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슈퍼스타-50화 (50/225)

# 50

랑데부(Rendez-vous) (4) <2권 끝>

물론 뛰어난 연주였다. 낮은 음과 높은 음 사이를 자유롭게 오갔다. 빠른 손놀림에서 나오는 화려한 기교가 듣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냈다.

도욱이 작곡한 ‘Song for Apollon’에 맞춰 리듬감 넘치게 연주한 부분들도 두드러졌다.

도욱은 다시 한 번 권휼이 보내온 파일을 플레이했다.

‘물론 좋다. 좋지만······ 뭔가 감탄만 하게 될 뿐 계속해서 듣고 싶은 연주는 아니야.’

연주를 들어보고 연락해 달라는 권휼의 메시지를 뚫어져라 보며 도욱은 생각했다.

오케스트라 연주를 하기도 하고, 악보대로 연주를 하는 클래식 피아니스트와 재즈피아니스트는 당연히 성격부터 달랐다.

재즈피아니스트들도 협주를 하긴 하지만, 권휼은 특히나 독주만을 고집하는 피아니스트였다. 혼자서도 곡을 채우고도 넘치는 이였다. 그런 그가 이 프로젝트에 합류하게 된 게 오히려 신기한 일이었다.

‘차라리 따로 들으면 좋겠어. 곡과는 어울리지 않아······.’

자신의 감상을 솔직하게 전달해도 좋을지에 대한 고민이 이어졌다. 당장 떠오르는 해결책도 없었고, 괜히 애매한 감상평으로 권휼을 혼란스럽게 하고 싶지도 않았다.

‘자존심도 굉장할 테지. 괜히 심기만 거스를 수 있다.’

곧 저녁 시간이었기 때문에 멤버들이 하나둘 저녁을 먹으러 연습실 문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정윤기가 도욱을 향해 손짓했다.

“도욱아! 거기서 뭐 해? 밥 먹으러 가자!”

“아, 네!”

도욱이 답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렇다고 좋다고만 할 수도 없었다. 모두 광고 수익과는 별도로 자신들의 재능을 발휘하고, 합해 보고자 열정을 가지고 임하는 상태였다.

‘솔직하지 못한 평을 들려주는 건 오히려 권휼을 기만하는 행위일 수 있다.’

한 손으로 권휼에게 보낼 메시지를 쓰며 도욱은 멤버들의 뒤를 따랐다.

석지훈과 박태형이 ‘바람 부는 날’ 아카펠라 버전에 푹 빠졌는지 여전히 곡을 부르고 있었다. 사이좋게 화음을 쌓아가며 걸어가는 모습이 뒤에서 보기에도 좋았다.

“반주에 맞춰서 혼자 부르던 파트인데 반주 없이 화음 넣어서 부르면 색다르게 좋은 것 같아요.”

석지훈의 말에 박태형도 고개를 끄덕였다. 석지훈이 뒤따라오는 도욱을 동의를 구하듯 쳐다봤다.

“응. 그러네.”

“앨범에도 들어갔으면 좋았을 텐데 말이죠.”

“미공개 곡을 넣는다는 조건이었으니까.”

도욱은 답을 하다 잠시 멈춰 섰다.

‘그래, 역시 조화다!’

도욱은 권휼에게 마저 메시지를 보냈다.

[잘 들었습니다 제 곡에 이 연주가 들어간다니

저도 연주에 맞춰 조금 곡 수정을 해야 할 것 같아요

스튜디오에서 뵙겠습니다]

***

‘랑데부 프로젝트’의 두 번째 공식 미팅이자, 촬영이 있는 스튜디오.

스케줄이 없었던 도욱이 가장 먼저 와서 다른 프로젝트 멤버들을 기다렸다.

‘바람 부는 날’의 활동은 전 음악 방송 1위를 한 번씩 휩쓸고 2주간의 짧은 활동을 끝냈다. 활동은 끝났지만 아폴론을 통한 홍보 효과로 음원차트 순위는 떨어지지 않고 계속 10위권 내를 맴돌았다.

도욱은 광고 겸 뮤직비디오 감독인 홍 감독과 인사했다.

국내 유수의 뮤직비디오를 찍어낸 감독이었다. 도욱은 필요한 정도의 예의만 갖춘 채 홍 감독을 대했다.

‘지금은 최고의 뮤직비디오 감독이지만, 계속해서 지금처럼 승승장구하진 못한다.’

홍 감독은 이번 프로젝트 이후 뮤직비디오 감독으로서의 명성에 정점을 찍게 된다. 그러나 스스로 내리막길을 걸었다.

강의를 나간 대학에서 학생들을 성희롱하는 등 파문을 일으키며 업계에서 점점 자리를 잃기 때문이었다.

인성도 인성이었지만, 실력 자체의 문제도 있었다. 상업성은 있는 감독이었지만, 자신만의 색이나 작품을 만들어 보려는 의지는 없는 감독이었다.

도욱은 홍 감독과 인사 후 스튜디오를 살폈다.

미리 받아본 콘티대로 스튜디오의 중앙에는 그랜드 피아노 한 대가 놓여 있었다. 전문 조율사가 피아노 조율 상태를 확인 중이었다.

그랜드 피아노 뒤쪽의 벽면에는 커다란 모니터가 띄워져 있었다. 노트북과 연결된 모니터로 그래픽 디자이너인 나은수의 영상물이 나올 모니터였다.

그리고 스탠드 마이크가 세워졌다. 주변의 공간에는 스케이트보드와 락카스프레이 등으로 비보이들이 춤을 추는 장소를 표현했다. 벽면에는 찢어진 공연 포스터들이 붙어 있었다.

도욱 다음으로 스튜디오에 도착한 프로젝트 멤버는 권휼이었다. 도욱이 다가오는 권휼을 향해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두 번째 만남인 데다 메시지를 주고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권휼은 여전히 다가가기 힘든 분위기를 풍겼다.

권휼은 스튜디오에 오자마자 피아노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아 손을 풀기 시작했다.

콰앙― 한 번 거세게 건반을 누른 뒤 음을 짚었다. 손을 푸느라 마음대로 움직이는 것뿐이었는데도 하나의 연주곡 같았다.

목은 차에서 이미 풀고 온 도욱은 마이크 앞에 서 마이크의 음향을 체크했다.

“지금부터 찍을 거니까, 거, 아무렇게나 의견들 해 봐요!”

홍 감독이 외쳤다.

스태프들이 분주하게 움직여 제자리를 찾아갔다. 카메라는 총 12대 정도가 동원됐다. CCTV처럼 천장과 벽면에 붙어 있는 것이 4대 정도 됐고, 피아노, 마이크, 모니터, 그리고 춤을 출 단상 앞에 하나씩 4대의 카메라가 추가로 설치됐다.

남은 카메라가 4대. 4명의 카메라맨들이 어깨에 카메라를 짊어진 채 도욱과 권휼의 주변을 에워싸고 둘을 촬영했다.

“연주를 듣고 제가 곡을 수정해 봤습니다.”

“···수정입니까?”

“네. 연주에는 아마 더 어울리는 버전의 편곡일 겁니다.”

도욱은 자연스럽게 주머니에서 아폴론 새 모델을 꺼냈다. 그리고 재편곡된 ‘Song for Apollon’을 재생시켰다. 가이드 녹음 버전 없는 MR이었다.

피아노 의자에 앉아 있던 권휼이 가만히 눈을 감았다.

간주 구간. 가장 많이 수정하고 손 본 구간이 이 간주 구간이었다. 권휼의 빠른 연주가 덧입혀질 구간이기도 했다.

잠시 듣고 있던 권휼이 번쩍 눈을 떠 자신의 연주를 시작했다.

귀를 사로잡는 뛰어난 연주에 감독은 물론이고 유성전자 마케팅 담당자들을 비롯한 스태프들이 서로 놀란 눈짓을 주고받았다.

권휼의 연주는 도욱에게 보내왔던 파일과 달라진 것 없이 화려했다. 동시에 곡과 어우러져 듣는 이로 하여금 황홀함을 느끼게 해주었다.

도욱은 간주 부분의 멜로디에 변화를 주었다. 피아노 연주를 위해 비워뒀던 공간에는 연주와 꼭 어울릴 만한 낮은 음의 멜로디를 채워 넣었다. 높은 음들은 제거했다.

피아노 연주와 적절한 미디 멜로디가 섞여 놀라운 조화를 이루었다.

연주를 하던 권휼은 이내 재편곡된 곡의 변화를 알아차렸다. 곧바로 도욱의 의도 또한 눈치챘다.

권휼은 무섭도록 집중하며 새로운 음을 만들어냈다. 이전보단 덜 화려하지만, 더 빠져들 수밖에 없는 음이었다.

도욱이 마이크를 잡고 노래를 시작했다. 중저음의 목소리가 스튜디오에 울려 퍼졌다.

태양의 열정을 닮은 우리, 아폴론― 아폴론― 아폴론―

일부러 허름한 창고처럼 만들어놓은 스튜디오의 조도가 그리 높지 않았음에도 사람들은 어쩐지 ‘눈이 부시다’고 느꼈다. 그야말로 눈부셨다. 정말로 그리스 신화의 아폴론이 나타난 것만 같았다.

도욱의 앞에 서 있던 카메라맨이 카메라를 움직여 서서히 도욱의 얼굴을 줌인 했다.

뒤늦게 도착한 오빈과 나은수가 둘의 무대를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

터벅, 터벅 나은수가 자연스럽게 피아노 뒤편의 노트북을 향해갔다. 그리고 자신이 준비해온 영상을 재생시켰다.

오빈과 나은수는 나은수의 영상물 작업을 위해 미리 만나 촬영을 한 상태였다.

오빈이 텀블링을 하고, 헤드 스핀을 하는 역동적인 모습들이 순차적으로 4, 8, 16, 32분할되며 정신없이 움직였다.

두 사람이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역동성을 표현해 낼까 연구해 만들어낸 동작들이었다.

지지직거리는 효과와 함께 흑백의 도시 사진들이 넘어가고, 이후엔 강렬한 색감을 가진 페이지들이 나왔다.

피아노를 연주하는 권휼, 노래하는 도욱, 그리고 뒤편의 모니터 영상까지 한 앵글에 잡히자 이미 광고의 한 장면이었다.

옆에서 오빈이 리듬에 맞춰 몸을 흔들었다. 그리고 시기적절하게 자신의 묘기인 비보잉 동작들을 선보였다.

그렇게 곡이 끝났다. 곡이 끝나고도 5초······. 스튜디오 내에는 여운이 감돌았다.

모두 가만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서 있었다. 홍 감독의 박수와 함께 그 정적이 깨졌다.

가장 깊게 연주의 여운에 빠져 있던 권휼이 피아노에서 일어나 마이크 앞의 도욱에게로 갔다.

“내 연주가 형편없었던 거군요.”

“네? 전혀요. 아닙니다. 훌륭했습니다.”

“아니에요. 협연에는 어울리지 않았겠죠. 여전히 혼자만의 독선적인 연주.”

직설적인 권휼의 말에 도욱은 입을 다물었다.

“독선을 멈춰보려고 이 프로젝트에 참가한 거기도 해요.”

도욱은 그제야 완벽히 권휼에 대해 이해할 수 있었다. 권휼은 노력하는 ‘진짜 천재’였다. 지금의 자리도 충분할 텐데 끊임없이 자신을 발전시키려고 하고 있었다.

“그런데 도욱 씨가 오히려 곡을 수정해줬군요.”

“아······.”

“지금도 좋지만, 도움만 받으면 분하니까. 나도 더 분발해 볼게요.”

도욱이 작게 웃으며 끄덕였다.

뒤를 돌아 반복 재생되고 있는 영상을 보았다. 곡에 어울리고 주제의식도 분명하게 담고 있는 영상물이었다.

오빈의 춤은 노래를 하며 지켜보았다. 박태형과는 전혀 다른 스타일의 힘과 절도가 느껴지는 춤들이었다. ‘Song for Apollon’의 쪼개지는 리듬과 무척이나 어울렸다.

홍 감독과 마케팅 담당자가 네 사람에게 다가왔다.

“아······ 오늘도 정말 좋았어요. 오늘 걸 최종결과물이라고 해도 될 것 같달까?”

마케팅 담당자의 말에 네 사람이 희미하게 웃었다. 조금씩 수정해야 할 부분들을 발견하긴 했지만 아주 만족스러운 시간이었음에는 분명했다.

“라이브로 들으니 곡이 정말로 더 좋아서. 뮤직비디오도 기대되고. 제 것도 문제없었던 것 맞나요.”

나은수가 중얼거리자 마케팅 담당자가 염려 말라고 답했다. 영상에 있어선 일가견이 있는 홍 감독도 나서서 극찬했다.

“모레 촬영이 최종 촬영이 되겠네요. 장소는 여기 스튜디오 옥상입니다.”

담당자의 말에 덧붙여 홍 감독이 컨셉을 길게 설명했다.

요약하자면 열정과 에너지, 폭발. 그러한 것들을 보여주면 좋겠다는 설명이었다.

***

그리고 이틀 뒤, 옥상 위에서 진행된 최종 촬영은 순조로움 이상의 완성도를 보여주며 종료되었다. 권휼의 연주도, 오빈의 비보잉도, 나은수의 영상도. 그리고 도욱의 노래까지. 고작 이틀이 지났을 뿐인데 발전적인 수정이 이루어져 있었다. 서로에게 맞춰져 더욱 조화로웠다.

오래전부터 하나의 퍼포먼스 팀을 이루었다고 해도 믿을 만큼 완벽했다.

홍 감독의 편집을 거쳐 ‘랑데부 프로젝트’의 광고가 전국의 프라임 시간대 텔레비전 광고는 물론이고 광화문 한복판의 전광판에까지 공개되었다.

눈과 귀를 사로잡는 광고에 홀린 듯 광고가 나오는 곳마다 광고를 보려고 멈춰 서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뮤직비디오와 메이킹 영상까지 마이튜브를 통해 인터넷에 올려졌다.

프로젝트 멤버들의 만남, 서로 메시지를 주고받는 모습, 두 번째 만남 때의 리허설. 그리고 옥상 위에서의 퍼포먼스까지.

‘Song for Apollon’은 젊은이들 사이에서 엄청난 반향을 일으키며 음원 차트 상위권에 진입한 것은 물론이고, 한 달 후 열린 광고대상의 광고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영상에서 입은 도욱의 '키스, 루카스'의 티셔츠와 오빈이 차고 있던 귀걸이는 열풍을 일으키며 불티나게 팔렸다.

권휼의 연주회는 매진 사태였고, 나은수는 한국 최고의 비디오아트 작가인 천남준과 콜라보 작업을 하게 됐다.

그러는 동안 케이케이는 어린 학생들의 아이콘, 워너비로 자리잡은 도욱을 필두로 가을 축제 행사들을 돌며 무대 경험을 쌓아나갔다.

앨범 활동이나 광고 모델 등의 활동까지. 폭풍같이 모든 일들이 지나갔다고 생각하던 중이었다.

그러나 얼마 후. 케이케이는 가요대상 신인상 후보에 오르게 된다.

그리고 도욱은 폭풍이 지나간 것이 아니라 폭풍 전야였음을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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