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슈퍼스타-36화 (36/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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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더 Ok?! (6)

#한 번 더 Ok?! (6)

광고 촬영 스태프들이었다.

남자 쪽이 상사인지 부하로 보이는 여자에게 폭언을 퍼붓고 있었다. 도욱은 교복 하복 상하의를 손에 쥔 채로 두 사람의 모습을 잠시 보았다.

“죄송합니다, 선배님. 시정하겠습니다.”

폭언을 견디다 못한 여자 쪽이 울먹거렸다.

“씨X, 되는 일이 없으려니까. 촬영 빨리 끝내야 되니까 오늘 하루 두 배로 움직여, 알았어?”

“네! 알겠습니다!”

남자가 욕을 지껄이며 무언가 더 말하려고 할 때, 도욱이 발소리로 인기척을 냈다.

두 사람이 뒤를 돌았다. 도욱을 발견한 남자가 헛기침을 하며 먼저 자리에서 벗어났다. 도욱과 눈이 마주친 여자가 얼른 시선을 피했다. 옅게 한 화장마저 다 번져 있었다.

창피했는지 여자가 복도 옆의 여자화장실로 들어갔다.

도욱도 이내 남자화장실로 들어가 의상을 갈아입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지?’

자신이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지만, 도욱도 사람인지라 궁금증이 일었다.

의상을 갈아입고 나왔을 때, 여자화장실 안쪽에서 희미하게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도욱은 학교 화장실에서 혼자 울던 예전의 일들을 떠올렸다.

그런 종류의 괴롭힘은 아니겠지만, 혼자 숨어서 운다는 것이 얼마나 비참한 일인지 잘 알고 있는 도욱이었다.

도욱은 헤어와 메이크업, 의상까지 담당하고 있는 케이케이의 스타일리스트 팀에게 다가갔다. 코디들은 저들끼리 모여 떠들며 촬영대기 중이었다.

그리고 코디들의 대화를 통해 조금 전의 상황에 대해 이해할 수 있었다.

광고 촬영팀 총 감독이 생각한 촬영 시간은 최소 6시간. 때문에 감독은 장소 섭외 시간을 8시간으로 지시했다. 그런데 촬영팀 남자 조감독이 조수인 여자 스태프에게 처음부터 6시간으로 잘못 전달한 게 문제였다.

여자 스태프는 당연히 6시간으로 장소를 섭외했고, 총 감독인 김 감독에게 불려가게 되었다. 6시간이라고 전달받았다는 여자의 말에 김 감독은 다시 남자 조감독을 부른 것이다.

그러나 조감독은 그렇게 전달한 적 없다고 발뺌을 했다. 도리어 여자 스태프를 불러다 호통을 치고 자신이 언제 그랬냐며 난리를 부렸다는 얘기였다.

다른 막내 스태프들이 분명히 남자가 6시라고 했다는 것을 들었다고, 차마 나서서 도와주지는 못하고 나중에서야 자기들끼리 얘기했다고 한다.

“진짜 성격 안 좋아 보이더라.”

“방송가 사람들 입 험한 거 알아주지만, 그 새끼는 진짜 꼴통 같던데.”

“아, 진짜 싫다. 오 실장님이 저랬으면 난 절대 못 견뎌.”

모여 있는 코디들에게 도욱이 다가가 코디 중 한 명을 불렀다.

“저, 누나.”

“어? 도욱아. 왜?”

“저것 좀 잠시만 쓸게요.”

도욱이 가리킨 건 수정용 파우더 팩트였다.

“화장 고치게? 얼굴 괜찮은데?”

“아, 제가 쓸 건 아니고. 잠시만요. 진짜 잠깐이면 돼요.”

갑자기 파우더 팩트를 찾는 도욱에 의아해진 코디들이었지만, 순순히 파우더 팩트를 도욱에게 넘겨주었다.

도욱은 빠른 걸음으로 복도로 가 여자화장실 앞에 섰다. 곧 눈가를 물로 씻고 나온 듯한 여자가 나왔다. 도욱을 발견하곤 놀라서 걸음을 멈췄다.

“저······ 이것 쓰세요.”

울고 온 얼굴을 보면 남자는 더 트집을 잡고 무어라 할 게 뻔했다. 그렇다고 돌아가 화장을 고칠 시간 같은 게 여자에게 있을 리가 없었다.

도욱이 내민 파우더 팩트를 잠시 내려다보던 여자가 감사하다는 인사와 함께 화장실로 다시 돌아가 화장을 수정하고 나왔다.

확실히 붉어졌던 눈가가 정리가 되어 운 티가 덜 났다.

“잘 썼어요. 정말 고마워요.”

도욱은 말없이 여자가 건네는 파우더 팩트를 다시 되돌려 받았다.

“케이케이 멤버, 강도욱······ 맞죠?”

“아, 네······.”

여자는 도욱의 얼굴을 뚫어져라 보았다.

막내 스태프 때부터 지금의 자리까지 올라오는 데에도 수년이 걸렸다. 그동안 촬영장에서 겪은 수모는 다 말하기도 입이 아플 정도였다. 오늘처럼 윗사람에게 당한 일도 있었고, 광고주나 광고 모델들에게 당한 일도 많았다.

그런 어려움을 겪는 자신을 지켜본 이들도 많았다. 힘내라는 말을 해준 동료들은 있었지만, 연예인이 위로를 해 준 일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심지어 어린 남자 아이돌이 건넨 위로치고는 무척이나 세심한 배려가 담긴 위로였다.

“이 은혜는 잊지 않을게요.”

“아닙니다.”

별로 한 일도 없었기 때문에 도욱은 자신의 행동이 은혜를 갚을 일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여자는 고개를 저으며 정말로 반드시 갚을 거라고 말하곤 인사를 했다. 촬영장으로 돌아가는 여자의 발걸음이 빨랐다.

도욱은 그래도 자신이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었다면 다행이라는 생각 정도만 했다. 이후에 여자가 정말로 은혜를 갚게 될 줄은 꿈에도 상상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

콘티대로 촬영은 진행되었다. 앞으로 남은 시간 안에 촬영을 마쳐야 했으므로 어떠한 지체도 하지 않겠다는 감독의 의지가 느껴지는 촬영 현장이었다.

다행이 첫 광고 촬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케이케이 멤버들은 여러 번의 NG 없이 오케이를 받아냈다.

드리블을 하며 빠르게 코트를 가르는 정윤기, 앞에 있는 팀원에게 패스를 하는 안형서, 한 번에 공을 받아 움켜쥐는 석지훈, 낮은 자세로 상대편의 공을 가로채는 박태형.

그리고 깨끗하게 3점슛을 성공시키는 도욱까지.

단독 컷을 모두 마친 후에는 일렬로 서 있는 여섯 명의 멤버들을 카메라가 담아냈다. 마지막 엔딩 컷에 쓰일 장면이었다.

추가로 감독은 도욱이 혼자 서 있는 장면을 촬영했다. 콘티에는 없었지만 그림이 될 것 같다는 판단에서였다.

박수와 함께 무사히 촬영이 끝났다.

엘리트룩 홍보팀 관계자가 오백호 실장과 멤버들에게 다가와 수고했다는 말과 함께 다음 일정들을 전달했다. 오백호는 유선으로 이후에 있을 포스터 촬영과 지면 광고 촬영 등의 스케줄을 조정하기로 하고 인사와 함께 촬영장 밖으로 나왔다.

“재밌긴 했는데 피곤하네.”

“그러게, 아, 하품 나와.”

정윤기가 피곤을 호소했다. 안형서도 늘어지게 하품을 하며 눈을 비볐다.

“고생했다, 다들.”

오백호가 멤버들을 격려하며 차를 주차해 놓은 주차장으로 향했다.

***

공백기가 3주째.

신인일수록 공백기를 길게 가지지 않는 건 무척이나 중요한 원칙이었다. 아직 코어가 되지 않은 팬들은 쉽게 다른 그룹에게 눈을 돌리기 때문이었다.

케이케이와 회사는 팬들이 최대한 공백기의 허전함을 느끼지 않게 하기 위해 노력했다. 생산자는 소비자인 팬들이 보고 즐길 수 있는 콘텐츠, 즉 ‘떡밥’을 끊임없이 생성해 내야 했다.

얼마 전 촬영한 교복 광고가 방송되면서 소위 말하는 새 떡밥이 생성되어 다행이었다. 또 멤버들은 페이스노트로 하루가 멀다 하고 자신의 근황을 알렸다. 덕분에 공백기임에도 불구하고 팔로워수는 계속해서 늘고 있었다.

추가로 주에 한두 번씩 팬-마케팅팀에서 편집한 비하인드 영상도 마이튜브에 업데이트 되었다.

때문에 케이케이가 공백기임을 전혀 느낄 수 없다는 팬들이나 공백기 ‘입덕’ 팬들도 심심찮게 생겨났다.

그러는 동안 멤버들은 개인 연습을 하고, 얼마 전 나온 타이틀곡 및 앨범 수록곡 녹음에 몰두했다.

앨범 수록곡은 앨범 제작팀 쪽에서 받아 놓은 곡들과 용수철이 새로 작곡한 곡 두어 곡이 들어갈 예정이었다.

타이틀곡은 도욱이 용수철과 함께 공동으로 작곡 및 작사한 곡이었다.

한번 들으면 잊을 수 없을 만큼 중독성이 강한 곡이었다. 심준 팀장에게 처음 들려주었을 때 심준 팀장은 입을 틀어막으며 놀라움을 표현했다.

현재 곡의 안무를 ‘Sorry but I Love You’의 안무가에게 의뢰해 놓은 상태였다. 다음 주 초 안무가 나오면, 연습 후 뮤직비디오 촬영을 하는 등 본격적인 앨범 준비에 돌입할 예정이었다.

‘어떤 반응이 나오게 될까······.’

용수철과 도욱과의 공동 작업으로 이번 타이틀곡은 이전의 세상에는 없던 곡이 탄생한 셈이었다.

물론 도욱은 시대의 흐름을 알고 있었으므로 타이틀곡의 장르 선정부터 지금쯤 붐을 일으키게 되는 장르를 선택했다. 또 곡의 진행 방식 또한 현재 대중의 귀를 사로잡을 수 있는 방식을 취했다.

더해 용수철의 실력도 믿고 있었다. 그러므로 타이틀곡이 인기를 얻으리라는 자신이 있었지만, 그래도 또 불확실한 1퍼센트의 확률을 걱정하게 되는 게 사람이었다.

“도욱아, 너 요즘 너무 무리하는 거 아냐?”

도욱은 자신에게 말을 거는 이의 목소리에 겨우 생각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네?”

“마, 그러다가 다크서클이 턱 끝까지 내려오겠다. 아무리 잘생겼어도 그건 아니지 않겠냐?”

정윤기였다. 정윤기는 도욱과 거실 식탁에 마주 앉아 있었다. 벌써 새벽 두 시가 넘어가는 시각이었다.

수록곡으로 들어갈 노래 중 아직 녹음 전인 노래가 두 곡이었다. 그 두 곡 중 한 곡은 정윤기의 랩 가사가 아직이었고, 남은 한 곡은 도욱이 직접 작사 중이었다.

연습이 끝나고 숙소로 돌아왔지만, 일이 남은 두 사람이 노트북을 켜 놓고 새벽을 지새우고 있는 것이었다.

“무리는요. 형이야말로 힘들죠?”

대부분의 곡에 직접 작사한 랩을 넣고 있는 정윤기에게 도욱이 되물었다.

“나야, 뭐. 랩 몇 소절 쓰는 데도 이러고 있는데, 너는 뭐 작곡에 작사까지. 같이 활동했는데 넌 몸이 다섯 개야?”

도욱은 웃었다. 웃음에 피곤이 가득했다.

“그래도 형이 쓴 랩들, 정말 좋아요.”

진심이었다. 도욱은 정윤기가 원래 알고 있던 것보다 랩에 있어 더 큰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걸 함께 활동하며 알게 되었다. 그래서 더 정윤기가 많은 부분 앨범에 참여할 수 있도록 도왔다.

“고맙다, 짜식. 나도 네가 쓴 타이틀 곡 너무 좋더라. 이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처음 들었을 땐 놀라서 말이 안 나오데.”

“용 피디님이랑 같이 한 건데요.”

“아냐, 데뷔곡이랑은 또 다른 느낌이야. 내가 마, 뭔 복이 있어서 너랑 같은 멤버가 됐나 했어. 그날은.”

정윤기의 말이 도욱의 마음을 울렸다. 이렇게까지 정윤기가 기뻐해주니 무언가 더 인정받는 기분이었다.

“아무튼 너무 무리하지 말라고. 아직 키 클 나이잖아.”

“하하, 네······.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해요.”

“너보다 키 작은 사람이 말한다고 한 귀로 흘리지 말고!”

그렇게 정윤기와 담소를 나누며 웃을 때였다.

도욱의 휴대폰에 메시지가 도착했다. 몬스터의 멤버 권지형으로부터 온 메시지였다.

[고맙다 후배님ㅎㅎ 얘기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오늘 1위했다ㅎㅎ 이제야 회식 끝나서 연락해ㅎㅎ 타이틀곡 성적 안 좋아서 죽상이었는데······ 덕분에 살았다! 나중에 크게 한턱 쏜다!]

몬스터는 오늘 후속곡이었던 발라드곡 ‘달빛 사랑’으로 케이블 음악 방송 프로그램에서 1위를 했다.

‘달빛 사랑’의 작사가는 김숨이었다. 김숨은 도욱의 부탁으로 해당 곡의 작사를 맡게 되었다. 그리고 도욱의 기대대로 시구절과 같은 서정적인 가사를 써냈다.

꼭 가사만의 힘이라고는 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달빛 사랑’이 잘됐다고 하니 자신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 것 같아 기쁜 마음이었다.

사실 몬스터의 타이틀곡이 1위를 한 번도 하지 못한 것은 맨투맨이 5주 연속 1위를 차지했기 때문이었다. 맨투맨이 다시 활동을 접은 때에서야 몬스터가 1위를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맨투맨의 ‘나를 봐봐’는 역시 ‘너는 너무 예뻐’보다 더 큰 인기를 끌며 맨투맨을 탑의 자리로 이끌고 있었다.

심지어 아라 엔터 쪽에서는 케이케이를 의식한 탓인지 음악 방송 순위 제도 부활에 힘을 쏟았다.

덕분에 대부분의 음악 방송에는 순위 제도가 부활하게 됐고, 맨투맨은 순식간에 케이케이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이 많은 1위 트로피를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부활한 순위 제도가 맨투맨에게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었다. 이제 케이케이에게도 전 방송사의 1위를 휩쓸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할 수 있다······.’

도욱은 눈앞의 정윤기를 보며 다시금 생각했다.

케이케이의 정규 1집 앨범, 의 발매일이 코앞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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