난 정윤기가 앞머리를 쥐어뜯었다. 파트는 안형서와 도욱이 많았지만, 가사의 길이로 치자면 래퍼인 정윤기가 월등히 많았다. 반복되는 구간도 거의 없었다.
히라가나도 모르는 정윤기는 마법 주문을 외듯 일본어로 번역된 랩을 한글로 써 외우고, 또 외웠다.
“하긴······ 녹음 날에도 손바닥에 써서 녹음했지······.”
“안형서, 조용히 안 하나.”
안형서가 깐죽거리자 정윤기가 쥐고 잠들었던 A4 용지를 돌돌 말아 안형서의 뒤통수를 내리쳤다. 비행기 안에서도 들고 있던 가사를 적은 종이였다.
“일본 팬들은 무대에 엄청 엄격하다던데.”
맨 뒤에 앉아 있던 석지훈이 정윤기 들으라는 듯 중얼거렸다.
석지훈은 팔이 닿지 않는 곳에 있어 때릴 수도 없는 정윤기는 이내 종이를 펼쳐 다시 가사를 외우기 시작했다.
‘오늘 일정이 끝나면 요코하마와 오사카까지 일정이 이어진다. 첫 단추를 잘 꿰어야 할 텐데······.’
창밖의 기다란 줄을 보며 도욱은 마음을 다잡았다.
조금 걱정했던 것과 달리 케이케이의 일본 첫 쇼케이스는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
노래와 퍼포먼스,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는 완벽한 무대로 일본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유성전자의 아폴론 광고, ‘랑데부 프로젝트’는 일본에서도 전파를 탔기 때문에 일본 팬들에게 도욱은 이미 케이케이를 넘어선 스타였다.
남녀노소도 국적도 가리지 않고 오직 호불호의 ‘호’만 존재하는 도욱의 외모도 크게 작용했다.
도욱이 무대 앞으로 나올 때마다 조용하던 일본 팬들도 크게 술렁였다.
무대를 마치고 도욱이 준비해온 일본어 멘트로 소감을 말했을 때에는 울먹거리는 팬도 있었다.
“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감사합니다.)”
아주 단순한 인사만 해도 도욱에게는 반응이 달랐다. 멤버들은 엄지를 치켜세우며 멘트를 하다 분위기가 조금 가라앉는다 싶으면 바로 도욱을 무대 중앙으로 내밀었다.
하나의 장난처럼 아무 일 없이도 멤버들은 도욱의 등을 떠밀기도 했다.
결국 마지막 순간의 멘트도 도욱이 외치게 되었다. 미리 준비해 온 일본어가 꽤 있어 다행이었다.
“日本に来て本当に嬉しいです! みなさん! また会いに来ますので、次の公演のことを楽しみにしてください。(일본에 오게 되어 정말 기쁩니다! 여러분! 또 만나러 올 테니까 다음 공연도 많이 기대해주세요.)”
도욱이 손을 크게 흔들며 하는 말에 일본 팬들도 함께 손을 흔들며 열렬히 환호했다.
쇼케이스라는 미션을 하나 끝낸 멤버들은 옷을 갈아입은 후 곧장 악수회를 준비했다.
악수회는 1부 400명, 2부 300명, 3부 300명. 총 삼 부로 나눠 진행했고 사이에 30분 정도의 텀을 두었다.
삼십 분씩 쉰다고 하지만, 계속해서 웃으며 악수를 하고 팬에게 대응해야 하는 일이 보통일은 아니었다.
대부분의 팬들이 짧게라도 한국어로 말하려고 했지만, 종종 일본어를 쏟아내는 팬들도 있었다. 알아듣지도 못하는 일본어를 알아들으려는 노력까지 추가되어 정신적으로 더 고됐다.
“손이······ 마비되는 것 같아.”
“난 입!”
정윤기의 말에 김원도 얼른 보탰다.
“다리도, 아휴 죽겠다.”
안형서까지 덧붙이며 형들이 앓는 소리를 내는 사이 석지훈과 박태형은 분주히 스태프가 전하는 음료를 마시고 과자를 입안에 우겨넣었다.
도욱도 페트병에 든 생수를 벌컥벌컥 마셨다. 시원한 물이라도 먹어야 좀 살 것 같았다
의욕적으로 악수회에 임했던 것도 1부까지였다. 2부가 끝날 때쯤에는 모두 지쳐버렸다.
오백호 실장이 대기실에 퍼져 있는 케이케이 멤버들을 잠시 안타까운 눈으로 쳐다보다 말했다.
“너희가 너무 힘들어하는 것 같아서 좋은 소식을 하나 전한다.”
멤버들이 악수회에서 손이 빠지도록 악수를 하는 사이, 오백호 실장은 한국의 회사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멤버들의 시선이 하나로 모였다. ‘좋은 소식’이라는 게 무엇인지 전혀 예상할 수 없었기 때문에 더 궁금했다.
“원래는 스케줄 끝나고 숙소 돌아가서 전해주려고 했는데.”
“뭔데요! 얼른 말해주세요!”
안형서가 재촉했다. 모두 한뜻으로 안형서의 재촉을 응원했다.
오백호 실장이 멤버들을 보며 씨익 웃었다. 아주 기분이 좋을 때만 나오는 웃음이었다.
“올해 SVS 가요대상 신인상 후보에 올랐다고 한다.”
“와우!”
“진짜예요?”
반쯤 누워 있던 멤버들이 벌떡 일어났다.
SVS 방송국의 ‘가요대상’은 그해 가장 먼저 열리는 가요 시상식이었다. 음악 프로그램 중 ‘인생가요’가 가장 인기 있었기 때문에 공중파 방송 3사의 시상식 중 가장 권위 있는 시상식이기도 했다.
“그래. 내일부터 인터넷에 후보들 공개된다고 회사에 미리 연락 왔다고 하네.”
도욱의 눈빛이 짙어졌다.
원래대로라면 케이케이는 신인상 후보에까진 오르지 못한다.
그러나 지금의 케이케이의 성적과 인기라면 신인상 후보에 오르는 것이 어찌 보면 당연할 정도였다.
그렇지만 신인상을 받는 것까지 확정적으로 생각하기엔 맨투맨이라는 그룹이 존재했다.
대중성이나 음원 성적 등에선 케이케이가 우위를 점했지만, 음반판매량 성적은 맨투맨에 살짝 못 미쳤다. 아라 엔터테인먼트의 가수들은 대대로 음반판매에 강세를 보여 왔다. 때문에 맨투맨 팬덤 분위기가 음반판매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었다.
게다가 맨투맨은 현재 케이케이가 일본 활동을 하는 동안 기습적으로 리패키지 앨범 활동을 하는 중이었다. 때문에 약간 벌어진 판매량이기도 했다.
‘신인상 후보가 발표되고 나면 우리 팬들도 음반을 더 사들이겠지만, 그건 맨투맨의 팬들도 마찬가지겠지······.’
도욱으로서도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차이였다.
판매량을 제외하면 모두 케이케이가 더 좋은 성적이니 케이케이가 받는다고 확신하기엔 기획사의 힘이 다르기도 했다.
“그리고 K-POP STAR상이랑 퍼포먼스상 후보에도 올랐다.”
“트리플 크라운, 베이비~!”
“다 받아야 트리플 크라운이지. 그러니까 힘내서 3부 다녀와라!”
오백호의 외침에 멤버들이 시간을 확인했다. 어느덧 악수회 3부가 시작될 시각이었다.
***
도쿄, 요코하마 그리고 오사카까지 일본에서의 폭풍 같은 3일간의 일정이 끝났다.
스케줄이 모두 끝난 건 오후 5시. 오사카 도톤보리 시내의 한 라멘집에서 케이케이와 스태프들은 간단히 저녁을 해결했다. 화장을 지우고 편안한 옷차림이었음에도 라멘집에서 케이케이를 알아보는 이들이 있어 사인을 해주기도 했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는 내일 오전 비행기였다. 밤 시간까지는 드디어 찾아온 자유 시간이었다.
오사카의 한 호텔. 이제 두 번째 방문한 오사카라 바깥에 또 나가고 싶어 할 만도 한데 정윤기는 숙소 침대 밖으로 한 발짝도 나가지 않았다.
다른 멤버들도 마찬가지였다. 식도락도 쇼핑도 뒷전이었다. 그저 3일 동안 제대로 풀지 못한 피곤에 눌려 침대 위를 전전했다.
“형, 괜찮아요?”
이번에 도욱은 정윤기와 같은 호텔 방을 쓰게 됐다. 이불을 뒤집어 쓴 정윤기가 앓는 소리를 내자 걱정이 된 도욱이 물은 것이다.
“어어, 괜찮다, 마.”
“몸살 난 거 아니에요?”
피곤도 피곤이지만, 일본어 가사 문제 등으로 정윤기는 계속해서 다른 멤버들보다 배로 긴장 상태였다. 긴장이 풀리면서 몸이 으슬으슬한 모양이었다.
“오늘 쉬고 나면 괜찮아지겠지. 내일까진 스케줄도 없고. 넌 안 쉬고 뭘 또 보고 있어?”
정윤기가 침대에서 나와 따뜻한 물을 마시며 도욱 쪽으로 왔다. 도욱은 챙겨온 노트북으로 SVS ‘가요대상’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는 중이었다.
올해 수상 후보 발표와 함께 인터넷 투표가 한창이었다.
예상대로 후보가 공개되자 각 팬덤의 분위기가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인터넷 투표에 대한 말이 가장 많았다.
퍼포먼스상은 투표를 따로 하지 않지만, 신인상은 인터넷 투표 5%, K-POP STAR상은 투표 90%를 반영해 수상자를 결정짓게 된다.
“어? 이게 뭐야.”
물을 마시던 정윤기가 노트북 화면 가까이로 다가섰다.
신인상 후보 세 팀 중 케이케이의 투표율은 16%. 아직 투표 기간 초반이라지만, 세 팀 중 가장 낮은 투표율이었다. 맨투맨에게 밀린 것은 물론이고, 상대적으로 팬덤이 약한 아이돌 그룹에게조차 밀리는 중이었다.
K-POP STAR상 투표도 마찬가지였다. 케이케이의 투표율이 상당히 저조했다.
“우리······ 이렇게 인기가 없었나?”
정윤기가 조금 멍하게 물었다. 도욱은 고개를 저었다.
‘무언가 문제가 있다.’
도욱은 빠르게 커뮤니티 사이트들을 훑었다. 그리고 어렵지 않게 투표율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몬스터의 팬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