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슈퍼스타-44화 (44/225)

# 44

우리의 만남은 우연이 (2)

페이스노트 게시물이 휴대폰 화면 위로 떠올랐다.

바로 며칠 전 올라온 게시물이었다.

작성자: 정수지

방학 기념 라떼월드 다녀옴ㅋㅋ

#보명 #유미 #정민 크로스

첨부된 사진은 놀이공원인 라떼월드의 회전목마 앞에서 찍은 단체사진이었다. 사진을 본 도욱의 미간이 좁혀졌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사진 속에는 네 명의 여학생들이 손가락으로 브이를 그리며 환하게 웃고 있었다.

‘대체······. 누가 김보명이라는 거지?’

강서현이 보내온 건 두 개의 링크였다. 도욱은 혼란스러운 마음으로 다음 링크를 클릭했다.

이번에도 정수지라는 친구의 다른 페이스노트 게시물이 떴다.

작성자: 정수지

김보명 독서실에서 컵라면 먹고 그대로 입 벌리고 잠듦ㅋㅋㅋㅋ

#김보명 #억울하면_너도_찍어

-댓글

-야 보명이 많이 피곤했나봐ㅋㅋㅋㅋㅋㅋㅋㅋ 1등은 다르네~~~

-김보명 인권..ㅎㅎㅎㅎㅎㅎ

-보명이 이거 올라온 거 아냐?ㅋㅋㅋㅋ 걔 페이스노트 안 하잖아

-인생샷 건졌네ㅋㅋㅋㅋㅋㅋㅋ

이번에는 단발머리의 여학생이 설명대로 독서실 휴게실 테이블에 엎드린 채 잠들어 있는 사진이었다. 이전 사진에서 맨 왼쪽에 있던 여학생이었다.

도욱은 멍한 채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 복도를 지나가던 직원이 그런 도욱을 의아한 눈길로 쳐다보았다. 도욱은 기계적으로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인사를 하면서도 머릿속으로는 사진에 대한 생각뿐이었다.

도욱은 다시 강서현에게 전화를 걸어 강서현이 어떻게 김보명을 찾아냈는지에 대해 상세한 설명을 부탁했다.

우선 강서현은 서강준이 다녔던 중학교를 알아냈다. 서강준의 유명세와 함께 예전에 학교를 다녔다는 이들이 인터넷에 속속들이 나타나기도 했고, 한 팬이 졸업 사진까지 풀었기 때문에 중학교를 알아내는 것까진 어렵지 않았다.

그리고 커뮤니티를 통해 서강준이 중학교를 졸업한 해의 졸업앨범을 구했다.

서강준의 졸업사진을 간직하고 싶어 졸업앨범을 사겠다는 이들이 극소수지만 존재했다. 덕분에 졸업앨범을 구한다는 글 자체에 별다른 이상함을 느끼는 이는 없었다.

다만 구하는 데 애를 먹었다. 경쟁자가 있었기 때문에 꽤 큰돈을 불러야 했다. 물론 졸업앨범에서 원하는 정보를 빼낸 후에는 다시 실제 서강준의 팬에게 되팔았다.

졸업앨범에 있는 학생 명단 중 강서현은 김보명을 찾아낼 수 있었다.

3학년 7반 김보명. 김보명이라는 이름을 가진 학생은 단 한 명뿐이었다.

당시 7반의 학생들을 페이스노트에서 찾아내 링크를 타고 돌아다니며 어떻게든 보명의 페이스노트를 찾으려 애썼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보명은 페이스노트를 하지 않는 게 분명했다.

강서현은 시간이 날 때마다 휴대폰 게임을 하듯 페이스노트를 타고, 타고 들어가 김보명의 흔적을 찾아 헤맸다. 동시에 졸업앨범에 적힌 메일 주소로도 김보명을 찾기 시작했다. 그렇게 김보명을 찾아낸 것이다.

“그래도···. 이 학생이 아닐 수도···.”

-네가 찾는 그 사람이 아니야? 맞을 텐데···. 김보명이라는 이름이 흔한 것도 아니잖아.

“······그렇지.”

도욱은 멍하니 중얼거렸다.

그래도 여전히 믿기 힘들었다. 도욱은 다시금 사진 속 여학생을 뚫어져라 보았다. 영혼도 시간도 뒤바뀐 세계를 살고 있었다. 모든 게 정상적이지만은 않을 수 있단 생각이 그제야 들었다.

‘원래의 강도욱의 영혼은 어디에 있으며, 왜 하필 이 몸으로 들어오게 된 걸까.’

미뤄두었던 생각들이 하나씩 떠올릴수록 아연해졌다.

‘직접 확인해야겠어.’

도욱은 예전 자신의 얼굴, 그러니까 김보명의 얼굴을 떠올렸다. 시간이 조금 지났기 때문인지 어쩐지 자신의 얼굴을 떠올리기 힘들었다.

이러다 원래의 모습이나 관련 기억들이 지워지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생각하기 시작하자 부모님도 무척이나 그리웠다.

가슴 한편이 욱신거렸다. 애써 구석에 숨겨두었던 그리움과 두려움이 밀려드는 것 같았다.

교장실에서 서강준의 부모에게 무릎을 꿇었던 부모님의 모습까지 떠올랐다.

거기까지 떠올리자 도욱은 가만히 있기 힘들었다. 할 수 있는 게 없었던 김보명은 그 모습을 몰래 숨어서 지켜보다 눈물만 흘려야 했다.

도욱은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슬퍼한다고 해도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는 걸 그때 뼈저리게 깨달았었다.

‘시간이 되는 대로 가보자. 사진 속 여학생이라도 우선은 찾아가 보는 거다.’

다짐하며 도욱은 발걸음을 옮겼다.

***

10주 연속 1위.

대기록이었다.

중독성 있는 노래와 안무로 그야말로 ‘Very Sorry’ 붐을 일으켰다.

항간에는 케이케이의 1위를 저지할 만한 가수들이 해외투어나 앨범 준비 등으로 빠져 있어서 가능한 1위라고도 했다. 그야말로 빈집털이, 시기를 잘 탔다는 것인데 운도 실력이라면 실력이었다.

또 다른 가수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최소 6~8주 정도의 1위는 가능했을 것이었다.

어쨌든 10주 연속 1위를 끝으로 케이케이는 정규 1집 앨범 활동을 마무리했다. ‘Very Sorry’의 활동이 워낙 길었기 때문에 후속곡 활동은 하지 않을 예정이었다.

대신 한 달 뒤, 한 곡 정도만 추가된 리패키지 앨범을 발매해 짧게 1, 2주 정도 추가 활동을 하기로 했다.

팬 서비스 차원의 활동이기도 했지만, 리패키지라는 이름으로 앨범을 내는 이유는 간단했다. 리패키지 앨범 판매량 또한 정규 1집 앨범으로 집계되기 때문에 앨범 판매량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었다.

마지막 음악 방송 굿바이 무대를 마치고, 케이케이 멤버들과 주요 직원들이 소소하게 회식 자리를 가졌다.

회식은 회사 근처의 고깃집에서 열렸다. 멤버들도 함께 하는 회식이다 보니 분리된 방이 있는 고깃집을 찾았다. 회식의 주최자는 권흥조 제작이사였다.

권 이사가 가장 가운데 앉고 그 옆으로 오백호 실장과 용수철 피디가 앉았다. 앨범제작팀 심준 팀장은 스케줄이 있어 나중에 합류하겠다고 연락을 넣어왔다.

“용 피디. 덕분에 아주 든든합니다.”

권 이사가 물을 한 모금 마시며 용수철부터 챙겼다.

용수철은 연달아 힛 엔터테인먼트 소속 가수인 케이케이와 몬스터의 앨범을 성공시키면서 작곡가와 프로듀서로서 그 실력을 크게 인정받았다. 많은 가수들이나 제작자가 생각하는 가장 곡을 받고 싶은 프로듀서로 급부상했다.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금 목걸이의 금줄이 점점 더 두꺼워지고 있었다. 눈이 부실 정도였다.

용수철은 하하, 하고 웃었다. 인정의 말을 하진 않았지만, 크게 자신의 공을 부정하진 않았다.

연달아 히트곡을 냈다. 자신의 감각이 요즘 시대에 확실하게 먹혀들어가고 있음을 증명받은 셈이었다.

권 이사가 종업원이 가져 온 메뉴판을 뒤적였다.

멤버들이 눈치를 보며 침을 삼켰다. 이 고깃집은 한우가 유명한 고깃집이었다. 그러나 멤버들도 눈이 있었기 때문에 가격표를 보곤 ‘오늘 메뉴는 삼겹살이겠구나.’ 하고 지레짐작하고 있었다.

“여기 생꽃등심으로 일단은 14인분 주세요.”

종업원에게 주문하는 권 이사의 목소리를 들은 이들의 눈이 반짝였다.

멤버들을 향해 권 이사가 먹고 모자라면 또 주문하라고 덧붙였다. 마음껏 먹어도 좋다는 말에 멤버들이 박수를 치며 ‘감사합니다’를 합창했다.

케이케이 멤버들은 사실 이런 한우 정도는 충분히 먹을 수 있는 위치였다. 케이케이는 이제 회사의 주요 수입원이었다.

고기를 기다리며 권 이사가 케이케이 멤버들을 독려했다.

“다들 활동하느라 수고가 많았어요.”

“감사합니다!”

정윤기가 멤버들을 대표해 답했다. 권 이사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 리더로서 윤기 군이 고생이 특히 많았겠어요.”

“아닙니다. 다들 말도 잘 듣고······.”

답하면서 정윤기는 괜히 안형서를 쳐다보았다. 안형서가 입모양으로 ‘왜, 뭐, 왜!’ 하고 항의했다.

“좋아요. 회사에서는 물론 케이케이를 최고로 만드는 걸 목표로 했습니다. 불가능하다는 의견도 많았지만, 어쨌든 이렇게 해내고 있고······.”

권 이사는 잠시 말을 골랐다. 권 이사는 힛 엔터테인먼트의 창립 멤버였다. 대형 엔터테인먼트 제작팀에서 일하다 지금의 대표에게 스카우트되어 왔다.

말하자면 삼성 같은 대기업에서 팀장급으로 일하다 아무도 이름 모르는 동네 구멍가게의 사장이 된 것이었는데 당연히 주변의 반대가 극심했다.

그러나 권 이사에게는 권 이사만의 포부가 있었다.

대형 기획사에서 자신이 관여할 수 있는 부분에는 확실한 선이 존재했고, 권 이사는 그 선을 넘어 자신이 하나부터 열까지 ‘직접 제작’한 인물이 스타가 되는 희열을 맛보고 싶었다.

실제로 권 이사가 기획 단계에서부터 함께했던 밀키웨이가 꽤 큰 성공을 거두었을 때의 짜릿함은 이루 말 못 할 감정이었다.

그렇게 밀키웨이에 이어 몬스터까지. 참여도는 달랐지만, 어쨌든 권 이사의 손안에서 스타들이 탄생했다.

함께 대형 기획사에서 일하던 동료들은 연줄에 밀리고, 사내 정치에 밀려 다른 회사를 전전하기도 했고, 높은 위치까지 올라갔다 하더라도 아래에서 치고 올라오는 통에 빠른 은퇴를 고려하고 있었다.

그런 중에 힛 엔터테인먼트는 소형 기획사에서 중견이라 부를 만한 회사가 됐다.

중견에서 대형으로 올라가는 일이 문제였다. 권 이사는 케이케이를 통해 힛 엔터테인먼트를 더 큰 시장에 올려놓을 생각이었다.

계획을 세우면서도 권 이사부터 걱정이 많았고, 주변에서도 너무 무리하지 말라는 얘기를 들었었다.

이미 3대 기획사라는 틀이 어느 정도 잡혀 있는 시장에 비집고 들어가는 일이 만만찮았기 때문이다. 실력, 운, 자본. 어느 것 하나 모자라서도 안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권 이사는 ‘해볼 만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얼마 전 투자회사 쪽에서 힛 엔터테인먼트에 자본을 투자하고 싶다는 연락이 왔다. 현재 가장 필요하고, 부족했던 것이었다.

부사장 차원에서의 일이었기 때문에 권 이사가 직접 참여하진 않지만, 투자회사와의 미팅이 얼마 후라고 들었다.

“케이케이는 회사의 계획보다도 더 빠르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권 이사는 멤버 한 명, 한 명을 돌아봤다. 도욱과 눈이 마주쳤다.

‘오디션을 통해 강도욱이라는 새로운 인물을 멤버로 영입했을 때부터 해볼 만, 해진 것은 아닐까?’

문득 그런 생각이 권 이사를 사로잡았다.

도욱이 데뷔 전부터 데뷔 후까지 여러모로 화제를 불러일으킨 것을 권 이사도 이미 전해 들어 알고 있었다. 또 도욱은 이번 ‘Very Sorry’의 공동 작곡가이기도 했다.

권 이사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도욱은 권 이사를 향해 진지하게 눈을 빛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전에 세워두었던 앨범 계획과 해외 진출 일정을 조금 수정할 예정입니다.”

“해외 진출이 빨라지는 겁니까?”

일본 공연을 다녀오고, 이후에도 해외에서 여러 공연 섭외가 들어왔었다. 조금쯤 그러한 사실을 예상했던 오백호 실장이 질문했다.

“나중에 회의를 통해 다시 얘기하게 되겠지만, 그렇겠죠. 올해 안에 일본 쪽과도 계약해서 앨범을 발매할 겁니다.”

“일본 진출은 나카모토 그룹과 연결되나요?”

도욱이었다. 일본 진출은 현지 레코드사와의 계약 없인 힘든 부분이 있었다.

어떤 레코드사를 선택하고, 어떻게 유리하게 계약 조건을 체결하냐도 무척이나 중요했다. 도욱은 일본 쪽 이야기가 나오자 미리 준비라도 한 듯 ‘나카모토 그룹’ 이야기를 꺼냈다.

일본 진출에 있어 가장 큰 회사는 나카모토와 에이오였다.

현재로선 에이오가 더 큰 회사였지만, 이후 에이오는 경영부진에 빠지게 된다. 때문에 계약한 한국 그룹들의 홍보나 앨범 판매에도 영향을 끼친다. 도욱이 다녔던 큐 엔터에서도 이 문제로 골머리를 앓았다.

“나카모토와 에이오, 두 회사와 얘기 중이긴 한데······. 도욱 군, 일본 시장에 대해서도 알고 있어요?”

역시나 두 회사와 얘기 중이었던 권 이사가 놀라 되물었다.

“아······. 인터넷에서 정보글을 본 기억이 있습니다. 나카모토 쪽이 내실이 있다는 글이었습니다.”

“정말 만날 때마다 사람을 놀라게 하는군요. 도욱 군.”

도욱은 권 이사가 계약할 회사를 선택할 때 자신의 말이 영향을 미치길 바랐다.

“그런 쪽에도 관심이 있었어? 대단하다.”

오백호도 권 이사와 함께 감탄했다. 무어라 답할 길이 없어 도욱은 애매한 미소를 지었다. 때마침 주문한 고기들이 나와 주어 다행이었다.

***

며칠 후, 리패키지 앨범을 준비하며 녹음실에 있던 도욱은 오백호의 부름을 받고 회의실로 향했다.

회의실에는 오백호와 함께 루카스가 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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