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2
Thanks to. (3)
오사카 간사이 공항.
입국 수속을 마치고 나온 멤버들은 입국장 앞 일본까지 따라온 팬들을 보고 조금 놀랐다.
“와, 대단하다.”
팬들 쪽으로 들리지 않게 안형서가 중얼댔다.
감탄하는 안형서와는 달리 오백호는 인상을 쓰며 몰리는 팬들을 제지시켰다. 김포공항에서보단 덜했지만, 역시 오사카 같이 가까운 곳까지는 따라오는 팬들이 많았다.
비행기도 같은 비행기 표를 구해 탄 팬들 때문에 신경을 곤두세웠던 오백호다.
“꾸물대지 말고 도라희 씨 따라서 움직여라, 얘들아.”
“네~!”
각자의 캐리어를 끌고 멤버들이 앞장서는 도라희를 뒤따랐다.
도라희는 일본에서 유학한 경험이 없음에도 독학으로 일본 현지인과 무리 없는 대화를 할 수 있는 일본어 능력자였다.
어차피 공연장에 가면 현지 통역사가 준비되어 있으므로 케이케이 한국 스태프로는 도라희와 오백호 실장 정도면 충분했다. 물론 거의 모든 스케줄에 필요한 스타일리스트팀도 함께였다.
루카스가 자신의 브랜드 런칭 준비를 위해 그만둔 지금, 현재 케이케이의 스타일리스트팀은 코디와 메이크업 담당 세 명으로 이루어진 아이돌 그룹 전문 스타일리스트팀이었다.
총 열한 명의 인원이 공항을 빠져 나왔다.
그리고 공항 앞에 준비되어 있던 현지 픽업 차 두 대에 나눠 올라탔다.
“봤어? 일본 팬들도 있는 거?”
“어······ 그 부채···.”
“맞아. 부채도 있더라. 짱신기!”
안형서와 박태형이 차 뒷좌석에서 대화를 나누었다. 김원도 끼어들었다.
“한국 팬들이랑 애티튜드가 다르던걸?”
“애티튜드으?··· 크, 역시 영어로 하니까 다 있어 보이네, 마.”
정윤기가 별거 아닌 영어에 감탄하며 중얼댔다. 안형서가 눈치를 보며 애티튜드가 뭔지 묻자 차 안이 잠시 얼어붙었다.
오랜만에 운전대를 잡지 않고 조수석에 앉아 있던 오백호가 이마를 짚었다.
“원이야, 형서 영어 공부도 좀 시키고 그래라. 쓸데없는 얘기로만 낄낄대지 말고.”
“저도 공부하거든요! 이래봬도 대학생인데!”
“그러니까······. 대학생인데···.”
안형서는 사이버대학 방송연예과에 재학 중이었다. 사실 안형서는 어지간히 공부 쪽으로는 관심이 없는 인물이었다. 꾀가 많은 것과는 다른 문제였다.
“영어 단어 정도는 모를 수도 있지······.”
안형서가 투덜대며 창밖을 봤다. 괜히 역시 일본은 다르다는 둥, 이제 막 도로에 진입해서 사실 간판 외엔 한국과 다른 점이 별로 없는 풍경을 보며 중얼댔다.
정윤기가 그런 안형서를 보며 낄낄댔다.
“그나저나 태형이랑 도욱이는 공부하고 있어? 이제 곧 수능인데······. 시간 없어서 힘들지?”
오백호가 뒤를 돌아보며 물었다.
순간 바깥을 보며 희미하게 미소 짓고 있던 박태형의 입가에 웃음기가 가셨다. 도욱은 별 변화 없는 표정이었다.
“어······. 어······.”
크게 당황한 박태형이 어물거렸다. 사실 박태형도 안형서만큼이나 공부에 관심없는 인물이었다.
그저 춤! 춤을 추고 싶다는 생각만으로 열아홉 인생을 살아왔다.
연습생들 대부분이 학업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이 현실이었다. 다른 꿈을 쫓고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럴 경우 연예인이 되지 못했을 때 진로 설정에 어려움이 따랐다. 학업 진도를 따라가지 않았다 보니 진로 선택에 한계가 존재했기 때문이었다.
박태형의 경우에는 이미 데뷔까지 한 상태였다. 앞으로의 진로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닌데 따로 반드시 공부를 해야 하는 건 아니었다.
그럼에도 어른이 공부했냐고 물으니 반사적으로 방어적인 태도를 취하게 됐다.
또 대학에 가는 게 좋긴 했다. 대부분의 남자 아이돌들이 이십 대 초반의 나이이다 보니 군입대를 미루기 위해 대학 진학을 선택하기도 했다.
오백호가 어쩔 줄 몰라 하는 박태형에게 말했다. 쓸데없이 박태형의 기를 죽일 생각은 없었다.
“뭐, 넌 확실한 특기가 있으니까 실기로 충분히 대학들어갈 수 있지. 요즘엔 실기 100퍼센트인 데도 많고.”
몬스터 멤버들의 입시 때 오백호가 알음알음 쌓아두었던 지식이었다.
“그냥 기본만 해둬. 혹시 모르잖아. 그리고 형서처럼 애티튜드도 모르면 안 되니까.”
“아, 백호 형!”
안형서가 소리쳤다. 오백호는 듣는 체도 안 하며 도욱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도욱이는··· 성적 좀 괜찮다고 하지 않았나?”
“아, 내신은 별로인데 모의고사 성적만 그나마···.”
도욱의 내신 성적이 별로인 건 원래 도욱의 성적이 별로였기 때문이었다. 원래의 도욱은 수업 시간에 잠만 자는 학생이었으니 성적이 좋았을 리 없다.
도욱의 모의고사 성적이 좋아진 건 도욱의 영혼이 뒤바뀌면서부터였다. 전부는 아니었지만, 수험생 시절 ‘김보명’이 공부했던 지식들이 도욱의 성적에 어느 정도 발휘되었다.
만약 다시 제대로 공부한다면 금세 더 좋은 성적까지 올릴 수 있을 듯했지만, 가수 생활에 작곡 등까지 하며 공부를 한다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또 크게 필요하지 않은 일이기도 했다. ‘학벌 좋은 아이돌’은 멤버인 김원 정도면 충분했다. 김원은 뛰어난 어학 능력을 인정받아 특별 전형으로 서울 최상위권 대학에 진학 중이었다.
어쨌든 도욱은 과거의 지식으로 기본적인 성적만을 유지해 목표하는 대학에 진학할 계획이었다.
“와우, 그럼 수능도 해볼 수 있겠는걸? 몇 등급?”
김원이 도욱에게 물어서 도욱이 대충 모의고사 성적을 말해주었다. 김원이 어느 정도 대학 생각하며 갑자기 진학 상담을 시작했다.
유일하게 일반적인 방법으로 대학을 들어간 김원이라 관심이 많은 듯했다. 갑작스러운 진학 상담 시간에 다른 멤버들은 고개를 저으며 각자 창밖을 보거나 휴대폰을 보는 등의 일을 했다.
석지훈은 차에 탔을 때부터 계속해서 맨 뒷자리에 앉아 음악을 듣는 중이었다.
Jason mori의 였다.
***
난바역 근처의 5성급 호텔.
캐리어를 들고 차에서 내려 호텔 로비에 모인 멤버들과 스태프들은 도라희가 나눠 주는 룸 키를 받았다.
“오, 호텔 좋아보인다.”
정윤기가 로비 천장에 달린 샹들리에를 올려다 보며 중얼거렸다.
“공연 측에서 준비되는 비즈니스 호텔 있었는데, 권 이사님이 요즘 케이케이 멤버들 수고 많다고 특별히 회삿돈으로 5성급으로 올려서 따로 잡으라고 하셨어요!”
도라희의 설명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회사에서 자신들의 입지가 부쩍 달라지고 있음을 느끼는 멤버들이었다.
인기가 많아졌다는 사실은 많아진 팬들을 볼 때보다도 회사나 방송국에서의 대우가 좋아졌음을 깨달을 때 더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런 순간이야말로 멤버들에게 자신들의 인기가 피부로 와 닿는 순간이었다.
“나중에 이사님한테 감사 말씀이라도 전해야겠네.”
오백호 실장이 말하며 각자의 룸으로 흩어지기 전, 멤버들에게 앞으로의 스케줄에 대해 말했다.
“첫 해외스케줄이라 긴장 풀라고 하루 먼저 잡은 거야. 오늘은 오랜만에 알아서들 쉬어. 쓸데없는 짓은 하지 말고.”
안형서가 입을 벌리고 손을 번쩍 들었다.
“쇼··· 쇼핑 가도 되나요?!”
“내일 아침 일찍부터 무대 준비해야 하니까 열 시 전에는 들어와. 여기도 너희 알아 보는 사람들 많으니까 조심하고.”
오백호가 시간을 확인하며 말했다. 지금이 오후 세 시였다. 밤 열 시까지의 자유 시간이라니, 음악 방송과 기타 스케줄들을 쳇바퀴 속 다람쥐처럼 반복하던 멤버들에게는 단비와도 같은 자유 시간이었다. 그 정도면 시간도 충분하게 느껴졌다.
게다가 어쨌든 외국이니 한국보단 행동이 자유로울 수 있었다.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잠부터 자려고 했던 정윤기도 잠이 확 깨는 기분이었다. 처음으로 온 해외이다 보니 구경할 수 있다는 생각에 들떴다.
“너희 근데 일본어는 할 줄 알아?”
안형서와 정윤기, 박태형까지 눈을 빛내며 쪼르르 서 있는 걸 본 오백호가 물었다.
“원이 형 있잖아요, 원이 형. 도욱이도 있고.”
안형서가 조금 떨어져 있던 김원을 끌어 당겼다. 도욱도 끌어당기려는데 도욱이 조금 난처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 저는 숙소에서······.”
“저도요.”
도욱과 석지훈의 말에 안형서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이 따로 무언가를 준비 중에 있다는 건 멤버들도 알고 있었다.
사전에 도욱이 오백호나 도라희한테까지도 상황을 설명해 놓은 상태였다. 물론 도욱의 아이디어에 모두 약간의 걱정을 하긴 했어도 좋은 생각이라고 힘을 실어주었다.
“그럼 짐 올려 놓고 나오자.”
정윤기가 어느 때보다도 서둘러 움직였다.
숙소에 짐을 푸른 후, 잠시 개인 시간을 갖다 석지훈은 도욱의 연락을 받고 도욱의 방으로 들어왔다.
도욱은 박태형과 방을 함께 썼는데, 박태형은 이미 쇼핑을 나간 상태였다.
“잘 왔어. 배는 안 고파?”
“네. 괜찮아요.”
“그럼 이거 하고 우리도 나가서 저녁 사 먹자.”
고개를 끄덕이며 석지훈은 도욱의 맞은편에 앉았다. 호텔 방에 자리한 테이블에 도욱은 노트북과 녹음용 마이크 등을 이미 설치해둔 상태였다.
그 모습을 본 석지훈이 말을 꺼냈다.
“형······. 괜히 귀찮게 해서 죄송해요.”
“아냐, 나도 한번 해 보고 싶었던 일인데 같이 하면 더 좋을 것 같아서 하자고 한 거야.”
도욱은 석지훈이 팬들에게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고, 석지훈 스스로도 마음을 여는 방법으로 노래를 택했다.
팬들을 향한 글을 올리는 것도 방법이 되겠지만, 인터넷상으로 전하는 글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었다.
케이케이는 가수였다. 가수는 노래로 말한다. 그러한 단순한 진리가 전제됐다.
또 노래에는 진심을 전하는 강력한 힘이 있다고 도욱은 믿었다.
그래서 케이케이 무대를 위한 노래가 아닌, 오직 팬만을 위한 노래를 준비하고, 녹음해 팬카페에 올릴 생각이었다.
도욱과 석지훈이 준비한 노래는 Jason mori의 ‘I’m Yours’.
듣기 편안한 멜로디와 보컬 특유의 부드러운 목소리, 뛰어난 리듬감 그리고 사랑스러운 가사가 합쳐져 전세계인의 사랑을 받았던 노래였다.
분위기도 석지훈에게 잘 맞을 듯했고, ‘I’m Yours’의 가사 내용이 특히 팬들에게 전달하는 메시지가 확실한 것 같아 선택했다.
“그럼 일단 목 풀고, 연습용으로 녹음해 볼게.”
“흠흠, 네.”
원래는 팬들에게만 선물할 커버곡이라고는 해도 제대로 녹음실에서 녹음을 해보려고 했다. 그러나 녹음실에 가 녹음을 할 스케줄이 쉽사리 나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잡힌 일본 스케줄이었다.
‘오히려 외국에서부터 보내 온 노래라고 생각하면 조금 더······ 의미있게 느껴지진 않을까?’
도욱의 머릿속에 그러한 그림이 그려졌다.
어차피 기본 장비 정도는 소형으로 작곡 공부를 하면서 갖춘 상태였다. 약간은 허술하지만 현장감 있는 녹음 상태와 일본에 가서 준비한 노래라는 것 등이 오히려 팬들에게 어필할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이 섰다.
당신의 마음을 봐. 거기에 사랑이 있어요.
사람들이 춤을 추고 노래하는 순간의 음악을 들어봐요.
우리는 하나의 가족이에요.
사랑하고, 사랑 받는다는 것, 그건 신이 준 권리.
복잡해질 필요가 없어요. 우리 인생은 짧으니까요.
우리의 운명이에요. 난 그대의 것이에요.
감미롭게 흘러나오는 멜로디에 맞춰 두 사람이 노래를 시작했다.
1절은 석지훈이, 2절은 도욱이 불렀다. 후렴구마다 짧게 화음도 넣었다. 석지훈의 노래 실력이 도욱만큼 뛰어난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듣기 좋은 목소리를 낼 줄 알았다. 조금 서툴러도 괜찮았다.
사실 케이케이의 앨범 녹음 때보다 많은 파트를 소화해야 했음에도, 몇 날 며칠을 노력한 덕분에 석지훈은 도욱이 바랐던 것 이상으로 노래를 불렀다.
노래를 부름에 있어 자신만의 색이 생긴 것도 같았다.
도욱에게도 사실 이 곡을 부른다는 건 케이케이 앨범과는 전혀 다른 색깔의 노래를 부르는 것이었으므로 새로운 시도였다.
자신의 음악적 역량을 시험해보고, 혹은 보여줄 좋은 기회였다.
두 사람이 부른 ‘I’m Yours’ 커버곡은 그날 밤 열한 시.
도욱이 간단히 믹싱을 본 상태로 마이튜브의 케이케이 채널에 업데이트됐다.
석지훈의 팬카페에 도욱과 함께한 커버곡 업데이트 사실을 알리며 ‘성격 때문에 자주 말하진 못하지만 팬들을 아끼고 사랑한다’는 내용의 글을 세 줄 정도로 정리해 올렸다.
마이튜브의 조회수와 팬카페의 댓글수가 순식간에 늘어나기 시작했다. 팬들은 모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팬들에게는 기뻐할 수밖에 없는 깜짝선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