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슈퍼스타-43화 (43/225)

# 43

우리의 만남은 우연이 (1)

***

새벽부터 일어나 조식을 먹으러 호텔 1층의 레스토랑으로 모인 멤버들은 동그란 식탁에 모여 앉았다.

늦게까지 팬들의 반응을 보느라 잠 못 이룬 석지훈은 앞에 놓인 스크램블 에그를 먹는 둥 마는 둥했다.

개인적으로도 커버곡을 연습하고, 올리면서 많은 생각을 했던 듯 어제 새벽 석지훈 따로 옆방의 도욱에게 메시지를 보내 다음번에는 혼자서라도 또 커버곡을 해보고 싶다고 도욱에게 의지를 표하기도 했다.

“팬들 반응 진짜, 지인짜 좋더라!”

시리얼을 우물거리며 안형서가 말했다.

실제로 도욱과 석지훈이 올린 커버곡에 대한 반응은 모두 긍정적이었다.

아직 성격 파악이 다 된 건 아니라 몰랐는데 석지훈이야말로 속이 꽉 찬 막내 같다는 생각이 든다는 댓글이 속속들이 올라왔다. 역시 강도욱이라는 얘기도 많았다.

또 노래에 대한 칭찬도 많았다. 두 사람은 얼굴만 보기 좋은 게 아니라 목소리도 듣기 좋다고 달콤함에 취한 것 같다는 팬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물론 도욱에 비해서는 부족한 석지훈의 실력을 지적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앞으로의 발전을 기대한다는 식이었다.

도욱이 노래를 정말 잘한다는 건 알았지만 기대 이상이라고 팬들이 입을 모았다. 도욱이 의도한 대로 도욱의 새로운 목소리를 발견한 것 같다는 팬들이 꽤 많았다.

팬카페 내부뿐 외부 커뮤니티의 반응도 제법 좋았다.

팬들을 위해 올린 노래이다 보니 엄청난 관심을 보이진 않았지만, 팬들을 위해서 이렇게 노래를 불러주는 ‘오빠들’이라니 너무 부럽다는 식이었다.

석지훈 관련된 글이면 빠짐없이 등장하던 팬에게 냉담하다는 식의 이야기는 공감을 얻기 힘들어졌다.

‘커뮤니티에서 도는 얘기 본 것 같다. 그 얘기를 잠재우려고 커버곡 한 번 부르는 걸로 퉁치는 것 같다.’는 식으로 몇몇이 석지훈이 올린 커버곡에 대한 의도를 깎아내리려고 했지만, 통하지 않았다.

-바쁜 스케줄에 곡 연습하고, 편곡까지 해서 올린 게 쉬운 일은 아닌데요..;;

-우리 지훈이한테 관심 꺼주시죠,,,

-소문 때문에라도 이렇게 챙겨주면 오히려 고마운 거 아님?

-넘 꼬아서 보는 듯ㅋㅋ

대체로 댓글 반응들이 석지훈의 편에 서 있자 더는 부정적인 의견들이 수면 위로 올라오지 못했다.

물론 도욱도 이 한 곡의 커버곡으로 계속해서 석지훈의 안티들이 완전히 사라질 것이라 생각하진 않았다.

오히려 케이케이의 인기가 많아질수록 석지훈뿐만 아니라 도욱이나 다른 멤버들의 안티들도 생겨나고, 늘어날 것이라는 걸 알았다. 작용이 있으면, 반작용이 있는 법이었다.

아예 안티가 없을 순 없었다. 그러나 중요한 건 반작용을 최소화할 절대다수의 힘이었다. 다수의 흐름이 어디 쪽으로 가느냐에 따라 안티들이 힘을 얻느냐와 잃느냐는 갈리게 된다.

앞으로도 계속 케이케이나 그 멤버들에 대한 다수의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이끌어나가는 게 중요한 문제라고 도욱은 생각했다.

석지훈이 올린 글에는 이후에도 틈나는 대로 노래를 연습해 팬 여러분께 노래 선물을 해주고 싶다는 내용도 포함되었다.

끊임없이 노력해야 했다.

“나중에 나도······. 내가 쓴 랩 중에 케이케이 앨범에 들어가긴 좀 그런 것들 말이야. 다듬어서 올려볼까.”

“오, 굿 아이디언데?”

안형서는 이미 커버곡에 대한 아이디어를 들을 때부터 다음번에는 자기도 노래를 연습해서 하겠다고 난리였다. 더해 어제의 반응을 보고 정윤기까지 나선 것이다.

정윤기가 슬쩍 흘린 의견에 김원이 맞장구쳤다. 도욱이 입 주변을 티슈로 닦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죠. 반응도 좋을 것 같아요. 형은 힙합 팬들도 따로 있기도 하고요.”

“힙합 팬? 아이돌이라고 후려치기나 안 하면 다행인데. 아! 그래 이런 한을 담은 랩을 써야지. 낄낄.”

말하다가 좋은 가사가 생각난 듯 정윤기가 낄낄댔다. 샌드위치를 먹던 박태형도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따로 안무 연습하는 영상······. 연습 많이 해서 올리고 싶은데······.”

여전히 부끄러움 많은 박태형이었지만, 그러한 성격은 성격대로 매력요소로 작용 중이었다. 외에는 자신의 의견도 필요할 땐 표현하기도 하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다른 생각을 할 때도 많았다.

“지금 여기서 춰서 올려도 잘할것 같은데? 언제든 올려, 태형아.”

정윤기가 박태형의 어깨를 두드렸다. 신뢰 가득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도욱 또한 답했다.

“그러게 좋은 생각인데? 네 장기도 살리고.”

안형서도 박태형을 향해 엄지를 세워 보였다.

그렇게 모두 셀프-컨텐츠 생산에 대한 열의를 보이며 조식 식사를 마쳤다. 저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선 무엇을 해야 하며, 얼마나 더 노력해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했다.

‘역시 멤버들 모두 자극을 받았다.’

옷을 갈아입고 스케줄 준비를 해야 할 시간이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호텔 방으로 돌아가며 도욱은 생각했다.

한 팀이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팀인 동시에 경쟁자였다. 도욱은 멤버들이 선의의 경쟁을 하며 서로 자극을 주고받아 발전하는 관계가 되길 원했다.

그리하여 이것은 시작 단계였다. 멤버 개인의 기량이 좋아지면 좋아질수록, 앞으로 케이케이가 하게 될 단체 활동과 유닛 활동에까지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게 분명했다.

***

오사카 쿄세라 돔.

돔에 도착하자 케이케이 멤버들은 졸음이 쏟아지던 정신이 확 깨어남을 느꼈다. 대기실에 들어가기 전 장비 설치가 한창인 무대를 보자 놀랄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와, 이래서 돔 투어가 꿈이라고 하는구나···.”

관객석을 돌아보며 안형서가 중얼거렸다.

‘이 드넓은 관객석에 사람이 다 채워지는 건가?’

감탄하기로는 도욱도 마찬가지였다.

사운드 체크에 들어가 다른 출연팀의 MR 소리가 들리자 멤버들은 또 한 번 입을 벌렸다. 귀로 들어오는 음향의 차원이 경험해 본 어떤 공연장들보다 뛰어났다.

‘역시 대단하다.’

오백호 실장과 도라희, 그리고 현지 스태프의 안내를 받아 대기실로 향하며 도욱은 생각했다.

물론 개인 콘서트는 아니고 케이케이는 오프닝 첫 곡만을 담당하는 공연이었다.

하지만 첫 해외 공연, 그것도 아시아 음악 시장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일본에서의 공연에 이전의 공연과는 또 다른 마음가짐이 되는 게 사실이었다.

<한일 문화교류축제>는 작년과 올해, 두 번째로 개최되는 공연이었다.

관광청과 일본에 진출한 케이블 방송국이 주최하는 행사로 한국과 일본에서 동시 생중계를 하며 K-POP을 더 널리 알리고, 그 인기를 자랑하는 데 힘썼다.

한국의 ‘드리미콘서트’나 시상식 정도의 급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 해의 내로라하는 한국가수들, 특히 해외에서 이름을 알리고 있는 가수들이 초대됐다.

쟁쟁한 초대 명단 중 올해 새롭게 추가된 이들이 케이케이와 맨투맨이었다.

아무래도 연차로 순서를 정하다 보니 케이케이는 오프닝을 맡았지만, 예외적으로 맨투맨은 엔딩 앞자리에 공연을 하게 됐다.

작년 대상 가수이기도 한 아라 엔터테인먼트의 대형 아이돌 그룹 ‘사방신화’가 엔딩을 맡았다. 정상의 자리에 예전에 올랐기 때문에 이제 내림세이긴 했지만, 사방신화는 여전히 한국 내에서는 최대의 팬덤을 보유한 그룹이었다.

일본에서도 오리콘 차트에 이름을 올리는 것은 물론이고, 현지 가수도 어렵다는 도쿄돔 콘서트를 성황리에 마치는 등 한국 가수 중 일본에서의 인기는 탑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 사방신화의 기세와 아라 엔터라는 기획사를 등에 업고 맨투맨은 엔딩 앞자리를 차지한 셈이었다.

물론 맨투맨 자체의 인기도 상당한 건 사실이었다.

케이케이는 신인인 데다 일본에서의 첫 공연이다 보니 두 번에 걸친 리허설에 모두 참여했다.

처음에는 무척이나 긴장했던 멤버들이지만, 리허설을 통해서 오히려 아티스트가 최고의 무대를 펼칠 수 있게 구축된 시스템에 금세 편안함을 느꼈다.

‘하던 대로만 하면 된다’고 했던 오백호 실장의 말이 정확했음을 모두 깨달았다.

<한일 문화교류축제>의 시작은 케이케이의 ‘Very Sorry’ 전주와 함께였다.

무대가 끝난 뒤 MC가 나와 오프닝 멘트를 할 예정이었다.

‘Very Sorry’의 전주가 깔리고, 무대 조명이 한데 모여 있는 케이케이의 모습을 비추자 관객석의 팬라이트가 일제히 켜졌다.

색색깔로 빛나는 팬라이트 중 가장 많은 색은 역시 사방신화의 색이었다. 그러나 그중에는 케이케이의 푸른색 빛 또한 꽤 존재했다. 푸른빛이 케이케이를 반기며 너울거렸다.

멤버들은 하나가 된 듯 정확한 타이밍에 맞춰 손을 뻗었다.

‘언젠가 단독으로 이 공연장을 찾을 날이 오겠지. 머지 않은 것만 같다.’

자신의 파트를 부르고 뒤쪽 대형으로 빠지며 도욱은 생각했다. 관객석에 정말로 자신들만을 보러 온 사람들이 가득하다고 생각하면,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일본 팬들의 반응은 확실히 한국의 팬들보다는 차분한 편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상대적인 경향일 뿐 일본 팬들이라고 해서 뜨겁지 않은 건 아니었다.

‘Very Sorry’의 무대를 뜨거운 눈으로 감상하는 팬들의 기운을 멤버들은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케이케이가 무대를 마치자, 케이케이의 절제되어 있으면서도 흠잡을 데 없이 훌륭한 퍼포먼스에 일본 팬들은 열렬히 박수를 보냈다.

일본인들의 눈길을 충분히 사로잡을 만한 무대였다.

땀을 흘리며 돌아온 멤버들은 대기실에서 쉬며 모니터로 다음 무대들을 보았다.

여러 팀의 공연 이후 맨투맨의 공연이 다가오고 있었다. 도욱은 아까 전 대기실 복도에서 스치듯 만났던 서강준을 떠올렸다.

도욱의 인사에 서강준은 건성으로 인사를 받았다. 도욱이 맘에 들지 않는다는 듯 위아래로 훑는 눈매가 더러웠다.

사실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태도로 삶을 사는 서강준에게 있어 마음에 드는 인물도 몇 없었다. 맨투맨 멤버들도 서강준의 비위를 맞추려고 노력하고, 필요하기 때문에 함께 활동하는 것뿐이었다.

그런 서강준에게 도욱은 특별히 더 맘에 들지 않는 존재였다. 볼 때마다 눈빛이 자신을 꿰뚫어보는 느낌이라 신경을 거슬렀다. 게다가 자신과 라이벌로 엮이는 것도 서강준의 심기를 상당히 거스르는 이유가 됐다.

도욱은 무언가 말하려는 서강준을 빠르게 지나쳤다. 아직은 사적으로 엮일 일이 아니었다.

맨투맨의 무대가 시작되자 대기실 밖 공연장에서 커다란 함성이 울렸다.

케이케이와는 인지도 면에서 다를 수밖에 없었다. 사방신화의 인기 바톤을 터치 받을 그룹으로서 사방신화의 일본 공연에도 자주 출연했고, 심지어 얼마 전에는 일본에서 정식으로 싱글 앨범을 발매하기도 했다.

맨투맨에게 열광하는 관객석을 모니터로 바라보며 도욱은 입술을 물었다.

‘한국에서의 격차는 이제 거의 사라지는 중이지만, 해외······. 특히 일본은 기획사의 힘이 조금 더 필요한 부분이 있다.’

도욱은 잔재된 문제에 대해 생각했다.

***

데뷔가 3개월여 정도 맨투맨보다 늦어 정식 일본 진출 또한 조금 늦어졌을 뿐, 케이케이의 인기는 한국에서든 해외에서든 나날이 높아지고 있었다.

‘Very Sorry’의 위력은 놀라웠다. 음악 방송 8주 연속 1위.

여태 최장 연속 1위 기록이 올해 초 걸그룹 ‘윈윈걸’의 8주 연속 1위였다. 기록이 타이가 된 셈이었다.

계속되는 1위 행진에 케이케이의 ‘Very Sorry’ 활동 기간은 점점 늘어갔다.

8주가 넘어가자 마음은 기쁘지만 체력적으로 지쳐가는 멤버들을 위해 회사에서는 스케줄 조정에 들어갔다. 공중파 3사와 대형 케이블 방송 외의 음악 방송 스케줄은 정리하고, 라디오 스케줄 같은 것들 또한 어느 선에서 커트했다.

와중에 팬들이나 대중들이 질리지 않게 하기 위해 리믹스 버전을 따로 내놓기도 했다.

활동이 계속 되고는 있지만 그렇다고 리패키지 앨범 발매 등 다음 단계 진행에 속도를 늦출 수는 없었다.

어느덧 스케줄을 가는 차 안에서 에어컨을 틀어야 하는 날씨가 됐다.

창밖으로 보이는 녹음이 푸르렀다. 무더운 여름이 시작되고 있었다.

도욱은 용수철을 보러 작업실로 올라가는 길, 사촌 누나 강서현의 전화를 받게 되었다. 몬스터 권지형의 사인을 받아다 주며 도욱이 강서현에게 부탁한 게 하나 있었다.

-전화 가능해?

“응. 무슨 일이야? 혹시 알아냈어?”

-진짜 누구기에 이렇게까지 찾고 싶어 하는 거야? 알아냈다. 내가 인터넷으로 다 알아냈지. 정보력은 빠순이가 갑이지!

강서현이 의기양양하게 답했다.

도욱은 서강준의 중학교를 알아내고, ‘김보명’이라는 인물이 현재 어느 학교에 다니는지 혹은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에 대해 알아봐달라고 지서현에게 부탁했었다.

처음에는 오백호 실장에게 부탁하려고 했었다. 그러나 오 실장에겐 이유를 끝까지 알아내려 할 테고, 대충 둘러대기도 힘들 것 같다는 생각에 강서현 쪽에 부탁하게 된 것이다.

휴대폰을 쥔 도욱의 손에 땀이 흘렀다. 휴대폰을 미끄러뜨릴까봐 더 꼭 쥐었다.

“그래서 김보명은 지금······.”

-지금 우정고등학교 다니던데? 걔가 페이스노트를 했으면 더 금방 찾았을 텐데······. 걘 안 하더라고. 아무튼 우정고 관련 인물 뒤져서 김보명이라는 애 찍힌 사진 있는 페이지 찾았거든?

“······.”

-내가 지금 주소 보내줄게. 네가 찾는 김보명 맞는지 봐봐.

“어? 어······. 고마워, 누나.”

감사 인사를 전한 후 도욱은 다급하게 전화를 끊었다. 곧 인터넷 주소 링크가 있는 메시지가 강서현으로부터 도착했다.

도욱은 떨리는 손으로 링크를 클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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